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도서관에 갔다가 [즐거운 어른]이라는 책을 빌려 왔다. 저자가 내가 좋아하는 김하나 작가님의 어머니라는 것도 좋았지만 목욕탕에 나란히 앉아 있는 3명의 할머니가 그려진 표지도 너무 마음에 들었다. 앞선 세대를 살아간 쿨한 어른에게 인생 별 거 없다는, 너무 애쓰지도 말고 그저 현재를 즐기며 살라,는 조언을 듣는 기분이기도 했고, 요가와 헬스, 독서, 여행 등 하루를 취미생활로 가득 채운 일상 이야기를 읽으면서 노년 생활이라고 해서 지루하고 심심하기만 할 거라는 편견을 깨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읽으면서 자꾸 '우리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12남매 중 끝에서 두 번째 딸로 태어났는데,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나이 차이 많이 나는 큰 오빠네 집에서 더부살이하며 살았다. 집안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셨고 먹고사느라 한글을 배울 기회도 없었다. 큰 오빠네 집에서 독립해 공장에 취업을 해서 아빠를 만났고 20살에 아빠와 가정을 이뤘지만 없는 사람 둘이 만나도 있는 사람들이 될 수는 없는 시대였기에 여전히 먹고 살기 위해 온갖 노동을 하셨다. 어릴 적 기억하는 엄마 모습은 마당 수돗가에 쪼그리고 앉아 사포로 돌을 닦는 부업을 하는 거나 뜨개질 거리를 한아름 쌓아놓고 뜨개질 부업을 하는 모습이나 장미꽃을 접는 부업이나 인형코를 꿰매는 부업을 하는 모습 등이다. 내가 좀 더 크고 태백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김장철이 다가오면 엄마는 새벽마다 배추작업을 나갔는데, 등교를 하는 길에 저 높은 곳에서 배추작업을 하는 엄마의 모습이 보이곤 했다. 아빠가 워낙 고지식하고 보수적이어서 엄마가 밖에 나가 일하는 걸 싫어했기 때문에 엄마는 온갖 부업으로 돈을 벌어 생활비를 보탰다. 


  자식 셋을 다 키우고도 엄마의 노동은 끝나지 않았는데, 우리 딸을 시작으로 언니네 아들 둘, 동생네 아들까지 손주4명을 키우셨다. 깍두기, 열무김치, 물김치, 배추김치 부터 늘 반찬을 해서 자식들 집에 싸서 보냈고 엄마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 아빠 때문에 해외 여행은 커녕 친구들(친구라고 할만한 인간관계도 없으시다. 예전에 살았던 또는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동네 어르신들이 엄마의 친구다)과 국내 여행 한 번 다녀오신 적이 없었다. 2대 독자인 아빠네는 왜 이렇게 제사가 많았는지 엄마는 1년에 제사만 10번 가까이를 지냈는데, 나 역시 독립을 하기 전까지 제사 준비를 했던 기억이 남아있어 살림은 못했어도 전은 기가 막히게 부쳤다. 엄마의 공간은 늘 집 근처로 한정되어 있었고 온갖 노동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지만 엄마는 엄마를 위해 산 적이 없었다. 결국은 다 같은 성을 가진 아빠와 우리 3남매를 위해서만 엄마의 삶은 돌아갔다.


  다행히 5년 전부터 엄마는 엄마의 인생도 살기 시작하셨는데, 시에서 하는 학습관에서 한글 공부를 시작하셨다. 가나다라 부터 시작했던 한글공부로 엄마는 이제 카톡도 보내고 왠만한 글자는 읽고 쓰신다. 운동도 시작하셨는데, 시에서 운영하는 학습관에서 요가를 배우시다가 지금은 필라테스 학원에서 어르신을 상대로 하는 근력운동을 하루 한 시간씩 하신다. 자식들이랑 해외여행은 두 번 다녀왔고 국내 여행은 자식들이랑 자주 다니는 편이다. 아빠가 나이가 들면서 고집이 약해져 제사도 많이 줄였는데, 지난 해부터는 추석에는 제사를 안 지내고 성묘만 하기로 해서 엄마의 부담이 조금 더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김치를 하고 반찬을 해서 자식들한테 싸주는데, 아무리 하지 말라고 해도 끊지를 못하신다. 그래서 엄마의 낙이려니 하고 되도록 감사하게 받아 먹으려고 노력 중이다.


  결국 [즐거운 어른]은 읽다가 중도포기했다. 카프카식으로 말하면 내 안의 얼음을 깨는 도끼같은 어른의 이야기는 [즐거운 어른]보다는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이다. 평생을 노동했지만 명함 한 장 없었던 여성들의 이야기. 우리 엄마 시대 너무 당연하게 강요됐던 여성들의 희생과 그림자 노동, 자신의 이름 보다는 엄마나 며느리, 아내로 불린 여성들이 고군분투하며 닥친 현실을 이겨내고 결국 자신의 인생에서 승리하는 여성들의 이야기. 




  식상한 표현이지만 엄마의 존재를 '공기같다'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없어서는 안될 엄마의 노동, 그리고 지금 시대 여성으로 채워지고 있는 필수 노동들 역시 너무 흔해서, 공기 같아서 우리는 소중함을 모르고 지나칠 때가 많다. 엄마가 엄마의 인생을 잘 살 수 있기를 응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돌봄 노동이나 학교 급식 조리사 노동자분들의 열악한 처우나 청소 노동자분들의 처우 개선 등에도 관심을 가지는 것도 중요한다. 멋지고 쿨한, 즐거운 어른이 되는 것도 좋지만 사회적 고통과 아픔에 함께 슬퍼하고 공감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리고 늘 우리 사회 많은 '엄마'들의 노고에 감사하며 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철학의 쓸모
로랑스 드빌레르 지음, 박효은 옮김 / FIKA(피카)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년에 고3이 되는 딸은 미대를 가는 게 꿈이다. 초등학교를 입학하면서 내가 퇴근할 때까지 시간을 때우기 위해 학원을 보냈는데, 그 중 하나가 미술학원이었다. 딸은 미술에 취미도 있고 소질도 있어서 초1부터 중3까지 꾸준히 미술학원을 다니다 고1이 되면서 입시미술로 옮겼다. 딸의 꿈은 도슨트가 되는 것인데, 수어를 배워 청각장애인에게 그림을 수어로 설명해주고 싶다는 꿈도 있어 틈틈이 수어도 배우고 있다. 


  얼마전 2학년 2학기 기말고사가 있었고 딸은 심한 목감기와 몸살감기에 걸려 시험 내내 고생을 했다. 병원에서 수액을 맞아가며 공부를 했지만 감기로 인해 컨디션은 최악이었고 시험 결과 역시 좋지 않았다. 딸의 학교에서는 하필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에 각 가정으로 시험성적표를 보냈는데, 딸의 성적표를 아무리 부모라도 우리가 먼저 보면 안되고, 성적표 역시 딸이 보여주고 싶을 때만 보여준다는 암묵적 룰이 있어 딸 책상에 올려뒀다. 크리스마스가 지난 어제 미술학원을 다녀와 간식으로 토스트를 먹겠다며 신나하던 딸에게 성적표 왔는데 봤냐고 물었다. 딸은 그제야 성적표가 왔냐며 책상을 뒤져 성적표를 찾아 보더니 소파에 앉아 우울모드로 있다가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성격이 워낙 밝은 딸이라 우는 모습을 보면 유난히 마음이 아픈데 감기에 걸려 힘들게 공부한 딸을 봐서인지 어제는 마음이 더 아팠다.


  딸은 속상한 마음에 대입은 망했고, 자기 인생은 끝났고, 이번 시험은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너무 좋지 않아 좌절감이 심하고, 그림 실력 역시 잘 늘지 않아 슬럼프 같다며 하소연을 하며 울었다.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라고 내가 한 말은 "고통없는 삶은 없어."였다,


  "하은아, 고통없는 삶은 없어. 사는 건 감당해내는 거야. 매 순간 거친 파도가 닥치기도 하고, 잔잔한 파도가 닥치기도 하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그 파도를 감당해내는 거야.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그저 묵묵히 견뎌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행운이 닥치기도 해. 당장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데, 왜 미래를 미리 걱정해. 미래는 여백으로 남겨두고 지금 닥친 고통에만 슬퍼하고 속상해하고 대신 지금 할 수 있는 걸 행동으로 옮겨야 회복탄력성으로 내일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딱 시험을 못 봤다는 그 만큼만 속상해해. 앞으로 살 날이 얼마나 많아. 기대할 것도 많고 대입이 네 인생 끝이 아니야. 다른 무궁무진한 기회들이 엄청 열려있어. 넌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걸 하면 돼. 그래야 기회도 행운도 널 따라 오는 거야. 사는 게 원래 만만하지 않아."


  우리는 철학은 쓸모가 없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철학이 얼마나 유용하게 쓰이겠냐고 생각해서 철학은 그저 뜬구름잡는 얘기라고 치부할 때도 많다. 그런데 어제 나는 최근에 읽은 [철학의 쓸모]에 나온 책구절로 딸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려고 했다. 그 말은 나 역시 위로를 받았다는 얘기겠지.



  로랑스 드빌레르의 [철학의 쓸모]는 '의학으로서의 철학'에 대해 얘기한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시련을 겪게 되는데, 현실은 너무 잔인해서 나의 의지와 노력과는 전혀 상관없이 굴러갈 때도 많다. 당장 내일 일도 예측할 수 없고 이미 벌어진 일은 주워 담을 수도 없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 만다. 철학은 우리가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없어도 내 삶의 주인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 준다. 내 앞에 닥친 현실, 고통, 시련을 어떻게 마주할지, 어떻게 통과할지 스스로 내가 정할 수 있음을. 우리가 두려워 하는 것은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 두려움 그 자체임을 때 깨닫는 것처럼 내 앞에 벌어진 일들을 어떤 마음으로 대할 지는 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철학은 현실을 바꿔 줄 수는 없지만 현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바꿔 바로 앞에 닥친 고통을 치유해줄 수 있다. [철학의 쓸모]는 이런 고통들을 철학이 어떻게 의학으로서 기능하는지를 여러 철학자들의 '사유'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데 예를 들면 반복되는 일상의 권태와 나태에 대해서는 니체의 '단기적 습관을 추구하라'는 사유를 통해 철학 처방전을 내려준다.


  "나는 단기적인 습관을 사랑하며, 이것이 '수많은' 사물과 상태를 알게 해주는 더없이 귀중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니체의 단기적 습관이라는 처방전은 다양한 활동을 권장하지 않는다. 니체는 한 자리에서 오래 지속되는 것들, 즉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습관의 편안함을 느껴보라고 말한다. 


  질병을 싸워서 이겨야 하는 전투에 빗대 병에 걸리는 것을 패배로 보고, 병을 극복하는 것을 승리로 보는 질병의 은유에 대해서는 수전 손택의 처방전을 내려준다.


  "질병은 은유가 아니며, 질병에 대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정직한 태도이자 환자가 되는 건강한 방법은 질병에 따라붙는 잘못된 은유에 저항하고 거기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질병은 다만 또 다른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다른 삶에 속하려면 많은 비용이 든다. 우리는 건강의 세계와 질병의 세계라는 두 세계의 이중 국적을 가지고 태어난다. 우리는 언제나 건강의 세계에서 쓸 여권을 갖고 싶어 하지만, 잠시라도 질병의 세계에 다녀올 수밖에 없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닥치게 마련이다."


  [철학의 쓸모]는 철학적 사유가 우리 삶에 얼마나 큰 위로를 줄 수 있는 지를 알게 해주는 책이다. 나이가 들면서 달라진 것 중 하나는 고통스러울 때, 슬플 때나 아플 때 전에는 가까운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위로받기도 하고 치유받기도 했는데, 이제는 묵묵히 속으로 감내하고 그럴 때 일수록 말이 더 없어진다는 거다. 이 책은 고통을 속으로 삭히며 혼자서 묵묵히 헤쳐 나갈 때 처방전이자 나침반이 되어 줄 수 있는 책이다. 


  아이 둘을 키우고 반려동물과 함께 하면서 여실히 느낀 점 중 하나는 세상은 내 뜻대로 되는 게 없고, 예상치 못한 온갖 고통들이 도처에 깔려 있다는 거다. 그런데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으로 시작해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져,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여러 감정, 생각들을 직시하고 내 삶의 방식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게 굉장히 큰 용기를 내게 한다. 어떤 시련과 고통에도 무너지지 않고 강하고 단단하게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무모할 정도의 용기. 


  딸은 다행히 속상한 마음을 훌훌 털어내고 부은 눈으로 토스트를 맛있게 먹었다. 요즘 청소년들이나 청년들이 너무 살기 힘든 세상이다. 부모로서 아들도 딸도 삶은 원래 고통으로 가득 차 있고, 산다는 게 시련을 견디는 일임을 인식하되 자기만의 방식으로 잘 감당해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철학의 쓸모 역시 알아주면 좋겠지만 엄마의 바람이겠지.


  우리는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고전을 가진 채 "우리의 의사와 관계없이 이 세상에 던져졌  지만 원한다면 창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저런 시간에, 이런저런 환경에서, 이런저런 얼굴과 성격으로 태어났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이른바 자기 창조 능력은 한계에 부딪힌다. 산다는 것은 우리가 결정하지 않은 현실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의 의지에 따라 자유로워질 수 있고, 가능성을 시도해볼 수 있는 삶 속에서 "우연에 의해 존재하는 우리 자신에게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우리는 혁명이나 영웅주의에 기대지 않고, 우리 내면의 힘을 기르면서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는 능력, 곧 탄생성을 발휘할 수 있다.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탄생성이란 늙음이나 젊음에 좌우되는 생물학적 현상이 아니라 비루하고 보잘것없더라도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다. 우리는 새롭게 시작하면서 자기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 이는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일을 벌이는 것도, 활동량을 늘리는 것도 아닌 언제나 변함없이 냉혹하게 우리를 짓누르는 세상사에 맞서 자신을 잃지 않고 의연하게 버티는 것이다. 겸허하게, 그러나 예상치 못한 것과 깜짝 놀랄 만한 것을 만들어내면서 다시 한 번 세상에 충격과 감동을 주는 것이다. 무언가를 고백하는 것처럼, 눈에 띄지 않는 뜻밖의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요즘 책태기를 겪고 있다. 40중반에 사회복지학을 공부해보겠다고 이번 학기부터 방통대 수업을 듣고 있는데, 수업과 직장일과 가사일을 함께 하다보니 심신이 지친걸까? 기말시험이 끝나면 책을 부지런히 읽어야지 했는데, 막상 시험이 끝났지만 책을 부지런히 읽지 못하고 있다. 날씨가 춥다보니 전기장판을 틀어놓고 침대에 누워서 책을 읽게 되고, 책을 펴고 30분도 넘기지 못하고 잠이 든다. 잠들기 전 바디스캔 명상을 하는데, 요즘은 책만 폈다 하면 잠이 들어서 바디스캔 명상은 고사하고 침대 스탠드 불도 신랑이나 딸이 꺼주고 있다. 감기기운이 2주째 계속되고 있어 항생제와 알레르기약을 계속 복용중인데 약기운이 더해져서 더 잠이 오는 걸까? 읽고 싶은 책은 잔뜩인데 몸이 따라주지 않아 요즘 계속 좌절중이다.


  기말시험을 앞두고 윤석열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계엄령 이후 일상이 멈춰으리라 생각하는데, 나 역시 그날 이후 일상이 멈췄다. 속보를 놓칠까 핸드폰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고 직장일도, 책읽기에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다행히 계엄령은 해제되고 윤석열 탄핵안이 가결됐지만 여전히 정국은 어수선하고 국민들은 모두 불안해한다. 여당의 헛발질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분노를 하게 되는데, 어쩌면 이런 마음으로 집중해서 책을 읽지 못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작년 여름부터 아파트 단지 2군데에서 고양이 밥을 챙겨주고 있는데, 한 아이가 출산을 했다. 작년 겨울 스티로폼으로 만든 고양이집을 가져다 뒀는데, 그 안에서 아이를 낳은 모양이다. 캔을 따주면 늘 밥을 먹으로 오는 아이가 스티로폼 집 안에서 꼼짝을 하지 않길래 환할 때 가서 봤더니 손바닥만한 까만 애기를 품에 안고 있었다. 경계심이 늘었는지 하악질도 심해져서 아는 척 한 번 못하고 밥과 물만 채워주고 오기 빠빴는데, 하루는 밤새 많은 비가 내리고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갓 태어난 애기 고양이와 출산을 한 엄마 고양이가 너무 걱정이 되서 고양이집을 감싸주는 바람막이? 비닐 온실을 구입해서 스티로폼집 위에 덧씌웠다. 엄마 고양이는 내가 비닐 온실을 덮기 위해 부스럭거리자 후다닥 뛰쳐 나가 차 밑에 숨어 나를 멀뚱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비닐 온실이 비바람을 막아줄거란 생각에 혼자 뿌듯해했는데, 며칠 뒤 나의 오지랖이었음이 밝혀졌다. 비닐 온실을 씌우고 이삼일 엄마 고양이가 밥을 먹으러 나오지 않길래 혹시나 해서 집을 들쳐 봤더니 엄마와 애기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내 오지랖이 그나마 따뜻하게 몸을 맡길 수 있었던 집에서 아이들을 쫒아낸 건 아닌가 하는 후회와 자책으로 오랜만에 눈물 콧물을 펑펑 쏟으며 울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비닐 온실을 치우고 집 바닥에 깔린 담요를 새 담요로 바꿔주고, 늘 그랬든 밥과 물을 갈아주고 아이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밖에 없다는 게 화가나고 마음이 아팠다.


  나를 둘러싼 거시적 세계에서 비상계엄령이 선포되고 미시적 세계에서 엄마 고양이와 애기 고양이가 나의 오지랖 때문에 사라졌다. 나의 노력과 기대와는 전혀 상관없이 굴러가는 흐름과 질서는 존재하는데, 나는 늘 그 사이에서 휘청거린다. 발바닥과 코어에 힘을 주고 단단하게 서 있으려고 마음은 먹지만 늘 이리저리 흔들리고 부딪히고 깨진다. 인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길에서 출산한 엄마 고양이와 갓 태어난 아기 고양이의 '길 위의 삶'은 아주 사소한 것일 수도 있지만 나는 늘 이런 사소한 것들 때문에 아프고 마음을 다친다. 내가 마주할 수 있는 세상이 살만해진다면 거시적 세계까지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살지만, 내가 마주할 수 있는 세상 속에 길에 사는 고양이들이 지낼 추운 겨울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과연 세상이 좋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윤석열 탄핵안 2차 표결날 많은 시민들이 광장에 모였다. 이번 집회는 MZ세대의 참여와 아이돌 응원봉, 광장을 채운 K팝 등으로 더 감동적이었는데, 탄핵안이 가결되고 울려 퍼지던 '다만세'는 어떤 고통도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한강 작가님은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지만 또한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는지'라며 수많은 이들이 겪어온 고통 속에서 빛을 찾기 위해 글을 써오셨다. 묵묵히 슬픔과 아픔, 고통을 대면하고 그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아름답고 선한 방향으로 조금씩 걸어가는 게 지금 나에게는 최선이겠지. 책도 다시 열심히 읽고 내가 마주할 수 있는 세계를 넓혀가기 위해 정신 바짝 차리자. 


 이번 주말에 읽으려고 주문한 책.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는 강유정 의원님의 유튜브 채널에서 언박싱 영상을 보다가 장바구니에 담았고 [관조하는 삶]은 제목에 끌려 충동구매했다.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는 슈테판 츠바이크가 나치를 피해 브라질로 망명을 가서 기록한 에세이로 세계대전이라는 어둡고 야만적인 시절임에도 인간에 대한 희망과 용기를 주는 글들이 담긴 책이고,[관조하는 삶]은 무위의 상태에서 세계를 관조하라는 책이다. 이번 주에는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2권의 책을 읽고 책태기를 극복할 계획이다. 책은 내가 중심을 잡고 서 있을 수 있게 해주는 가장 필수적인 장치다. 실은 며칠 전 주문한 책들도 읽지 않고 책장에 꽂혀 있지만 다시 읽자. 그리고 힘을 내자.


-엄마 고양이와 애기 고양이는 이틀 만에 돌아왔다. 고맙고 미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랑이랑 차를 타고 가면서 허리가 90도로 굽은 할머니를 봤다. 허리 굽은 할머니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하자 신랑은 알지도 못하는 할머니 말고 자신을 걱정해 달라며 피곤해서 부은 입술을 보여줬다. 어떻게 평생 힘들게 살아 온 삶이 그대로 담겨 있는 할머니의 굽은 허리와 고작 피곤해서 터진 입술 따위를 비교할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게 말이 차갑게 나가자 신랑은 머쓱한지 하려던 말을 멈추고 운전에 집중했다.


  책을 열심히 읽기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달라졌다고 느끼는 건 내 세계가 확장됐다는 거다. 나와 내 가족을 넘어서 타인의 고통에 예민해졌고, 인간이 아닌 다른 종의 고통에도 예민해졌다.


  가을이 되자 아파트 단지에 애기 고양이 2명이 나탔났다. 밥을 챙기던 고양이가 배가 부른 듯 싶었는데 그 고양이의 애기인지 그냥 추측만 할 뿐이다. 밥을 수북히 담아 놓는데도 다음 날 가보면 밥그릇이 텅 비어 있어 가끔 도대체 몇 명의 아이들이 밥을 먹으러 오는지 궁금할 때도 있다.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는데 길에서 겨울이 날 아이들이 걱정이다. 애기 고양이들은 밥 얻어먹은 지 한달 정도 되가니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고 가끔은 손에 얼굴을 비벼 주기도 한다. 집에도 강아지2명 고양이2명 4명의 아이들이 있어 더는 데려다 키울 엄두는 나지 않고, 태어나 처음으로 추운 겨울을 밖에서 날 아이들이 걱정돼 밥을 주고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늘 무겁다. 구조를 해서 입양처를 알아봐야 하나, 마음이 편할 날이 없다. 


  주말에 읽으려고 주문한 책. 세 명의 여성들이 한국 생추어리를 탐방하고 쓴 책이다. 최애 작가님 홍은전 작가님의 추천책이라 더 기대가 된다. 동물들이 있어야 할 자리는 과연 어디일까? 인간중심적 사고가 인간을 제외한 다른 많은 종들을 고통에 빠지게 했지만 나는 여전히 비건지향을 추구할 뿐이다. 장을 볼 때 깨끗하게 포장되어 나온 소고기, 돼지고기를 보면 죄책감이 느껴지지만 어쩔 수 없이 고기를 먹어야만 하는 상황이 생긴다. 그래서일까? 동물 관련 책은 읽기가 늘 힘들었는데 [동물의 자리]는 조금은 따뜻한 마음으로 볼 수 있을 듯 싶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소비의 한국사 - 우리는 무엇을 먹고 마시고 탐닉했나
김동주 외 지음 / 서해문집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양쪽 관자놀이 뒤 깊숙한 곳에 있는 아몬드 모양의 편도체는 공포와 불안이라는 감정을 주관하는데, 편도체는 우리 인간을 비롯한 포유류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은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기 때문에 항상 어떤 기분에 사로잡혀 있는데 이 기분이 우리들을 불안하게 만든다며 매순간 자기 자신을 사유하며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현존재에게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심리적 기제가 불안이라고 했다. 불안은 우주적으로 물려받은 본질적인 감정이며, 인간이라면 마땅히 느껴야 하는 보편적인 감정이다.

  불안이라는 감정이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한 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성취도에 의해 계급이 나눠지면서다. 돈을 얼마나 벌었고,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했느냐에 따라 계급이 달라지면서 우리는 외양 중심의 세계를 살게 됐다.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보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가 중요해지면서 세상의 눈으로 자신의 가치를 평가당하기 시작한 사회에서 소비는 너무나 당연한 행위가 됐다. 소비를 통해 남들이 보는 나를 더욱 더 가치있게 꾸며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기분이 드는데, 이런 기분과 함께 소비는 끝없이 반복된다.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결핍의 상태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소비의 한국사]는 소비사회의 한국사적 맥락을 살펴보기 위해 다섯 명의 연구자가 모여 쌀, , 라면, 커피, 부동산, 가전제품, 술처럼 생존에 필요한 생필품을 비롯해, 생필품이 아니었지만 사회 변화에 따라 일상적 소비재가 된 것들, 일상생활과 관련이 없는 것들이었지만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되거나 중독에서 헤어 나오기 힘든 것들을 통해 근현대사 속에서 소비가 어떻게 우리의 일상과 욕망을 잠식했는지를 다루고 있다. 5당신이 꿈 꿔 온 강남의 탄생에서 중요한 소비재이자 투자의 대상이 된 의 소비역사를 다루면서 강남으로 대표되는 신도시 개발의 역사를 통해 정부와 기업이 금융기관의 지원 사격을 받아 만들어 낸 욕망을 파헤친다. 6, 느그 집에 냉장고 있냐?’에서는 근대화한 삶을 상징하는 몇 가지 가전제품-텔레비젼, 냉장고, 세탁기가 어떻게 중산층의 필수가전제품으로 불리며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를 만들어냈고, 자긴 자는 우쭐대고 못 가진 자는 가진 자를 보며 그것을 욕망했는지를 다루고 있다. 7우리는 취하고 싶다에서는 한국인이 술을 마신 역사를 돌이켜 보며 한국의 알코올 소비 대중이 원한 건 알코올 그 자체가 아니라 쉼 없이 일하는 몸을 지탱하기 위해, 고된 현실을 잊어버리기 위해, 때로는 남에게 인정받으려는 정서적 욕구 때문이라며 근현대사를 지나온 기간 동안 한국인이 정서적으로 목마른 시간을 버텨 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소비의 한국사]는 정부가 나서서 소비를 주도한 사례들도 다루고 있는데 세수 증대를 위해 복권, 경마장 등을 통해 도박을 권장하고 적당히만 하라는주의를 주는 척하며 합법적으로 카지노를 운영하고, 10판매와 소비 욕망의 용광로, 관광의 시간에서 외화벌이를 위해 섹스관광을 육성했던 정부, 부자나 상위 계층이라는 만족감과 중산층이라는 안정감, 이색적 경험이라는 쾌락을 사는 산업으로 관광 산업을 육성하는 등 정부나 국가는 대중의 욕망을 어

떤 식으로 자극해 소비를 유도하는지를 파헤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욕망은 미덕이자 숨길 필요 없는 인간의 본성이다. 우리는 소비를 하지 않으면 사회에 뒤처지고 있다는 불안함을 느끼게 되고, 소비를 하지만 더 가지기 위해 또 소비를 하고 불안을 느끼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정부와 사회가 주도하는 소비의 수레바퀴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사유하고 내게 꼭 필요한 것인지를 되물어야 한다. 소비가 당연시 되는 사회에서 나는 소비를 할지 하지 않을지 선택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으므로.


  불안은 우리를 소비에 빠지게도 하지만 강박과 향략에 빠지게도 한다. 14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한 우신영 작가님의 [시티뷰]에는 강박과 결핍, 트라우마를 겪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바다를 메워 만든 최첨단의 무국적 도시 송도에서 필라테스 센터를 운영하는 수미는 의사인 남편과 아이 둘을 키우는 워킹맘으로 날씬한 몸매와 아름다운 외모를 지키려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 남들에게 보여지는 게 중요해서 국제학교 로고가 박힌 후드티를 입고 다니고 레인지로버를 탄다. 남편과의 결혼생활에 크게 불편은 없지만 이십대 헬스트레이너와 바람을 피운다.

  수미의 남편인 석진은 내시경을 담당하는 내과의사이다. 섬에서 가난하게 자란 석진은 자신에게 과분한 수미를 만나 안정적으로 가정을 꾸린다. 페이닥터의 삶을 정리하고 송도에 내과를 개원했지만 손님이 늘지 않자 아내 수미의 추천으로 주말 의료봉사를 나가게 된다. 의료봉사에서 페이덕터로 일하던 병원을 자주 찾던 환자 유화를 만나게 되고 유화에게 묘한 설레임을 느낀다.

  유화는 요거트 공장에서 일하는 조선족 여자로 두달에 한 번 정도 면도날을 삼키고 스스로 내과를 찾아와 내시경을 받는다. 5만원 저렴하게 받기 위해 비수면으로 내시경을 받는 유화는 작은 키에 마른 몸을 가지고 있고, 여기저기 갈라지고 뜯겨서 검정 테이프가 붙어 있는 국방색 장화를 늘 신고 다닌다. 주니는 수미가 다니는 헬스장의 헬스트레이너로 여자친구와 동거 중이지만 수미와 연애를 한다. 싹싹해서 단골 회원도 많고 헬스장에서도 나름 인정을 받고 있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도 늘 열심히 한다.


  시티뷰에 등장하는 네 명의 인물들은 각기 다른 계층을 이루고 있다. 수미는 변호사일을 하는 부모님을 둔 부잣집 딸이고, 석진은 지금은 경제적으로 안정된 중산층을 이루고 있지만 가난하고 암울했던 과거를 가지고 있고, 주니는 지금은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기 위해 갓생 살고 있고, 유화는 불안정한 경제 상황에 놓여있는 조선족이다. 하지만 네 명의 인물은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각자 불안에 잠식되어 있다. 혼불문학상 심사평에서 최진영 작가님은 자본과 계급이 존재 이유와 사랑의 의미까지 재단하는 현대사회에서, 욕망과 성취로 덮어버린 당신의 밑바닥에는 무엇이 있는지.”라고 했는데 그 밑바닥에 존재하는 것은 불안이지 않을까? 자신이 속해 있는 계층 상관없이 자신의 위치에서 불안을 느끼고 불안 때문에 각자의 상황에서 강박적인 행동을 하고 사소한 부도덕을 저지르고 자신을 합리화한다.

 

  그런데 무서운 건 불안 때문에 소비하고 강박에 빠지고 향략에 빠지는 건 우리의 의식이 아닌 무의식의 영역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우리는 불안하게 만드는 기분이 지금 이 곳에서 자신의 삶을 염려하며 자신의 존재 의미를 묻는 본래적인 삶을 추구하게 된다고 한다. 매 순간 자신의 존재 의미를 묻고 자신의 삶으로부터 소외시키지 않고, 스스로 원하는 자기 삶의 의미를 고민하고 결정하고 실현하는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한 필수적인 감정이 불안인 것이다. 즉 우리는 매일 불안이라는 중력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인간은 근원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무의식의 영역을 바꿔 불안을 넘어서는 삶을 선택할 수 있다. 사회 속에 살고 있지만 매순간 자신의 존재 의미를 묻고 자기 자신을 삶으로부터 소외시키지 않고 스스로 원하는 자기 삶의 의미를 고민하고 결정하고 실현하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과정을 살아가는 존재이다. 인간의 삶은 완성품이 아니라 수작업의 대상이다. 남들보다 오래 만져주면 분명히 남들보다 빛나게 되어 있고, 남들보다 정교해지게 되어 있다.

 

  [책방에 모여 글쓰기를 시작했다]는 동네책방 마그앤그래에서 한 명의 시인과 8명의 아마추어 작가들이 모여 매달 둘째, 넷째 금요일에 만나 각자가 써온 글을 발표하고 합평했던 글들을 모아 낸 에세이 선집이다. 글쓰기 모임이 있는 주의 요일은 월화수목토일인데, 그만큼 격주로 찾아오는 글쓰기 모임은 이들에게 특별했다. 글을 쓴다는 건 고독한 과정인데 평소 주부이자 워킹맘, 아내, 며느리로 살아온 9명의 여성들은 글쓰기를 통해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육아의 어려움, 성범죄에 노출됐던 공포스러운 기억, 여성들의 노동 등에 대한 진솔한 자기 이야기는 공감을 일으키고 나 역시글쓰기라는 고독한 과정을 통해 나의 내면에 귀를 기울여야겠다는 거울반응이 일게 한다.


  인간은 매 순간 경계에 서서 선택을 한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하면서 신을 따라가지 말고 경계에 서라고 했다. 이원화된 모든 것의 경계에 서서 불안하고 흔들리더라도 매 순간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라고. 그래야만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다. 인간의 삶은 확정형이 아니기 때문에 불안할 수밖에 없지만 나 자신의 내부를 단단하게 가꿔 무의식의 영역을 예쁘게 잘 만들 수도 있다. 무의식의 영역이 잘 다듬어진다면 어떤 선택 앞에서도 자유의지를 가지고 선하고 좋은 결정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소비에 중독되고 강박에 빠지고 향락에 빠지는 대신 독서를 하고 글쓰기를 하자. 독서와 글쓰기를 하면 를 상실하지 않고 를 돌보고 챙기며 한 번 뿐인 삶을 잘 살 수 있으리라. 인간의 삶이 과정이라면 이 과정을 독서와 글쓰기라는 행위로 채워 나가야지, 다짐했던 책읽기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