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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 - 미투 운동에서 기후위기까지
리베카 솔닛 지음, 노지양 옮김 / 창비 / 2021년 12월
평점 :
2018년에 방영된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연상연하 커플의 연애를 현실적으로 그려내며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드라마이다. 여주인 손예진과 남주 정해인의 캐미가 너무 좋았던 드라마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내게는 좀 다른 기억으로 남아있다. 커피회사 가맹운영팀의 슈퍼바이저로 근무하던 손예진은 좋은 게 좋은 거다 주의로 회사 남자 상사들의 성추행을 웃으며 받아 넘기곤 해 동료들에게 '윤탬버린'으로 불린다. 하지만 자신을 소중하게 대하는 정해인을 통해 각성하고, 상사들의 성추행을 비롯한 꼰대짓을 일절 거부한다. 손예진의 변화를 시작으로 회사 내 여직원들이 동요하기 시작하고 남자 직원들의 성추행 문제가 공론화되지만 여자 직원들은 성추행 문제가 더 이상 커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나마 가해 남성들이 처벌받기를 원했던 손예진은 그 일에 대해 침묵 당하기를 강요받는다. 이것은 과연 누구의 이야기인가?
2017년 10월 할리우드 영화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틴과 관련된 50명이 넘는 여성들의 증언으로 미국 내 미투운동이 촉발됐다. 미투운동은 SNS 등을 통해 성추행이나 성폭력 사건을 '#미투' 를 달아 고발했던 사회운동인데, 이 운동의 주체는 고발하는 여성이 아닌 여성들의 고발을 들어주는 우리 시민들이다.
2017년 이전에도 많은 여성들이 성폭력이나 성추행 사건을 고발했지만 우리 사회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가해자의 처벌을 강력하게 원하는 손예진을 찾아온 회사 측 변호사는 합의를 가장한 협박을 한다. "아직 피해자가 정해진 사건이 아니다. 성추행 사건이 공론화되면 당신 역시 비난을 피할 수 없을거다."
1999년 이탈리아 대법원은 '청바지를 입은 여성의 성폭력' 사건 재판에서 청바지를 입은 여성의 적극적인 도움 없이는 바지를 벗길 수 없다는 이유로 피고 승소 판결을 내려 논란이 된 적이 있는데, 미투 운동 촉발 이후 피해자 여성들의 목소리에도 대중이 반응하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 대단한 성취다,
리베카 솔닛은 이런 변화를 '새로운 성당을 짓고 자명종을 울리는 일'이라고 한다. 우리가 지금 맞이하고 있는 변화는 누군가 이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깨어나라고 소리쳐준 덕분이고 우리는 그들의 노동을 통해 변화를 맞이하고 깨어있는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는 거다. 그래서 이전에는 들리지 않았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게 됐고, 주류의 언어가 아닌 비주류의 언어로 말하기가 가능해졌다. 가부장제 사회가 가장 무서워하는 건 여성들이 언어를 갖는 일이라고 한다. 여성들이 자신만의 언어로 말하기를 시작했을 때 모든 관습과 통념은 무너지고 변화는 시작된다. 미투운동은 2011년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2012년 '아이들 노모어', 2013년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에서 이어져 2018년 '그린 뉴딜'로 이어졌다 . 주변부가 논의되다 중심으로 옮겨가는 일은 새로운 성당을 짓는 일이고, 비주류의 목소리로 말하는 이들은 자명종을 울리는 일이다. 그렇다면 보통 시민인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요즘 필사하고 있는 책 정희진 선생님의 [영화가 내 몸을 지나간 후]에서 정희진 선생님은 공부하라고 한다. 여성의 일을 남성의 언어로 말하려 하는 순간 오류가 발생한다. 여성의 언어로 여성의 역사를 말하고 다음 세대 여성에게 전수해야 한다. 매 순간 공부하지 않으면 누가 여성이고, 문제인지 아닌지를 누가 정하는지를 알 수 없다고. 지금 나는 우리 시대 자명종 역활을 하는 분들의 글을 읽고 무작정 받아들이기만 하는 수준이지만 책읽기를 통해 '나의 세계'는 분명 확대되고 있다. 무엇에 분노해야 하는지 누구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그러다 보니 내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고, 참견하게 된다. 이런 변화 역시 새로운 성당을 짓는데 아주 작은 일부라도 보탬이 되고 있는 거겠지, 나는 연대란 기꺼이 남의 일에 참견하는 것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공부하자.
이 건물의 자재는 우리의 아이디어와 희망과 가치이며 이는 우리의 대화와 에세이와 사설과 주장에서 나왔다. 누군가의 슬로건, 소셜미디어 메세지, 책, 저항 운동, 시위 또한 재료가 되었다. 우리는 항상 인종, 계급, 젠더, 섹슈얼리티에 대해 말을 꺼냈고 자연, 권력, 기후 이야기를 하면서 이 세 요소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주장했다. 또 다른 사람은 공감과 연대, 인내, 협동과 집단행동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했다. 공정, 평등, 가능성을 말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처음에는 크지 않은 개별적인 목소리였고 먼저 도착한 사람들의 주장이었으나 점차 집단이 함께 추구하는 사업이 되었는데, 한 사람이 말하면 중요해 보이지 않지만 백만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말하고 그들의 말을 각자의 세계관과 매일의 행동에 적용하기 시작하면 힘을 얻는다. 이 구조 안에 살고 있는 우리도 점점 성장한다.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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