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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기원 - 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서은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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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해져야지"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나? 


  25살에 사랑에 미쳐서 결혼을 하고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았다. 밥도 한 번 해보지 않고 시집을 갔더니 살림도 양육도, 생전 남이었다 가족이 된 시댁과의 관계맺기도 모든 게 힘들고 서툴렀다. 신랑 월급만으로는 생활이 안되서 어린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겨가며 맞벌이를 했고 지금까지 둘째를 낳고 3개월 간 출산 휴가로 쉬었던 거 외에 단 한 번도 쉼 없이 일을 했다. 아이들 한 끼 끼니를 챙기고 그날의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한달 열심히 돈을 벌어 가계 경제가 구멍나지 않게 살림을 살고, 그저 하루, 일주일, 한달동안 해야 할 일을 잘 해내려 애써가며 살다 보니 아들은 21살이 됐고 딸은 고2가 됐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어느 정도 시간적 여유가 생겨 책을 읽기 시작했고, 좋아하는 반려동물을 들이다 보니 강아지2명, 고양이 2명 다견 가족이 됐고, 아들이 대학을 가고 딸이 고등학생이 되면서 시간적 여유가 더 많아져 유튜브도 하고 명상 수업도 듣고 홈트로 요가도 꾸준히 할 수 있게 됐다.


  뭔가를 이루려고 노력한 적이 있었나? 그저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시간 조율을 해가며 하루 하루 버티며 살다 보니 지금에 도착해있다. "불행하다"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 "행복해져야지"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것처럼, 그저 최선을 다해서 살다보니 "불행"에 대해서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보통의 날들은 무탈하게 흘러갔고 가끔은 괴롭고 가끔은 기뻤다. 괴로움과 고통없이 평화로우면 다행이다 싶었고 가끔은 괴롭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은 평온한 일상이 행복이지 않나,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서은국 교수님은 [행복의 기원]에서 "인간은 행복해지기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행복을 도구로 이용한다."라고 하면서 우리는 생각보다 동물적인 본능에 의해 많은 것을 선택한다고 한다. 특히 생존에 위협을 느낄수록 본능에 더 이끌리게 되는데, 가끔 뉴스에 나오는 아이의 위험 앞에서 초증력자가 된 아빠나 엄마 역시 순간적인 본능에 이끌린 게 아닌가 싶다. 행복이라는 감정 역시 우리 뇌에 동물적으로 새겨져 있는데 특히 생존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했을 때 행복을 느낀다. 사냥을 해서 먹을거리를 확보하거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서 짝짓기 대상을 찾거나. 자기 생존을 위해 자신보다 가끔은 더 힘이 센 상대와 싸움을 하기도 하고 미지의 땅을 찾아 나서야 하는데 두려워도 한 발 내딛게 하기 위해 우리에겐 강력한 보상이 필요하고 우리의 뇌는 쾌감이라는 감정, 행복이라는 감정을 선물로 준다. 행복은 거대한 이상이나 가치, 도덕적 지침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일 수밖에 없다. 


  대신 만족감이 오래 지속되면 다시 사냥에 나서거나 미지의 땅을 찾지 않기 때문에 만족감, 행복이라는 감정은 금방 소멸되고 우리는 또 다시 보상을 받기 위해 한 발을 내딛는다. 그래서 서은국 교수님은 행복은 아이스크림과 같다고 한다.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고 있으면 금방 녹아 흘러내리듯이 행복이라는 감정 역시 내가 움켜 잡았다고 느끼는 순간 사라지고 만다는 것. 평생 원했던 일을 이루더라도 그 행복감은 아이스크림처럼 금방 흘러 내린다는 것. 로또에 당첨되고 주식이 대박나고 원하던 대학에 합격하고 원하는 집을 사더라도 행복감은 금방 사라지고 우리는 또 다른 행복에 대한 갈망으로 불안해 하고 두려워한다. 인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행복을 위해 내 인생을 모두 투자하고 사는 건 그래서 허무하다. 차라리 사소하고 작은 행복감, 기쁨을 여러 번 자주 반복적으로 느끼며 살 때 행복하다,는 감정은 훨씬 더 오래 지속되지 않을까? '소확행'이야말로 서은국 교수님이 말하는 행복의 기원이지 않을까?

 


  결혼해서 아이들을 키우는 21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저 무탈하게 하루가 지나가길 바라면 순간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며 사는 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행복감을 느꼈을까. 돌이 되도록 걷지 못하던 아들이 첫 발을 내딛고 나를 향해 걸어오던 순간, 돌잔칫날 멜빵 청치마를 입고 분홍 모자를 쓰고 뛰어 다니던 딸이 다른 아이보다 빨리 걷는다며 자랑하던 순간, 행복했던 순간들이 너무 많아서 나열을 할 수가 없을 정도다. 내 인생의 무탈하다고 느꼈던 모든 순간에는 이런 작은 행복들이 가득 차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난 늘 그런 감정을 느끼며 산다. 작고 하찮아 보이지만 확실한 기쁨, 만족감, 행복. 홈트로 요가를 하면서 처음 머리서기를 성공했던 순간, 12층까지 계단을 타고 올라와 숨이 찰 때의 성취감, 어려워서 도저히 못 읽을 것 같은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 유튜브를 보고 한 샐러드 파스타를 딸이 너무 맛있다며 엄지를 들어 올리며 먹어줄 때, 그리고 늘 내 옆에 머무르는 뽕이봉구초울이칠봉이. 

  서은국 교수님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자기 인생의 갑이 되라고 말한다. 남들의 잣대에 신경쓰지 말고 작고 하찮아 보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보석처럼 빛나는 행복이 되어줄 일들을 하며 40대 후반 내 인생 갑으로 앞으로도 잘 살아나가고 싶다.


  +신체적 고통과 사회적 고통은 다른 것 같지만 뇌는 동일한 부위에서 이 둘의 고통을 똑같이 느낀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을 때 타이레놀을 먹으면 이별의 상처가 조금 나아지기도 한다는데,  이십대 때 이 사실을 알았다면 사랑에 미쳐 시집을 일찍 오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듯. 






  

행복의 핵심을 사진 한 장에 담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의 내용과 지금까지의 다양한 연구 결과들을 총체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것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이다. 문명에 묻혀 살지만, 우리의 원시적인 뇌가 여전히 가장 흥분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바로 이 두 가지다. 음식, 그리고 사람.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모든 껍데기를 벗겨 내면 행복은 결국 이 사진 한 장으로 요약된다. 행복과 불행은 이 장면이 가득한 인생 대 그렇지 않은 인생의 차이다. 한 마디 덧붙인다면 "The rest are details." 나머지 것들은 주석일 뿐이다.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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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4 - 조정래 대하소설, 등단 50주년 개정판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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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백산맥4권]에서는  빨치산 염상진이 율어면을 점령하고 해방구로 삼으면서 계엄군과 본격적으로 대립하게 된다. 염상진은 울어면에서 굶는 사람이 없게 넉넉하게 쌀을 배포하고, 벌교를 기습 공격해 지주들에게서 쌀을 빼앗아 다리위에 쌓아 두고 쌀을 고루 나누어 설을 세라는 종이를 붙여둔다. 농민들을 착취하면서도 더 많을 차지하기 위해 교활한 짓을 꾸미는 지주들과, 비록 이념 때문이긴 하지만 농민들의 굶주림에 가슴 아파하며 쌀을 나눠 주는 염상진의 행동이 대비되면서 좌파를 미화하는 소설로 보이기도 한다. [태백산맥] 연재 당시 좌파소설이라는 비난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있던 책이었다.


  역사학자 정병준 선생님은


  '일본의 패배로 해방되고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할 통치된 것이 이유이기도 하지만 수 많은 세력들, 정파들, 파벌, 기독교 세력 등등 한국인도 스스로 역사를 만들어 나갔다'


  라고 해방 이후 3년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태백산맥4권]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수많은 세력들, 정파들, 기독교 세력 등등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친일을 하다 해방이 되자 도망 다녔던 사람들이 미군정이 찬일 세력을 다시 채용하자 친일 순사들이 친미반공 세력으로 재등장하고, 소작농을 착취하는 지주, 좌파에 가담한 가족에게 소작을 주지 않겠다고 하자 다른 소작인들은 뒤로 연줄을 이용해서 소작을 받아내고, 수도권은 교회가 너무 많아서 더 이상 수익창출이 되지 않을 것 같다고 벌교까지 내려와서 교회를 짓겠다는 목사, 자신들의 이익대로 군대를 움직이려고 하는 지주 세력 등 해방 이후 나쁜 놈들이 얼마나 득실댔는지, 그들이 우리 사회 기득권층을 형성했음에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다.


 반면 착취당하는 농민들의 굶주림 삶과 울분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내용들이 많아 가슴이 먹먹해서 책을 읽어 나가는 게 두렵기도 했다. 먹을 게 없어 술도가 앞에서 술찌꺼기를 얻어 먹고 술에 취해 돌아다니는 아이들, 쌀이 얻어 밥 대신 진달래꽃을 따먹고 설사를 하는 아이들. 언제나 가난과 같은 재난은 제일 취약한 아이들에게 제일 큰 상처를 남긴다.


  1. 피할 수 없는 맞섬


  염상진 부대는 율어면을 장악하고 거점지역으로 삼고 세력 확장을 노린다. 외서댁은다행히 목숨을 건지지만 염상구와 동네 사람들의 입소문을 피해 장흥 이모집으로 떠난다. 


  2.그것은 이긴 싸움


  심재모는 염상진이 율어면을 장악했을 거라는 판단으로 정찰대를 율어로 보내고 염상진의 부대에는 부상병이 발생하자 염상진은 심리적으로도 타격을 받는다. 강동기, 노덕보, 지삼봉, 김복동, 마삼수는 정사장에게 땅을 산 서운상에게 소작을 붙이게 해달라고 사정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방에 모여 고민을 나눈다. 


  3.평행선


  정부는 음력설 말고 양력설을 세라고 강요하지만 민중들은 양력을 설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염상구는 자기 대신 청년단장 자리를 차지한 유주상을 찾아가 난장판으로 벌이고 집안 여기저기에 칼을 뿌린다.낙안댁은 정하섭에게 돈을 전해준 죄로 구속된 정사장을 위해 동네 유지들에게 보증서에 도장을 받으려고 하지만 사상 문제라는 이유로 아무도 도장을 찍어 주지 않는다. 정사장에게 돈을 받아 정하섭에게 전해준걸로 말을 맞추기로 했지만 함께 구속되어 있는 소화는 낙안댁에게 돈을 전해줬다며 말을 맞추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낙안댁은 소화를 찾아가 말을 맞춰 달라고 사정한다. 소화는 낙안댁이 자신의 석방을 위해서도 애를 쓸 것을 약속받고 정사장에게 돈을 전해 준 걸로 말을 맞춘다. 울어면을 장악한 염상진은 농민들에게 쌀을 고루 나눠준다. 염상진은 조성을 공격하지만 심재모는 군대의 일부는 조성으로 보내고 일부는 율어로 보내 양면 공격을 한다. 율어를 지키고 있던 염장진의 부대원 세 명이 죽고 다섯 명이 부상을 당하는 큰 타격을 받게 된다.


  4. 야학의 여선생


  이지숙은 서민영 선생의 야학에서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며 후일을 도모한다. 벌교에는 염상진이 율어면 사람들에게 쌀을 배급해줘서 율어면 사람들 모두 흰쌀밥을 먹는다는 소문이 돈다. 벌교의 지주들은 반란사건에 가담했거나 연루된 사람들에게는 일체 소작을 주지 않기로 하고 심제모는 서민영 선생을 찾아가 방법을 모색하지만 서민영 선생은 그냥 두라며 심재모를 돌려 보낸다. 


  5. 누가 묵어도 묵을 떡인디


  친일 경찰로 일하던 남인태는 해방 이후 피신했다가 미군정에 의해 경찰로 다시 채용되어 일하다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한다. 반란사건에 가담한 사람들에게 소작을 부치지 않겠다는 소문은 급속도로 퍼져 간다. 


  6. 술찌끼를 먹고 취한 아이


  설날이 다가오지만 농민들은 설을 맞을 쌀이 없고 아이들은 굶주림에 술도가 앞에서 술찌끼를 얻어 먹고 술에 취해 돌아다닌다. 심재모는 그런 아이들을 보며 마음 아파한다. 


  7. 쑥떡뿐인 설


  염상진은 야밤에 부대를 동원해 벌교를 치고 지주들에게 쌀을 빼앗아 횡계다리 위에 쌓아둔다. 이 쌀로 설을 보내라는 문구를 적어두는데 이를 본 농민들의 마음은 염상진에게로 기운다. 부녀자들은 떡을 만들 쌀이 없어 쑥으로 쏙버무리를 만들어 설을 지낸다.


  8. 어두운 정월 대보름 


   김범우는 염장진에게 빼앗겼던 쌀을 서민영 선생에게 기부하고 서민영 선생은 쌀로 떡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나눠준다. 정하섭은 소하를 찾아오고 고문으로 상처입은 소화의 몸을 위로해주고 다시 떠난다.


  9.머시여, 벌거지!


  반민특위 활동이 공개되고 민중들은 친일 세력을 응징하고 공평한 새 나라가 세워지기를 기대한다.손승호를 찾아온 노파는 빨갱이가 된 아들이 율어에 있다며 며느리를 율어로 보내 대를 잇게 해달라고 사정한다. 손승호는 김범우에게 이를 의논하고 김범우는 심재모를 찾아가 부탁한다. 여자가 율어로 들어가 임신하면 나오는 것으로 결정한다. 강동기, 마삼수, 김복동은 소작을 붙이게 해달라고 서운상을 찾아가 사정하지만 서운상은 버러지라고 욕하며 거절하고 이 말에 강동기는 흥분에서 삽으로 서운상을 내리 찍는ㄷ다. 강동기는 도망가고 마삼수, 김복동은 잡혀간다.


  10.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 11. 미운 진달래


  서울에서 목사와 찾아와 벌교에 교회를 짓고 싶다고 하지만 서민영 선생은 이를 부정적으로 이야기한다. 지주들은 강동기가 서운상을 가해한 사건에 흥분하고 조성지구좌익척결위원회 결성을 서두른다. 3월 진달래가 피자 아이들은 배가 고파 진달래를 따먹고 밤새 설사를 하기도 한다. 이 경험을 시로 쓴 아이는 야학 수업 시간에 시를 발표하고 아이들 모두 공감한다. 


  12. 율어의 왕복길 


  이지숙은 소화를 찾아가고 김범우는 염상진을 찾아가 노파의 사연을 전한다. 염상진 역시 노파의 며느리가 율어로 들어왔다가 임신하면 돌아가는데 동의하고, 이 사건을 계기로 심재모에게 위험이 닥칠 듯한 분위기를 암시하며 4권은 끝난다.

그건 표본적인 제국주의적 지배방식이었고, 인민들은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목에 걸린 노예들이 되었다. 선거가 임박해서 전에 없이 많은 배급표가 나돌았던 것은 그게 쌀이 아니라 독약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굶주림에 지친 인민들은 그게 독약인지 무엇인지 구별할 겨를이 없었다. 우리 민족이 사회주의를 선택하든 자본주의를 선택하든, 그것은 오로지 우리 민족 전체의 총의에 따라 결정하고 선택되어야 할 문제였다. 그런데 그들은 제국주의 폭력과 간악을 앞세워 우리 민족의 삶을 파괴하고 자주를 강탈했다. 그들과의싸움은 필연적인 것이고, 아무리 앞길이 험난하더라도 기필코 수행하지 않을 수 없는 싸움이었다.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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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추천책으로 ‘장애인차별 철폐 연대의 날‘을 맞아 구입해서 읽은 책 두 권 [걸을 때마다 조금씩 내가 된다]와 [나는 숨지 않는다] 소개해드립니다.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하지 말고 ‘다양성‘으로 인정한다면 우리 사회는 조금 더 평화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요? 사회의 시선에서 보면 비정상적인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지만 이 여성들이 땅에 발을 딛고 용기있게 한 걸음씩 나아가는 이야기가 용기와 희망을 주는 책입니다. 책 읽기 좋은 6월 한 번쯤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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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 - 미투 운동에서 기후위기까지
리베카 솔닛 지음, 노지양 옮김 / 창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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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에 방영된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연상연하 커플의 연애를 현실적으로 그려내며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드라마이다. 여주인 손예진과 남주 정해인의 캐미가 너무 좋았던 드라마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내게는 좀 다른 기억으로 남아있다. 커피회사 가맹운영팀의 슈퍼바이저로 근무하던 손예진은 좋은 게 좋은 거다 주의로 회사 남자 상사들의 성추행을 웃으며 받아 넘기곤 해 동료들에게 '윤탬버린'으로 불린다. 하지만 자신을 소중하게 대하는 정해인을 통해 각성하고, 상사들의 성추행을 비롯한 꼰대짓을 일절 거부한다. 손예진의 변화를 시작으로 회사 내 여직원들이 동요하기 시작하고 남자 직원들의 성추행 문제가 공론화되지만 여자 직원들은 성추행 문제가 더 이상 커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나마 가해 남성들이 처벌받기를 원했던 손예진은 그 일에 대해 침묵 당하기를 강요받는다. 이것은 과연 누구의 이야기인가?


  

  2017년 10월 할리우드 영화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틴과 관련된 50명이 넘는 여성들의 증언으로 미국 내 미투운동이 촉발됐다. 미투운동은 SNS 등을 통해 성추행이나 성폭력 사건을 '#미투' 를 달아 고발했던 사회운동인데, 이 운동의 주체는 고발하는 여성이 아닌 여성들의 고발을 들어주는 우리 시민들이다. 


  2017년 이전에도 많은 여성들이 성폭력이나 성추행 사건을 고발했지만 우리 사회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가해자의 처벌을 강력하게 원하는 손예진을 찾아온 회사 측 변호사는 합의를 가장한 협박을 한다. "아직 피해자가 정해진 사건이 아니다. 성추행 사건이 공론화되면 당신 역시 비난을 피할 수 없을거다."


  1999년 이탈리아 대법원은 '청바지를 입은 여성의 성폭력' 사건 재판에서 청바지를 입은 여성의 적극적인 도움 없이는 바지를 벗길 수 없다는 이유로 피고 승소 판결을 내려 논란이 된 적이 있는데, 미투 운동 촉발 이후 피해자 여성들의 목소리에도 대중이 반응하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 대단한 성취다,


  리베카 솔닛은 이런 변화를 '새로운 성당을 짓고 자명종을 울리는 일'이라고 한다. 우리가 지금 맞이하고 있는 변화는 누군가 이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깨어나라고 소리쳐준 덕분이고 우리는 그들의 노동을 통해 변화를 맞이하고 깨어있는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는 거다. 그래서 이전에는 들리지 않았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게 됐고, 주류의 언어가 아닌 비주류의 언어로 말하기가 가능해졌다. 가부장제 사회가 가장 무서워하는 건 여성들이 언어를 갖는 일이라고 한다. 여성들이 자신만의 언어로 말하기를 시작했을 때 모든 관습과 통념은 무너지고 변화는 시작된다. 미투운동은 2011년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2012년 '아이들 노모어', 2013년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에서 이어져 2018년 '그린 뉴딜'로 이어졌다 . 주변부가 논의되다 중심으로 옮겨가는 일은 새로운 성당을 짓는 일이고, 비주류의 목소리로 말하는 이들은 자명종을 울리는 일이다. 그렇다면 보통 시민인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요즘 필사하고 있는 책 정희진 선생님의 [영화가 내 몸을 지나간 후]에서 정희진 선생님은 공부하라고 한다. 여성의 일을 남성의 언어로 말하려 하는 순간 오류가 발생한다. 여성의 언어로 여성의 역사를 말하고 다음 세대 여성에게 전수해야 한다. 매 순간 공부하지 않으면 누가 여성이고, 문제인지 아닌지를 누가 정하는지를 알 수 없다고. 지금 나는 우리 시대 자명종 역활을 하는 분들의 글을 읽고 무작정 받아들이기만 하는 수준이지만 책읽기를 통해 '나의 세계'는 분명 확대되고 있다. 무엇에 분노해야 하는지 누구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그러다 보니 내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고, 참견하게 된다. 이런 변화 역시 새로운 성당을 짓는데 아주 작은 일부라도 보탬이 되고 있는 거겠지, 나는 연대란 기꺼이 남의 일에 참견하는 것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공부하자.




  


이 건물의 자재는 우리의 아이디어와 희망과 가치이며 이는 우리의 대화와 에세이와 사설과 주장에서 나왔다. 누군가의 슬로건, 소셜미디어 메세지, 책, 저항 운동, 시위 또한 재료가 되었다. 우리는 항상 인종, 계급, 젠더, 섹슈얼리티에 대해 말을 꺼냈고 자연, 권력, 기후 이야기를 하면서 이 세 요소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주장했다. 또 다른 사람은 공감과 연대, 인내, 협동과 집단행동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했다. 공정, 평등, 가능성을 말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처음에는 크지 않은 개별적인 목소리였고 먼저 도착한 사람들의 주장이었으나 점차 집단이 함께 추구하는 사업이 되었는데, 한 사람이 말하면 중요해 보이지 않지만 백만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말하고 그들의 말을 각자의 세계관과 매일의 행동에 적용하기 시작하면 힘을 얻는다. 이 구조 안에 살고 있는 우리도 점점 성장한다.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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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4-05-29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글 잘 읽었습니다 요새 저 밥누나 보는 중이거든요!! 전에 보다 말았었어요 그래서 더 잘 읽었습니다 뒤에 그런 내용이 나오는군요

편독 2024-06-07 14:23   좋아요 0 | URL
약칭이 ‘밥누나‘군요. 김은 작가님 작품이 제 취향에 맞아서 밥누나도 재미있게 봤고 봄밤도 재미있게 본 드라마입니다. 미투를 다루긴 하지만 깊이있게 다루기 보다는 여주의 변화, 자기 성장의 소재 정도로만 사용되고 끝나긴 하는데, 멜로 드라마에서 미투를 다뤘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곡 2024-06-07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밥누나 뒤에 방송한 봄밤을 먼저 보았는데요 거기에는 가정폭력이 나왔지요 네 말씀대로 소재로 쓰인 것만으로도 일정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도시인의 월든 - 부족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태도에 대하여
박혜윤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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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1845년부터 1847년까지 2년간 사회를 떠나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살아갔던 시간을 기록한 에세이 [월든]을 출간한다. [월든]은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고전인데, 이 책을 잘 읽는 방법은 부유하듯, 산책하듯 소로의 문장을 그냥 읽는 것이다. 소로는 [월든]을 통해 인생의 정답이 아닌 마음 가는대로 살며, 느끼는대로 말하고 쓰며, 그래서 가끔은 모순적이긴 해도 괜찮음을 보여준다. 내 삶의 주인으로, 내 인생의 저자로 내가 중심을 잡고 서 있으면 다 괜찮음을 이렇게 멋지게 말해줄 수 있다니 그래서 나는 [월든]을 좋아한다. 


  [도시인의 월든]은 [숲속의 자본주의자]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박혜윤 작가님의 책이다. 서울대학교 영어영문과를 졸업하고 4년 간 기자생활을 하다가 미국워싱턴대학교에서 교육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가족과 함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미국의 시골로 들어가 임금노동에 종사하지 않는 삶을 산다.


  "정기적인 임금노동에 종사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도 생존할 수 있을까?" 

 

  실험처럼 시작된 '은둔'은 정혜윤 작가님에게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되는 멋진 삶을 선물한다. 문명을 움직이기 위해서 모든 개인들은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같은 속도로 더 많은 것을 늘 생산해야 하지만 정혜윤 작가님은 이에 반항한다. 정혜윤 작가님은 삶에 여백이 있음이 좋음을 알게 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하고, 내가 내 삶의 유일한 주인이어야 하고, 세상 모든 것을 의식적으로 나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함을 깨닫는다. 그동안 배운 걸 사회에 되돌려줘야 하지 않냐, 깊은 산 속에서 소비를 줄여 소득없이 사는 사람은 패배자가 아닌가, 등의 사회적 시선은 무시해버린다. 세상일에는 정답이 없고, 그저 내가 원하고 내가 주인인 삶을 살면 된다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옥수수가 자라는 것만 바라보고 있어도 내게는 그 무엇보다도 의미있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

 

  [월든]에서 인상적이었던 문장 중에 '집안일을 즐거운 소일거리라고 생각해라.'가 있었는데 박혜윤 작가님 역시 집안일을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집안일은 굉장히 하찮지만 끝이 없다. 오늘 먹은 걸 치우고 오늘 입은 옷을 빨아도 내일이 되면 똑같은 양의 일이 쌓여 있다. 집안일은 절대로 탈출할 수 없기 때문에 공포로 다가오기도 하는데, 저자는 어느날 문득 깨닫는다.내가 더럽힌 변기를 남에게 청소시킨다는 게 말이 되는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 존재의 핵심은 집안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정말 멋지지 않은가. 우리 삶은 아무 의미 없지만 의미없음에 우울해하거나 고민하지 말고 집안일을 시작하는 거다. 내가 먹은 그릇을 치우고, 내가 더럽힌 화장실을 치우다보면 이 하찮은 노동에서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박혜윤 작가님은 아이들이 가사를 주도적으로 하게 하는데, 집안일을 통해 삶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집안일의 하찮음을 통해 모든 것을 하찮게 바라볼 수 있는 태도를 배울 수 있고, 하루만 물컵을 치우지 않으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되기 때문에 오늘 하루 물컵을 닦지 않음이 결국은 죽음과 같다고. 집안일에서 시작해 죽음을 논하기까지 한다.

 

  퇴근무렵이 되면 늘 오늘 저녁을 뭘 해먹나,를 고민하는데 대충 먹어야지,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가사분담을 해서 지금 고등학교 딸아이는 빨래개기를, 재활용 버리기를 담당했던 아들이 대학생이 되면서 떨어져 지내게 돼 그 일이 남편 몫이 됐다는게, 내가 그 동안 아이들에게 삶의 하찮음을 가르치고 있었다는 생각에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기도 했다. 내 꿈은 둘째가 대학교를 졸업하는 6년 후에 회사를 그만두고 인적이 드문 산 속에 있는 폐가를 구입해 리모델링해서 자연과 동물과 가까이 사는 것이다. 다들 노후자금을 걱정하고 투자에 골몰하고 있을 때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을 꿈꾸는 내가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도시인의 월든]을 읽으면서 다 괜찮다,는 위로를 받았다. 모든 일에는 정답이 없으므로 지금 당장 노후 자금을 준비하지 않고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하지 않더라도 내 마음이 가는 곳이 그 곳이라면 다 괜찮다고, 그렇게 살아도 충분히 멋지고 의미있다고 내 어깨를 토닥여주는 책이었다.

집안일에 매진하는 건 내게 있어서 죽음을 기억하는 방법이다. 수많은 철학자들이 말한 지혜, 즉 죽음을 기억하고 매 순간 충실하게 사는 일을 나는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어떻게 내일 죽을 것처럼 살 수 았는가? 그러다가 오래오래 살면 어떡하나? 그런데 드딛어 매 순간 죽음을 생각하며 오늘 이 땅에 발을 꼭 딛는 법을 알아냈다. 나 자신도, 이 세상도, 별것 아닌 나 자신이 살아가는 인생도 하찮다. 그걸 똑바로 바로 응시하는 일은 바로 집안일을 하는 것이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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