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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혁명과 반혁명 사이 - 철학자 박구용, 철학으로 시대를 해석하다
박구용 지음 / 시월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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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의 혁명과 반혁명 사이]는 철학자인 박구용 전남대 교수님이 12월 8일 매불쇼에서 한 자신의 발언을 반성하고 사과하기 위해서 쓰기 시작한 책이다. 윤석열의 12.3 내란 사태 이후 국민의 힘 의원들 불참으로 탄핵안이 부결되자 많은 시민들이 광장에 모였는데, 박구용 교수님은 매불쇼에서 '2030여성들이 정말 많이 참여했다. 여성들을 보기 위해서라도 남성들도 많이 광장에 나와달라.'는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발언을 농담처럼 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김어준 총수님의 팟빵 매거진 [월말 김어준]을 너무 잘 듣고 있고, 특히 철학 코너는 메모까지 하면서 듣고 있던 팬으로서 나 역시 박구용 교수님의 발언에 실망감과 안타까움을 느꼈다. 평소 '무사유와 무감각'이 가지고 있는 폭력성과 잔인함에 대해 자주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동안 여성들이 받아온 차별과 억압에 대한 무감각 때문에 나온 발언이 아닌가 싶어 실망이 더 큰 면도 있었다. 박구용 교수님은 매불쇼에 출현한 다음날 김어준 총수님의 [겸손은 힘들다]에 출현해서 자신이 한 발언을 사과하고 연구실에 스스로를 감금시켰다. 광장에 나와야 하는 시기에 광장에 나오지 못하고 자신이 제일 좋아하던 장소인 연구실을 감옥으로 만들어 10일간 셀프감금을 하면서 집필한 책이 [빛의 혁명과 반혁명 사이]이다.


  p. 159 나 역시 오이디푸스처럼 자신의 눈을 파는 반성을 해야만 합니다. 지체된 도덕감각에 대한 처벌을 달게 받아야 합니다. 여기에 생각이 이른 그 순간부터 이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동안 쉬지 않고 그동안 해왔던 이야기를 되새기며 이 책을 쓰고 있습니다. 이 책은 지체된 도덕감각에 대한 처벌로 혁명의 아침에 떠오르는 해돋이를 시민들과 함께 마주하지 못하는 한 철학자의 반성문입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은 비상계엄령을 통해 반혁명을 일으키는데, 시민들은 맨 몸으로 반란군의 폭력을 막아서고 이후 혁명을 일으킨다. 계엄이 선포된 지 한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내란 수괴 윤석열은 체포조차 되지 않고 용산 관저를 요새화해서 버티기를 하고 있다. 시민들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매일, 매주 주말마다 광장에 나가 응원봉을 흔들며 윤석열 체포와 탄핵 가결을 외치고 있는데, 박구용 교수님은 지금 우리는 '혁명과 반혁명의 사이'에 놓여있다고 진단한다.


  +한국에는 세 가지 혁명이 존재했는데, 역사상 처음으로 '백성이 주권자'라고 천명한 '동학농민운동', 역사상 처음으로 대한민국이 공화국을 지향한다고 선언했던 '3·1운동', 권위주의적 독재 체제를 끝내고 입헌 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한 결정적인 사건인 '5·18민중항쟁'이다. 윤석열의 내란은 촛불혁명의 성과를 부정하는 반혁명 쿠데타이기도 하지만 '동학농민운동', '3·1운동', '5·18광주민중항쟁'을 모두 부정하는 박혁명 쿠데타이기도 하다, 한강 작가님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과거가 현재를 도운 것이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햇다고 했는데, 우리 시민들은 역사적인 혁명의 순간들과 그당시 희생됐던 시민군들을 기억하고 맨 몸으로 국회의사당 앞으로 달려갔다. 그래서 당연히 우리의 혁명이 성공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데, 윤석열 체포를 기다리는 매일매일이 너무 힘든 것 또한 사실이다.


  +이번 12.3 내란 사태에서 제일 화가 나고 분한 것 중 하나는 정치적인 계산을 하느라 머리 굴리고 있는 최상목 권한대행과 윤석열 체포를 저지하고 정광훈 일당의 집회에 나가 머리를 조아리는 국민의 힘 의원들의 행태이다. 한나 아렌트는 나치 독일의 SS장교로 홀로코스트의 핵심 설계자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지켜보고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다. 아이히만은 다정한 남편이자 자상한 아버지였지만 유대인을 가장 빨리 학살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운 악마이기도 하다. 아이히만은 자신에세 내려온 명령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명령을 수행했을 경우 자신이 받을 이익을 계산하기만 했다. 목적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사유하지 않고 계산만 하는 사람은 누구든 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한나 아펜트의 '악의 평범성'의 개념인데, 지금 현재 최상목 대행과 국민의 힘 의원들 역시 내란의 목적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내란 사태 이후 어떻게 해야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이 연장될 수 있을지 계산만 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악'이다.


  P.54 무사유는 단순한 '생각 없음'이 아닙니다. 무사유는 정신의 소극적인 활동도 아니고, 의식의 무기력증도 아닙니다. 무사유는 적극적인 무시의 활동입니다. 이 적극적인 무시의 활동을 하는 것이 도구적 이성입니다. 한마디로 이익계산에 혈안이 된 독적 이성의 활동이 무사유입니다. 이 맥락에서 아이히만은 명령의 정당성을 따지는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이익 계산은 능숙하게 수행한 악마, 가장 악랄한 악마였습니다.


  +윤석열은 후보 시절 "극빈의 생활을 하고 배운 것이 없는 사람은 자유를 모른다."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자유는 사람이면 누구나에게 부여되는 권리인데 윤석열은 자유를 권리가 아니라 자격이라고 생각한다.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과 자유를 누릴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선별이 가능하다. 윤석열은 자유의 화신을 자처하며 자유의 중요성을 부르짖지만 본인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은 자유라는 가치에 반대하는 세력이라며 적으로 규정하고 탄압한다. 이번 비상계엄령 당시 계엄선포문을 보면 윤석열이 생각하는 자유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는데, 적이라고 규정한 상대편의 자유는 아예 무시하고 윤석열 본인만이 누릴 수 있는 가치를 자유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메타인지는 '내가 인지하고 있는지를 인지하는 것', 즉 자기 객관화의 문제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총선에서 참패한다면 '내가 국정수행을 잘못 해서 참패를 했구나'라고 생각하고 국정 기조를 바꾸려고 하겠지만 메타인지 능력이 아예 없는 윤석열은 '나는 잘했는데, 민주당이 부정선거를 해서 참패했어. 언론이 문제니 언론을 통제해야 겠어.' 라고 생각한다. 메타인지 능력의 부족으로 윤석열은 비상계엄령까지 생각하고 행동에 옮겼고, 지금도 가상에 세계에서 자신은 자유의 화신이자 억압받는 피해자라고 규정하며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을 끌어모으고 있다. 문제는 우리 사회의 기득권의 자리에 메타인지가 부족한 사람이 너무 많이 분포되어 있다는 게 아닐까. 나는 이번 내란 사태를 통해 우리가 그동한 생각했던 '성공'이라는 기준에 부합했던 인물상을 재정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메타인지 능력이 뛰어나고 공감력이 뛰어나고 관찰자적 시점이 아닌 참여자적 시점으로 국민을 대할 수 있는 사람. 이번 기회에 싹 다 물갈이가 되고 젊은 세대가 바라는 '성공'의 기준 역시 바뀔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빛의 혁명과 반혁명 사이]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와 2부가 현재 윤석열이 왜 내란을 일으켰는지, 윤석열 같은 대통령은 어떻게 탄생됐는지, 윤석열 정부가 보여준 비인간적인 결정적 사건들을 통해 윤석열 정부를 분석했다면 3부에서는 빛의 혁명 성공 후 우리 사회가 만들어갈 제7공화국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2부와 3부 사이에 브릿지 챕터를 통해 제7공화국의 논리적 명제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철학이 고리타분하고 현실과 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짜 철학은 시대를 읽고 시대를 해석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현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학문이다. 윤석열은 도대체 왜 안 잡혀 가는지 이 시국은 언제 끝이 날지 내란성 불면증을과 우울증을 앓고 계시는 분들이 느긋한 마음으로 따뜻한 차 한 잔 마시면서 읽으면 너무 좋은 책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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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에 갔다가 [즐거운 어른]이라는 책을 빌려 왔다. 저자가 내가 좋아하는 김하나 작가님의 어머니라는 것도 좋았지만 목욕탕에 나란히 앉아 있는 3명의 할머니가 그려진 표지도 너무 마음에 들었다. 앞선 세대를 살아간 쿨한 어른에게 인생 별 거 없다는, 너무 애쓰지도 말고 그저 현재를 즐기며 살라,는 조언을 듣는 기분이기도 했고, 요가와 헬스, 독서, 여행 등 하루를 취미생활로 가득 채운 일상 이야기를 읽으면서 노년 생활이라고 해서 지루하고 심심하기만 할 거라는 편견을 깨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읽으면서 자꾸 '우리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12남매 중 끝에서 두 번째 딸로 태어났는데,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나이 차이 많이 나는 큰 오빠네 집에서 더부살이하며 살았다. 집안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셨고 먹고사느라 한글을 배울 기회도 없었다. 큰 오빠네 집에서 독립해 공장에 취업을 해서 아빠를 만났고 20살에 아빠와 가정을 이뤘지만 없는 사람 둘이 만나도 있는 사람들이 될 수는 없는 시대였기에 여전히 먹고 살기 위해 온갖 노동을 하셨다. 어릴 적 기억하는 엄마 모습은 마당 수돗가에 쪼그리고 앉아 사포로 돌을 닦는 부업을 하는 거나 뜨개질 거리를 한아름 쌓아놓고 뜨개질 부업을 하는 모습이나 장미꽃을 접는 부업이나 인형코를 꿰매는 부업을 하는 모습 등이다. 내가 좀 더 크고 태백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김장철이 다가오면 엄마는 새벽마다 배추작업을 나갔는데, 등교를 하는 길에 저 높은 곳에서 배추작업을 하는 엄마의 모습이 보이곤 했다. 아빠가 워낙 고지식하고 보수적이어서 엄마가 밖에 나가 일하는 걸 싫어했기 때문에 엄마는 온갖 부업으로 돈을 벌어 생활비를 보탰다. 


  자식 셋을 다 키우고도 엄마의 노동은 끝나지 않았는데, 우리 딸을 시작으로 언니네 아들 둘, 동생네 아들까지 손주4명을 키우셨다. 깍두기, 열무김치, 물김치, 배추김치 부터 늘 반찬을 해서 자식들 집에 싸서 보냈고 엄마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 아빠 때문에 해외 여행은 커녕 친구들(친구라고 할만한 인간관계도 없으시다. 예전에 살았던 또는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동네 어르신들이 엄마의 친구다)과 국내 여행 한 번 다녀오신 적이 없었다. 2대 독자인 아빠네는 왜 이렇게 제사가 많았는지 엄마는 1년에 제사만 10번 가까이를 지냈는데, 나 역시 독립을 하기 전까지 제사 준비를 했던 기억이 남아있어 살림은 못했어도 전은 기가 막히게 부쳤다. 엄마의 공간은 늘 집 근처로 한정되어 있었고 온갖 노동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지만 엄마는 엄마를 위해 산 적이 없었다. 결국은 다 같은 성을 가진 아빠와 우리 3남매를 위해서만 엄마의 삶은 돌아갔다.


  다행히 5년 전부터 엄마는 엄마의 인생도 살기 시작하셨는데, 시에서 하는 학습관에서 한글 공부를 시작하셨다. 가나다라 부터 시작했던 한글공부로 엄마는 이제 카톡도 보내고 왠만한 글자는 읽고 쓰신다. 운동도 시작하셨는데, 시에서 운영하는 학습관에서 요가를 배우시다가 지금은 필라테스 학원에서 어르신을 상대로 하는 근력운동을 하루 한 시간씩 하신다. 자식들이랑 해외여행은 두 번 다녀왔고 국내 여행은 자식들이랑 자주 다니는 편이다. 아빠가 나이가 들면서 고집이 약해져 제사도 많이 줄였는데, 지난 해부터는 추석에는 제사를 안 지내고 성묘만 하기로 해서 엄마의 부담이 조금 더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김치를 하고 반찬을 해서 자식들한테 싸주는데, 아무리 하지 말라고 해도 끊지를 못하신다. 그래서 엄마의 낙이려니 하고 되도록 감사하게 받아 먹으려고 노력 중이다.


  결국 [즐거운 어른]은 읽다가 중도포기했다. 카프카식으로 말하면 내 안의 얼음을 깨는 도끼같은 어른의 이야기는 [즐거운 어른]보다는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이다. 평생을 노동했지만 명함 한 장 없었던 여성들의 이야기. 우리 엄마 시대 너무 당연하게 강요됐던 여성들의 희생과 그림자 노동, 자신의 이름 보다는 엄마나 며느리, 아내로 불린 여성들이 고군분투하며 닥친 현실을 이겨내고 결국 자신의 인생에서 승리하는 여성들의 이야기. 




  식상한 표현이지만 엄마의 존재를 '공기같다'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없어서는 안될 엄마의 노동, 그리고 지금 시대 여성으로 채워지고 있는 필수 노동들 역시 너무 흔해서, 공기 같아서 우리는 소중함을 모르고 지나칠 때가 많다. 엄마가 엄마의 인생을 잘 살 수 있기를 응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돌봄 노동이나 학교 급식 조리사 노동자분들의 열악한 처우나 청소 노동자분들의 처우 개선 등에도 관심을 가지는 것도 중요한다. 멋지고 쿨한, 즐거운 어른이 되는 것도 좋지만 사회적 고통과 아픔에 함께 슬퍼하고 공감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리고 늘 우리 사회 많은 '엄마'들의 노고에 감사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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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사회 - 왜 우리는 희망하는 법을 잃어버렸나?
한병철 지음, 최지수 옮김 / 다산초당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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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헌 작가 그림


  불안이 사람들을 서로 떼어 놓기 때문에 모여서 함께 불안해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불안은 공동체를, 우리를 만들지 못하게 한다. 불안 속에서 사람들은 각자 고립된다. 그러나 희망은 우리의 차원을 포함한다. 희망하는 행위는 동시에 '히망을 전파하는 것', 불꽃을 옮겨 붙이는 것, '자기 주변에서 불꽃을 키우는 것'을 의미한다. 희망은 혁명의 발효제이자 새로운 것의 발효제, 즉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불안의 혁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불안해하는 사람은 어떠한 것의 지배 아래 자기 자신을 던져 넣은 사람이다. 다른, 더 나은 세상을 희망하는 행위는 행위 안에서만 비로서 혁명 가능성이 생겨난다. 오늘날 혁명이 가능하지 않다면 그것은 우리가 희망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불안 속에 고집스럽게 머물기 때문이며, 삶이 '살아남기'로 위축되기 때문이다.

                                                                                     p.38


  희망은 '자기 안에서 힘을 만들지 않는다. 희망의 중심이 '자기'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희망하는 이는 타인을 향해 나아간다. 희망하는 이는 '자기'를 넘어서는 일을 신뢰한다. 따라서 희망은 믿음에 가깝다. 절대적인 절망 앞에서도 나를 세우고 심연 속에서 서 있는 힘을 주는 것은 초월성을 지닌 타자의 존재다. 희망하는 이는 자기 자신의 힘으로 서 있는 것이 아니다. 하벨은 이러한 이유로 희망이 그것의 근본을 초월적인 것에 두고 있다고, 즉 희망이 먼 것에서 온다고 생각했다.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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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쓸모
로랑스 드빌레르 지음, 박효은 옮김 / FIKA(피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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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년에 고3이 되는 딸은 미대를 가는 게 꿈이다. 초등학교를 입학하면서 내가 퇴근할 때까지 시간을 때우기 위해 학원을 보냈는데, 그 중 하나가 미술학원이었다. 딸은 미술에 취미도 있고 소질도 있어서 초1부터 중3까지 꾸준히 미술학원을 다니다 고1이 되면서 입시미술로 옮겼다. 딸의 꿈은 도슨트가 되는 것인데, 수어를 배워 청각장애인에게 그림을 수어로 설명해주고 싶다는 꿈도 있어 틈틈이 수어도 배우고 있다. 


  얼마전 2학년 2학기 기말고사가 있었고 딸은 심한 목감기와 몸살감기에 걸려 시험 내내 고생을 했다. 병원에서 수액을 맞아가며 공부를 했지만 감기로 인해 컨디션은 최악이었고 시험 결과 역시 좋지 않았다. 딸의 학교에서는 하필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에 각 가정으로 시험성적표를 보냈는데, 딸의 성적표를 아무리 부모라도 우리가 먼저 보면 안되고, 성적표 역시 딸이 보여주고 싶을 때만 보여준다는 암묵적 룰이 있어 딸 책상에 올려뒀다. 크리스마스가 지난 어제 미술학원을 다녀와 간식으로 토스트를 먹겠다며 신나하던 딸에게 성적표 왔는데 봤냐고 물었다. 딸은 그제야 성적표가 왔냐며 책상을 뒤져 성적표를 찾아 보더니 소파에 앉아 우울모드로 있다가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성격이 워낙 밝은 딸이라 우는 모습을 보면 유난히 마음이 아픈데 감기에 걸려 힘들게 공부한 딸을 봐서인지 어제는 마음이 더 아팠다.


  딸은 속상한 마음에 대입은 망했고, 자기 인생은 끝났고, 이번 시험은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너무 좋지 않아 좌절감이 심하고, 그림 실력 역시 잘 늘지 않아 슬럼프 같다며 하소연을 하며 울었다.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라고 내가 한 말은 "고통없는 삶은 없어."였다,


  "하은아, 고통없는 삶은 없어. 사는 건 감당해내는 거야. 매 순간 거친 파도가 닥치기도 하고, 잔잔한 파도가 닥치기도 하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그 파도를 감당해내는 거야.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그저 묵묵히 견뎌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행운이 닥치기도 해. 당장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데, 왜 미래를 미리 걱정해. 미래는 여백으로 남겨두고 지금 닥친 고통에만 슬퍼하고 속상해하고 대신 지금 할 수 있는 걸 행동으로 옮겨야 회복탄력성으로 내일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딱 시험을 못 봤다는 그 만큼만 속상해해. 앞으로 살 날이 얼마나 많아. 기대할 것도 많고 대입이 네 인생 끝이 아니야. 다른 무궁무진한 기회들이 엄청 열려있어. 넌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걸 하면 돼. 그래야 기회도 행운도 널 따라 오는 거야. 사는 게 원래 만만하지 않아."


  우리는 철학은 쓸모가 없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철학이 얼마나 유용하게 쓰이겠냐고 생각해서 철학은 그저 뜬구름잡는 얘기라고 치부할 때도 많다. 그런데 어제 나는 최근에 읽은 [철학의 쓸모]에 나온 책구절로 딸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려고 했다. 그 말은 나 역시 위로를 받았다는 얘기겠지.



  로랑스 드빌레르의 [철학의 쓸모]는 '의학으로서의 철학'에 대해 얘기한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시련을 겪게 되는데, 현실은 너무 잔인해서 나의 의지와 노력과는 전혀 상관없이 굴러갈 때도 많다. 당장 내일 일도 예측할 수 없고 이미 벌어진 일은 주워 담을 수도 없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 만다. 철학은 우리가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없어도 내 삶의 주인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 준다. 내 앞에 닥친 현실, 고통, 시련을 어떻게 마주할지, 어떻게 통과할지 스스로 내가 정할 수 있음을. 우리가 두려워 하는 것은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 두려움 그 자체임을 때 깨닫는 것처럼 내 앞에 벌어진 일들을 어떤 마음으로 대할 지는 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철학은 현실을 바꿔 줄 수는 없지만 현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바꿔 바로 앞에 닥친 고통을 치유해줄 수 있다. [철학의 쓸모]는 이런 고통들을 철학이 어떻게 의학으로서 기능하는지를 여러 철학자들의 '사유'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데 예를 들면 반복되는 일상의 권태와 나태에 대해서는 니체의 '단기적 습관을 추구하라'는 사유를 통해 철학 처방전을 내려준다.


  "나는 단기적인 습관을 사랑하며, 이것이 '수많은' 사물과 상태를 알게 해주는 더없이 귀중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니체의 단기적 습관이라는 처방전은 다양한 활동을 권장하지 않는다. 니체는 한 자리에서 오래 지속되는 것들, 즉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습관의 편안함을 느껴보라고 말한다. 


  질병을 싸워서 이겨야 하는 전투에 빗대 병에 걸리는 것을 패배로 보고, 병을 극복하는 것을 승리로 보는 질병의 은유에 대해서는 수전 손택의 처방전을 내려준다.


  "질병은 은유가 아니며, 질병에 대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정직한 태도이자 환자가 되는 건강한 방법은 질병에 따라붙는 잘못된 은유에 저항하고 거기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질병은 다만 또 다른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다른 삶에 속하려면 많은 비용이 든다. 우리는 건강의 세계와 질병의 세계라는 두 세계의 이중 국적을 가지고 태어난다. 우리는 언제나 건강의 세계에서 쓸 여권을 갖고 싶어 하지만, 잠시라도 질병의 세계에 다녀올 수밖에 없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닥치게 마련이다."


  [철학의 쓸모]는 철학적 사유가 우리 삶에 얼마나 큰 위로를 줄 수 있는 지를 알게 해주는 책이다. 나이가 들면서 달라진 것 중 하나는 고통스러울 때, 슬플 때나 아플 때 전에는 가까운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위로받기도 하고 치유받기도 했는데, 이제는 묵묵히 속으로 감내하고 그럴 때 일수록 말이 더 없어진다는 거다. 이 책은 고통을 속으로 삭히며 혼자서 묵묵히 헤쳐 나갈 때 처방전이자 나침반이 되어 줄 수 있는 책이다. 


  아이 둘을 키우고 반려동물과 함께 하면서 여실히 느낀 점 중 하나는 세상은 내 뜻대로 되는 게 없고, 예상치 못한 온갖 고통들이 도처에 깔려 있다는 거다. 그런데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으로 시작해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져,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여러 감정, 생각들을 직시하고 내 삶의 방식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게 굉장히 큰 용기를 내게 한다. 어떤 시련과 고통에도 무너지지 않고 강하고 단단하게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무모할 정도의 용기. 


  딸은 다행히 속상한 마음을 훌훌 털어내고 부은 눈으로 토스트를 맛있게 먹었다. 요즘 청소년들이나 청년들이 너무 살기 힘든 세상이다. 부모로서 아들도 딸도 삶은 원래 고통으로 가득 차 있고, 산다는 게 시련을 견디는 일임을 인식하되 자기만의 방식으로 잘 감당해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철학의 쓸모 역시 알아주면 좋겠지만 엄마의 바람이겠지.


  우리는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고전을 가진 채 "우리의 의사와 관계없이 이 세상에 던져졌  지만 원한다면 창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저런 시간에, 이런저런 환경에서, 이런저런 얼굴과 성격으로 태어났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이른바 자기 창조 능력은 한계에 부딪힌다. 산다는 것은 우리가 결정하지 않은 현실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의 의지에 따라 자유로워질 수 있고, 가능성을 시도해볼 수 있는 삶 속에서 "우연에 의해 존재하는 우리 자신에게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우리는 혁명이나 영웅주의에 기대지 않고, 우리 내면의 힘을 기르면서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는 능력, 곧 탄생성을 발휘할 수 있다.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탄생성이란 늙음이나 젊음에 좌우되는 생물학적 현상이 아니라 비루하고 보잘것없더라도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다. 우리는 새롭게 시작하면서 자기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 이는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일을 벌이는 것도, 활동량을 늘리는 것도 아닌 언제나 변함없이 냉혹하게 우리를 짓누르는 세상사에 맞서 자신을 잃지 않고 의연하게 버티는 것이다. 겸허하게, 그러나 예상치 못한 것과 깜짝 놀랄 만한 것을 만들어내면서 다시 한 번 세상에 충격과 감동을 주는 것이다. 무언가를 고백하는 것처럼, 눈에 띄지 않는 뜻밖의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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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책태기를 겪고 있다. 40중반에 사회복지학을 공부해보겠다고 이번 학기부터 방통대 수업을 듣고 있는데, 수업과 직장일과 가사일을 함께 하다보니 심신이 지친걸까? 기말시험이 끝나면 책을 부지런히 읽어야지 했는데, 막상 시험이 끝났지만 책을 부지런히 읽지 못하고 있다. 날씨가 춥다보니 전기장판을 틀어놓고 침대에 누워서 책을 읽게 되고, 책을 펴고 30분도 넘기지 못하고 잠이 든다. 잠들기 전 바디스캔 명상을 하는데, 요즘은 책만 폈다 하면 잠이 들어서 바디스캔 명상은 고사하고 침대 스탠드 불도 신랑이나 딸이 꺼주고 있다. 감기기운이 2주째 계속되고 있어 항생제와 알레르기약을 계속 복용중인데 약기운이 더해져서 더 잠이 오는 걸까? 읽고 싶은 책은 잔뜩인데 몸이 따라주지 않아 요즘 계속 좌절중이다.


  기말시험을 앞두고 윤석열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계엄령 이후 일상이 멈춰으리라 생각하는데, 나 역시 그날 이후 일상이 멈췄다. 속보를 놓칠까 핸드폰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고 직장일도, 책읽기에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다행히 계엄령은 해제되고 윤석열 탄핵안이 가결됐지만 여전히 정국은 어수선하고 국민들은 모두 불안해한다. 여당의 헛발질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분노를 하게 되는데, 어쩌면 이런 마음으로 집중해서 책을 읽지 못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작년 여름부터 아파트 단지 2군데에서 고양이 밥을 챙겨주고 있는데, 한 아이가 출산을 했다. 작년 겨울 스티로폼으로 만든 고양이집을 가져다 뒀는데, 그 안에서 아이를 낳은 모양이다. 캔을 따주면 늘 밥을 먹으로 오는 아이가 스티로폼 집 안에서 꼼짝을 하지 않길래 환할 때 가서 봤더니 손바닥만한 까만 애기를 품에 안고 있었다. 경계심이 늘었는지 하악질도 심해져서 아는 척 한 번 못하고 밥과 물만 채워주고 오기 빠빴는데, 하루는 밤새 많은 비가 내리고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갓 태어난 애기 고양이와 출산을 한 엄마 고양이가 너무 걱정이 되서 고양이집을 감싸주는 바람막이? 비닐 온실을 구입해서 스티로폼집 위에 덧씌웠다. 엄마 고양이는 내가 비닐 온실을 덮기 위해 부스럭거리자 후다닥 뛰쳐 나가 차 밑에 숨어 나를 멀뚱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비닐 온실이 비바람을 막아줄거란 생각에 혼자 뿌듯해했는데, 며칠 뒤 나의 오지랖이었음이 밝혀졌다. 비닐 온실을 씌우고 이삼일 엄마 고양이가 밥을 먹으러 나오지 않길래 혹시나 해서 집을 들쳐 봤더니 엄마와 애기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내 오지랖이 그나마 따뜻하게 몸을 맡길 수 있었던 집에서 아이들을 쫒아낸 건 아닌가 하는 후회와 자책으로 오랜만에 눈물 콧물을 펑펑 쏟으며 울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비닐 온실을 치우고 집 바닥에 깔린 담요를 새 담요로 바꿔주고, 늘 그랬든 밥과 물을 갈아주고 아이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밖에 없다는 게 화가나고 마음이 아팠다.


  나를 둘러싼 거시적 세계에서 비상계엄령이 선포되고 미시적 세계에서 엄마 고양이와 애기 고양이가 나의 오지랖 때문에 사라졌다. 나의 노력과 기대와는 전혀 상관없이 굴러가는 흐름과 질서는 존재하는데, 나는 늘 그 사이에서 휘청거린다. 발바닥과 코어에 힘을 주고 단단하게 서 있으려고 마음은 먹지만 늘 이리저리 흔들리고 부딪히고 깨진다. 인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길에서 출산한 엄마 고양이와 갓 태어난 아기 고양이의 '길 위의 삶'은 아주 사소한 것일 수도 있지만 나는 늘 이런 사소한 것들 때문에 아프고 마음을 다친다. 내가 마주할 수 있는 세상이 살만해진다면 거시적 세계까지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살지만, 내가 마주할 수 있는 세상 속에 길에 사는 고양이들이 지낼 추운 겨울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과연 세상이 좋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윤석열 탄핵안 2차 표결날 많은 시민들이 광장에 모였다. 이번 집회는 MZ세대의 참여와 아이돌 응원봉, 광장을 채운 K팝 등으로 더 감동적이었는데, 탄핵안이 가결되고 울려 퍼지던 '다만세'는 어떤 고통도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한강 작가님은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지만 또한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는지'라며 수많은 이들이 겪어온 고통 속에서 빛을 찾기 위해 글을 써오셨다. 묵묵히 슬픔과 아픔, 고통을 대면하고 그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아름답고 선한 방향으로 조금씩 걸어가는 게 지금 나에게는 최선이겠지. 책도 다시 열심히 읽고 내가 마주할 수 있는 세계를 넓혀가기 위해 정신 바짝 차리자. 


 이번 주말에 읽으려고 주문한 책.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는 강유정 의원님의 유튜브 채널에서 언박싱 영상을 보다가 장바구니에 담았고 [관조하는 삶]은 제목에 끌려 충동구매했다.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는 슈테판 츠바이크가 나치를 피해 브라질로 망명을 가서 기록한 에세이로 세계대전이라는 어둡고 야만적인 시절임에도 인간에 대한 희망과 용기를 주는 글들이 담긴 책이고,[관조하는 삶]은 무위의 상태에서 세계를 관조하라는 책이다. 이번 주에는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2권의 책을 읽고 책태기를 극복할 계획이다. 책은 내가 중심을 잡고 서 있을 수 있게 해주는 가장 필수적인 장치다. 실은 며칠 전 주문한 책들도 읽지 않고 책장에 꽂혀 있지만 다시 읽자. 그리고 힘을 내자.


-엄마 고양이와 애기 고양이는 이틀 만에 돌아왔다. 고맙고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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