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휴~가 아닌 흐음~하는 한숨. 들숨인지 날숨인지 몰라도 잠깜 멈추게 되는 그런 숨을 자주 쉬게 하는 글이다. _ 시대마다 아프지 않은 적은 없었다. 그 아픔은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병명의 차이일 뿐이다. 어느 때는 위장이 아팠고 어느 때는 팔다리가 아팠고 어느 때는 심장이 아팠고 어느 때는 머리가 아팠다. 어렵게 병을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병이 찾아왔다. 위장이 아파서 죽을 뻔 했던 자는 머리가 아픈 것이나 심장이 아픈 것이나 팔다리가 아픈 것보다 이제 더는 위장이 아프지 않으니 그만이라 생각하고 심장이 아픈 자는 팔다리가 아프지 않고 위장이 아프지 않고 머리가 아프지 않은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끼니를 굶었던 세대는 끼니 챙기고 디저트까지 먹는 세대를 이해할 수 없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세대는 주린 배를 이해할 수 없다. 사람이 각기 다른 것처럼 시대도 각기 다르다. 이해할 수 없다면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모르는 고통이라고 해서 그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내가 모를 뿐._ 어제 초등학생쯤 되는 아이가 이모뻘 되는 어른에게 한참 잔소리를 듣는 것을 보았다. 너 집에가서 공부해야한다는 말로 시작된 그 잔소리는 엄마가 널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 아느냐에서부터 우리 때는으로 이어지고 모든 혜택이 사라져야 정신을 차릴 거라는 협박으로 끝났다. 아, 당신의 올챙잇적은 기억에 없는가. 적당히 하고 끝났으면 적어도 상처로 남진 않을 텐데 싶어졌다. 경험해보지도 않은 것에 비교해서 감사하라니 대체 어쩌란 말인가. 기약도 없는 어른을 어떻게 이해하라는 말인가. 아니 최소한 그 전에 그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 지를 먼저 느끼게 해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어른이 되어서도 윗세대에게 잔소리를 듣는 것이 지독해서 감당하기 어려우면서 아이더러 어쩌란 말인가.를 한참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지 말아야지. 그러지 말아야지 한다._ 내가 모르는 것이 있다더라. 나는 겪어본 적 없는 고통과 불안과 갈등과 아픔이 있다더라. 두루 아플만큼 아파본 나인데도 그들의 실상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각자 앞에 놓인 것이 모두 다를 뿐 저마다 아프다. 저마다 사랑스럽고 장한 것 만큼 모두 저마다 아프다. 변하는 것은 그렇더라. 뒤에 주렁주렁 따라오는 것이 많다. 그 중에 반짝이는 것은 얼마안되고 더럽거나 얽혀있거나 무거운 것들이 더 많다. 그렇게 부담스러운 것들은 하나씩 떼어낸다. 그리고 남겨진다. 자세히 보면 제법 추억어린 것들이고 어찌보면 구질구질하기도 하다. 잰걸음으로 앞으로 가려면 떼어내는 것이 좋겠으나 그렇게 떼내다 보면 남은 것이 얼마 없을지도 모른다. 지칠 때 돌아볼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_ 버리고 비우는 것이 미덕인 요즘은 더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시대의 미덕도 좋고 가벼움도 좋지만 한 때 아주 소중했던 것 정도는 간직하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상냥한 그토록 상냥한 폭력. 눈으로 읽을 때와 소리 내어 읽을 때의 느낌이 다르다. 무엇이 더 나은지 무엇이 덜 이상한지는 잘 모르겠다. 관심있는 책을 모두 구입할 수는 없어서 미뤄지는 책들이 있다. 그 책들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미뤄진 책들 중 이렇게 기회가 닿는 책들이 있다. 인연이었나보다._ 너무도 담담한 문장이 일어난 모든 일들을 상쇄시켜주는 것은 아니다. 웃으며 조용히 괜찮다고 말한다고 해서 다 괜찮은 것은 아니듯이. 건조하게들 살아간다. 그 건조함에 대해 이건 아닌 것 같다고 문제를 제기하면 어느샌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되어 있곤 한다. 문제는 원래 거기에 있었고 대충 덮어둔 것이었을 뿐인데 마치 내가 문제를 일으킨 것 처럼 인상을 찌뿌리고 쳐다본다. 그러면 안된다고 다들 그렇게 산다고 좋게 좋게 가자고 말한다. 왜? 덮는 사람이 있으면 들추는 사람도 있다. 거기에 문제가 있어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과 내내 그 문제가 거슬리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냥 건조한 게 싫을 뿐이다. 코가 빡빡하고 눈이 따갑고 피부가 가렵다. 세수를 하고 물을 마신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선인장도 가볍게 죽이는 나도 아는 상식은 바짝 마른 화분에는 물을 약간 분무하는 것으론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속흙까지 마르면 쭈욱 배수가 될만큼 듬뿍 물을 줘야한다. 흠뻑 적실 수 있을 정도의 물이어야지 표면의 자잘한 물방울 들로는 어림없다. 말라죽기 전에 화분을 옮겨서 듬뿍 물을 줘야한다고 말하는 것이 화분의 수명을 단축시킨다니 말이나 되는 소리냐 따지고 싶어진다. 번거로워도 화분을 옮기자. 물을 듬뿍 주자. 게으르게 너무 화분을 방치한 탓이다. 죽게 내버려뒀어야 했나? _ 그래도 그렇게들 살아간다. 다들 저마다 문제를 끌어안고도 아닌 체하며 그렇게들 살아간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큰 문제는 아니라고 문제가 생겼지만 대충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쉽게 사라질거면 애초에 문제가 되지 않았을거라는 걸 애써 잊는다. 사는 일이 바쁘고 녹록치 않아서라는데 무얼 위해 애써 사는 지 궁금해진다. 궁금해하면 이상해한다. 사는 건 같은데 나는 좀 더 즐겁게 만족스럽게 살고 싶을 뿐이다. 어딘가 꿍한체가 아니라 최대한 가볍게 말끔하게 살고 싶을 뿐이다. 나와는 다른 그렇게들 살아가는 사람을 비난할 마음은 없다. 사실 나도 자주 그렇게 한다. 아닌척, 없는척, 모른척하면서 매일을 산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 순간이 지나면 괜찮을거라 여기는 사람들의 이야기. 어쩔 수 없어서이기도 하고 어쩌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한 숱한 이야기들._ 하지만 결국 아무렇지 않아지지는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모르고 살면 좋은데도 말이다. 모르고 살고 싶었는데도 말이다. #상냥한폭력의시대 #정이현 #문학과지성사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어떻게 살고들 있는지 끝없이 고민해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묻는 사람마다 정답을 내놓기도 하고 누구도 답을 모르기도 한다. 그것을 배부른 소리라고도 하고 끝없이 생각만 하기도 한다. 이리 저리 비교해봐도 소용없고 스스로에게 집중해도 소용없다. 생각과 행동 둘 중 하나만 있어선 살아지질 않는다. 아니 살아지긴 하는데 사는 것 같지가 않달까? 아니 사는 것 같긴 한데 제대로는 아닌 것 같달까? 범위를 좁히고 작은 것을 실천해가는 것이 삶이라고 내 식의 답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옳은지는 알 수가 없다. 죽어가는 순간에 나쁘지 않았어 정도면 된다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죽어가는 순간에야 확인할 수 있어서 사는 동안은 내내 불안할 수 밖에 없다. 누구나 알고 아무도 모르니까._ 이 세대와 저 세대간이 너무도 달라서 서로 이해하고 납득하기 어렵다. 복잡하게 굴 것 없이 개인으로 마주하면 조금 이해도 가고 조금 납득도 되더라. 아, 너는 그렇구나 나는 이런데 하면서 조잘대며 간극을 좁혀 갈 수 밖엔 도리가 없다. 모르면 모른 채로 지나갈 수 있는 것과 지나가도 되는 것들이 있는 반면 지금 모르면 영원히 알 수 없게 되버리는 것들이 있다. 나 자신도 사회도 시대도 있는 힘껏 똑바로 보고 바르게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노력하다보면 시간이 가고 나이를 먹는다. 별 수 있나 나이를 먹고 시간이 가는 것을 거스를 방법은 없다. 그것에 대해서도 각자의 속도대로 하면 되지 않을까?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강박적일만큼 단호하고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허허실실하게 되었다. 나이 탓인지 비밀이 많아선지 모르겠다._ 여기가 어딘지 전부 내 의사는 아니라도 분명히 내 선택과 결정에 달린 일이긴 하다. 끝없는 의구심이나 불안감도 좀 인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 누구나 한 번 뿐이지 않은가 당연한 일이다._ 케이는 한경희로 불리우는 데서 답을 찾을지도 모른다. 나는 N과 ***사이에서 잘 자리잡고 있는 걸까? N으로써 했던 글과 사진이 ***으로서의 일상을 지우는 것도 원치 않고 ***으로서의 일상이 N의 생각을 비웃고 싶지도 않다. 누구에게 들켜도 쭈뼛거리지 않기 위해 그 때 그 때 있는 그대로이기 위해 노력한다. 이쪽과 저쪽 사이의 괴리를 감당할 자신은 없다. 그래서 어쩌면 한경희는 프로 주부가 되었다가 잘나가는 사업가로 변모해서 왠갖 생활가전을 만들어내고 이지원과 행복하게 살다가 나이들고 바빠서 데면데면하게 늙어가는 그런...이야기는 아닌 게 당연하고. _ 생각 좀 하고 살자.가 이 글의 결론은 아니고 저마다의 삶에 박수를 보내는 것도 아니고 결론이 중요한 것도 아니다. 그렇게들 어떻게든 살고 있다는 외침이 아닌가 싶다. #천국에서 #김사과 #창비
내가 바라는 나와 실제의 나 사이의 간극은 점체로 좁혀지질 않는다. 그 간극이 자신을 자빠트리고 깔아뭉개고 짓밟기도 한다.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어서 아예 자신을 망치고 만다. 실제의 나를 아무리 꾸며봐야 모두를 속일지언정 자신에겐 들키고 만다.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진짜처럼 보여도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자신만은 명백히 알고 있다. 그 고통을 감당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벗어날 수 있는 자는 추앙받아 마땅하다. _ 선명하고 깨끗하고 밝고 말끔한 곳이 필요하다. 어차피 드러날 수 밖에 없는 곳, 부러 꾸미는 것이 의미 없는 그런 곳. 그 장소에 적응하다보면 받아들이게 된다. 아, 나라는 지독한 인간. 그 뒤에 따라오는 것들 역시 자신의 몫이다. 가능성은 어디에나 있다. 안보인다고 사라진 것은 아니다. 눈을 부릅뜨면 찾을 수 있을지도? #깨끗하고밝은곳 #어니스트헤밍웨이 #민음사
헤밍웨이 만나기 프로젝트로 이십몇년 만에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는다. 이십몇년 전으로 거슬러 가도 아주 어린 아이는 아닌 것이 나도 나이가 제법 되었나보다. 그래도 아직 노인이 되려면 한참이나 멀었다._ 솔직한 날 것의 문장들을 만나는 것은 꽤 오랜만이다. 세련되게 꾸며지고 그리듯이 펼쳐지는 것이 아닌 체험에서 나올 법한 가감없는 문장들. 솔직함을 증명하려 부러 날을 세운 것도 없이 그저 그대로의 문장들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_ 노인은 말을 건다. 누군지도 모를 대상을 향해 혼잣말을 하고 새에게 말을 건네다 자신에게 말을 걸고 물고기에게도 말을 건다. 소년이 함께 없어서 아쉽고 새가 가버려 아쉽다. 그것은 그저 아쉬움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_ 노인과 바다에서 우리는 노인의 의지와 강인함을 말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그것밖에 남지 않은 노인의 처절함은 그의 우직함 뒤에 숨어있다. 소년이 돌보지 않으면 굶기 일 수인 뼈 굵은 어부는 그것 외엔 아는 것이 없다. 어부가 아닌 자신은 기억에도 없다. 그대신 바다에 대해서 만큼은 물고기를 잡는 것에 대해서 만큼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알려고 한 것이 아니라 자연히 알게 되었고 그것을 자신과 별개로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아직 괜찮아와 자신을 늙은이라 지칭하는 두 마음 사이에서도 내일을 본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는 힘을 다하면서도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저 운이라고 내일의 희망을 말한다. _ 살아가는 것이 그저 떠밀리는 것이 아닌 처절한 전투라면 난 어디쯤에 있을까? 돌격형 전투원은 아무래도 아닌 것 같고 전략형도 아닌 것 같고 그저 전투에 내성이 슬슬 생겨가는 중인 것만 같다. 익숙한 만큼 노련해지면 좋은데 과연 그것이 가능할련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