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한 그토록 상냥한 폭력. 눈으로 읽을 때와 소리 내어 읽을 때의 느낌이 다르다. 무엇이 더 나은지 무엇이 덜 이상한지는 잘 모르겠다. 관심있는 책을 모두 구입할 수는 없어서 미뤄지는 책들이 있다. 그 책들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미뤄진 책들 중 이렇게 기회가 닿는 책들이 있다. 인연이었나보다._ 너무도 담담한 문장이 일어난 모든 일들을 상쇄시켜주는 것은 아니다. 웃으며 조용히 괜찮다고 말한다고 해서 다 괜찮은 것은 아니듯이. 건조하게들 살아간다. 그 건조함에 대해 이건 아닌 것 같다고 문제를 제기하면 어느샌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되어 있곤 한다. 문제는 원래 거기에 있었고 대충 덮어둔 것이었을 뿐인데 마치 내가 문제를 일으킨 것 처럼 인상을 찌뿌리고 쳐다본다. 그러면 안된다고 다들 그렇게 산다고 좋게 좋게 가자고 말한다. 왜? 덮는 사람이 있으면 들추는 사람도 있다. 거기에 문제가 있어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과 내내 그 문제가 거슬리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냥 건조한 게 싫을 뿐이다. 코가 빡빡하고 눈이 따갑고 피부가 가렵다. 세수를 하고 물을 마신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선인장도 가볍게 죽이는 나도 아는 상식은 바짝 마른 화분에는 물을 약간 분무하는 것으론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속흙까지 마르면 쭈욱 배수가 될만큼 듬뿍 물을 줘야한다. 흠뻑 적실 수 있을 정도의 물이어야지 표면의 자잘한 물방울 들로는 어림없다. 말라죽기 전에 화분을 옮겨서 듬뿍 물을 줘야한다고 말하는 것이 화분의 수명을 단축시킨다니 말이나 되는 소리냐 따지고 싶어진다. 번거로워도 화분을 옮기자. 물을 듬뿍 주자. 게으르게 너무 화분을 방치한 탓이다. 죽게 내버려뒀어야 했나? _ 그래도 그렇게들 살아간다. 다들 저마다 문제를 끌어안고도 아닌 체하며 그렇게들 살아간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큰 문제는 아니라고 문제가 생겼지만 대충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쉽게 사라질거면 애초에 문제가 되지 않았을거라는 걸 애써 잊는다. 사는 일이 바쁘고 녹록치 않아서라는데 무얼 위해 애써 사는 지 궁금해진다. 궁금해하면 이상해한다. 사는 건 같은데 나는 좀 더 즐겁게 만족스럽게 살고 싶을 뿐이다. 어딘가 꿍한체가 아니라 최대한 가볍게 말끔하게 살고 싶을 뿐이다. 나와는 다른 그렇게들 살아가는 사람을 비난할 마음은 없다. 사실 나도 자주 그렇게 한다. 아닌척, 없는척, 모른척하면서 매일을 산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 순간이 지나면 괜찮을거라 여기는 사람들의 이야기. 어쩔 수 없어서이기도 하고 어쩌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한 숱한 이야기들._ 하지만 결국 아무렇지 않아지지는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모르고 살면 좋은데도 말이다. 모르고 살고 싶었는데도 말이다. #상냥한폭력의시대 #정이현 #문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