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신잡 강릉편을 촬영하고 있을 때, ‘우리’는 강릉에 있었다. 게다가 유명한 맥줏집이라고 해서 찾아간 곳에서 촬영을 했다. 사람들도 꽤 많았고, 우리는 그들이 걸어들어오는 모습을 얼핏 볼 수 있었다. 나는 너무도 그들의 대화에 참여하고 싶었다. 구경할 마음보다도 친필 사인의 아쉬움보다도 직접 참여하고픈 갈망이 월등히 컸다. 참여할 수 없으니 구경이야 별 의미도 없었다. 알쓸신잡을 통해 나는 다른 여행을 꿈꾸게 되었다. 충분히 공부도 하고 충분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여행. 구경하는 여행은 애초 성미에 맞지 않아서 휴식으로서의 여행 외엔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저런 여행이라면 너무 즐겁겠다 싶었다. 생각의 가지를 뻗어나게 하는 대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여행. 여전히 꿈꾸지만 그럴만한 상대도 그럴만한 능력도(체력포함) 안된다. 하지만 꿈꾸는 일이야 얼마든 가능하니까! _ 나는 독서를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직접 경험과 간접 경험의 차이는 극명하다. 다른 것을 두고라도 감각의 차이가 너무 크다. 상상과 실재의 감각.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뛰어 넘을 만큼의 상상력을 갖추지 못한 탓에 더욱 그렇다. 그래도 아쉬운 대로 독서는 내게 여행이다. 언젠가 친구의 말처럼 실제는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얼마든지 상상 속에서 여행하길 바랄 뿐이다._ 깊이 오래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벼운 태도를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을 김영하 작가를 통해 확인한다. 내겐 그 부분이 가장 반갑다. 여행을 제목으로 하고 밝은 표지(독립서점 에디션-)로 부담없이 다가와도 얼마든지 상상못한 진지함을 드러낼 수 있고 반대로 그런 진지함이어도 얼마든지 가뿐할 수 있다는 사실. 사람들은 대체로 진지한 사람은 어둡고 무겁다고 여기고 가벼운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은 골몰하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둘은 공존할 수 있다. 아니 공존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모두 양쪽 중 하나를 택해 그것만이 전부인양 한다. 인간이 그렇게 단조로울 리가 없다. 아니 본디 단조로운 생물이라도 이렇게 얽힌 사회에서 그렇게 단조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 둘 다가 조화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_ 언제고 떠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너무도 간절하게 여행을 원하게 될 수도 있다. 그 때까지는 간접경험으로 만족하기로 하자. 간접경험으로 직접경험을 대체하려면 얼마나 많은 양이 필요한가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자.#여행의이유 #김영하 #문학동네
아아, 작가는 인터뷰에서 명백히 밝히고 있다. 이 글을 ‘팬질’에 대한 이야기라고. 그 못밖음이 내겐 이렇게 들렸다. 뭔가 거창한 것을 기대하셨다면 오해입니다. 어쩌면 수줍음 혹은 겸양일 수도 있겠지만 명백한 진심일지도 모른다. _ 그만큼 빠져 본 것이 없다. 무엇에도 그 만큼 빠져서 온전히 몰입하고 자신을 내어준 적이 없다. 삐딱한 이성 비슷한 것에 늘 가로막혀 있었던 것 일지도 모르고지나친 게으름이나 자기애 때문일 수도 있겠다. 무엇에도 모든 것을 뛰어넘을 만큼의 애정으로 몰입해본 적은 없다. 굳이 찾자면 나 자신에 대한 집착 정도겠다. 그들의 괴이하기까지한 열정이 부러워졌다. 나는 절대 안되던데- 무엇에도 안되던데-_ 비뚫어진 모든 것은 결핍을 숨기고 있다. 그렇게 치자면 결핍이 없는 존재는 없으니 모든 것은 비뚫어져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비뚫어져 있느냐에 따라 비뚫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결핍을 인정하고 비뚫어진 것을 인정하고 그 자체로 충분하면 좋겠다. 뭐 어떤가. 누구도 해하지 않는 범위에서라면 어떤 것이든 관계없다. 그만큼을 쏟아내는 것만도 엄청나다. #환상통 #이희주 #문학동네
그러니까 나는 내 경험에 비추어 ‘부모’의 역할과 태도를 규정했다. 한 문장으로 말하면 ‘아이가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온전히 느끼게’였다. 어느 정도라도 안심을 하기 위해선 아이의 답변이 필요한 일이었다. 간간히 답변 비슷한 말들에 안도하면서도 내내 불안하고 초조하고 두려웠다. 물론 아직 완전한 답변을 들은 것은 아니지만 추궁하듯 장난치듯 묻곤 한다. 너는 어떻게해도 엄마가 널 사랑할 거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지? 이제야 15년이 걸려서 아이는 대답한다. 그 대답을 듣기까지 아이는 반복적으로 물어왔다. 엄마는 날 사랑하느냐고. 나는 지치지 않고 대답해왔다. 사랑한다고. 때로 화가 나고 힘들어도 그것은 순간이고 상황에 대한 것일 뿐 너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네가 어떻든 너를 사랑하고 사랑할 것이라고. 내가 잘못하고 너를 서운하게 하고 우리가 서로에게 화를 낼 때도 그 사실 만큼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네가 훌륭하고 뛰어나고 잘나서가 아니라 그냥 내 아이여서가 아니라 존재 자체로 사랑한다고. 그것에 이유나 다른 것은 없는 것 같다고. 그래서 잦은 순간의 혼란이나 고통에도 불구하고 너로 인해 행복하다고. 무수하게 고백해왔다. 그 고백을 그칠 생각은 없다._세상의 모든 부모들은 두렵고 불안하고 혼란스러우면서도 환희에 차고 행복을 느낀다. 그렇다면 아이 역시 그래야 마땅하다. 아이 역시 두렵고 불안하고 혼란스러우면서도 환희에 차고 행복을 느껴야 한다. 그렇게 꼭 같이 가야 한다. 나만 좋아서도 아이만 좋아서도 나만 괴롭거나 아이만 괴로워서도 안된다. 아이도 부모도 서로 처음이라서 더 조심하고 더 솔직해야 한다. 우리가 최소 5-60년 이상 애틋한 우리이기 위한 끝없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온전히 우리이기 위해선 온전한 나 자신도 버려선 안된다. 그렇게 함께 가는 것이다. 서로를 격려하고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를 변화시키며 그렇게 함께. 가족이란 그런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_ 봉태규 씨의 ‘개별적 자아’를 읽었고, 꽤나 흥미로웠다. 요즘 즐겨듣는 팟캐스트를 통해 음성으로 만나면서 또 반가웠다. 정말 드문 태도였다. 좀체로 만나기 힘든.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박원지 씨가 동의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론 힘겹다고 고백할까? 모를 일이다. 나는 봉태규 씨가 완벽한 아빠나 남편, 혹은 가족 구성원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겠다. 그저 스스로를 인정하고 그렇기에 더욱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우리는 때로 자존감을 위해 자신을 지나치게 긍정한다. 그것까지는 좋지만 자신에 대한 과장된 긍정은 언젠가 바람빠진 풍선이 될 수도 있다. 부족하고 모자란 자신도 사랑할 수 있어야 그제부터 진짜 자존감이 자란다. 누구에게 찔려도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자존감. 좋은 부모가 되려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좋은 사람이 되려면 좋은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것들이 각기 따로 여기저기서 다른 모습으로 적용되어선 안된다.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고 표현은 너무 모자라다. 휙 읽을 만큼의 글들이어도 나는 반가웠고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어깨를 툭툭치며 제법 훌륭한데요? 물론 완성형은 아니지만요- 그건 어차피 우리가 알 수 없는 거니까요.하고 한마디 건내고 싶어진다. #우리가족은꽤나진지합니다 #봉태규 #더퀘스트
이 책을 고른 이유는 팟캐스트 때문이다. 팟캐스트를 통해 들은 구병모 작가에게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여러모로 장바구니의 책들이 늘고 있다. 세 사람이 각자 소설 속 누구와 닮았는가에 대해 얘기 했는데, 자연 나도 생각해보게 되더라. 나는 통제하려 드는 기질이 있고 그러면서 개인주의적이고 그러면서 할 말은 하는 편에다가 남에게 피해주고는 못사는 성격이다. 교육관이 좀 보편적이지 않고 그러면서도 꽤나 가족 중심적이다. 등장 하는 네 여자를 고루 섞어놓은 상태 정도일까? 누구 하나를 꼬집을 순 없었다._ 지극히 현실적인 육아와 가정사가 담겨 있다. 육아는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다. 아이는 부모의 의도대로 자라지 않으며 연애 결혼도 그림같은 가족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육아와 가정사에도 꼭같이 적용된다. 여럿이 맞물릴 경우는 더하다. 신경써야할 범위가 커지는 것이다. 그럴싸하게 이상적인 상황이 연출될 리는 없다. 네 이웃은 짐짓 화기애애하게 시작되었지만 결말은 그럴 리 없다. 당연한 일이다._ 내 이웃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적당히 잘 지낸다. 잠깐 멈춰서 대화도 하고, 먹거리를 나누기도 하고, 재활용 쓰레기를 버려주기도 하고, 여차하면 도움을 청할 정도는 된다. 5년에 걸쳐 차곡차곡 적당한 관계와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아이와는 이런저런 얘기도 잘 통하는 편이지만 열심히 참고 때론 감탄하기도 한다. 서로를 돌보는 일에 딱히 인색하지 않지만 각자의 시간을 중시하는 편이다. 자자, 이 모두가 그저 절로 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훌륭한 것도 아니다. 대체로 만족하고 때때로 서운하고 그렇게 산다._ 이야기 속의 문장들은 너무도 확연하고 선명해서 분통이 터진다. 그래도 명확한 사실임엔 틀림없다. 작가의 관찰력이든 경험이든 이것이 사실이고 그렇게들 산다. 누구하나도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은 인물들이 어디에나 있다. 들춰보면 모두 그렇다.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저 남 얘기하듯 늘어놓아도 그것이 사실임이 변하진 않는다. 이대로는 조금도 나아질리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또 긍정적인 무언가를 바라고 꿈꾼다. 그림같은 화기애애함은 언제나 오련가.#네이웃의식탁 #구병모 #민음사 #오늘의젊은작가19
별다른 기대 없이 읽고 어쩐지 편안해졌다. 이 좁디 좁은 세계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며 살아가는 안쓰러운 우리를 넓디 넓은 우주로 데려다 줄지도 모른다. 적어도 달로는 데려가 줄지도 모른다. 우주의 거대하고 무한한 미지는 우리를 움츠러들게도 하고 꿈꾸게도 한다. 그것을 바라보고 소망하는 우리의 간절함이야 어디든 없겠는가._ 좋게, 좋은 쪽으로 씌여진 결말이라고 다분히 교과서적이라고(그것도 초등학교 도덕같은-)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익숙하고 당연한 것들을 생각하고 지키며 살아가고 있을까? 너무 많은 이유를 그것들과 현실 사이에 놓고 변명하고 있진 않은가? 각자에게 각자의 사정과 사연과 소망이 있다. 그것들이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서 서로 엇갈리고 부딪히며 방해하는 것 처럼 여겨질 때가 많다. 그 때 그 상대를 함께 가는 동료로 여기느냐 적으로 대하느냐는 결국 자신의 선택이다. _ 물론 삶은 녹록치 않고 현실은 잔인하고 경쟁은 비정하다. 꿈은 너무도 먼곳에 있고 경재자는 너무도 많으며 나는 너무도 초라하다. 그것을 부정한 마음은 없다. 목표를 위한 경쟁을 비난할 마음은 없다. 다만 그것을 위해 놓치는 것을 잊어선 안되지 않을까? 그 선택으로 얻는 것과 동시에 잃는 것도 있다는 당연한 이치를 외면할 순 없다. 선택은 자신의 몫이고 결과도 저신의 몫이다. 감당할 수 있는 쪽을 선택했으면 좋겠다. 한쪽만 보느라 그 뒷면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외면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_ 그래서 이 당연하고도 쉬운 이야기가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세상을 몰라서 하는 선택이 아닌 더 잘아서 하는 선택. 그 선택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