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양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7
앙드레 지드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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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며 내내 신을 생각했다. 창조주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그리고 신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안타까웠다. 자기식대로의 해석을 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슬퍼하고 있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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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원대한 목적을 위해 탄생된 것이 아니고 그저 존재만으로 충분하고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가면 된다고 믿고 있다. 그 생각은 내가 부모가 되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그 숱한 갈등과 번민 속에서도 부모라면 아이의 성장을 응원하고 지지하고 기뻐하며 기다려야 한다는 근본적인 믿음. 내게 신은 그런 존재다. 끝없이 기다리며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는 존재. 모든 것을 준비해두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그런 존재. 모든 것이며 전능하지만 그 전능을 내세워 협박하지 않는 존재. 주어진 것을 충분히 느끼고 감사하지 않는 인간을 비난치 않고 언젠가 그런 순간들을 느끼기를 소망하는 존재. 부모는 그런 신을 닮으려 애써야 한다고 그래봐야 만분의 일도 안되더라도 끝없이 신의 사랑을 아이에게 전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내 종교는 그것에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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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삶에 대해 나와 너무도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는 글을 만났다. 이제서야. 물론 다른 부분도 있겠지만 지향하는 바는 같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동질감이 생겨났다. 세상의 모든 만물을 인간에게 누리라는 말은 그것을 함부로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닌 그 속에 담긴 사랑을 봐야한다로 읽었다. 내가 읽었다고 쓰는 이유는 성경을 통해 신의 사랑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내가 종교가 있다는 것에 놀란다. 내가 곳곳에서 신의 사랑을 발견하고 감탄한다는 것을 알면 더 놀라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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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다른 의견, 나와 다른 생각, 나와 다른 태도 다 관계없다. 나는 계속 내 목소리로 내 생각을 말하고 그리고 열심히 남의 생각과 목소리를 들을 작정이다. 내가 쉽게 흥분하는 이유는 남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주제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다를 수 있고 나는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계속 말하고 싶다. 그만큼 듣고 조금씩 더 내 생각도 다듬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생각을 다듬을 수 있는 글을 만난 것에 감사하다.

#지상의양식 #앙드레지드 #민음사세계문학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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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 노르웨이에서 만난 절규의 화가 클래식 클라우드 8
유성혜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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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뭉크의 찌질함 역시 애정하기로 했습니다! 그의 그림을 잘 몰랐지만 이 책을 통해 엿 본 그림들은 지극히 내 취향*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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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와 니체는 닮은 구석이 많지 않나 싶다. 특히 뭉크가 니체를 좋아했단다. 뭉크가 그린 니체의 초상화가 니체 자신의 얼굴만큼이나 니체를 나타내는 그림이었다니 니체를 좋아한 만큼이나 잘 이해했다고 볼 수 있겠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자기 안으로의 몰입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끝없이 괴롭고 매사가 고통이었던 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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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은 중요하다.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전 생을 걸어 자신을 관찰하고 돌보는 일. 그것이 개인의 가장 원초적인 의무일지도 모른다. 다만 자신을 들여다본 그대로 자신을 세상에 대입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나를 얼만큼 알았다면 나를 타인에게 비추어보고 나를 세상에 비추어보는 과정 역시 필요하다. 도처에 무수한 내가 있다. 아주 다르지만 아주 닮은 내가 세상을 이루고 있다. 세상을 통해 나를 더 확인하고 나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과정이 반복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래야 덜 괴롭다. 그래야 더 편하고 덜 아프고 조금 슬프고 더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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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 덕에 자신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그림을 우리에게 안겼다. 그 그림을 통해 우리는 뭉크를 보고 뭉크를 통해 우리 자신을 만난다. 이 엄청나게 단순하고 복잡한 공식이 그의 삶에도 그의 그림에도 녹아있다. 불과 몇 점의 그림으로만 만나왔던 뭉크의 면면들을 만날 수 있었다. 덕분에 나는 뭉크를 좀 더 알게 되었고 나를 좀 더 알 게 되었다. 예술과 예술가. 그리고 그것에 반한 우리. 예술의 감동 만큼이나 예술가들의 삶이 덜 고되길 바란다. 어쩐지 안쓰럽고 슬퍼지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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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놀라운 것을 창조하는 그들에게 많은 고뇌와 더불어 깊은 평안을 기도한다.

#클래식클라우드08 #뭉크 #유성혜 #ar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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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7
시도니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송기정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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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보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화 소개를 보다가 이 작가를 알게 되었다. 이 작가가 유명하다는데 국내에 소개된 글은 몇 안된다. 하기야 그런 작가와 글들이 한 둘이겠는가. 여느 예술과 다르게 문학은 언어를 통해서 전달되기 때문에 번역의 수고가 없이 다른 언어권에서 접하기란 쉽지 않다. 그저 감각으로는 만날 수 없는 것이다. 번역가들에게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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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분야에서건 여성들은 숫적으로 열세이기 때문에 더 도드라지기 마련이다. 더불어 여성과 남성에게 적용되는 도덕적 잣대가 다르기에 그 성취나 능력보다는 행실이나 외모들을 더 부각하곤 한다. 부각된 부분들에 가려진 성취와 능력과 작품들은 이제야 알려지게 되었다. 각 문화권이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될 때 소개된다는 생각이 든다. 시대의 흐름과 문화는 경계를 지을 수 없다. 서로 긴밀한 영향을 주고 받는다. 이제야 우리는 콜레트를 만날 준비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삶의 이력이 어쩐지 편치 않게도 했다. 내가 도덕적 기준이 몹시 극단적인 이유기도 하겠다. 내가 그저 작품으로 받아들이고 좋아하는 난삽한 삶을 산 남성 예술가들을 떠올리면 나 역시 여성에게 더 박한 것이 아닌가 싶어진다. 여성 자신이 여성에게 성의 차이 없이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수 있게 되기까지도 아직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동일한 기준. 지금까지 이만큼이 걸렸고 앞으로 얼마나 더 걸릴 것인가. 뒤늦게 여성 예술가들을 만날 때마다 반복적으로 떠올릴 생각들이다. 숙제처럼 들러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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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차지하고 문장도 어투도 모두 좋았다. 그저 제멋대로 생긴대로의 삶. 최소 자신에게 솔직한 삶. 그런 것들이 글 전체에 드러났다. 비유와 상징을 몰라도 그저 읽히는 대로의 문장으로 충분했다. 그 근사하고 열정적인 삶을 직접 구경하고 싶어졌다. 작가와 왕래하고 함께 산책하고 핏대를 세우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또 가만히 땀흘리는 순간들. 육체가 멀쩡하다면 내가 원하고 바라는 삶이다. 흙을 만지고 직접 손으로 뭔가 해대고, 또 가만히 골몰했다가 휘몰아치듯 감정에 빠지기도 하고. 그저 마음가는대로의 삶. 그것을 갈망하는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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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는 표현에 박하다. 폭풍에 열광하면서 남몰래 손마디에 힘을 준다. 있는 그대로를 드러낼 수는 없다. 아직 나는 그만큼 자유롭지 못하고 어쩌면 영영 그럴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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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국가 -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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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주 잊어서 기억하자고 다짐하고 노란 리본을 증표로 삼는다. 이 즈음이 되면 잊었던 것이 미안하고 때때로 들여오는 말에 분노하고 절망한다. 우리는 아파봐야 고작 그정도다. 겨우, 고작 그 정도에 불과하다. 순간 그것이 미안하고 죄스럽다. 그렇게 책을 집어 든다. 그리고 다시 확인한다. 나에게도 책임이 있고 의무가 있다는 것을. 나에게도 아파하고 분노하고 두려워할 이유가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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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말자는 말은 우리에게는 해당하는 말이다. 잊자고 어떻게든 잊고 살아보자고 천만번을 다짐하고 울며 악을 써도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어떻게 견디며 살 수 있는지조차 상상하기 어렵다. 그래서 더욱 고맙고 미안하고 슬프고 화가 난다. 왜 그들이 이렇게까지 아파야 하는가. 그렇잖아도 거대하고 메꿀 길 없는 구멍을 후비고 난도질하는 이들은 대체 인간이긴 한가. 절망하고 좌절하며 그래도, 그래도 라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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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에게 말한다. 그날의 기억을. 그 날 그 순간들을 몇 번이고 얘기한다. 네가 등교하고 난 다음이었다는 말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해 아이는 현장학습을 가지 않았다. 수학여행에 대해 학부모 투표를 했다.
나는 아이에게 말한다. 우리는 쉽게 잊고 반복한다고. 사는 게 저마다 바쁘고 힘겨워서 내 일로 닥쳐오기 전에는 잊고 외면한다고. 그럴 수도 있다고 그럴 수 밖에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것이 분명 있다고. 모두가 1인 시위를 하고 현장에 머물고 온 신경을 거기에 쏟고 메달릴 수는 없는 거라고. 그래도 할 수 있는 것들이 있고 그것마저 외면해선 안된다고. 그래서 잊지말자고 말하는 거라고. 잊어선 안되기 때문에 잊지말자고 잊지말자고 서로 약속하는 거라고.
외면하면 없는 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외면하면 언젠가 다른 모습으로 나에게 닥쳐온다. 그 때는 너무 늦다. 너무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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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펼치지가 무섭게 눈물을 쏟고 만다. 그래서 사두고도 한 참을 못 읽었다. 그렇게 두렵다. 고작 이 정도의 슬픔과 아픔도 버겁다. 그래도 잊지말자고 다짐하고 할 수 있는 너무 작은 것들을 한다. 그것이 그저 자족에 지나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양심일 뿐이라도. 잊지않고 지켜보고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것을 한다. 그 작은 것들이라도 해야만 한다. 반드시.

#눈먼자들의국가 #세월호를바라보는작가의눈 #remember0416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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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인을 기다리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4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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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발전과 문명화. 인간이 문명과 발전이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더 인간다워지는 길인가에 대해 반문한다.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인간의 욕심이 그를 앞선다. 아, 인간의 욕심도 인간의 인간다움의 일부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정말 이대로 괜찮은가. 최소한의 기준은 무엇인가에 대해 그치지 않고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잘나고 훌륭한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그 꼴이 나고 싶지 않아서 알량한 자존심에 혹은 끔찍하고 두려워서라도 생각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내게 너무 부정적이라고 말들 한다. 늘 위험하고 불안하고 무자비했지만 잘 흘러오지 않았냐고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나는 그 잘 흘러온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절로 잘 흘러왔다고 생각할 수가 없다. 그것이 저절로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안일하다. 그럴리가 없지 않나.
내가 외면하고 긍정을 노래하는 사이 누군가 부던히 의심하고 반문하고 외치고 싸워왔다고 생각한다. 내게 안보이고 안들렸다고 해서 없는 일이라고 뭔가 자연발생적이라고 여길 수는 없다. 그럴리가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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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쿳시는 폴 오스터 덕에 알게 되었고, 이제야 첫 소설을 읽었다. 책을 평가하는 일에 주저한다. 평가할 깜냥이 못되는 까닭이다. 다만 내가 읽기에 어떻더라만 남을 뿐이다. 문장도 이야기도 내겐 매력적이었다. 앞으로 몇 번 쯤 작가의 글을 더 만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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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문장 하나가 나를 뒤흔들고 송두리째 변화시킬 수도 있겠으나 내가 읽은 모든 문장들이 농축되어 한 단어가 되고 그 단어들이 모여 문장이 되고 그 문장들이 모여 의미가 되어 다가올 것이다. 그렇게 너무 더디게 변하더라도 조금 더 나은 인간이고 싶다.

#야만인을기다리며 #JM쿳시 #문학동네 #문학동네세계문학전집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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