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야기라고 생각할 지는 각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가 가진 많은 사연과 진실은 모두에게 다른 이야기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인권, 인종차별, 비정한 모성애, 인간의 모순, 처절한 생존 모든 것 너머에 그저 살아가는 이야기 일 수도 있겠다. 아무래 대단하고 의지적이고 강해도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이야기 일지도 모르겠다. 무수한 등장인물 중 딱 꼬집어 악인이라고 지칭할 인물은 얼마 안된다. 하지만 주인공 역시 선한 인물은 아니다. 아니, 선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아니, 온전히 선한 인물을 없다. 악 역시 행위가 악한 것인가 인간이 악한 것인가에 대해 끝없이 생각하게 한다. _ 저 마다의 경험이 그 다음 문장을 만든다. 그래서 내내 문장이 두려웠다. 어떻게 읽힐 지 알 수가 없어서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가 없었다. 이 문장들에 밟히고 채이고 찔리는 사람이 있다면 겉은 말짱해도 속은 곪고 썩고 문드러진 사람일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속으로만. 어쩌면 자신도 모르게._ 빌러비드의 출현은 그렇게 종 잡을 수 없고 상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다 괜찮은 것처럼 제법 다정하고 희망적인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놔줄 문장들이 아니다. 흠뻑 젖고 잔뜩 주린 채로 등장한 빌러비드는 그렇게 커져갔다. 모두에게 손을 뻗쳐서 종국엔 원하는 것을 잡아챌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내게 빌러비드의 존재는 가혹하게 다가왔다. 그렇게까지 가혹해야 했냐고 그렇게까지 잔인해야 했냐고 작가에게 따지고 싶어질 만큼. 그래도 사실은 알고 있다. 현실은 더 가혹하고 잔인하다는 것을. 그렇게 사라질리 없다는 것을. 빌러비드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것은 그런 의미일 수도 있겠다. 언제고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 _ 이렇게 떨리고 두려운 문장들을 읽으며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럴 틈이 없는 이야기였다.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엄청단 크기와 밀도왙 세밀함을 가지고 있어서 그 외에 다른 것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다 읽고 나서도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어떤 이야기냐고 하면 줄거리는 줄줄 읊을 수 있는데 감상을 말하긴 어렵다. 그저 그 삶들을 견뎌낸 사람들과 그 삶들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과 그 삶들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만 남는다. 모두 무사하기를.#빌러비드 #토니모리슨 #문학동네세계문학전집
얼마 읽지 않았는데도 마음이 부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고작 책을 읽고 눈물을 흘리는 정도일 뿐인데도 고통스럽다. 그래서 자꾸 슬쩍 넘어가고 싶어진다. 견디기 힘들어서 외면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래선 안된다. 아니 그럴 순 없다. 왜냐면 현실을 알면서도 회피하면 현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사람이라도 더 알게 하고 한 사람이라도 더 생각하게 하고 한 사람이라도 더 움직이게 되는 것이 나 같은 사람이 당장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마땅히 감당해야 한다. 그래봐야 이 정도가 고작이라 죄책감을 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품고 분노를 연료 삼아 감당하고 전해야 한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여성으로서 해야할 최소한이라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라도 전하고 싶지만 그저 진실을 전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다. 아, 무수한 작은 용기들이 언젠가 작은 힘이 되고 그 작은 힘이 모여 커다란 변화로 이어지길! 부디! _ 읽다가 아들에게 책 내용을 들려줬더니 다른 나라나 다른 문화가 아닌 다른 차원의 이야기 같다고 놀랐다. 더 읽다가 김슨생에게 책 내용을 말했더니 그래도 ‘수’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거 아니냐 했다. 나는 속으로 말했던가. 입으로 뱉었던가. 책으로 나오고 방송되고 아무리 죽어가며 외쳐도 관심있는 사람만 듣고 보고 아파한다고 생각했다. 이 책엔 끔찍한 삶들이 담겨있다. 모두 좀 봤으면 좋겠다. 이게 현실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현실이 이렇게 상상할 수도 없는 상태라고 외치고 싶어졌다. 제목은 ‘여자전쟁’이지만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인권에 대한 인간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두렵고 불편하고 내 현실에 닿아있지 않다고 외면한다. 일정 부분 닿아있고 닮아 있다는 사실을 당연스레 무시한다. 정도의 차이일 뿐이라고 느꼈다. 정도의 차이. 그 끔찍한 일들과 내가 사는 여기에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근본적으론 다르지 않다._ 어제 설거지를 하며 생각했다. 가사일의 금전적 가치에 대해. 우리가 너무 당연시하고 하찮게 여기는 그 일들이 삶을 사는 데 기본적인 일들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가사일을 금전적 노동으로 택한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대개 무시당하고 천대받고 값싼 저임금이다. 그 일들이 온당한 대가를 받는 순간이 와야만 이 모든 문제의 해결이 시작될 것이라 믿는다. 출산과 육아가 의무가 아닌 기쁨이 될 수 있는 사회는 지금 상태론 불가능 하다. 가사노동을 직업으로 선택할 수 있고 그것이 정당한 대가를 받을 때, 성별에 대한 직업의 구분이 사라질 것이다. 너무 먼 일이다. 오늘 읽은 359쪽에서 같은 생각을 만났다. _ 이 글을 옮긴 심수미 기자의 글을 옮긴다. ‘2년간 수 로이드 로버츠에 빙의하여 살았던 나는 그녀가 맞섰던 거대하고 견고하던 벽에 하나씩 금이 갈 때마다 속으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벽은 여전히, 일일이 다 서술할 수 없이 너무나 많고 높고 견고하다’ 언제쯤 그 벽들이 의미없는 과거의 산물이 될 지 알 수 없다. 영원히 그 순간이 오지 않을 것만 같다. _ 우리는 페미니즘에 대해 오해 한다. 성의 불균형에 대해 오해한다. 자신의 이익을 적용해 접근한다. 그 모든 일에 단순한 적용이 필요하다. 여성과 남성으로 구분 지을 것이 아니라 A와 B로 치환하면 간단하다. A와 B의 문제로 보자. 하지만 애석하게도(사실 화가 나지만-) A와 B로 치환했을 때 조차 A와 B의 성별이 드러난다. 그 의미는 너무도 분명하다. 그 사실이 나를 너무 지치게 한다. 책을 읽어가는 것이 쉽지 않아 오래 걸렸다. 그저 읽기만 할 수가 없어서 오래 걸렸다. 그래도 만나서 다행이라고 꼭 읽고 알고 듣고 봐야할 일들이라 생각한다. 책을 만나게 해 준 출판사 ‘클’과 ‘심수미 기자’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여자전쟁 #수로이드로버츠 #심수미기자 #클
읽으면서 몇 번씩 감탄했다. 이게 나보다 더 오래된 문장이라니, 이게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품었던 생각과 시선이라니. 날카롭고 명확한 문장이 이렇게 근사하다니. 우리는 아직도 고작 이만큼이라니. 생각이 많아도 읽는 것이 더딜 이유는 없었다. 그 많은 생각이 이야기 속에 잘 녹아서 이야기 따로 생각 따로일 필요가 없었다. 아마도 그래서 더러는 오해할 수도 있겠다. 앨리스 먼로의글이 온통 오랜지 색이라고 해도 직접 ‘이건 오랜지 색이다’라고 외치고 있지 않아서, 오랜지 색을 드러내는 방법이 빨강과 노랑과 그 속의 음영까지의 표현이라 어떤 부분을 보느냐에 따라 오랜지 색일 줄 알았는데 오랜지 색이 아니잖아!!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나는 너무도 잘 표현된 오랜지 색이라고 생각한다. 정교하고 섬세하게 표현되어서 40년이 지나도 빛이 바래거나 낡지 않은 그런 색. _ 어떤 주제로 무엇을 주장했는지 잘 감추고 잘 드러내고 그 사이사이 독자가 개입할 수 있어야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작가의 문장에 끄덕끄덕민 하는 게 아니라 어떤 문장에선 질문을 던졌다가 어떤 문장에선 답을 얻고 어떤 문장에선 분개하고 어떤 문장에선 위로 받고. 미묘한 화학작용 같은, 모호하고 반투명한 사이. _ 자주 자신에게 속는다.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착각한다. 덕분에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분명 저것을 원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너무 메달리고 휩쓸렸는데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은 한참이 지난 후다. 지긋지긋하게 반복하고 더는 안해! 못해!라고 소리친 후 그러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확인한다. 자신이 원하고 바랐던 것. 그리고 그 사이사이 개입된 많은 오해와 시기와 생계와 도덕과 시선. _ 괜찮다. 물론 지나고나야 괜찮다. 그 때 그 순간들은 괜찮지 않다. 전혀 괜찮지 않다. 하지만 지나면 괜찮다. 괜찮은 이유는 시간이 지나서 과거의 일이 되버렸기 때문만은 아니고 그 과거들이 지금에 이르게 했기 때문이다. 때론 그 점이 몹시 화가나는 부분이지만 그 과거들이 현재를 만든다. 덕분에 어느 순간(좀 늦은 감도 있지만-) 알게 된다. 그 시기를 아주 조금만 앞당길 수 있길 바랄 뿐이다. #거지소녀 #앨리스먼로 #문학동네 #문학동네세계문학전집176
부족한 사람들끼리, 혹은 잘난 사람들끼리, 혹은 아픈 사람들끼리. 아니 그저 이런저런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만나고 감정을 품는다. 그것이 명확하게 어떤 감정인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를 알기란 어렵다. 감정의 명확함이 가능하기나 한가. 그래도 우리는 사랑한다 말하고 밉다고 싫다고 말한다. 잘 들여다보면 여러 감정들이 뒤엉킨 상태일 텐데도 그 중 가장 도드라지는 감정을 앞세운다. 과연 그것이 진짜인지 얼만큼인지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_ 우리 자신과 보여지는 모습에는 의외로 큰 괴리가 있다. 그것은 내보일 수 없는 내밀한 무엇 때문이다. 자세히 보고 알아야 얼마쯤이라도 제대로 볼 수 있을텐데. 드러나는 것은 단적인 부분들 뿐이다. 말, 외모, 글 등 내가 무엇을 앞세웠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는 아닐텐데도 그런 사람이 되어있곤 한다. 내밀한 무엇은 나만 적용할 수 있어서 모두가 그것을 감안해주진 않는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제대로 보여지고 싶다면 최선을 다해 솔직해지는 방법 외엔 없다.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면 오해는 감수해야 한다._ 사랑이 뭐 대단한 거라고 인류를 구원하겠냐만은 그래도 사랑은 대단한 것이라서 한 사람을 구하고 희망을 품게하고 살아가게 한다. 그런 한 사람 한 사람이 얽혀서 촘촘한 그물이 되면 좋겠다. 그러면 지금 사랑을 못 느끼고 절망하는 이라도 그 촘촘한 그물에 걸려들테지. 그대해본다.#형태뿐인사랑 #히라노게이치로
같은 시간과 공간을 겪어온 한국의 작가들. 그들이 쏟아내는 글들엔 더 진한 공감이 있다. 지난 몇 년 아니 그보다 더 전, 더더 전. 한국 근현대사에 편안한 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굽이굽이 고통, 분노, 슬픔, 좌절, 아픔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 시간들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낸 사람들을 장하고 훌륭하다 위로하고 싶다. 그렇게 애쓰며 살아온 삶들이 왜 서로 부딪히고 비난하고 적대시하게 되었는가. 무엇을 박탈당하고 무엇에 세뇌되었나. 슬픈 분노로 생각하고 생각한다. 어째야 우리가 우리답게 돌이킬 수 있는가. 어째야 우리가 우리로 남을 수 있을까. 대단한 민족적 자긍심이 아니라 부대끼며 살아온 사람들끼리 왜 이렇게 아파야만 하는지 생각해야만 한다. 이 다음을 위해, 다음 세대를 위해,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 _ 작가의 기민한 생각들과 날카로운 감정들과 섬세한 눈길이 드러나서 어느 부분은 견디기 힘들기도 했다. 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알겠어서 고맙고 이 작가 속에도 크고 묵직한 덩어리가 있겠거니 싶어서 속상했다. _ 여기저기서 만나온 디와 디디는 익숙한데도 쉽지는 않았다. 눈물을 잔뜩 쏟으며 응원했다. 힘내라는 말도 미안해서 어깨만 툭툭 치고 말았다. 우리 다들 그렇게도 살아간다. 그렇게들 살아간다. 저마다 아프고 저마다 화를 삭히고 눈물을 삼키며 살아낸다. 참 장하고 고맙다.아프지 말자. 더는 다치게 하지 말자.#디디의우산 #황정은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