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수많은 이야기로 이루어진 존재다. 기억이란 우리가 살아온모든 순간들을 공평하게 축적해놓은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애써 선별한 순간들을 조합해 만들어낸 서사이다. 설령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사건들을 경험하더라도 우리가 똑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특정 순간들을 선별하는 기준은 각자 다르며, 그것은 우리의 인격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우리들 각자는 우리의 주의를사로잡는 세부 사항들을 인식하고, 우리에게 중요한 것들을 기억하며, 그 결과 구축된 이야기들은 우리의 인격을 형성한다.
우리 모두가 과거의 여러 시점에서 틀린 적이 있고, 잔인했거나 위선적으로 행동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는 그런 일들 대부분을 망각한다. 바꿔 말해, 우리는 스스로에 관해 거의 모른다. 자기기억을 신뢰할 수 없다면 개인적인 통찰은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 일일까? 당신의 경우는 어떤가?
그러나 특정 세부 사항은 포함시키고, 다른 사항은 생략하는 행위를 통해 나는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철저하게 객관적이 되려고 노력했지만, 실은 나 자신을 미화하지는 않았을까? 혹시 고백문의 형식에 맞추려고 실제 사건들을 왜곡하지는 않았을까? —-어쩐지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가 떠올랐다.
"너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어."엄마의 휑한 두 눈동자를 보며, 엄마가 뜬눈으로 지새웠을 지난밤을 떠올렸다. 엄마가 나의 지난밤을 알지 못하듯, 나 역시 엄마의 지난밤을 알지 못했다. 엄마의 말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나는 엄마의 시간들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혼자 걸어 들어가는 나의 뒷모습을 말없이지켜봐야 했던 엄마의 시간, 홀로 거실에 우두커니 서서 고민하다 내게 급식 혼자 먹느냐고 겨우 말을 걸었던 엄마의시간. 나는 그저 항상 내 방 깊숙이 숨어들기 바빴다. 엄마의 시간들과 제대로 마주하려 들지 않았다.
고작 한 살 어렸을 뿐인데, 대체 그게 무슨 죄였다고. 다빼앗아 놓고 이제 와서 새로 주는 척하며 기뻐하라니. 그건내 것이었어. 다 내 권리였어. 내가 몇 살이든, 스물이든 열여덟이든 한 살이든 빼앗길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이었어. 고작 나이 먹은 것 따위로 개처럼 던져 주면서 나더러 기뻐하라고,
생각해 보면 그랬다. 어릴 때가 지금보다 더 나았던 것은단 한 가지밖에 없는데,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었다.그러나 그 가능성의 존재가 긍정받은 적은 결코 많지 않았다. 내게만 그런 것도 아니었고, 특정한 누군가가 유별나게나를 무시했던 것도 아니었다. 세계는 내가 가진 ‘가능성‘에대해서 별로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것 외에는 모두더 나빴다. 힘이 없었고, 자유도 없었고, 세상은 좁았다. 나의 좁은 세상은 온통 관계와 관계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얼마나 먼 미래의 일일지에 대해선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언젠가는 당신들의 사고도 우리처럼 정지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당신들의 삶은 우리의 삶이 그러했듯, 다른 모두가 그러하듯, 언젠가는끝날 것이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해도, 결국 모든 것은 평형상태에 도달할 것이다. 설령 이런 사실을 자각한다 해도 슬퍼하지 말기를. 나는 당신의 탐험이 단지 저장고로 쓸 수 있는 다른 우주를 찾기 위함이 아니었기를 희망한다. 지식을 원했기를, 우주가 내쉬는 숨으로부터 무엇이 생겨나는지 알고 싶다는 갈망에 의해 움직였기를 희망한다.
스스로 내리는 선택에 의미가 있는 듯이 행동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무엇이 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당신이 무엇을믿느냐이며, 이 거짓말을 믿는 것이야말로 깨어 있는 혼수상태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문명의 존속은 이제 자기기만 에 달려 있다. 어쩌면 줄곧 그래 왔는지도 모른다.
지름길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세계에서 이십 년 동안 살며 습득한 상식을 가르치고 싶다면, 그 일에 이십 년을 들여야 한다. 이에 상응하는발견적 논리를 그보다 더 짧은 시간 내에 조합할 방도는 없다. 경험은알고리즘적으로 압축할 수 없다.
고모를 이해하려는 레이철의 노력은 단지 고모의 감정을 상하게 했으며, 결론적으로 시도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좋았음에 틀림없었다. 무언가를 강하게 느낀다는 것은 아마도 거의 다른 방식으로 강하게 느끼는 사람들과 자신과의 사이에 심연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피아노를 치며 이 모든 것들을 잊어버리는 것이 훨씬 좋았다. 결론이 좋았다. 49p
아이들은 결코 부당함을 잊지 못해요. 아이들은 어른들이 염려하는 수많은 것들은 용서하지요. 하지만 그 죄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니다. 그렇소 - 아마도 나는 다루기 힘든 아이였을 거요. 그러나생각해보면 나는 굉장히 애정을 줄 준비가 된 아이였소! 아니, 나는 내가 저지른 죄 이상으로 많은 죄 값을 받았소. 100p
한밤중에 호텔에서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을 묶어주는 끈들이 아무리 보잘것없건 희미하건 간에, 일단 함께 살아온 이상 영원히 살아야만 하는 나이 든 사람들을 묶어놓는 끈에 비하면 적어도 한 가지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 결속력은 하찮을지도 모르지만, 각자가 이 결속을 유지하기 위해서 애써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진정으로 힘이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것을 지속하겠다는 진실한 욕망이 없다면 이 결속은 쉽게 깨어져버릴 것이다. 288p
수천 년 동안 이 이상하게 침묵하는 표현되지 못하는 삶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진행되어왔어요. 물론 우리는 언제나 여성에 대한 글을 쓰고 있어요. 여성들을 학대하거나, 아니면 조롱하거나, 아니면 숭배하지요. 그러나 그 글은 결코 여성들자신이 쓴 것은 아니에요. 여전히 우리는 여자들이 어떻게 사는지, 혹은 무엇을 느끼는지, 혹은 정확하게 무슨 일을 하는지를 조금도 알지 못합니다. 만약 누군가 남자라면, 그가 얻게 되는 유일하게 확실한 비밀은 젊은 아가씨들한테서 그들의 연애담에 대해듣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사십 대 여성, 독신 여성, 일하는 여성, 가게를 지키고 아이들을 키우는 여성, 당신 고모들이나 쏜버리부인이나 앨런 양 같은 여성의 삶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것도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들은 당신에게 말해주지 않을 테니까요.그들이 남자들을 두려워하는지, 아니면 남자들을 다루는 법을 알고 있는지를요. 아시다시피, 표현되는 것은 남성의 관점에서 나온 것입니다. 기차를 한 대 생각해보세요. 322p
우리가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혹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고서, 은밀하게 굉장히 고통 받으며, 언제나 준비가 되지 않고 깔짝 놀라며 아무것도 모른 채로 맹목적으로 따라간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것이 다른 것을 이끌며 점차로 무엇인가가 무에서 스스로 형성되었으며, 따라서 우리는 마침내 이러한 고요함, 이러한 평온함, 이러한 확실성에 도달했는데, 사람들이 삶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런 과정이었다. 그렇다면 아마도사람들은 그녀가 이제야 알게 된 것처럼 그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정말로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사물들이 그녀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 스스로 하나의 패턴을 형성했으며, 그 패턴 속에 만족과 의미가 있었다. 472p
그는 전에는 모든 행동 아래, 매일의 삶 저변에, 아픔이 조용히 정지해 있지만 삼켜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결코 깨달은 적이 없었다. 그는 마치 고통이 모든 행동의 가장자리 위로 소용돌이치며 올라가 남자들과 여자들의 삶을 먹어 치워버리는 불꽃인것처럼, 고통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는 전에는 공허하게 보였던 생존투쟁, 인생의 쓰라림 같은 단어들을 처음으로 이해하며생각해보았다. 이제 그는 삶이 힘들고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는것을 스스로 알았다. 515p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좋아한다. 아니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믿고 소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가고 사랑하고 소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의 현실은 감당하기 어렵고 괴롭고 아프다. 그렇기에 그 말의 가치가 더욱 절실한 것이 아니던가._ 페스트는 지옥에서 돌아온 질병이랄 수 있겠다. 그것이 인간에게 어떻게 작용하는가. 그 대재앙 안에서 인간은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마음을 품고 어떤 의지를 가지는가. 결국은 사람안에 희망도 있고 절망도 있는데 무수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그 안에 맞물려서 움직이고 그 역할을 해낸다. 누가 옳고 그른지 이전에 인간의 목숨이 달린 일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이라도 한다. 누구는 영웅처럼 보이고 누구는 추궁당하고 누구는 묵묵히 제 일을 한다. 그 모두가 무엇을 품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저 그렇게 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사람들의 목숨을 살린다는 사실을 말할 뿐이다. 누구의 역할이 더 크고 누가 더 중요한지에 대해선 말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살아남는 사실이다. 그보다 중요한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무엇을 추구하고 소망하든 가장 중요한 것이 인간의 생명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_ 이 글에서 그리고 신(하나님)을 부정하는 모든 자들에게 오해라고 착각이라고 잘못 생각한 거라고 말하고 싶다. 신이 그 절대성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씌여진 바) 하나님은 직접 그 능력을 행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통해 인간을 돕는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것을 자주 확인하고 목격하고 경험한다. 그 간섭이 그저 기적으로 나타난다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란 없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와 마찬가지인데도 자기식대로 신을 원망하고 판단한다. 과연 자녀 대신 모든 것을 해주는 부모가 옳다고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모든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그 마음에 하나님이 있다고 믿는다. *맥락 상 툭 불거진 이 문장들이 내 믿음의 근본이다. 확인하고 난 후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_ 나라면. 그 재앙이 내게 덮쳐오는 상황과 고립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떻게 대처하고 행동하게 될까? 질문들 속에서 나를 발견한다. 평소에 주장하던 것대로 행동할 수 있을거라 장담치 못하겠다. 어느쪽이 옳다고 재단하지 못하겠다.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얄팍한지를 깨닫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다짐하게 된다. 최소한 생명을 먼저 생각하겠다고 이익이나 편의가 아닌 내 생명 뿐이 아닌 살아있는 모든 생명의 편에 서야 한다고 다짐하게 된다. 지극히 불완전하고 얄팍한 다짐일지라도 그 다짐을 통해 좀 더 나은 나를 소망한다. #페스트 #알베르카뮈 #민음사세계문학전집 #민음사세계문학전집2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