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좋아한다. 아니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믿고 소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가고 사랑하고 소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의 현실은 감당하기 어렵고 괴롭고 아프다. 그렇기에 그 말의 가치가 더욱 절실한 것이 아니던가._ 페스트는 지옥에서 돌아온 질병이랄 수 있겠다. 그것이 인간에게 어떻게 작용하는가. 그 대재앙 안에서 인간은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마음을 품고 어떤 의지를 가지는가. 결국은 사람안에 희망도 있고 절망도 있는데 무수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그 안에 맞물려서 움직이고 그 역할을 해낸다. 누가 옳고 그른지 이전에 인간의 목숨이 달린 일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이라도 한다. 누구는 영웅처럼 보이고 누구는 추궁당하고 누구는 묵묵히 제 일을 한다. 그 모두가 무엇을 품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저 그렇게 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사람들의 목숨을 살린다는 사실을 말할 뿐이다. 누구의 역할이 더 크고 누가 더 중요한지에 대해선 말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살아남는 사실이다. 그보다 중요한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무엇을 추구하고 소망하든 가장 중요한 것이 인간의 생명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_ 이 글에서 그리고 신(하나님)을 부정하는 모든 자들에게 오해라고 착각이라고 잘못 생각한 거라고 말하고 싶다. 신이 그 절대성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씌여진 바) 하나님은 직접 그 능력을 행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통해 인간을 돕는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것을 자주 확인하고 목격하고 경험한다. 그 간섭이 그저 기적으로 나타난다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란 없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와 마찬가지인데도 자기식대로 신을 원망하고 판단한다. 과연 자녀 대신 모든 것을 해주는 부모가 옳다고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모든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그 마음에 하나님이 있다고 믿는다. *맥락 상 툭 불거진 이 문장들이 내 믿음의 근본이다. 확인하고 난 후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_ 나라면. 그 재앙이 내게 덮쳐오는 상황과 고립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떻게 대처하고 행동하게 될까? 질문들 속에서 나를 발견한다. 평소에 주장하던 것대로 행동할 수 있을거라 장담치 못하겠다. 어느쪽이 옳다고 재단하지 못하겠다.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얄팍한지를 깨닫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다짐하게 된다. 최소한 생명을 먼저 생각하겠다고 이익이나 편의가 아닌 내 생명 뿐이 아닌 살아있는 모든 생명의 편에 서야 한다고 다짐하게 된다. 지극히 불완전하고 얄팍한 다짐일지라도 그 다짐을 통해 좀 더 나은 나를 소망한다. #페스트 #알베르카뮈 #민음사세계문학전집 #민음사세계문학전집2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