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하게 야단쳐봤자 아이의 울음만 격해질 뿐이었다. 내 성질과 좌절감에 못 이겨 폭발하고 있을 뿐, 이 행위는 아이를 올바르게 가르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저자가 20대의 한창 나이에 돌아가신 할머니. 그때는 몰랐지만 세월이 흐르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할머니에게 받은 사랑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쓴 작품이다. 읽은 후기는 ‘부럽다.’. 나는 늦둥이로 태어났고 외할머니는 이미 돌아가셨고 친할머니는 나이가 너무 많으셨고 손주도 많으셨고 장남의 장손을 좋아하셨기에 나한테 할머니의 사랑은 ‘무지’에 가깝다.그래서 이 책을 읽고 싶었다. 내가 받아본 적 없는 할머니의 사랑. 그런데 알 것 같은거… 내가 아기를 낳으면서 우리 엄마가 할머니가 되었다.첫째를 키우고 친정에서 4달동안 몸조리를 하며 함께 키우면서 ‘조건없는 사랑’이 뭔지 깨달았다. 그래서 작품을 읽으면서 나는 받은 적 없는 사랑을 받은 것 처럼 읽었다.한없는 관용과 수용은 정말 어려운 것이다. 나도 내 자식을 정말 사랑하는데 그 많은 저지레와 때쓰기를 받아주는건 많이 힘들다. 그런데 저자의 할머니와 우리 엄마는 해낸다. 그래서 부러웠다, 저자가.그리고 배웠다, 저자처럼. 아이를 사랑하지만 아이니까 하던 당연한 행동들을 이해하지 못한 지난 날은 털어버리고 다짐했다. “내가 베푼 관용이 아이에겐 믿음으로.”아기를 키우고 있어서 그런지 나는 육아서를 읽는 느낌이었다. 육아로 지친 분들이 읽으면 공감되고 육아 팁을 얻어갈 수 있을 듯! “지금 나를 괴롭히는 아이의 예민한 기질은 훗날 섬세한 감각으로 발전해 그 아이의 인생을 풍요롭게 할 것이며, 그 때가 올 때까지 우리는 아주 많은 관용을 필요로 할 것이다.”“할머니가 내게 베푼 관용은 나에게 심리적인 안정판이 되었다. 혹시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관용으로 발아들여질 수 있다는 믿음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볼 수 있다는 자신감의 씨앗이 되었다.”
“나는 참았다. 참았다.나는 하도 많이 참아보아서 이제는 습관이 되었나 보다.“작가정신의 새로운 시리즈 ‘소설, 잇다‘는 근대 여성 작가와 현대 여성 작가의 만남을 통해 문학의 근원과 현재, 미래를 바라보자는 취지로 기획했다고 한다.약 한 세기 정도의 차이가 나는 작가들의 작품을 한 권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이다.이번 시리즈는 근대 작가 ’백신애‘와 현대 작가 ’최진영‘이 만났다.두 작가의 작품 모두 읽지 않았고 특히 나는 근대 문학에 관심도 없거니와 접할 길도 없어서 거진 처음 읽는 작가이자 작품이었지만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다.‘백신애’ 작가의 작품은 세 작품이 실렸고 모두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남편의 외도를 알아버린 여자, 여러 번의 우연한 만남 끝에 그를 사랑하게된 여자, 혼인할 남자의 동생이자 아들뻘인 아이를 사랑하게된 과부. 낯선 문체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집중이 잘 되어서 놀랐디. 특히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어서, 그 시절 여성의 입장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지금보다 훨씬 강한 장부장제 성향과 성차별, 이혼녀와 과부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지금보다 더 냉담하고 부정적이어서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느낀다.그 후 나온 ’최진영‘ 작가의 소설과 에세이 한 편. 특히 에세이에서의 힘이 강하게 와닿았다. “1930년대 여성의 분노를 고스란히 이어받은2020년대 여성의 광기 어린 이야기를 써볼까 생각 했으나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소설이 아니라 분 노를 쓸 것만 같았으니까.“”내가 쓴 인물의 편에 서서 이 세상을 바라볼 때 나를 휘감는 분노가 있다. 그리고 간절해지는 사랑. 절반의 가능성, 절반의 희망. 나는 언제나 그것에 기대어 글을 썼다. 절망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 적은 있으나 절망을 전파하기 위해 글을 쓰진 않았다. 소설의 끝에 내가 전하고 싶은 건 언제나 희망이었다.“작가의 전작이 궁금해지는 에세이였다. 이 시리즈를 통해 정말 많은 근대 여성 작가의 작품을 접할 기회가 생길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더 정갈하고 순수한 한글을 읽는 느낌(?)도 좋고, 그 시대 여성들만의 우아함과 한(恨)을 읽을 수 있어서 더 좋다!이번엔 서포터즈를 통해 읽었지만 다음 시리즈도 꾸준히 읽어볼 것이다!
나 왜, 이제 읽지 스티븐킹? 호러소설 아니라서 좋았고 근데 스릴감 넘쳤고 오랜만에 여운 진한 이야기를 읽었다. 여전히 네 명의 소년이 어느 숲 속을 쌍욕과 함께 걸어다니고 있는 것 같은 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