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님이 쓴 소설
문유석 판사님이 쓴 두 권 책을 읽었다. 그분 칼럼도 즐겨 읽는다. 이 책도 칼럼 모음집이라고 생각하며 당연한 듯 구입했다. 리뷰 대회도 열렸고 인정 욕구에 의해 읽고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이상하게 손이 가지 않았다. 이번에 글을 쓰면서 참고하기 위해 뒤늦게 펼쳐봤다.소설!! 아니, 판사님이 소설을 쓰셨을 줄이야. 파격이다. 뒤늦게 에필로그에서 왜 이런 글을 쓰게 됐는지 자초지종이 들어있었다. 신문사에서 구체적인 법정 사안과 법원 상황을 얘기하는 글을 써달라고 청탁이 왔다. 실제 상황을 쓰긴 힘드니 '픽션'이 나을 것 같다고 했더니, 픽션을 쓸 걸 제안했다고 한다. 판사님은 위험한 도전을 수락했다.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리뷰 대회에 참가하지 않은 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출간한지도 반년이 지났고 심지어 나는 이 책을 구입했으니 솔직하게 이야기해도 되겠지?판사님 도전은 혁신적이었지만 무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을 판사님도 그대로 하신 듯하다. 소설가를 존경하게 됐다고 말씀하시니 말이다. '글쓰기'를 잘 한다고 해서 모든 분야를 잘 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물론 어릴 때 제2 외국어를 완벽하게 습득한 후 어른이 됐을 때 다시 배우면 습득 속도가 빠르다. 그렇듯이 '글쓰기'를 잘 하는 분은 다른 분야 글을 분석하고 연습하면 그분야 글도 잘 쓸 수 있으리라. 실제 판사님 판결문은 안 읽어도 명문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판결문을 잘 쓴다고 칼럼을 잘 쓰는 건 결코 아니다. 독자와 법조인 글쓰기가 다르다. 일단 판결문은 매우 길고 지루하다. 이에 반해 독자를 위한 글쓰기는 독자를 고려해 독자가 이 글을 통해 무얼 얻고 싶은 건지 어떻게 내 의견을 명확하게 견지해야 하는지 의도하고 써야 한다. 짧고 간결해야 한다. 판사님은 이 두 분야에 있어 훌륭한 글을 쓰고 계신다.물론 가끔 칼럼 뒷부분에 가서는 판결문 스타일인 긴 문장이 튀어나오긴 하지만 말이다.(아마 바이링구얼 하는 친구들도 언어를 혼동해 말하는 일과 비슷할 것 같다.)판사님 소설을 읽으니, 판례와 칼럼과 소설이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었다. 소설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등장인물 심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야 한다. 참 어려운 게 그들 심리를 행동과 묘사를 통해 설명해야 한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판사님이 의도한 건 소설을 통해 '박차오름' 판사가 어떻게 발전하는지가 아니었다. 박차오름 판사가 들어가 있는 판사 집단(부장 판사와 좌배석 우배석 판사)을 설명하는 도구 중 하나였다. 이부터가 '소설'로서 재미 요소가 떨어지는 치명적 단점이 된다.
저자는 신임 여성 판사인 박차오름 시선을 통해 어떻게 재판이 이루어지는가를 가상으로 설명했다. 여성에 신임 판사를 주인공으로 설정함부터가 파격이다. 여성으로서 리걸 마인드가 가득한 열정적인 박차오름이란 인물을 통해 지금 법조계가 남성 중심으로 보수적임을 대비해 보여주려 한다. 이미 기득권에 익숙해진 선배 임바른 판사와 작은 다툼과 로맨스를 보는 재미도 있다.(만약 이 로맨스를 기대했다면 엉망인 소설이란 비판을 받기 쉽다.)임바른 판사는 재판장 안에 일어나는 복잡한 사건들과 스스로에 대한 회의로 일을 관두려 한다. 이를 제지한 부장 판사님. 그가 오히려 판사를 그만둔다. 더욱 바른 사회를 위해 변호사로서 새로운 도전을 한다. 성공만을 위해 정의를 눈 감는 세력이 판사 세계에도 있음을 암시한다. 각 파트마다 있는 마지막 해설 부분에서 실제 재판 내면을 보충해 설명해 준다.특히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전관예우는 존재하는가'부분이었다. 판사 입장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이미 밖에서는 당연히 암암리에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판결이라는 건 법조문을 연결해 답을 내는 논리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검사가 형량을 정할 때 정의를 앞세운다면, 오히려 판사에게 필요한 일은 '합리'와 '논리성'일 것 같다. 그런 전제로 판사 업무를 본다면 저자 말이 옳다고 본다. 흠이 있다면 판례를 통해 그 틈이 명백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판사'라는 입장에서 재판에 대한 일을 쓴다는 건 정말 위험한 일이다. 언젠가 문유석 판사님이 나온 인터뷰를 들었다. "전 오히려 이 위험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위험에 또 한 발짝 더 내디뎠다. 자신 입장도 아닌 신입 판사 입장에서 구세대 재판을 바라보는 파격을 감행했다.처음 열혈 초임 판사에 대해 캐릭터를 설명하는데 많은 지면을 썼다. 그럼에도 뒤에 가서는 칼럼으로 만난 여러 억울한 사건이 들어있다. 뭔가 시점을 다른 곳으로 돌려 끝맺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저자 입장에서 재판장 안에 있는 일을 더욱 알리고 싶었지만 차마 하지 못하고 맺어야 하는 뭔가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래도 뭐, 상관없다. 가상이라도 이를 통해 좀 더 가깝게 법원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이를 순수 소설이라고 본다면 많은 점수를 줄 수 없다. 문학성이나 예술적인 요소에서 점수를 주긴 솔직히 억지다. 이렇게 보면 어떨까? 자신이 일하는 직장 안에 있는 모순을 알리고 좀 더 나은 법원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총대를 멘 저자. 허구를 이용해서라도 그 마음을 전하려 노력한 저자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마 다음 책도 이렇게 당연하다는 듯 구입해 읽을 듯하다.
소수 입장에서 가상 소설을 쓴 판사님!!법학도였던 입장과 주위 업계에 있는 친구 이야기를 들었을 때, 픽션과 논픽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는 듯 하다.그렇기에 알려줄 듯 알려주지 못하는 답답함이 같이 느껴진다.위험한 도전에 크나큰 박수를 보낸다.다음 작품을 위해 별을 박하게 드렸다.ㅎ(그래도 구입했다!!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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