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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반성문 - 전교 일등 남매 고교 자퇴 후 코칭 전문가 된 교장 선생님의 고백
이유남 지음 / 덴스토리(Denstory) / 201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결혼하기 전, 나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를 좋아했다. 귀여운 아이를 보는 게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아이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저명한 교육 박사님이 문제 해결을 하며 눈에 띄게 달라진다. 마치 박사님이 마법을 부리는 듯 했다. 놀랍게도 대부분 박사님이 해결해야 하는 대상은 아이가 아니었다. 아이에게 유전적 병이 있지 않은 한 부모가 문제였다. 부모가 아이에게 한 잘못된 행동이 자녀에게 나쁜 영향을 미쳤다. 박사님은 이런 행동을 바로 알아보고 꼬집는다. 마치 범죄 수사물에서 탐정인 주인공이 범인을 찾아냈을 때 나오는 듯한 중후한 배경음악이 흐르며 오은영 박사님은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이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부모님에게 있습니다.”
아이가 갖고 있는 문제 행동 방식은 달랐지만 해결책은 대부분 비슷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엄마가 됐다. 엄마가 되기 전 아이가 나온 프로를 일부러 찾아봤던 내가 변했다. 아이가 나오는 프로만 봐도 머리가 아파왔다. 내 아이만 보기에도 벅찼다. 아이 행동 하나 하나가 큰 의미로 다가왔다. 아이 얼굴에 조그만 두드러기가 올라오기만 해도 인터넷 정보 속에서 원인을 찾느라 정신없었다. 아이가 예쁘다고 느낄 때는 정말 ‘깊이 잠들 때’ 밖에 없었다. 아이 행동이나 반응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부모로서 긴장과 책임감이 마음을 갉아 먹었다.
더 이상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를 즐겁게 볼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내 마음에 아이에 대한 죄책감이 가득했다. 내가 아이에게 사교육을 덜 시켜서 그런 건가, 내가 아이에게 뭘 못 먹여서 그런 건가, 내가 아이에게 괜히 화냈나, 혹시 내가 너무 애를 버릇없이 키우는 건 아닌가. 이런 많은 질문이 내 머리를 가득 채웠다. 박사님이 하시는 ‘이 모든 게 엄마 문제입니다.’라는 해결은 상처에 소금 뿌리기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생각으로 부모 노릇을 하고 있을 때 ‘엄마 반성문
’이란 책을 만났다. 게다가 엄마가 벌을 서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핑크라고 해도 너무 했다. 책 제목만 봐도 심장이 조여진다. 자세히 읽으니 저자가 좋은 교육자였지만 엄마로서 부족한 점이 많았다는 고백이 보인다. 책에 조금 마음을 열기로 했다. 책을 펼쳤다. 정말 좋은 내용이 가득했다. 표지가 안타깝다.
이 책은 교육자가 ‘엄마 탓입니다.’라고 얘기하는 책이 절대 아니다. 저자는 교사로서 최고다. 학생들에게 인기 만점이고 부모님 또한 신뢰하는 교장 선생님이시다. 확연히 보이는 학업 성취도와 원만한 대인 관계로 사회에서 성공한 교육자다. 한마디로 앞서 말한 프로에서 ‘박사’역할을 맡고 계신 분이다. 가정에 와서는 달라진다. 선생님이 아닌 엄마로서 저자는 순식간에 실패를 맛본다. 고분고분 자신 지시를 잘 따라줬던 자녀 둘은 엄마에게 항의한다. 엄마가 강요한 길이 내 길이 아니라며 밟고 있는 교육과정을 포기한다. 자신이 가르치는 교육 환경 자체를 거부한 자녀들. 저자에겐 그야말로 청천벽력같은 일이다.
저자는 좌절하고 자포자기하지 않았다. 엄마가 가진 힘이다. 자녀를 사랑하는 건강한 엄마는 아이를 위해 달라질 준비가 되어 있다. 저자는 최고 교육자라는 타이틀을 던져 놓고 진정한 ‘엄마’로 태어나기 위해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그 해결책으로 찾은 방법은 바로 ‘감정 코칭’이다. 저자는 이제껏 최고 학생으로 만들기 위해 효율적인 교육 방법을 적용했다. 성공했다. 그렇기에 자녀에게도 똑같은 방식을 대입해 교육시켰다. 여기에서 본인이 가장 큰 차이점을 무시했다는 걸 깨닫는다. 선생님은 다수 학생에게 공감이 많이 필요하지 않지만 자녀는 아니란 사실이다. 자녀가 엄마에게 원하는 건 공감이지 사회에 나가는 자신을 만들어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지은이는 차근차근 자신이 가진 문제를 돌아본다. 내가 왜 아이들에게 특정한 길을 가도록 강요했을까? 자신이 자녀시기에 가졌던 결핍을 그대로 자녀에게 대입했다. 더 배우고 싶었던 욕망을 그대로 아이에게 강요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안정적이고 행복하리라 생각한 길이 최선이라며 자식이 가진 의견을 무시했다. 그런 본인을 반성한다. 반성하고 변화한다. 자녀도 변했다. 이런 기적 같은 일을 나누고자 이런 책을 썼다.
이 책은 뇌 기능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한다. 여자와 남자 뇌는 다르다. 여자는 꼼꼼하게 사안을 분류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 반면 남자는 위기를 헤쳐 나가 쟁취하는 능력을 갖췄다. 뇌 기능이 완성되는 것도 여자 아이가 빠르다. 그렇기에 학창 시절에 여자가 남자보다 학업성취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뇌 기능도 세 단계로 진화한다고 말한다. 먼저 살기 위해 쓰는 뇌, 쾌락을 추구하기 위한 뇌, 마지막으로 삶에 대한 진실한 의미를 추구하는 뇌로 이루어졌다. 각 뇌는 각 영역이 충족되면 마지막 자아실현을 위한 뇌까지 완성된다. 자녀 뇌를 향상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바로 ‘엄마’다. 엄마가 아이를 위해 밥을 지어주고 감정을 토닥여준다. 자녀는 부모에게 공감과 편안함을 선물 받으면 독립한다. 사회에서 혼자 꿈을 펼칠 준비를 한다. 만약 엄마가 공감 대신 강요로 아이를 압박한다면 아이는 살기 위해 뇌가 퇴보할 것이다. 그 퇴보를 감지하지 못한 채 구속한다면 결국 ‘살고자 하는 뇌’까지 꺼진다. 즉 자녀는 자살을 시도한다.
『아이들 입장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어린 시절에는 단연 부모입니다. 저는 부모의 유효기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152-153)』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때 하는 격한 행동. 삶을 포기하는 일. 마음이 아팠다. 저자가 딸이 했던 행동을 보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엄마가 되기 전에는 딸 입장을 이해했던 내가 변했다. 엄마가 바뀌니 딸은 달라졌다. 그 모든 일을 읽으며 오랜만에 재미있어 잠 대신 독서를 선택했다.
아이를 낳으러 병원에 갈 때 준비물을 봤다. 진통 중 편한 마음을 위해 책을 가져와도 좋다는 문구가 있었다. 그 때 가져간 책이다. 이 책을 다 읽고 조리원에 갔다. 아이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셋을 낳았다. 셋째는 더 쉬울 거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저자가 좋은 교육자니 그대로 엄마 역할을 하면 될 거라는 생각과 같았나 보다. 태어나자 마자부터 축 쳐져 잠만 자던 셋째. 나는 오로지 모유수유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만 빠져있었다. 황달이라는 말에도 첫째도 가볍게 지나갔으니 괜찮을 거라는 생각으로 넘어갔다. 오로지 머리 속에는 ‘왜 둘은 쉽게 모유 수유를 했는데 얘는 안 될까’란 집착만 남아있었다. 그러다 다시 이 책을 집었다. 예전에 안 보이던 문구가 새롭게 떠올랐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현명합니다. 어떤 해결책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좋은지, 아이는 잘 알고 있습니다.(232)』
갓 태어난 아이도 나름 살기 위해 선택을 했다. 그 선택을 존중해 주기로 했다. 곧 아이 황달이 많이 심하단 걸 알게 됐다. 태어나면서부터 황달로 힘이 없었던 게 이유였다. 그렇기에 아이는 조금 더 쉽게 영양을 흡수하려 노력했다는 걸 깨달았다. 나름 살기 위해서. 그 작은 아이 또한 살기 위해 선택했다는 사실에 또 나는 반성문을 쓰고 있다.
아이 치료를 위해 병원 신생아 집중 치료실에 맡긴 채 아이가 가득한 조리원으로 돌아왔다. 호르몬 때문인지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면 눈물이 흘렀다. 대학 선배언니와 같이 조리원에 들어갔다며 철없이 좋아했을 때, 언니 아들은 며칠간 병원에 더 머물러야 했었다. 언니 힘듦도 모른 채 즐겁고 해맑게 다녔던 내 모습이 기억나 창피했다.
조리원에 홀로 있기 힘들어 아이 핑계를 대고 외출했다. 둘째 아이를 하원시키며 손잡고 집으로 들어갔다. 첫째 아이가 영어 숙제를 하며 짜증을 낸다. 속으로 ‘그럴 거면 하지 마!’라는 말이 목을 간지럽게 만든다. 말을 삼키고 다시 해보자고 달랬다.
다시 돌아오는 길. 조금 마음이 개운하다. 이렇게 나도 엄마 반성문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