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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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인 내용이 눈길을 끌 수 있다.
피비린내 나는 일을 만들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인간 하나를 넣어 세상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리는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참 신기한 건 주변에 있을 듯한 이야기인데 그걸 재미있게 하는 사람은 정작 흔치 않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자신이 항상 생각하는 부분이지만 어떤 마음인지 자신도 모르는 부분을 누군가 건드려 줄 때.
그때 독자는 눈물이 난다.
이 책을 읽고 난 참 많은 눈물을 흘렸다.
잠잠하지만 강한 여운이 남는 이야기 일곱 개가 있다.
워낙에 글을 뜯고 씹고 분석하는 게 어쩔 수 없는 본능이라..
좋은 책이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얘기도 있다. 일단 좋아하는 이야기를 순서대로 소개하고 싶다.

1. 쇼코의 미소

가수는 한 곡이 뜨면 많은 돈을 번다. 갑자기 ‘벚꽃 좀비‘라고 일컬어지는 ‘버스커 버스커‘가 떠오른다.
최은영 작가가 만약 가수라면 벚꽃엔딩만큼 역대 최고일만한 작품을 하나 썼다고 생각한다.
이 ‘쇼코의 미소‘말이다.
쇼코는 소유와 파트너가 된 한국으로 온 일본 교환학생이다. 과한 친절도 진실을 숨기는 쇼코.
쇼코를 반기는 보호자인 할아버지. 둘은 알듯 모를 듯 서로를 속이고 가리지만 또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지 못하는 비밀을 털어놓기도 한다. 결국 시간이 지나 말과 사실과 현실이 밝혀지고 이들은 성장한 채 헤어진다. 쇼코가 지은 미소는 가면이었을까, 진심이었을까?
온전히 이해받으면서도 해부되고 싶지 않은 마음.
2. 한지와 영주
영주는 시골 프랑스에 있는 수녀원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낸다. 바쁜 한국에서 사람들은 경쟁으로 치열하게 전쟁을 한다. 영주는 그곳에서 도망 나왔다. 수녀원에서 만난 아프리카인 한지. 이상한 끌림으로 그들은 서로에게 호감을 갖는다. 영주가 한 발짝 내밀면 한지는 뒤로 머뭇거린다. 결국 영주 곁을 떠나는 한지.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는 그들 사이를 아주 절묘한 필체로 잘 그려냈다. 한지가 영주를 피하는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그건 독자 몫이다. 가까이하면 할수록 멀어지는 그들 관계가 외국에서 낯선 상황과 전쟁 같은 돌아갈 곳, 한국과 대비되며 절묘하게 어울린다. 그 나이 작가만이 쓸 수 있는 작품이다.
우리는 다시 만나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늘 그런 식으로 다시 만날 것을 가정했다.(161)
3. 신 짜오, 씬짜오
독일에서 만난 소중한 이웃. 마치 가족처럼 지냈던 베트남 가족. 베트남전에 대한 이야기 때문에 이들은 소원해진다. 그럼에도 남아있는 서로에 대한 애틋한 잔열감. 그 마지막 여운이 잔잔하게 그려진다.
이제 나는 사람의 의지와 노력이 생의 행복과 꼭 정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92)
4.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운동권 남자를 사랑한 순애 언니. 그 남자는 결국 장애를 갖게 된다. 어렵게 살게 된 순애 언니를 기억하는 이야기.
시간은 이모를 한때 엄마의 삶에 머물렀다 스쳐간 사람으로 기록했고 엄마는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120)
5. 먼 곳에서 온 노래
어떤 선배를 회상하는 내용이다. 스러져간 운동권 현실과 이에 당당하게 주장하는 선배가 미움받는 상태를 관찰자 시점에서 본 화자.
여러 사람의 미움을 견디기로 마음먹었다고 하더라도 상처받을 수밖에 없었겠지.(200)
6. 비밀
애지중지 키운 손녀딸에 대한 이야기.
너가 어른 되면 남자고 여자고 없다. 너가 여자여서 안 된다는 소리 듣거들랑 무식한 소리구나 하구 비웃어버려. 넌 뭐든 다 되고 뭐든 다 할 수 있다. 너 땐 남자구 여자구 마음 바른 사람이 잘 살 거여.(255)
7. 미카엘라
한강 작가님 ‘소년이 온다‘ 오마주 같은 작품이었다. 교황님 오신 날과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절묘한 조합이 눈에 띄는 작품이다. ‘미카엘라‘라는 세례명과 엄마, 딸, 할머니.. 이런 인물관계가 소설 길이에 비해 너무 꼬아버린 느낌이었다. 이 단편이 장편이었다면 좀 달랐을까?
남자의 아픈 마음을 나눌 재간이 없는 자신의 처지가 서글퍼졌다.(229)
이 소설은 모두 ‘죽음‘을 끼고 있다. 이 소설을 질투하는 난 ‘죽음‘이란 진부한 소재를 넣었다고 생각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틀렸다. ‘죽음‘은 누구나 겪는 보편적인 일이다. 평범한 죽음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힘이 작가에게 있었다.
소설 속 사람들은 죽었지만 그렇기에 빛나는 한 작가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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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11-11 23: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극적인 사건이 아니어도 매일 일어나는 일들을 잘 쓰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다들 너무 잘 아는 것들이니까요.
그런 평범함을 잘 묘사하는 작가분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조금은 낯설고, 조금은 익숙한 느낌을 받는데, 그런 낯설음과 익숙함이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꿀꿀이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책한엄마 2017-11-11 23:16   좋아요 2 | URL
익숙한 것을 낯설게 쓰는 게 작가 역량인 듯 싶어요.
이 분이 더 놀라운 건 문장 자체는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데 마음은 깨달아 버린다는 거죠.
글에 마법가루를 뿌린 것 같아요.^^
읽어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