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겨털이었다.‘색, 계‘란 영화를 봤다.거기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두 남녀의 베드신도, 마지막 여자의 마음 변화도 아니었다. 경국지색이라고 해도 될만한 예쁜 탕웨이가 겨드랑이 털을 밀지 않은 장면. 물론 베드신 중이었지만 둘이 어떻게 뒹구는지(?)보다는 도대체 탕웨이는 왜 제모를 안 했을까에 몰두했다. 이런 생각을 한 게 나뿐 아니라는 사실이 더욱 놀라웠다. 후에 하정우와 공효진이 나오는 영화‘러브 픽션‘에서 이 ‘겨드랑이 털‘이 이야기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저자인 에머 오툴은 연극학 박사다. 연기를 위해 굳이 ‘박사‘까지 할 필요는 없다.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훌륭한 연기력을 가진 대형 스타가 된다. 쓸 데 없이 공부를 많이 한 저자. 그녀는 ‘여성‘에 대한 자신 정체성을 ‘연극‘에 대입한다. 공부 말고 오디션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면 분명 유명한 배우 대열에 섰을 것 같은 저자.(저자 분위기가 꼭 키이라 나이틀리 같다.) 저자는 영화 주연이 되기 위한 오디션 대신 자신 삶을 연극이라는 가설로 실험에 착수한다. 마치 자기 삶에 주인공은 자신이어야 한다는 굳은 의지를 가진 듯 하다.그녀가 만든 가설은 바로 이것이다.˝여자라는 존재는 세상이 만든 개념 안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를 탈피한다면 남성과 여성은 생식기를 제외하고 차이가 크지 않은 평등한 존재이다.˝이런 가설을 뒷받침해주기 위한 실험으로 저자는 여자라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제모를 18개월 동안 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머리를 짧게 잘라 남성과 다름없는 외형으로 삶을 살아나간다.여자는 만들어진다. 여자와 남자를 나누는 기준은 생식기다. 과연 생식기만 차이가 있을까? 저자는 ˝생식기만 차이일 뿐 두 존재는 동등하다.˝라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저자는 오빠와 남동생 사이에 자랐다. 항상 엄마는 가사를 담당하면서 딸인 저자에게 도움을 당연한 듯 요청했다. 그에 반해 남자 형제들은 당연한 도리인 듯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엄마 또한 그들에게 더 많은 일을 바라지 않았다고 한다. 항상 저자는 그 부분에 있어 불만을 품고 있었다. 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아무것도 안 하는 자칭 ‘페미니스트‘(그녀는 그런 부류를 페미나치라고 지칭한다.)인 사촌에게 독설을 퍼붓는다. 이는 남자와 여자 이분법적 차별에 따른 행동이 아니다. 저자는 할아버지를 위하는 마음에서 집안일을 돕는 것이고 아무 일도 안 하는 남자를 포함한 자칭 ‘페미니스트‘는 그저 자신 의무와 도리를 져버린 게으른 ‘사람‘일 뿐이다. ‘여자‘와 ‘남자‘가 아니라. 더 나아가 저자는 사람을 지칭하는데 ‘he‘나 ‘she‘가 아닌 ‘they‘란 중성적 대명사를 단수(원래 복수 의미지만)로 사용한다. 저자는 이런 사소한 언어가 바로 성적 차별을 조장했다고 본다. 그렇기에 자신이 먼저 이런 언어를 습관화한다면 보통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남자와 여자‘에 대한 편견이 없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나라야 말로 남녀 차별이 심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서양이 더 심하다. 책 판매 자체도 중성적이거나 남성적 이름을 써야 받아들여지는 점, 결혼하면 여자는 남자 성을 따르는 점 등을 볼 때 오히려 언어를 통해 여성을 억압하는 건 서양이 더 심하다. 그럼에도 난 저자가 주장하는 ‘젠더‘라는 개념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저자도 이야기한다. 예전에는 사촌을 성적 대상 카테고리에 넣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렇기에 저자조차도 사촌과 결혼하고 성생활을 한다는 상상만 해도 역겹다고 말이다. 같은 맥락으로 교회 등에서 ‘동성‘에 대해 예민한 입장을 견지하는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동성애나 성적 정체성에 대한 문제는 정신적 어려움이기에 이를 인정해야 하는건 불가피하다는 게 원래 나의 입장이다. 사촌 사례를 보면서, 만약 동성애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순간 생기는 악영향도 꽤 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대한 개인적 생각은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 그렇기에 마지막 광범위한 ‘젠더‘에 대한 의미 부여는 난해하게 읽혔다.여자는 남자와 다르지 않다. 저자는 18개월 동안 남자처럼 살다가 다시 여성성을 강조하는 삶으로 돌아온다. 왁싱을 하면서 살이 찢어지는 고통을 겪고 며칠 후 다시 털이 나오면서 느껴지는 참을 수 없는 가려움을 겪는다. 이를 통해 남자들은 한결 자신에게 부드러워진다. 다른 의미로 자신을 성적 대상으로 여기면서 귀찮아지기도 한다. 털이 있는 삶은 자신은 편했지만 타인이 보기 불편하다는 걸 의식하며 살아야 했다. 이에 반해 다른 사람 눈에 드는 삶을 선택하는 순간 저자 자신은 불편하나 타인이 보는 시선은 한결 긍정적이다. 과연 어떤 삶이 더 나은 삶일까? 여자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몸이다. 남자는 아이를 낳을 수는 없지만 유전자 반을 전해줄 능력이 있고 기동성과 힘이 ˝상대적으로 ˝좋은 편이다. 이런 차이 때문에 여자는 겨드랑이를 제모하고 날씬해야 보기 좋은 모습이라는 무언의 압력을 받고 남자는 집안일을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괜찮다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저자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 또한 무의식적으로 ‘여자란 이래야 하는구나.‘라는 굴레를 만들고 타인에게 적용하기 급급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이런 깨달음만으로 세상은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우리 딸이 아픔을 무릅쓰고 제모하지 않고도 자유롭게 미를 뽐낼 수 있는 그날이 오길 기다려 본다. 제모 업계 관계자분들께는 좀 죄송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