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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시를 읽는 오후 네 시 ㅣ 애지시선 95
최은별 지음 / 애지 / 2021년 3월
평점 :

5월과 11월의 간극 : 네 시를 읽는 오후 네 시 - 최은별
*본 도서는 출판사로 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최은별 시인의 시집 <네 시를 읽는 오후 네 시>를 읽었다. 책장을 넘기자 머지않아 은별 시인의 환하게 웃는 모습이 보여서 그리고, 그 뒤의 커텐의 밝은 빛을 보면서 5월 같은 사람이다. 시어도 어쩌면 밝고, 아름다울 것 같다 라고 생각했는데 다 읽고 나니 어쩌면 시인은 11월 같은 감성을 지닌 사람인 것 같았다. 물론 나는 시인에 대해 전혀 모른다. 단편적으로 실린 사진 한 장과 시를 통해 교감했을 뿐이다. 나와 대화한 시인은 시어들이 주는 쓸쓸함과 외로움을 포착하는 모습을 토대로 11월 같다고 생각했다. 시집의 곳곳에 사람들이 생각할 만한 외로움, 그리고 반성,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담겨 있었다. 시집을 읽고 나면 특히 직후에 글을 쓰면 좀 더 나의 글도 시어처럼 보이기를 원하게 되는 것 같다.
마음에 들었던 시구들을 몇 가지 적어보려고 한다.
『숱한 별은 눈앞을 아찔하게 만드니까
자꾸 희망을 갖게 하니까
울게 하니까
웃게 하니까
- <네 시를 읽는 오후 네 시> 낮비 中 』
낮 비 라는 시를 읽고 나서는 뭔가 병원을 막 빠져나오는 사람이 연상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이든 가족이든 혹여 나든 뭔가 힘든 상황이 연상되는 느낌이었다. 비야 낮에도 오고 밤에도 오고 밝을 때도 흐릴 때도 오지만, 낮에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보면 눈물 같은 때가 있지 않은가. 시인은 건반을 치는 방울이라고 말했지만, 내가 듣기에는 눈물소리 같은 느낌이었다.
『수년 뒤 전주 변두리 삼십 평대 아파트로 이사한 건 순전히 엄마 덕분이었지만 엄마를 제외한 나머지가 어리거나 아프거나 철없었으므로 빚은 거의 갚지 못했다. 따라서 이 집도 우리 것이라기엔 늘 애매했다
- <네 시를 읽는 오후 네 시> 어느 도배공의 손 中 』
어느 도배공의 손에서는 어머니를 그리는 시인의 시선이 여느 어머니를 보는 보편적인 사람 같아서 공감하며 읽었다. 열심히 부양의 의무를 지고계신 부모님을 보고 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나는 어리고 철이 없었기에. 조금 나이가 들면 가족의 평화는 아픈이를 위시하여 깨지기 마련이다.
『눈물 속에서 세상은 경계를 갖지 않아
분명했던 경계들은
눈물을 따라 어룽어룽 번져 나가지
- <네 시를 읽는 오후 네 시> 얘기해 줘 中 』
마지막으로 실렸던 얘기해줘라는 시에서 뭔가 시인의 눈물이 감정이입이 되는 느낌이었다. 아니면 개인적으로 내가 최근 밝은 기분이 아니어서 눈물과 관련된 시어들만 꽂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눈물속에서 세상을 본다는 말이 참 아름답고, 울먹이는 그 찰나의 감정을 잘 말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곁에 두고 더운 여름날도 읽고 찬바람이 부는 때쯤에도 다시 읽고 싶은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