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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할 자유
이재구 지음 / 아마존북스 / 2025년 4월
평점 :

포기할 자유 - 이재구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이야기는 친절하게 8남매(원래9남매) 의 전부를 시간순으로 나열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 형구와 형남을 비롯한 메인 인물들의 관계까 명확하기 때문이다.
처음 등장하는 씬은 아이스케키 행상을 해서 석유살 돈을 마련한 다음 내가 번돈으로 샀으니까 니가 드네 내가 드네 하면서 싸우는 형구와 형남이었다.
왜 초반에 석유라는 귀한 물건과 그에 대한 갈등이 벌어지는지는 긴 이야기 속에서 드러난다. 석유마크와 관련된 것에는 형남이 있다. 그가 미국에서 박사학위 딴다는 명분 아래 유학한 그 잘난 국제금융을 배워온 곳이 그 석유모양 마크의 유대인 회사이기 때문이다. 형구도 완전히 감싸주지는 못하겠는 것이 형제들에게 당하는 것은 당하는 거지만, 형일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도 형이라는 이야기는 거의 없다. 형남, 형남 그런다. 절대 형남이 형이 아님. 자신이 아무리 남들에게는 이 회장으로 불릴지 몰라도, 가족 간에서도 어느 정도는 형남을 돈으로 뒷받침했다는 거들먹거리는 그의 인성이 드러남을 느꼈다. 물론 형제들에게 퍼주는 물적 양을 보면 그 정도 거만함은 부려도 될 듯 하긴 하지만 말이다. 형구는 셋째, 형남은 둘째 아들이다. 장남으로는 알콜중독자가 되었다가 남들에게만 퍼주는 호인이 되어버린 형일이 있다.
책은 8남매가 어떻게 돈으로 관계를 맺고, 서로의 은인이 되었다가 돈 때문에 서로의 바닥을 보게되는지 잘 나타내 준다. 형구가 아니꼬워서 계속 자기 옆의 편을 만들고 가스라이팅을 일삼는 형남.
내가 조금 이해가 안갔던 부분은, 형숙이 평산댁의 명의로 땅을 살 수 밖에 없었던 부분에서 평산댁이 자신의 땅이라고 생각한 부분이었다. 물론 방법적 문제가 있긴 했지만 엄연히 자금 출처가 있는데, 왜 그러신 것인지. 돈을 댄 사람은 가압류를 하던 방법을 강구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것에 대한 인과관계를 모르는 사람들은 평산댁의 땅이라고, 자기들이 유산받을 부동산이 늘었다고 밖에 생각하지 않겠는가. 평산댁이 쫓겨난 고향에서 정미소나 조상에 대한 한을 풀기 위해 집착하는 것도 안쓰러웠다. 실은 상준이 잊지 못하는 영단이나, 쫓겨나게 된 상스러운 이유와 다르게 자신만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애쓰는 것으로 보였다. 그렇기에 그 큰 굿판까지 벌이지 않았을까.
형구의 형남에 대한 형벌은 자애로웠다. 그렇지만 다시 한 번 자신을 배신한 형호가 더 미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늘 서로 죽이라는 기회를 줬을 때 형남은 먼저 방아쇠를 당겼다고 했고, 형호는 그렇지 못했으니까. 그러니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또 배신이라니. 믿는도끼에 발등 찍히는 느낌이지 않았을까.
마지막 형구의 포기할 자유를 얻는 엔딩이 조금 급진적인 감은 있지만(한 평생 가족밖에 모르던 사람이 어찌..) 더 빨리 가족들과 연을 끊고 자신의 원가족만 챙겼으면 어땠을까 싶다. 이런 면에서 진짜 미현이 보살이다. 몽골에서 재기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닦게 해준 것도 서로에게 은인이고. 삼촌과 고모들만 챙기는 아버지를 원망한 형구의 자녀들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형구의 사이비종교 일대기는 노숙하며 예전을 추억하는 템으로는 조금 길지 않았나 싶지만, 그만큼 형구가 왜 형제들을 아끼는지에 대한 이해가 되었다. 누구에게나 포기할 자유는 있지만, 이렇게까지 영혼이 부셔져야 주어지는 것이라면, 진작에 복잡한 세상 편히 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