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호수와 암실 ㅣ ANGST
박민정 지음 / 북다 / 2025년 5월
평점 :

호수와 암실 - 박민정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박민정 작가는 처음 만났다. 2009년부터 활동 중인 나름 중견에 가까운 작가인 것 같다. 주인공 <서연화>는 내가 지금까지 만나본 그 어떤 주인공들보다 나에 가까웠다. 물론 나는 연화처럼 상당히 예뻐서 어린이 모델이 된다든지 한 적은 없다. 물론 자신에게 추근대는 스탭을 풀 엑셀로 밟아서 죽인 적도 물론 없다. 하지만 운전을 과격하게 한다는 점은 닮았을까. 닮았다는 부분은 자신의 과거를 감추기 위해서 소년원을 대안학교로 변모시킨 점이었다. 또 닮은 부분은 사랑하는 (사랑인지도 잘은 모르겠다, 의지하는 이라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재이를 위해서 감춘다고 생각한다는 점이었다. 자신의 약점을 감추는 일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가 절대 아니다. 철저하게 자신을 위해서다. 그런데 그 점을 연화만 모르는 것 같다.
우연찮게 재이와 같은 커피숍에서 자신과 같은 소년원 동기였던 로사가 등장하면서 자신의 과거가 탄로날까봐 전전긍긍하는 마음가짐이 나랑 매우 닮았다고 생각했다. 재이와 로사는 일하면서 별의 별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연화는 트라우마 때문에 (아니면 일말의 죄책감) 운전을 하지 않는다. 어느 날 자기를 만나고 나서 로사가 재이를 차에 태워가는 장면을 본 후 갑자기 평생 하지 않으려고 했던 운전면허를 단박에 따버린다. 연화는 재이를 아낀다. 그래서 재이가 겪었던 턱수염(사진작가)과의 그루밍 범죄를 복수 해주고 싶어 한다. 자신이 어릴 적 촬영장에서 겪었던 모멸감과 재이의 강제로 청소년 모델을 벗기고 찍었던 경험에 대해 투사하고 있다고 느꼈다. 거기에 자신은 이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며 승정원일기를 해석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나버린 빵 동기가 내 사람 주위에 어슬렁거리는 꼴까지 참을 수 없게 된다. 내가 지금까지 위태롭게 쌓아온 모래성이 무너질까봐 전전긍긍하는 연화를 제일 잘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이 이 소설을 읽은 나의 슬픈 점이랄까.
심지어 운전미숙으로 회전교차로에서 역주행을 해버린 에피소드에서 경찰이 여럿 나타나 보내주는 장면에서도 연화는 자신의 잘못보다는, 왜 이렇게 경찰이 많은 것이냐며 남의 탓을 한다. 그것만 봐도 얼마나 편협한 캐릭터인지 나타나는데 그 점이 더 나 자신 같았다. 재이는 다 알고 있는데도, 심지어 알게 된지 오래 되었는데도 그래도 연화를 재단하지 않았는데 연화는 이제야 자신의 마음을 폭력적으로 드러냈다. 결국 턱수염과 킴을 나락보내기(대 멸망전)는 대충 성공했다. 그러나 그 발로가 재이를 위한 것이었다 한들 연화의 마음 속은 비밀을 들춰내는 그 행위를 촉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이 즐거웠을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