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둠 속 촛불이면 좋으련만 - 내 인생의 문장들
장석주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4년 3월
평점 :

어둠 속 촛불이면 좋으련만 – 장석주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신춘문예에 당선된 작가다. 작가의 다작과 인생의 문장들을 통해서 시인의 독서목록과 그의 단상을 엿볼 수 있었다. 내가 읽어본 책들도 있고, 당연히 아닌 책들이 더 많다.
인생 첫 문장의 거의 탑으로 이름을 올리는 <설국>도 좋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설국은 읽어보지 않았는데, 그런 놈팽이의 이야기였다니? 하고 놀란정도. 다만 예전부터 설국은 눈의 고장이었다 보다는 설국이었다 그 자체의 어감이 좋아서 그걸 좋아하는데, 최근 판본의 번역이 실려있어서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좋았다. 군의 경계가 갈라지는 터널. 지금은 이제 수선화와 산수유 등 노랑의 물결이 다가올 시점인데, 그래도 밤의 밑바닥까지 하얘진 눈의 고장을 밟아보고 싶어졌다. 나에게 눈의 고장은 북해도이지만, 설국에서의 배경은 군마현와 니가타현의 접경지대를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키스를 한다는 것은> 이라는 꼭지는 참 여러 번 읽었다. 생각보다 키스의 효용성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 행위의 의미가 나에게는 어떤 것 인가를 생각했달까.
키스 자체는 묘하게도 공허한 행위다. 마치 음식도 없이 식사하는 것이라고 할까? 우는 행위와 비슷하게 키스는 내적인 계기를 가지지만 외적인 이득은 없다. 섹스는 적어도 생식의 목표를 지향할 수 있으나 키스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키스는 그 자체가 목적인 셈이다. <이토록 철학적인 순간> 로버트 롤런드 스미스의 책이다.
키스 자체가 묘하게 공허하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확실히 이 작가의 말에 따르면 또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그렇지만 키스를 할 수 있는가 없는가는 상대방에게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행위이고, 암묵적인 감정의 교류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합의의 의식이라고 믿는다. 또한 생식의 목적을 지향하는 행위보다 더 로맨틱하다고 생각한다.
정훈희의 <꽃밭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인데, 박정만 시인과의 에피소드가 슬프게 실려있다. 초단위로 시를 뱉어간 시인의 시를 만나보아야 겠다.
자주 들었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가 프랑스와즈 사강의 말이었다는 것도 이 말이 나오게 된 계기를 보며 조금 슬퍼졌다. 자동차 사고로 모르핀 중독이 되고 다른 고통을 받아야 했다니. 물론 전문을 말하자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마약 상습 복용으로 재판에서 한 증언이라고 한다. 지금 엄청난 사람들이 자기파괴를 일삼고 있는데 예전에는 이 말이 그래도 좀 낭만으로 들렸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돌이킬 수 없는 수 없는 도파민 중독들이 많으니 어릴 때 들었던 느낌과는 사뭇 달라졌음을 느끼게 된다.
그 많은 문학소녀는 어디로 갔을까를 보면서, 나는 전혜린 키드인가에 대한 생각도 해보고, 전원생활도, 어릴적 소개받아서 읽었는데 큰 감흥이 없었던 <월든>도 이제 다시 펼쳐봐야겠구나 했다.
다른 사람들의 문장과 거기에 덧붙은 사연까지 읽으며 작가의 삶의 많은 면면을 본 것 같다. 무심하게 생각되는 곳도 있고, 시처럼 아름다운 부분도 있었다. 역시나 명문은 사람에게 울림이 되어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