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Q84 1 - 4月-6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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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상상력, 1,2권 모두 두껍지만 한 번 책을 들면 마지막 장까지 넘기게 할만큼 흡인력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이 문학 부분에서 몇 달 동안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고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읽고 있는 책이 전부 「1Q84」였다더라... 하는 소문에는 ‘응?’하고 머리가 갸우뚱거려진다.

   책에는 1984년과 달이 두 개 뜬 또 하나의 세계 1Q84년이 배경으로 나오는데, 작가는 아무래도 실제 일본의 1980년대를 염두에 두고 쓰지 않았겠는가. 그걸 생각하며 나는 우리나라의 1980년대를 함께 떠올렸고 그 간극에 놀랐다. 지극히 일본적이라 여겨지는 것들(이렇게 말하는 것이 지나치게 단순한 일반화일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일본적이라는 말 외에 달리 다른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데) 종교적인 것에 대한 관심, 때론 변태적이라고도 느껴지는 성에 대한 개방성, 에반게리온의 아야나미 레이를 연상시키는 후카에리의 태도(후카에리의 억양 없는 말투를 상상해 보니 자연스레 떠오른 것이 ‘레이’였다. 제목은 생각이 안 나지만 언젠가 본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도 레이를 연상시키는 캐릭터가 나오는 걸 보고, 일본 사람들-혹은 남자들-은 참 저런 캐릭터를 좋아하나보군 하고 생각했었다.) 이런 것들에서 느껴지는 어떤 이질감.  덴고가 요양원의 아버지(로 살아온 사람)를 만나러 갈 때 읽었던 책 속의 책 <고양이 마을> 이야기는 인상적이다.

사람들은 이 소설의 무엇에 그리 공감하고 열광한 것일까. (아니면 하루키라는 작가의 이름과 마케팅의 효과?)

어떤 결말을 내려는 것일까. 하루키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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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 - 풍수와 함께 하는 잡동사니 청소
캐런 킹스턴 지음, 최이정 옮김 / 도솔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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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Clear our clutter with Feng shui)」이라는 책의  저자는 잡동사니가 에너지의 흐름을 정체시키고 그것이 그 공간 안에 있는 사람의 몸과 인생에도 영향을 준다고 풍수의 관점에서 말한다. 풍수에 대해서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보류하지만, 각 물건에도 에너지 파장이 있고 쓰지 않고 쌓여 있는 물건들이 에너지의 흐름을 정체시키며, 정리 정돈되지 않은 주변이 인생까지 꼬이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책을 보면서 몇 번이고 마음에 찔림이 있었다.

항상 뭔가 쌓여 있는 내 방, 사무실의 책상, 옷장, 컴퓨터 안의 정리되지 않고 쌓여있는 파일들.  눈 수술 후 한 달 사이에 엄청나게 불어버린 체중과 바깥 나들이 기피증, 늘어나는 피로감과 무기력증이 무관하지 않다는 것. 더 무서운 것은 나의 정리되지 않음으로 인한 부정적 에너지들이 내 주위 사람들에게 알게 모르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지 모른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깊이 들어가 보면 이 모든 것이 내 자신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이라는 생각이.

 

아무리 가치있고 즐거운 일이라도 내가 힘들고 버거워지면 그 때부턴 부담스런 짐이 된다.

나를 지킬 수 있는 힘, 그것은 나를 알고 배려하고 사랑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것 (수많은 자기계발서를 비롯하여 무수히 많은 책에서 식상하리만큼 자주 말하고 있는 것인데 이걸 가슴 깊이 생각한 적이 몇 번이나 되는지) 나를 아름답고 건강하게 가꾸는 것(내면이든 외면적인 것이든)은 사치가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의무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몸도 완전히 내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어떨 때 보면 몸이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내 몸이 내 마음대로 되던가? 그 안에 살고 있지만 몸에 대해선 모르는 게 훨씬 많다. 그런 몸에게도 얼마나 평소에 함부로 대하고 있는지. 계속 그대로 가다간 언젠가 몸이 '복수'를 해 올지 모른다. 자기를 알고 소중히 하는 사람이 어떤 큰 대의나 가치를 위해서도 희생할 수 있는 거라 생각한다. 알지도 못하고 있지도 않은 자아를 어떻게 버린단 말인가. 역설 같지만 알고, 갖고 있기 전에는 버릴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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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1 (반양장)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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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이름을 쓰면 ‘베’자가 3번, ‘르’자가 3번 반복되는 재미난 이름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첫 소설  「개미」를 접한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외갓집 제사에 갔다가 친척 오빠의 책장에 꽂혀 있는  「개미」를 꺼내서 보다 결국 그 날 1권을 다 읽었다. 그만큼 재미있었고 신선했다. 그 당시 추리소설을 좋아했던 내게 「개미」는 뭔가 풀어나가는 추리소설의 즐거움, ‘개미’란 곤충에 대한 놀라움과 베르베르라는 작가에 대한 충격을 동시에 주었던 작품이었다. 책 뒤에 나온 번역자 이세욱씨와 베르베르의 인터뷰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성실하고 꼼꼼한 번역 역시 인상적이었다.) 그 뒤로 나온 개미의 연장선에 있는 「개미혁명」때까지도 베르베르에 대한 나의 기대는 굳건했다.

 

    그의 작품에 흥미를 조금씩 잃어갔던 것은 「타나토노트」때 였던 것 같다. 그 시기는 내가 책 자체에 대한 흥미와 독서량 자체가 많이 떨어졌던 때였기 때문에 꼭 베르베르의 책이 별 재미가 없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도 같지만. 한국에서 베르베르의 인기는 오히려 더 치솟고 나오는 책마다 베스트셀러 행진을 계속했지만 아무튼 그 이후로는 그의 작품을 거의 읽지 않았다.

 

그러다 몇 년 만에 우연한 계기로 베르베르의 6권짜리 시리즈 「신」을 읽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신」이라는 소설 자체보다도 여전히 등장하는 에드몽 웰즈와 그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보며 「개미」에 대한 옛 기억을 더듬어 보는 것이 더 즐거웠다.

 

    베르베르의 책은 (다 읽지 않은 상태에서 다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소설이라기보다는 백과사전같은 느낌이 더 강하다. 책 안에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 아예 한 권 더 들어있기도 하지만 워낙 박학다식한 정보의 바탕 위에 작가가 상상력을 그야말로 엄청나게 풀어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인물이나 사건의 전개보다도 ‘상대적이며... 백과사전’부분이 내겐 더 재미있었다. 성경, 그리스 신화, 북유럽 신화까지 서양의 ‘신’관련 내용은 전부 섭렵을 한 듯하다. 사실 1권을 읽는데 그리 책장이 잘 넘어가진 않았다. 신 후보생들이 18호 지구에서 식물-동물-인간 순서로 각자 진화의 과정을 전개해 가는 과정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2권에서야 속도가 조금 붙기 시작했다. 인류의 진화, 형성 과정과 토템 선택과 그에 따른 다양한 부족, 씨족의 형성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 흥미로웠다. 인간 부족의 발전 모습에서 등장하는 백과사전의 ‘심리학’ 이야기도 재미있다. 소설의 형식이지만 인류학책을 보는 것 같았달까.

 

    독자가 책 속에서 읽어내는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그 부분이 독자의 현재 관심거리나 자주 생각하는 주제와 관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어떤 책에서 누가 어떤 부분이 인상 깊었다고 할 때, 그 부분을 봄으로써 그 독자가 현재 관심이 무엇이고 어떤 상태인지 대강은 유추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읽으면서 한 번 크게 웃은 부분이 있었는데 이 부분이다: <이론이 있으면 일은 잘 돌아가지 않아도 그 이유는 알게 된다. 실천을 하면 일은 돌아가는데 그 이유는 모른다. 이론과 실천이 결합되면 일도 돌아가지 않고 그 이유도 모르게 된다.> from 78. 백과사전 머피의 법칙(2권 p. 353)

 

    책 중간에 ‘은비’라는 인물을 통해 한국에 대한 소개와 종군 위안부 문제도 몇 페이지를 할애해 보여주는 것은 그의 한국 사랑이 잘 드러난 대목이다. (그는 왜 한국을 좋아할까?)

 

    책을 빌려준 친구는 끝은 좀 어이없게 끝난다고 했다. 결말이 어떻게 되건, 등장 인물들이 어떻게 되건 그건 그다지 큰 관심사가 아니다. 오히려 18호 지구에서 벌어지는 각 부족간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그들은 현재 우리 ‘1호 지구’에서 누구를 닮아 있는지, 베르베르는 어떤 역사를 쓰고 싶어하는 것인지가 지금은 더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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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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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두 남녀가 주고받은 이메일로만 꽉 채워진 책이다. 원작이 출판된 독일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고 연극으로까지 제작이 되었다 하고, 책을 빌려준 친구도 후배가 너무 재미있어서 서점에서 선 채로 다 읽었다 해서 자기도 샀다는 말에, ‘그래?’하고 흥미가 동해서 빌려와 본 책이다. 그만큼 독일에서나 한국에서나, 인터넷 이메일을 통한 인간관계가 큰 공감을 얻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공교롭게도 남자 주인공 레오는 이메일을 통해 인간의 언어 심리를 연구하려고 하는 ‘언어심리학자’다.)

 

   첫 번째 책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가 큰 인기를 끌자 작가 다니엘 글라타우어가 내놓은 속편이 「일곱번째 파도」이다. 이제는, 이메일도 진부해진 듯하고 메신저로 instant message를 주고 받는 것이 더 익숙해졌고, 페이스북이나 미니홈피 등을 통한 인간관계 관리가 인터넷을 쓰는 사람들 사이에선 많이 보편화된 것도 사실이다. (어떤 영어 원어민이 ‘페이스북을 안 하면 이젠 메일도 안 와’라고 한 걸 들은 적이 있다.) 메신저로 대화를 많이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상대방의 이모티콘, 다음 말이 뜨기까지 걸린 시간, 문장 부호 어떤 것을 얼마나 자주, 많이 쓰는지만 보고도 상대방의 기분이나 성격을 어느 정도, 아니 상당 부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이 소설에서 인스턴트 메신저가 아닌 이메일을 매체로 한 것은 아마도, 이메일을 써서 상대방에게 보내고 답장이 오기까지 기다리는 그 시간이 주는 설레임과 그것이 길어질 때 생기는 불안함, 궁금증 등을 통해 주인공들의 감정의 오르내림을 더 잘 보여줄 수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아닌게 아니라 내 친구 후배의 말대로 무척이나 재미있다. 짧은 편지글의 주고 받음 속에 드러나는 감정들의 변화, 그들의 일상과 서서히 드러나는 주변 인물들을 알아가는 것까지도. 특히 1권 마지막에 두 사람이 드디어 만날 것처럼 긴장을 한껏 고조시켰다가 변경된 이메일 주소라는 마지막 메일로 ‘아!’하고 안타까운 한숨을 쉬게 하는 것은 압권이다. 두 주인공의 행복한 결말을 바라는 사람은 결국 두 사람의 결합을 암시하며 끝나는 속편 「일곱번째 파도」를 보면 안도할 것이다. 하지만 1권으로만 끝냈어도 괜찮았을 텐데. 한 가지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다면, 레오는 어떤 여자가 봐도 멋있다 느낄 ‘지적이면서도 잘생긴 남자’이고, ‘에미’ 역시 어떤 남자가 봐도 사랑스럽게 여길 ‘예쁜 여자’라는 것. 너무 전형적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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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잘하면 우리는 행복해질까 - 영어, 미국화, 세계화 사이의 숨은 그림 찾기 라면 교양 4
문강형준 지음 / 뜨인돌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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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EBS 라디오 프로그램 중에 'Power English'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그 프로그램의 closing ment는 매일 똑같다. With ___ and ___(show hosts' names), You've got the POWER!

영어를 잘하면 넌  Power,힘, 권력을 갖게 되는 거야!
참으로 지금 우리 시대의 세태에 적절한 말이 아닌지?

이 책 제목을 본 누군가가 물었다. 그래서 결론은 행복해진다야 아니야? 글쎄.. 생각을 한 번 해 보자는 거다. 그 질문은 '돈이 많으면 행복해질까?'랑 비슷하다. 한 마디로 '예/아니오'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현실은 '예'에 가까운 것 같은데, 꼭 그렇게 답할 수만도 없다. 워낙 여러 조건과 변수가 작용하기 때문에. 하지만 저런 질문들은, '예'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위험하다는 것을 전제로 제기된 질문들이다.  돈이 행복의 절대 조건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그 사회는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한 사회이고, 영어가 행복의 조건이 된다면 그 역시 영어 만능주의, English Fetish가 만연한 사회라는 것이다. 이 책은 English Fetish가 공공연히 위세를 떨치고 있는 그 현상에 의문을 던지고, 그에 얽힌 정치적, 사회적 배경을 이해하여 영어에 대해 균형잡힌 시각을 갖자는 취지로 쓰여진 책이다. 

1장에서는 소수언어가 사라지는 원인을 농업혁명, 산업혁명, 제국주의에서 찾으면서 언어와 권력 사이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언어와 언어사이의 권력 관계 뿐 아니라, 권력자들이 어떻게 언어를 이용하여 대중을 선동하는지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비단 외국어 뿐만이 아닌 언어에 대해 비판적인 감각을 길러야 함을 시사하는 장이기도 하다.

2장은, 그러한 배경(제국주의)으로 등장한 국제어로서의 영어에 관한 이야기이다. 영어가 국제어로서 펴지게 된 역사적, 정치적 배경을 다루고 있다. 물리적인 제국주의 시대는 끝났지만, 언어를 매개로 한 제국주의는 여전히 남아 있음을 말하고 있다.

3장은, 더 범위를 좁혀 우리나라에서 영어 현상을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에 처음 영어가 들어온 때부터 시작된 영어교육의 역사, 세계화에 힘입어 가속화된 영어 열풍 현상, 영어가 성공의 지름길이 되 버린 지금의 현실과 부모의 경제력이 영어교육을 좌우하는 제1의 요소라는 현실을 꼬집는다.

4장은, 영어 확산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세계화 현상을 다룬다. 결국 영어가 누구의 이익에 봉사하는지, 영어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보며 그 그늘을 직시하자고 한다. 세계화가 야기시키는 불평등을, 영어라는 언어로 인해 빚어지는 불평등이 과연 정당한가? 질문을 던진다. 영어를 배울 기회가 누구에게 공평하게 열려야 함을, 필요하지 않은 분야에까지 영어를 강요하지 않도록, 더 나아가 소수가 차별받는 문화 자체를 비판하고 다양함이 어우러지는 사회를 희망한다.

 나 역시 영어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우리나라의 이 왜곡된 영어 광풍 현상과 영어가 출세의 도구가 되는, 한 언어가 권력화되어 버린 이 현상에 대해서는 늘 의문과 불편함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만나게 되어 무척 반가웠다. 영어를 전공한 저자이기에 더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이런 목소리가 더 일찍, 전문가 집단에서 나왔어야 했다. 나도 이제 구체적으로 내가 선 위치에서 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고 찾아보게 된다. '영어'를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도록 고민하고 방법을 찾는 것이 그 중 하나일 것이다. 더 멀리 보면, '사유'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되어야 할 것이라 본다. '사유'를 하고 뭔가 '할 말'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그것을 표현할 방법을 찾아낸다. 표현 하고 싶은 자기 생각이 많아지도록 하면, 아이들은 그것을 전달하고 소통하고 싶어할 것이다. 상대가 외국인이라면 당연히 외국어로 표현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에서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고, 시선을 세계로 넓히도록 도와주고, 표현해 낼 수 있는 기술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이제는 고기잡는 기술을 가르치기보다 바다를 그리워하도록 해야 한다는 말처럼.

이 책은 읽기 쉽게 쓰여졌다. 중고등학생 이상이라면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다. 나처럼 이 이상한 영어 광풍에 불편함을 느꼈던 사람이라면 무릎을 치며 공감할 것이고,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사고의 전환을 위해 더더욱 필요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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