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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선 박사가 찾아낸 외규장각 도서의 귀환 ㅣ 스코프 누구누구 시리즈 7
조은재 지음, 김윤정 그림 / 스코프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창피함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사실 외규장각 도서의 귀환이 얼마나 우리에게 중요한것임을 느끼지 못했거든요. 뉴스에 나와서 그렇게 떨들석 했는데도 불구하고 나하고는 상관없다는 핑계아닌 핑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같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것을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꼭 관심을 가져야하는 것이 당연한것임을 저는 이렇게 방관하고 있었습니다. 이책을 통해 박병선 박사님께 죄송스런 마음과 더불어 정말 정말 훌륭한 일을 하셨다고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한나라에 태어나 이렇게 나라에 관심을 갖지 않고 아이들에게 그저 역사공부를 열심히 해라 잔소리를 한 제가 정말 죄송스러웠습니다. 그저 학업성적때문에 역사에 관심을 가지라했지만 우리 역사를 알아야 큰인물이 될수있다는 박병선님의 외할아버지 말씀이 옳은 말씀이신듯 합니다. 박병선님은 어릴적 책벌레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책읽기를 좋아했던 소녀였습니다. 외할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 역사에 관심을 갖게된 박사님은 그 당시때는 생각지도 못한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결심합니다. 파리로 유학온 한국학생으론 처음이였다고 합니다.
새로운 세상에 첫발을 내밀기 위해선 얼마만큼의 용기가 필요한지는 생각만으로도 충분히 느낄수 있습니다.
동양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박사님께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일할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박사님은 교수님이 부탁으로 시작해 우리나라가 프랑스에 빼앗긴 문화재 찾기에 노력합니다. 그러다 처음 발견하게 된 책이 [직지]입니다.
우리가 한국사를 배울때는 최초의 목판활자로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고 최초의 금속활자본은 직지심경이라 배웠다. 그 직지를 박사님이 찾아내신것이다. 최초의 금속활자는 구텐베르그로 알려져있던 시대에 1377년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훨씬 더 먼저 금속활자책을 찍었다는 증거를 세계에 알린것이다.
박병선 박사님은 그에 멈추지 않고 우리나라 역사서를 찾는데 더욱더 힘을 쏟았다. 박사님의 노력 덕분인지 외규장각의 서책들이 발견되었다. 베르사유 별관에서 총 297권의 책이 발견되었다.
외규장각은 1866년 11월 프랑스 해군이 조선의 강화도에 무력 침공하여 병인사옥(1866년 흥선대원군이 천주교인 8000여명과 프랑스 천주교 신부들을 학살한 사건)의 빌미로 군사 600여명을 이끌고 쳐들어왔다. 강화도에 머물면서 조선의 많은 문화재를 약탈하였는데 그 중 1782년 2월 조선의 22대 왕인 정조가 왕실의 중요한 서적을 보관하기 위해 강화도에 설치한 외규장각의 서적중 일부는 프랑스로 가져가고 나머지 일부는 불에 태워졌다 합니다. 외규장각은 강화읍성 내 행궁 자리에 만들어졌는데, 창덕궁에 있는 규장각의 고서들 중 특별히 보존할 필요가 있는 중요 서적들을 옮겨놓은거라 합니다. 그 곳에 보관해 두었던 중요 서적과 의궤들을 '외규장각 도서'라 한다고 한다.
당연히 우리것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외규장각 도서를 돌려주는데 무려 33년이란 시간이 흘러가게 했다.
그동안 박병선님의 노력은 이루 말할수 없다. 그사이 직장암 수술까지 버티며 꼭 우리나라에 외규장각이 들어오는 것을 봐야만 눈을 감으시겠다는 박사님의 의지를 하늘도 탄복한 모양이다. 현재 83세의 연세. 한평생을 오직 직지와 외규장각을 돌려받기 위해 힘쓰신 그분께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분은 말씀하신다. 마지막으로 파리에 독립기념관을 세워 후손들에게 파리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김규식 박사 일행의 정신을 물려주고 싶다고...누군가 시켜서 행하는 이가 아닌 뒤에서 묵묵히 나라를 위해 애쓰신 이런 분들이야말로 애국자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분의 꿈이 꼭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라면서 두손모아 기도해본다.
7월 19일 ~ 9월 18일 국립중앙박물관
'145년 만의 귀환 외규장각 의궤 특별전' 개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