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자 곽재우
조민 지음 / 문학지성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의병으로만 알고있던 곽재우에 대해 왜 현자를 붙혔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의병하면 공부보단 무술이나 정신사상이 義로워서 행동을 옮긴이들이라고 여긴 모양이다.

 

저자 조민님은 곽재우를 의병장으로서만 후손들이 평가하는 것은 그의 삶과 업적에 비할 때 너무 초라한 것이라 여겼다.

곽재우가 어떻게 나라를 사랑하고 어떠한 철학을 가지고 삶을 살아왔는지 알고자 집필하게 된 동기라고 한다.

 

나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곽재우의 삶과 업적에 대해 설명해 주고 싶으셨으리라.

 

책은 백발과 흰 수염으로 뒤덮인 채 살도 없이 바짝 마른 노인이 된 곽재우에게 두 아들이 한권의 책을 내밀며 시작된다.

"이수광이라는 분이 [지봉유설]을 편찬하였는데 책의 내용에 아버님에 관한 짧은 기록이 있다고 하옵니다."

" 아버님! 이것 보십시오. 이수광이 선왕대의 뛰어난 장수를 꼽았는데 이순신 장군과 아버님 두 분이라고 하옵니다. 이런 영예가 어디에 있사옵니까?"

아버지의 업적을 남들이 몰라주는 것에 아쉬웠던 두아들은 눈물을 흘렸다.

"죽으면 모두 잊혀질 것이다. 죽은 다음의 명예가 소중할 것이 무엇있겠느냐 " 라는 아직까지 머리속에 스며든다.

인생무상...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생각나게 했다.

노인은 눈을 감고 회상하며 먼 기억속으로 들어간다.

 

곽재우는 어린 나이인 16살 남명을 스승으로 모시고 여러가지 분야를 배우게 된다.

남달랐던 곽재우를 남명은 자신의 사상과 혼을 전해주기로 맘을 먹는다.

학문, 사상, 무예, 병법까지 두루 갖추게 된다.

 

모두 갖춘 곽재우는 부친을 도와 일을 하면서 나랏일의 부정부패를 알게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살고 있는 시대만 다를뿐 똑같이 반복되는 것만 같아 마음이 아프다.

사람이 욕심을 버리고 살수는 없는지...

 

내가 그 시대에 살았다면 과연 곽재우처럼 의병활동을 할수 있었을까?

많은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와중에 의롭게 살수 있을까? 질문해 본다.

 

의병활동 와중에 선비들이 모두 믿음을 주니 곽재우 역시 힘이 나고 용기가 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의가 통하지 않는 곳에선 나역시 곽재우처럼 조용히 살고 싶었을것이다.

 

광해 9년(1617년) 4월 곽재우는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한다.

죽은 후 왕조실록의 사관이 이런 글을 남겼다.

" 진실로 그 어떠한 부귀로도 대장부의 뜻을 어지럽히지 못했다. 변란초에 포의를 입고 향병을 이끌어 적을 토벌하여 공을 세웠다. 여러 차례 관직에 제수되었으나 모든 것을 뜬 구름처럼 여기고 표연히 은거하여 필마로 가야산을 주요하였다. 낙동강 하류의 창랑에 집을 짓고 삿갓과 도롱이를 입고 지내면서도 즐거워하였다. 사람들은 이익을 위해 다투었으나 재우는 그러지 아니하였으니 어찌 세상 사람들과 다르지 아니한가"

 

고향 사람들이 재우를 기려 충성스럽고 현명하다는 의미로 충현(忠賢)이라는 사당을 세웠다.

숙종 35년 판서의 직위로 추증되었고 충익의 시호를 받았다.

 

어려서 부터 배운 가르침이 밑바탕이 되어 의롭고 검소하게 살았던 곽재우.

 

이 책을 읽으며 왜 이순신장군과 함께 뛰어난 장수로 손꼽았는지를 알았다.

곽재우의 삶 자체가 이순신 장군과 넘 흡사했다. 청렴결백과 의로움...... 곽재우는 현자란 이름에 넘 걸맞았다.

 

좋은 스승을 만나고 그에 따라 아이들의 미래가 달라질수 있다 생각하니 가슴 한곳에 숙제를 안은 기분이다.

위인 곽재우가 아닌 현자 곽재우를 만나것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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