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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집 - 상 ㅣ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10월
평점 :
* 이 리뷰는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 남자가 있다. 일본 에도시대 막부 체계에서 쇼군(최고 권력자)의 신뢰를 얻고 승승장구하던 남자. 어느날 갑자기 아내와 자식들을 독살시키고 집안의 가신들을 모두 베어버린 후 피범벅이 된 몸으로 정좌한 체 잡혀간 사나이. 악령이 씌었다, 귀신이다, 그가 바로 악이다.. 라는 온갖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죽이지도, 살리지도 못한 채 머나먼 곳 마루미로 유배를 온다. 그가 죽어 정말 악령이 되어 돌아올까 두려워하는 쇼군때문에 죄인이지만 죄인처럼 다룰 수 없고 그렇다고 높은 관리를 대하듯 할 수도 없다. 마루미의 생존이 그의 유배생활을 어찌해야 하는지 달려있기에 그의 생존을 둘러싼 암투가 벌어진다. 그의 이름은 '가가' 라고 한다.
한 아이가 있다. 아무도 태어나길 바라지 않았던 아이가 있다. '남자에게 헤픈 여자' 였던 어미가 어느 가문의 도련님과 정을 통해 낳은 아이. 어미는 아이를 낳은 후 죽어버리고 가문에서는 아이도 죽도록 방치했으나 살아 남아 석달만에 체념한듯 지어준 이름 '호(呆 바보)'를 갖고 방치되듯 살아간 아이. 집안의 액땜을 막으라는 이유로 머나먼 신사로 쫏겨가던 도중 데려가던 하녀도 호를 버리고 도망가고.. 마루미에 정착해 살게된 아이. 늘 모자란 듯, 허나 누구보다도 맑고 순수했던 불쌍한 아이 호가 모두가 악령이라 불리우는 가가 님을 만나 호(あほ 呆, 阿呆, 바보) 에서 호(ほう[方], 방향) 로, 그리고 종내는 호(ほう 寶 , 보물)가 되는 아이.
이 두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펼쳐 나간다. 책에서 그들의 이야기나 만남에 대해 많은 부분을 담고 있지는 않다. 거의 주변의 인물들과 그 시대의 이야기들이라 초반 책읽기의 진도는 생각보다 쉽게 나가지 않는다. 책은 첫 시작부터 부조리를 담아 풀어내고 곳곳에서 다양한 부조리를 말한다. 그러나 그걸 제대로 잡으라 하기 보다는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 삶을 이야기 한다. 그 시대의 삶은 그러했으리라. 허나 요즘이라 해도 다르진 않다. 높은 권력의 사람들이 무지한 평민들을 상대로 자신들이 원하는 것대로 말을 꾸며나가고 머리에 심어놓는 일들이 어디 과거의 일에 국한된다 하겠는가. 그렇게 책은 과거의 삶을 이야기하며 현재를 꼬집는다.
미야베 미유키의 시대물을 처음 읽었던 책의 뒷 켠 역자 후기에서 적혀있던 책의 제목 '외딴집'. 걸작이라는 글과 함께 그렇다고 해서 재미있다는 강력한 추천말은 할 수 없다던 책. 어렵다던 책. 그래서 더 호기심이 생겼던 책. 상 하 두권을 합쳐 거의 900쪽에 달하는 두꺼운 이야기는 그 추천의 글 처럼 읽기에 녹록치 않았다. 미야베미유키의 다른 시대물-그렇다고 많이 읽은것도 아니지만-과는 달리 상당히 복잡한데다, 쇼군이니 다이묘, 로주등등.. 기껏해야 부교가 가장 높은 인물이었던 다른 책에 비해 에도시대의 높은 양반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기에 용어도 어려웁고 정치적 암투나 가문내의 권력 등 여러가지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많이 등장한다. 그래서 초기에 진행이 쉽지 않은 책임에는 틀림없었던 듯 하다.
세상을 고친다는 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닐세. 또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지. 시간과 사람과 천운이 갖추어져야 비로소 이룰 수 있네. 지금은 그때가 아니야. 쇼군께서 아무리 잘못되어 있다 해도 가가님을 맡는 일이 아무리 부조리한 난제라 해도, 주어진 이상은 해낼 수밖에 없네. 그런 뜻으로는 이노우에 가의 미숙한 작은선생이 자네 같은 사람에게 머리를 숙이면서까지 참아 달라고 말한 것은 옳은 일일세. - 하권 132쪽.
악한 이의 소행에 분하고 그것들을 바로잡지 못하는 하층민들의 삶에 분노하고, 그런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현대에 살고있는 우리네 삶이 비추어보여 씁쓸해지기까지도 한다. 책에서도 말하듯 사람은 자신의 이기 때문에 나쁜 짓을 한다. 귀신이나 악령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자신의 이기요 욕심이다. 우리 주변에도 얼마나 많은가. 나 또한 그렇지 아니할까. 내 아이의 세대에는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을까.
성님, 호는 돌아왔어요. 성님, 성님이 주신 부적도, 호는 잘 갖고 있어요. 성님, 호는 가가님께 글씨를 배웠습니다. 호가 모르는 것을, 가가 님은 무엇이든 가르쳐 주셨어요. 성님, 가가님은 상냥한 분이셨어요. 성님과 똑같이, 호에게 상냥하게 대해 주셨어요. 마른 폭포는 무서운 곳이 아니었어요. 가가님은 무서운 귀신이 아니었어요. 호는 가가 님과 헤어지는 게 슬펐어요. 하지만 이렇게 성님이 있는 곳으로 돌아올 수 있었으니까, 이제 쓸쓸하다는 말은 하지 않을게요. 성님, 이제 다시 같이 살 수 있어요.
역자의 후기처럼 나 역시도 가가 님의 누명이 벗겨져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웃게 되길 바라보았으나 다소 슬픈 결말로 눈물을 펑펑 쏟으며 읽어버린 마지막은 서평을 쓰는 지금 다시 보아도 여전히 눈물을 담게 만든다. 외딴집은 어렵다. 어렵고 난해하다 하는 이가 더 많겠으나 나에게는 아주 재미있는 걸작의 목록에 올려둘 듯 하다. 미야베 미유키의 시대물을 좋아한다면 꼭 읽어보라 권하고 싶을. 어려워서 몇번을 되감기를 하며 보아야 하더라도 그정도의 가치는 있을.. 그런 책이라고 추천하고 싶다.
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게이치로는 생각했다. 고토에를 잃었을 때의 놀람과 슬픔을, 그 후에 이어진 부조리한 짓들을 떠올렸을까. 아니면 너무나도 많은 일들에 휘말리고 시달리고 굴복당하고, 그 아이로서는 알 수 없는 곳에서 넘쳐난 깊은 물살에 떠밀려 가까스로 한 바퀴를 돌고 이노우에 가로 돌아온 지금에 와서는, 그날의 일은 이미 아득히 먼 일이 되었을까.
"이것을 받으렴. " 가가님의 글씨다.
"이것이 네 이름이라고, 가가 님은 말씀하셨다."
내 이름. '호(方, 방향)' 라는 글자를 붙여 주셨다. 그런데 이 글자는 또 다르다.
"무슨 글자인지 모르느냐? 이것은 -."
보물 이라는 글자란다.
"이 글자는 호라고도 읽는다."
"호"
"그래. 그러니 네 이름이다. 가가 님께서 주신, 네 이름이다."
이 세상의 소중한 것. 귀한 것.
"그것은 네 생명이 보물이라는 뜻이다. 너는 가가 님을 잘 모셨다. 일도 잘 했고. 가가 님은 네게 그 이름을 주시고, 너를 칭찬해 주신거야."
오늘부터 너는 보물(寶)의 호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