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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머리 앤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클레어 지퍼트.조디 리 그림, 김경미 옮김 / 시공주니어 / 2002년 2월
평점 :
절판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빨간머리 앤을 다시 만난것이. 쉴새없이 조잘대는 수다스러운 소녀-주근깨 투성이의 빨간색 머리칼을 가진 앤과의 재회가 참으로 반가웁다. 이십여년전 어린시절 앤을 만났을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나에게 소녀시절의 상상력을 떠올리게 해주는 이야기속에서 오늘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르겠다. 책을 통해, 그리고 애니를 통해 많이도 접하고 많이도 읽었던 빨간머리 소녀의 이야기가 어린시절 그녀를 처음 만났을때보다는 훌쩍 시간을 뛰어넘어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이 오히려 더 사랑스럽다. 어른이 되어 현실속에서 바쁜 삶을 살아가느라 잃어버렸던 상상력을 앤이 들려주는 수다 덕분에 다시금 떠올릴 수 있어서인듯.
하루라도 엉뚱한 상상력으로 인한 사고를 치지 않으면 무언가 허전한 듯한 소녀 앤이 들려주는 상상의 나래는 그저 수다스러운 여자애의 조잘거림이 아니다. 듣는 이까지 즐거운 미소를 머금게 만드는 소녀, 그것이 앤이 가진 힘이 아닐까. 일손을 돕기 위해 고아원에서 보내준 남자아이를 데리러 간 매슈 아저씨에게 착오로 인해 빨간머리 소녀 앤이 도착한다. 그렇게 얽힌 잘못된 인연으로 시작된 첫 만남이지만 이내 그것이 잘못이 아닌 주변 모든 이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인연으로 피어난다. 매슈아저씨와 마릴라 아줌마 뿐만 아니라 앤을 만나게 되는 모든 사람들-글을 읽고 있는 나까지 포함해서 말이다-을 즐거운 상상의 나라 속에서 행복한 미소를 피어오르게 만드는 앤이 너무도 사랑스럽기만 하다.
책이 씌여진지 100년이 지난 오늘에도 앤이 우리를 이렇게 행복하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들은 그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들만의 공감대를 느끼며 즐거워하고, 어른들은 어린시절의 시간들을 회상하며 그때를 떠올리며 시간을 거슬러가는 즐거움을 맛볼수 있어서가 아닐까. 매일매일 실수를 연발하며 자라는 빨간머리 소녀 앤이 조금씩 변화되며 성장하는 모습속에서 많은 이들은 배움과 함께 공감을 느끼며 앤의 자라남을 아쉬워할런지도 모르겠다. 작고 수다스러운 말라깽이 소녀 꼬마 앤이 그 모습 그대로 늘 곁에서 조잘대며 떠들어대는 모습으로 남아있어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렇게 오랜 추억속의 책을 꺼내어 다시금 읽으며 어릴적과는 또다른 감동을 전해주는 이야기 속에서 나는 오늘 다시금 소녀가 되어 앤과 함께 초록 지붕집과 연인의 오솔길, 버드나무 연못을 거닐며 앤과의 즐거운 수다를 나눠본다. 행복을 전염시켜 주는 아이-빨간머리 앤에게 너무도 고마움이 느껴지는 밤이다.
"그 꼬마 앤은 볼 때마다 더 좋아지는걸. 난 다른 여자 아이들한테는 싫증을 느끼곤 했지. 모두들 짜증스러울 정도로 언제나 똑같으니까. 그런데 앤은 무지개같이 여러 가지 색깔을 지니고 있고, 보여주는 색깔마다 다 예쁘단 말야. 아직도 어렸을 때처럼 재미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아인 남들이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어. 난 자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사람이 좋아. 그럼 사랑하기가 훨씬 더 쉽거든. " -38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