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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느끼는 낙타
싼마오 지음, 조은 옮김 / 막내집게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늘상 가고싶어 꿈꾸는 여행지가 있다. 바로 이집트와 그 아래에 위치한 검은 대륙 아프리카가 그곳이다. 황금빛 사막이 넓게 펼쳐진, 어찌보면 삭막해보일수 밖에 없는 그 땅이 내게는 왠지 모를 매력으로 설레임을 안겨주곤 한다.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내가 정작 가고싶은 사막은 오아시스가 아닌, 그야말로 넓디 넓은 모래가 산을 이루고 있는 황금빛 언덕으로 이루어진, 그 위에 서서 사막의 바람을 만나고 싶다.
이른 아침의 사막은 물로 씻어 낸 것처럼 깨끗했다. 푸르른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부드러운 모래언덕이 시선이 닿지 않는곳까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이런 때의 사막은 잠든 여인의 거대한 몸뚱이 같았다. 가냘프게 숨 쉬는 듯 물결치는, 침착하고 고요하고 깊은 아름다움은 가슴이 아프도록 감동적이었다. -19쪽.
붉은 모래빛의 표지에 미소짓는듯한 낙타의 모습, 그리고 별들.. 책을 읽기 전에는 그렇게 내가 꿈꾸던 사막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일거라 생각했다. 작가의 전작인 '사하라 이야기'가 사막에서의 신혼기를 그린 책이라 하여 이번 이야기 역시 그렇게 사막을 꿈꾸게 해줄거라 상상하며 책을 읽어 나갔다. 그리고 첫 이야기인 '길위의 사람들' 에서 왠지 모를 정감이 느껴지는 사하라인들과의 만남이 즐겁게 펼쳐지는 듯 했다. 모래 한 알, 돌맹이 한 개도 귀하고 사랑스러울만큼. 해가 뜨고 지는 광경도 잊을 수 없을 만큼 생생한 기억을 안겨준 사람들과의 길위의 만남이 부러움이 느껴지는 첫 이야기에서 나도 함께 그 길 위에 서있는 기분으로 함께 작가의 회상에 빠져드는듯 한다.
하지만 이 책, 아름다움이 아니라 참으로 아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첫 이야기에서의 설레이는 떨림같은 만남은 곧이어 이어질 아픔을 위한 마음달램 이었을까. 정이 많아 사막인들에게 무한한 애정을 품고 사는 싼마오의 인연은 왜 이리 하나같이 아픔을 안겨주는 것일까. 같은 사람임에도 짙은 피부색때문에 사막에서 잡혀와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싼마오와 나의 마음이 다르지 않다. 아픔과 연민이 함께 전해지며 벙어리 노예를 바라보는 시선에 눈물이 맺혀버린다.
부질없는 이념과 종족의 대립으로 인한 갈림때문에 빚어지는 전투와 그것이 야기하는 여러 아픔들, 그 가운데에 서있는 싼마오와 주변인들의 아픔이 참으로 안타까움이다. 사하라위 청년들의 기습으로 동료들이 모두 살해당하고, 단 한 사람만이 술에 취해 막사 밖에 엎어져 잠이든 탓에 홀로 살아남아 깨어난 후 동료들의 시체를 바라보게 된 어느 군인...그럼에도 종국에는 사하라위 아이들을 구하는것에 자신의 생명을 바치고야 마는 이름없는 중사의 삶의 끝자락을 지켜보며 또 한번 가슴이 뭉클하며 무거워진다. 이어지는 '흐느끼는 낙타' 에서의 오랜 친구들의 죽음에 또 한번 눈물을 자아내게 만들고야 만다.
이렇듯 아프고 무거운 이야기인줄 알았더라면 읽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사막의 아름다움보다 더 큰 아름다움을 책 속 사람들에게서 찾을 수 있었지만 읽는 내내 한숨을 쉬게 만드는 아픔의 이야기속에서 다양한 인연을 함께 느끼며 함께 공감하고, 함께 슬퍼할 수 있었다. 사막을 사랑한 여자와 바다를 사랑한 남자. 그들의 삶의 이야기가 오늘밤 내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주고 있다. 나도 사막에 누워 흐르는 별을 바라보고 싶어지는 그런 밤이다.
"어떤게 나를 사로잡았냐고요? 높은 하늘과 넓은 땅, 뜨거운 태양과 거센 바람.... 고적한 생활에는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어요. 이무지한 사람들에게 사랑도 느끼고 원망도 느끼고요. 뒤죽박죽 헥갈리네요. 에이! 나도 분명히 모르겠어요. " -108쪽.
이 세상에 제2의 사하라는 없다. 사하라 사막은 단지 그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자신의 아름다움과 부드러움을 드러내고, 영원히 변치 않을 하늘과 대지로 그의 사랑에 묵묵히 대답한다. 그리고 그의 자손들도 모두 사하라의 품에서 태어나길 빌어 준다. -1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