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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요나라 사요나라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운명의 상대이지만 가장 불행한 방법으로밖에 만날 수 없었던 인연일까, 아니면 불행한 만남이었기때문에 운명의 상대가 되어버린 것일까. 작가의 글을 읽으며 궁금해진다. 전자는 왠지 너무도 서글플듯 하고 후자는 왠지 슬프다. 작년 이맘때 읽은 '악인' 이후로 처음 만나는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은 그때의 기억처럼 내게 많은 생각을 안겨 주고 말았다.
요즘은 내가 책을 잘못 고르는 것일까 싶을만큼 내가 즐겨 읽는 일본 소설들의 소재가 나를 답답하게 만든다. 얼마전 읽었던 사쿠라바 가즈키의 '내 남자' 도 너무나도 멋진 글솜씨이지만 글의 내용에 반발심을 갖게 하더니 이번 이야기역시 그렇다. 여자의 눈으로 바라본 책속 내용과 현실이 여자이기에 왠지 모를 억울함을 갖게 만드는 이야기라고나 할까.
"그런 사건을 일으킨 나를 세상은 용서해줬어요. 놀라울 정도로 쉽사리 용서해줬죠. 물론 불쾌한 표정을 짓는 남자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내가 저지른 일을 용서한다고 할까, 이해한다는 걸 알 수 있었죠. 용서함으로써 자기도 남자라는 걸 새삼 확인하듯이. 그래서 나 역시 자기 자신을 용서하려 했습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용서해주는 남자들속으로 들어설 수 없었습니다. 그곳밖에 살아갈 장소가 없었습니다. " -202쪽.
여고생 시절 집단 강간을 당한 한 소녀가 평생을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그 일때문에 어긋나버린 일생을 살아가며 슬퍼하고 힘들어함에도 정작 가해자인 남자들은 세상에서 쉽게 용서받는다. 피해자인 여성은 사회의 손가락질과 약혼이 깨어지고, 결혼후에도 매맞는 아내가 되어 살아가야 하고, 남자들은 '뭐 그럴수도 있지' 의 식으로 사회에서 쉽사리 잊혀지며 그들만의 삶을 영위해나간다. 그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다.
물론 책 속에서는 피해자 남성들이 모두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다. 어찌되었건 불행한 결말로 삶을 등진 사람도 있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도 있다. 물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하며 잘 살고 있는 재벌집 아들로 살아가는 이도 있지만. 그런 통속적인 현실속의 삶속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만남과 사랑을-사랑이라고 표현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지켜보며 가슴이 묵직해져온다.
비난도 할 수 없고, 고맙다는 말도 할 수 없는 관계, 서로 행복해지기 위해서 함께 사는 것이 아닌 관계... 그렇게 이루어진 그들의 운명으로 얽혀있는 삶을 지켜보며 용서라는것, 잊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라는것을 우리는 왜 모르는 것일까 하는 한숨이 배어져나온다. 오랫만의 요시다 슈이치는 이렇게 내게 또 많은 생각을 안겨주고야 말았다. 좋은 작가라고 해야 할까 나쁜 작가라고 해야 할까.
아, 이 사람도 줄곧 그날 밤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거구나, 그날 밤에서 도망쳐 자기만 행복해지는 걸 마음속 어딘가에서 용서할 수 없었던 거구나. 그래서 지금, 자기를 절대로 용서해주지 않는 내 앞에서, 그는 마침내 자연스럽게 숨을 쉴 수 있는 거구나, 하고. -20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