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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도둑을 쳐다보지 마세요
이사벨 코프만 지음, 박명숙 옮김 / 예담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나는 묘하게 프랑스와는 코드가 맞지 않는다. 영화를 통해 불어를 들으면 멀미가 나서 제대로 영화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소설을 봐도 그네들만의 특이한 분위기때문인지 쉽게 몰입을 하지 못한다. 독특한 이름도 그렇고. 그래서인지 파리지앵들의 아름다운 파리여행기조차도 내게 프랑스라는 매력을 심어주진 못했다. 궁금하지만 멀고도 먼 나라라고나 할까.
이번에 출간된 소설도 프랑스 작가이다보니 조금은 망설여진다. 하지만 마리끌레르상 수상작이라는 호평과 함께 독특한 내용에 호기심이 이끌려져 읽게 되었다. 다행히 어렵지 않게 책은 등장하는 이도 몇 되지않고 이름도 단조롭다. 부담없는 시작으로 맘껏 즐겨볼수 있으리란 기대 가득이다.
우리들 각자의 삶은 수많은 자잘한 사건들과 에피소드, 스쳐 지나가는 짧은 만남들로 가득 차 있어서 우리는 곧 그러한 것들을 잊어버리게 된다. 우리의 무의식 아주 깊숙이 감춰 두고 묻어 두는 것들은 말할 것도 없다. 로즈는 그 빽빽한 기억의 숲속에서 자신이 필요한 것을 캐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변화를 감지하지 못했다. -11쪽.
타인의 삶을 훔쳐 불멸의 생을 엮는 도둑의 이야기.. '지나가는 도둑을 쳐다보지 마세요' 라는 제목처럼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그 사람에게서 찰나의 시간을 자기것으로 만들어버린다. 기억의 단편이 될 수도 있고, 그 순간의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삶의 한 자락을 뺏겨버리면 조각나버린 삶은 어떻게 이어질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며 문득 떠올려본 기억나지 않는 단편의 조각들이 나도 그렇게 도둑맞은건 아닐까 하며 피식 웃어본다.
그렇게 기억을 훔치는 도둑과 그를 지켜보며 사랑에 빠져버린 심리학자와의 심리전을 팽팽하게 그려놓은 책속에서 그려내는 상상과 탐색,,, 그속에서 오가는 많은 대화속에서 삶과 기억 그리고 사랑에 관한 생각을 깊이 이야기 한다. 로즈(Lose)라는 이름을 가진 그는 우리 삶속의 잊혀진 기억들을 훔쳐가는 단순한 약탈자일까, 아니면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져버린 아름다운 삶을 찾아내 펼쳐내는 작가일까. 옮긴이의 후기에서 처럼 우리도 끊임없이 누군가의 마음을 훔치고, 혹은 빼앗기는것 처럼 마음속에 로즈를 담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지 내 마음을 잠시 비추며 생각해본다.
작은 책속에 많은 생각을 담고 있는 책. 다행히 이번만큼은 프랑스와의 만남이 멋졌다는 흐뭇함의 기억을 가지게 해준, 조금은 어려웁지만 기억과 사랑에 관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나름의 유쾌한 독서를 한듯 하다.
사랑의 격정은 유성보다도 더 덧없는 것이지. 밤하늘을 가르다가는, 지나가는 걸 미처 보기도 전에 다시 떨어져 버리거든... 아주 쉽게 달아나 버리고... 그래서 또한 매우 소중하기도 하지만.... -4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