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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온 그림엽서
후지와라 아키오 지음, 조양욱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멀고 먼 검은대륙 아프리카. 어릴적만 해도 내게 아프리카는 그저 머나먼 곳에 위치한, 에이즈와 지속되어온 기아, 볼록 나온 배를 가진 아이들, 동물의 왕국.. 떠오르는건 그뿐이었다. 그외에는 별다른 흥미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던 곳, 그런 아프리카가 언제부턴가 가고싶은 곳으로 변하고 있었다. 아프리카를 다녀온 이들의 책들을 통해 그들의 삶을 알게되고 그들의 아픈 삶을 보며 동정이라고 간단히 표현하기에는 무언가 다른, 그런 감정이었다.
이 책은 일본인 저널리스트가 아프리카에서 3년간 지내며 만나온 아프리카를 그리고 있다. 단순한 여행기라던가, 늘 만나던 그저그렇게 아프기만한 아프리카가 아닌, 아프리카의 현실을 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지만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사람들' 이라는 표지의 글이 여태 만나온 책과는 다르다는 느낌에 호기심이 가득 몰려온다. 많은 이야기가 담긴것은 아니지만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아픔도, 기쁨도 전해주고 있었다.
# 기묘한 나라로의 여행.
저자가 아프리카에 흥미를 가졌던것은 일본에서 보게된 퓰리처상의 수상을 받았던 아프리카의 사진한장이었다. 눈쌀을 찌푸리게 만든 한장의 사진. 그 사진으로 인해 퓰리처상을 받은 작가는 자살하게 된다. 그 자살의 원인이 그 극적인 사진을 찍고난 후에 받았을 많은 질책으로 인했을거라고 나역시도 상상했지만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것은 '마약'이었다. '나는 단지 내 사진이 신문에 실리는 게 좋다. 그뿐이다.' 강한 자의식을 가진 그가 마약을 통해 그저 그렇게 '살아만 가고'있는 삶과 '진정한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결국 모든것을 얻었으면서도 모든것을 잃고 만다. 그렇게 마약으로 인한 자아상실로 삶을 망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이렇게 책은 시작한다.
"사람은 누구나 평등해". 하지만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런 거짓말을 순진무구한 어린아이들에게 하는가?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를,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될 무렵에는 지금보다 평등해졌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바람이 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눈앞의 현실에서 고개를 돌린 채, 교과서에 나오는 대로 평등을 외치는 것이 과연 그 아이들의 도덕관과 세계관을 성숙하게 영글게 해줄까? - 38쪽
아프리카에는 정말 수많은 '혼혈'들이 살고 있다. 검은대륙에서 태어나 살아가지만 검지않은 그들. 다이아몬드로 인해 '대영제국'이라고 불리우던 영국에 의한 식민지시대를 겪어오고, 그 이후에도 여러 나라에서 온 이주민들이 생기고.. 수많은 인종들 가운데서도 유독 원주민들이 가장 천대받는 사회. 그들이 겪는 힘에 의한 현실이 그저 안타까웠다.
# 행복의 얼굴.
"'인퀴지티브(inquisitive)'라는 단어를 아십니까? 알고싶어 하고 호기심이 강하다는 뜻인데, 유럽인이나 일본인은 그렇지요. 하지만 우리는 달라요.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도 뉴스는 들려왔습니다. 히틀러의 전쟁이라느니, 일본군이 어쨌다느니 하고... 그래도 여기서는 별 관심을 끌지 못했어요. 우리는 원래 그런 걸 알고싶어 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말입니다. 당신은 어때요? 인퀴지티브한것과 그렇지 않은 것과 어느 쪽이 나을까요?" -116쪽
오랜 세월을 끌어온 '빈곤'. 하지만 그런 삶속에서도 작은것 하나하나가 행복한 이들. 자신을 찍은 사진이 엽서가 되어 팔리고 있음에도 그 사실을 알게되어 오히려 감사하다는 노교사. 그렇게 사진을 사와서 자신의 어린시절을 손자와 증손자에게 항상 보여줄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한다. 아프리카에 온 외국인들은 불과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도 아프리카에 대해 모든것을 간파한다. 나역시도 여러 책을 통해 모든것을 알았다고 생각해왔으니까. 하지만 정작 그속에서 살고있는 그들의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모든것이 뒤엉켜버린다.
평생을 광산에서 일하며 노동을 착취당했으리라 여겨 인터뷰를 했던 '마타디'씨는 고개를 저으며 이야기한다. "노예라니요? 우리는 행복했어요. 난 열심히 일했고, 정말이지 좋은 세월을 보냈다." 며 활짝 웃는 미소를 보며 정말 행복이란 녀석은 남이 느끼는게 아니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 바람처럼 닥쳐온 폭력.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것, 그것은 바람처럼 닥쳐오지, 눈처럼 오지는 않아." 서구의 지배, 수많은 혁명과 폭동, 전쟁등으로 피로 얼룩진 대륙 아프리카. 천천히 내리는 눈처럼 다가오는 것이 아닌 태풍처럼 휘몰아치고 사라지는 아픔의 표현일까. 부족이 다르고 계급이 다르고, 그런것을 떠나서도 무언가 다른것을 찾기위한 수많은 학살의 증오속에서 번져나오는 많은 거짓문화들. 그리고 그런 가운데에서도 버려진 짐승처럼 조용히 살아온 노인의 이야기는 또다른 아프리카의 어두운 아픔을 알려준다.
"당신은 절대로 몰라! 당신이 무얼 알겠어? 이 땅에서 이런 식으로 살아온 우리에 관해 무얼 알아?" 많은 다양한 인종과 국적을 가진 이주민들로 인한 혼혈들로 뒤섞인 나라. "이토록 기묘한 나라, 이런 곳에서 살면 말이지...." 책을 덮으며 어느샌가 내게도 아프리카는 더 복잡해진 '기묘한 나라'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