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베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7
서머셋 모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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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극장을 찾을때 '페인티드 베일'의 영화 예고편을 두어번 본적이 있다.  '에드워드 노튼'이 나오기에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던 영화의 원작을 오늘 만났다.  잠들기전 조금만 읽어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고, 고작 예고편을 본것 뿐이었지만 책을 읽는 내내 장면장면이 떠오르며 영화가 그려진다.  결국 완독을 해버렸고, 한동안 책의 여운을 즐기느라 결국 새벽녘이 되어서야 잠들지도 못했던, 그런 멋진 책이었다.

 

"나는 당신에 대한 환상이 없어.  나는 당신이 어리석고 경박한 데다 머리가 텅 비었다는 걸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  당신이 지성에 얼마나 겁을 먹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당신이 아는 다른 남자들처럼 당신에게 바보처럼 보이려고 별짓을 다했어.  당신이 나와 결혼한 건 편해지기 위해서라는 걸 아니까.  그래도 나는 당신을 너무나 사랑했기때문에 개의치 않았어. " -96쪽. 

불륜을 저지른 그녀에게 콜레라가 창궐한 곳으로 자신과 함께 떠나길 종용하며 내뱉는 그의 말을 들으며 가슴이 아파온다.  동생이 자신보다 먼저 결혼하게 되는 사태가 생기는것이 두려워, 주변에 아무도 없음이 두려워 선택한 결혼.  하지만 모든것을 감내하고 그녀에 대한 사랑만으로 버텨온 그가 뱉어내는 배신의 아픔이 나에게도 느껴지는 것 같다.

 

콜레라가 가득한 곳 '메이탄푸'.. 그곳에서의 생활은 하루하루가 어떤것이었을까.  좌절과 배신감, 삶에 대한 의지조차 없는 그들.  콜레라 때문에 먹어서는 안되는 샐러드를 매일매일 죽음을 유혹하듯 먹는 그녀를 바라보며 함께 따라서 먹는 윌터.  죽음에 관한 공포와 복수심, 그리고 자신의 공포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그녀가 수녀원에서의 일상을 보낸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탄식한다. "아, 난 너무 무가치 하구나. "

 

하루하루 콜레라 속에서 그녀를 사랑한 자신을 경멸하며 혹독하게 일에만 매진하는 윌터...키티의 임신사실이 치명타가 되어 결국 그녀도, 자신도 용서하지 못한채 상처받은 가슴으로 스스로 병에 걸려 죽음을 맞이하며 내뱉는 말. "죽은건 개 였어."   '골드 스미스 애가'의 마지막 구절을 인용하여 그곳으로 떠나오며 그녀가 병으로 죽기를 바랬지만 결국 죽는것은 그 자신임을 내뱉으며 삶을 끝내는 그의 상처가 참으로 안타까움이다.

 

책을 읽으며 내내 생각을 해본다.  삶이란 것과, 사랑이라는 것.  그리고 여자의 삶.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녀의 결혼에 대한 환상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   돈벌어 오는 기계가 되어 평생을 살아온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조종하듯 휘두른 어머니.  그 속에서 자라나며 많은 신데렐라의 환상을 품고 있는 여성들처럼 결혼이라는 것이 의지할 곳을 찾아 조금 더 부유하고, 조금 더 편한 사람을 선택한 키티의 삶.  키티가 탄식처럼 내뱉은 '무가치한 삶'을 살아가는 많은 여성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가 아닐까.    그녀가 상처속에서 성장하듯 나 자신도 성장해가길 바라보며 책의 여운에서 이만 빠져나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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