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와 비밀의 부채 1
리사 시 지음, 양선아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가슴 아린 사랑이야기도 없다.  흥미진진한 사건이나 사고도 별달리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몇시간을 나를 몰입하게 만든 소설을 만났다.  마치 추리소설을 읽듯이 뒷부분의 이야기가 궁금해져 마지막 페이지로 넘기고 싶은 욕망을 참아내듯..  조바심을 내며 읽어 나갔다.

 

이 책은 20세기 초반의, 우리나라와 비슷한 -아니, 우리나라보다 더 보수적인듯 느껴진다- 중국 여자들의 삶의 이야기다.  중국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자라난 소녀 '나리'가 화자로써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아주 어렸던 다섯살의 아가때부터 그녀가 장수를 누리며 살아온 80이 넘는 나이까지의 삶을 들려준다.

 

가난한 농부의 집에서,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천대받는 딸로 태어나 전족을 통해 운명을 바꾸어가며 '루 마님'으로서의 삶으로 살아가기까지의 고통과 인내의 삶.

보수적인 중국사회에서 여자이기때문에 자신이 원해서가 아닌 '여자들이라면 살아야 하는 길'을 따라 살며 인내가 곧 삶인. 그 삶속에서 영혼의 동반자가 되는 '라오통'을 만나 평생을 그 우정으로 사랑하며 살아간 이야기가 두권 가득 채워져 있다.

 

'우리는 천 리를 가는 동안 하나의 강으로 합쳐지는 두개의 개울과 같을 것입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단짝일 것입니다.'   7살의 작은 영혼으로 만나 우정을 만들어가듯 쌓아가고, 여자들만의 언어인 비밀글씨 '누슈'로 부채를 편지지인양 덮어가며 쓰여진 두사람의 편지글들을 보며 나도 그녀들과 함께 두근거리는듯 했다.

어른들로 인해 가리워진 비밀과 거짓을 알아가기도 하고, 서로 점점 격차가 생기는 결혼생활.. 남편의 반대, 배신.. 그리고 이별을 거쳐가며 '나리'와 동화된듯 내가 그녀가 되어 가슴아픈 삶을 읽어나갔다.

 

책을 읽는 내내 그 시대의 여자들의 삶이 얼마나 가혹했는지 가슴이 아파왔다.

특히나 앞부분의 상당량을 할애하며 이야기해주는 전족에 관한 이야기.  뼈가 부러져 발속으로 파고 들어가고 짓물러 고름이 흐르는 아픔을 겨우 대여섯살밖에는 되지않는 소녀들에게 시행한 너무나도 잔인한 시술.  그랬다. 책을 읽는 나에게도 그 고통이 전해져오는듯 아파왔다. 

"오직 인내를 통해서만 평화를 찾을 수 있어.  네 발을 이렇게 감싸고 묶는 사람은 나지만 보상은 네가 받을거야"  7센티라니... 내 엄지손가락 길이밖에는 안되는 그 작고 작은 사이즈의 발을 위해서 어리디 어린 소녀.. 소녀라는 말도 붙이기 어려운 아가들에게 그 엄청난 고통을 그저 '인내' 하라고 가르치며 행하는 사람들.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음을 감사하고 또 감사하였다.

 

책속을 가득채운 섬세한 문체와 그림같은 묘사는 나를 매혹시켰고 더 책에 몰입할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리고 직접 겪을수는 없지만 같은 여자였기에 그 삶을 이해하며 그 아픔을 함께 느낄수 있었던게 아닐까. 

마력을 담은듯 생생하게 풀어놓은 이야기가 마음을 울린.. 그런 책을 나는 오늘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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