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 랜덤하우스 히가시노 게이고 문학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저는 편지같은걸 쓰지 말아야 했습니다....

 

 

이 책은 129회 나오키상 후보작이었으며, '용의자 x의 헌신'으로 134회 나오키상을 수상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다. 

나는 아직 '용의자 x의 헌신'을 읽어보지 못했다.  내가 만났던 히가시노 게이고는 '비밀'에 이어 '편지'로 만난 작가이다.  이 책을 읽고나니 미스터리 작가로서의 그의 모습도 느껴보고 싶어진다.

 

이 책은 미스터리 추리물이 아니다.  비밀처럼 감성소설이라고 해야하나?

처음 형의 편지로부터 눈물을 방울방울 떨어뜨리게 하더니.. 결국 책의 마지막부분의 편지에서 눈이 붓도록 울어버렸다.

감동의 눈물이 아닌, 처음은 형이 느낀 죄책감이 전해져오는 아픔의 눈물이었고.. 마지막의 편지는 그가 뉘우침에서 써왔던 편지들이 오히려 많은이들을 더 아프게했음을 깨달아버린 비통함이 전해져와서 울어버렸다.

 

가족이라고는 형과, 동생.. 단 둘이 남겨지고.  어머니가 돌아가시며 생계를 이어나가야 했기에-딱히 공부를 하고싶어 하지도 않았다. - 배운것도 없고, 그러다보니 체력으로만 일할수 있는 직업을 택할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몸을 다치게 되자 할 수 있는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동생이 대학에 진학할수 있도록 학비를 구하기 위해 형은 도둑질을 결심한다.

봐두었던 집으로 들어가 목적하던 돈도 수중에 넣었지만, 잠시 머뭇대다가 집 주인인 할머니에게 들키고.. 자신도 모르게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이 책은 이렇게 시작했다.

 

글쎄 나는 그랬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특히 살인이나, 강도강간등의 강력범죄에는  더더욱.

-당연한거 아니야?  그 사람으로 인해 상처입은 피해자와 그 가족을 생각해봐.  죽여도 시원찮아!

그래. 그랬다.

 

헌데,, 이 책은 피해자가 아니다. 가해자와 그 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얼떨결에 살인을 저지르고 살인자가 되어버린 남자. 그리고 그 남자의 동생이 현실에서 차별과 편견속에서 살아가는. 그런 이야기다.

실수이던, 의도적이든.. 잘못은 잘못인게다. 

아무리 뉘우치고 뉘우쳐도.. 피해자는 죽고, 그 가족은 지워질 수 없는 아픔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나는 여태 그쪽만 보아왔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반대의 가족의 삶을 그려내었다.

자신이 저지른 죄가 아님에도 평생을 따라붙는 '살인자의 동생' 이라는 굴레.

학교도 그만두어야 했고, 사랑도 이루어지지 못했고, 아내도, 심지어 자신의 딸까지 '살인자의 가족'이 되어 편견속의 삶을 살아야만 했다.

무엇을 선택하더라도 그 죄의 굴레가 조여와 다시금 삶에서 밀어내고, 또 도망치고, 또 밀려나고...

 

이걸 얻으려면 저걸 얻을 수 없다.  인생이란 뭔가를 선택하는 대신 다른 뭔가를 버리는 일의 반복이다.  208쪽

결국 그는 형을 버리고 만다.  어떤일에도 그냥 도망만 치던 그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겪어왔던 편견의 삶을 아내와 딸에게는 안기고 싶지않아 형에게 다시는 편지를 쓰지말라며 인연을 끊겠노라 마지막 편지를 보낸다.

책의 앞쪽에서 그가 당해왔던 차별과 편견을 보면서 세상의 혹독함에 - 아니 어쩌면 차별은 당연한것이 아니냐는듯, 그 차별과 편견의 맨앞에 서있었던것은 아마도 나였으리라- 안타까워 하던 나였지만 동생의 결정을 말리고 싶어하는 내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가족을 지켰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던중 자신의 딸이 누군가에 의해 다치게 되는 사고가 생기고, 그 가해자의 가족을 바라보며 그는 그제서야 형이 저지른 잘못을 빌기위해, 그리고 형이 늘 바랬던 분향을 하기 위해 죽은 할머니의 집을 찾아간다.

이젠 모두 끝내자는 피해자 가족과의 대화, 그리고 그곳에 보내진 많은 형의 편지들.

.....

동생이 형제의 인연을 끊겠답니다.  제가 출소한 뒤에도 연락을 하지 말아달라고 했습니다.  그 편지를 읽을 때 제가 받은 충격을 짐작하실지.  동생한테 절연을 당해서 충격을 받은 게 아닙니다.  오랜 세월 동안 저라는 존재가 동생한테 계속 고통을 주어왔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동생이 이런 편지를 쓸 때까지 눈치 채지 못한 저의 어리석음 때문에 죽고 싶을 정도로 제 자신이 혐오스러웠습니다.   저는 편지같은걸 쓰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깨달았습니다.  오가타씨에게 보낸 편지도 아마 틀림없이 오가타 씨에게는 범인의 자기만족에 불과한 불쾌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을 거란 사실을.  그걸 사죄하고 싶어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물론 이 편지가 마지막이 될 것 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형의 마지막 편지 중에서.

 

책을 덮고난 후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어야만 했다.

무엇이 옳은것인지.  내가 생각해왔던 죄와, 죗값을 치루는 것....  그 모든것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거울을 쳐다보았다.  퉁퉁 부어버린 눈을 보며 피식 웃으며 책을 덮어둔다.

이사람 참...  좋은 작가다.

 

 

형-나오키는 마음속으로 형을 불렀다.

형, 우린 왜 태어난걸까...

형, 우리도 행복해질 수 있는 날이 올까?  우리가 서로 마주앉아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올까?  둘이서 어머니께 밤을 까드리던 그때처럼....  4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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