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보내는 마지막날의 책으로 선택한 책.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이다.
다 읽지 못해 새해의 첫 책으로 이어져 버렸지만..
왜 이 책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아직도 책장엔 읽지 못한 좋은 책이 가득함에도 왜 궂이 이 책을 꺼내 들었는지. 책에 관해 잘못하는건 없는지, 내가 무언가 놓치고 지나간건 없는지 '책을 이야기 하는 책'을 읽고싶었다고나 할까.
이 책은 출간된날 '서재 대청소'라는 책속 내용에 반해서 구매하게 되었던 책이다.
책과 관련된 헤르만 헤세의 에세이중 몇편이 실려있는 책이다. 헤세의 책에 관한 애서가적인 지극한 애정을 엿보고 느끼고 싶었다.
첫장 '독서에 대하여1' 에서 '사람들은 전혀 감동이 없으면서도 다른 일에 비해 시간과 노력을 지나치게 바친다. 잘못된 독서는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부당하다.'고 헤세는 이야기한다.
'남독'은 결코 문학에 영예가 아닌 부당한 대접이라며 삶의 한걸음, 한 호흡마다 그러하듯 우리는 독서에서 무언가 기대하는 바가 있어야 마땅하다고 말한다.
나역시 너무 많은 책을 읽는다. 책을 읽는 속도가 빠른탓도 있고, 일하는 시간이 업무량에 비해 길다보니 시간이 남을때면 늘 책을 읽는다. 그렇다고 해서 소홀하게 읽었다거나 잘못된 독서를 했다거나.. 그런것은 아니지만 조금은 더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고 싶다. 무언가 놓치고 있는건 없는지, 잊기 싫은것은 없는지 되새기면서 말이다. 책이란건 모름지기 읽을때마다 늘 다른 새로운 느낌과 감동을 전해줄테니.
헤르만 헤세는 이사가기전 8일에 걸쳐 서재 대청소를 한다. 하루에 네다섯시간씩을 투자해서 먼지를 털어내며 얼마나 행복했을까. 한권 한권을 다시금 만나며 그 책과 관련되었던 일들도 떠올리고, 책의 내용도 다시금 읽어보며 수천권의 책을 정리했을것이다. 나도 얼마후면 책을 정리하고 이사갈 준비를 해야한다. 헤르만헤세의 수천권에 비하면야 턱도 없이 모자라지만 천권여정도의 책을 정리하며 나는 어떤 생각들을 떠올릴수 있을까. 그리고 30년쯤후.. 몇배는 더 늘어날 내 책들을 볼때는 또 어떤 마음을 품게 될까. 궁금해진다.
이 구닥다리 책들에서 먼지를 터는 모습을 젊은 사람들이 지켜보지 않아도 좋다! 상관없다, 그들도 언젠가 머리카락이 성글어지고 치아가 흔들거리게 될 즈음이면, 자기와 평생을 함께하며 신의를 지킨 것들을 새삼 되돌아보게 될 날이 있으리니. 33쪽
책을 읽다보면 그의 굉장한 까탈스러움을 군데군데서 느낄수가 있다.
여러가지 책에 관해,,, 작가의 실수에 관해서도, 혹은 어떠한 작가들은 이렇다거나, 어떠한 책들에 관해서는 또 이렇다던가 하며 서슴없이 비판을 일삼는다. 책이라면 엄청난 사랑을 품은 애서가답게, 아니다 싶은것에 관해서는 독설또한 신랄하다. 물론 그의 주관적인 시점 기준이지만.
아무튼 나는 예술가의 윤리에 관한 한 트집쟁이요, 구닥다리 돈키호테 노릇을 하련다. 세상 모든 책의 90퍼센트는 작가도 독자도 대충 무책임하게 쓰고 읽는 판이며, 어짜피 나의 이런 투덜거림을 포함해 글이 인쇄된 종잇장들이 내일모레쯤이면 몽땅 쓰레기가 될 줄을 몰라서 하는 소리냐고? 41쪽 이사람 참. 편협하기도 하고 까탈스러운, 그리고 고집센 작가였구나 하며 피식 웃어본다.
어떤 책을 즐겨 읽으십니까?
글쎄.. 나역시 헤세보다야 적겠지만 수천권의 책을 읽어오며 정말 좋아하는 분야가 어떤것이었을까. 자라오며, 살아오며 그때그때 조금씩 취향이 바뀐듯 하다. 고전의 명작들에 빠져 어릴적은 문학책들을 끼고 자라왔었고, 소녀시절엔 다른 여자아이들이 그랬듯 로맨스 소설이 주류를 이루었고 판타지, 스릴러분야로 빠지기도 했다가.. 장자, 공자등 중국사상가에 심취하더니 머리가 혼란스러운 지경에 이를때까지 자기계발서를 읽기도 했다. 요즘은 철학,인문쪽으로 빠져들어 책을 사모으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어떤 분야의 책이 최고다! 라는 결정은 내리지 못하겠다. 책은 그저 책이라는 것만으로도 좋기때문에.
세계문학도서관이라는 장에서 헤세는 정말 많은 작가들과 주옥같은 작품들을 소개해준다. 반가움의 책도 많았고, 처음 보는 책들도 허다했다. 역시나 내 책의 견문은 좁고도 멀다.
내 일생을 살며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책을 만나게 될까. 그중에서 고전의 자리도 많이 비워두어야겠다는 마음을 잠시 가져본다.
헤세는 하루만에 뚝딱 책을 읽어나가는 사람들을 대출도서관이 안성맞춤이라고 이야기한다. 귀하지도 않은 독자라며 몰아붙인다. 나는 왜? 하고 발끈하며 반박해본다. 내경우에도 책을 무척이나 빨리 읽는다. 하루종일 책에 몰두할때면 두권이상도 뚝딱한다. 그렇지만 나는 도서관이나 책대여점에서 빌리진 못한다. 좋은것은 몇번이고 손이 닿는 곳에 두고 다시금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책을 산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손에 닿는대로 읽곤 하지만 한권한권 애정을 갖고 사모은다. 많은책을 선물받기도 하지만 여전히 내 용돈의 대부분은 책값으로 들어간다. 그럼 나는 나쁜 독자일까. 좋은 독자일까.
내가 태어나기 불과 10년전에 고인이 된 헤르만 헤세. 나와 같은 세기를 살아오며 85세의 긴 삶의 여정속에서 전 세계에서 5천만부가 넘는 책이 팔렸고, 노벨상 수상에 이르기까지 그의 많은 저술중 1900년에서 1960년까지의 책에 관한 에세이만을 모아 편집해서 만들어진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 한해의 마지막을 보내며, 그리고 새해의 첫책으로 읽을수 있었고, 올해의 첫번째 서평을 쓰게 되어 기쁜 책이었다. 뒷쪽으로 가며 헤세의 마음을 엿보는듯한 이야기에서는 조금 어려웁게 다가서긴 했지만 그래도 꽤 즐거운 마음을 안겨준 그런 책이었다.
책을 사들고 와 처음 펼쳐들던 순간들의 자잘하고 소중한 추억을 고스란히 담은 채 한 권씩 모은 책이 어느덧 사방 벽면을 빼곡히 채우노라면, 아마 누구라도 가슴 뿌듯한 소장의 기쁨가 함께 예전에는 책을 모으는 즐거움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싶어질 것이다. 18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