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거리는 고요
박범신 지음 / 파람북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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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50주년을 맞은 박범신 작가의 와초재, 문학, 사랑, 세상 이야기를 읽으며 지금 ‘함께’ 걷고 있는 이들을 살짝 돌아보며 어떻게 보조를 맞추어야할 지 가늠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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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거리는 고요
박범신 지음 / 파람북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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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거리는 고요/ 박범신 산문

(함께 걷되 혼자 걷고, 혼자 걷되 함께 걷는다)



 

아마도 책을 가까이 하는 이들이라면 대부분 박범신 작가를 잘 알 것 같다. 나 또한 저자의 책을 그리 많이 접하지는 않았으나 불의 나라”, “은교등 꽤 읽은 것 같은데, 아쉽게도 최근에는 주로 신간 위주로 읽다보니 거의 접하지 못하다가, 이번에 등단 50주년 기념으로 동시 출간된 두 권(두근거리는 고요, 순례) , 이 책두근거리는 고요와 인연이 되었다.

 

신문이나 잡지에 게재했던 것, 펜클럽 와사등홈페이지 등에 쓴 소소한 것들을 모았다. 소설의 경우보다 한 인간으로서의 내가 더 온전히 드러나니 자못 수줍다. (004),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부끄러움을 살짝 비친다. 그만큼 산문은 소설보다는 알게 모르게 작가의 성향이 은근 드러나기 때문이다.

 

홀로 가득차고 따뜻이 비어있는 집 와초재이야기에서 시작해, 작가로서 빼놓을 수 없는 문학이야기, 우리들 인생에서 결코 배제할 수 없는 사랑이야기. 그리고 세상이야기까지 진솔하게 엮어져 있다.

 

혼자사니 자유로워 좋다. 늙어가는 아내가 어쩌다가 서울에서 내려온다면 나로선 비상사태다. 따뜻한 밥을 얻어먹을 테지만 무한 잔소리를 들어야하기 때문이다. 냉동실 냉장실도 구별 못 하냐, 로션 뚜껑을 왜 열어놓았냐, 목욕탕 물구멍에 끼어 있는 머리카락을 그대로 두면 어쩌자는 거냐, 잔소리는 끝이 없다. 내가 깔끔한 편이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아내의 눈에는 거의 짐승 수준으로 사는 남정네에 불과하다.(‘와초재이야기 중 두 집 살림_033)

 

이렇게 아주 소소한 일상이야기에서부터

 

어떤 여자나 어떤 남자는, 조금도 예쁘지도 않고 성격도 아주 안 좋은 어떤 남자나 어떤 여자에게 홀려 제정신 차리지 못하는 걸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보는 이들은 그 여자나 그 남자를 이해하기 어렵지만 정작 사랑에 빠진 그 여자나 그 남자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애인에게 큰 매력을 느낄 거라고 착각한다.(‘와초재이야기 중 땅과 애인을 고르는 법_035)

 

저자 자신의 땅에 대한 사랑을 남자와 여자의 눈 먼 사랑에 비유해 들려주기도 한다. 그러는 중에,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애인과 배우자를 고를 때 효용성에 따라 고르는 것에 대해 답답함을 호소하며 일침을 놓는다.

 

나는 과연 자유로운가. 요즘도 나는 때때로 나 자신에게 묻는다. 타율적 억압은 오늘날 거의 모두 사라졌지만, 대답은 간단하지 않다. 비밀이 없는 시대가 아닌가. 인터넷으로 SNS가 모든 이의 삶을 밤낮없이 대낮처럼 비추고 있으니 생의 비밀이 존재할 리가 없다.(문학 이야기 중 결핍과 상처로부터의 자유_091)

 

작가로서 사물을 볼 때 나는 동시에 세 개의 눈을 사용한다. 하나는 사실을 보는 눈이고, 둘은 기억을 보는 눈이며 셋은 상상의 눈이다. 내가 보는 현상으로서의 사실과 현상 너머의 기억 사이를 긴밀하게 잇는 작업은 상상력을 통해 비로소 가능하다. (문학 이야기 중 기억은-소설은 힘이 있다_096)

 

문학이야기 속에는 소설을 쓰게 된 배경은 물론이고, 작가로 살면서 차마 절필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고뇌도 슬며시 엿보인다.

 

인간이 최종적으로 이기지 못할 건 시간과 허공, 두 가지 밖에 없다. 연애의 본질인 정염은 너무나 찰나적이어서 믿을 수 없으나 세월의 더께가 입혀진 당신이란 말은 시간을 넘어선 부동심과 만나면서 마침내 불멸의 한 끝에 닿는다.(사랑이야기 중 당신이라는 말_162)

 

누군가 인생은 늙어가는 게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저자는 당신은 상대방(you)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함께(together)임을 강조하며 성숙하고 진정한 사랑을 이야기 한다.

 

대통령이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을 움직이는 건 또 어떤 기억들이겠는가. 정파에 따른 증오심이 이제 우리 모두의 삶을 옥죄는 황폐한 처지에까지 이르렀다. 청년보다 노인이, 보통사람보다 지도자가 먼저 기억, 또는 기억 속에 축적된 달콤한 특혜나 쓰라린 상처들로부터 과감히 벗어나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래야 일방적 불통은 쓰러지고 수평적 소통이 일어서 보편화된다.(세상이야기 중 내 가슴 속 묘지에 그-그녀들이 있다_244)

 

세상이야기에서는 우리들의 현실을 이야기하며, 사랑만이 커다란 권력이니, 함께 걷되 혼자 걷고, 혼자 걷되 함께 걷기를 소망하며 수평적 소통을 제안한다.

 

세월호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온당한 권리가 없는데도 눈 맞추고 배 맞추어 과적을 하도록 세월호에 빨대를 박은 기득권자들의 집단, 종교라는 이름으로 뭉쳐진 배타적인 집단, 종교단체 수장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해 책임을 모면하려는 관리들의 집단, 집단, 집단, 집단들뿐이다. 집단이 아니라 함께를 앞세우는 세상이었다면 세월호에 탄 수많은 우리의 아들과 딸들을 왜 살려내지 못했겠는가.(세상이야기 중 혼자 걷되 함께 걷는 길_307~308)

 

어제 세월호참사 9주기 추도식이 화랑 유원지에서 있었다. 시민의 한사람으로써 매해 느끼는 거지만, 이 날만큼은 비록 서로의 의견이 다르더라도 모두 한마음으로 추모했으면 좋겠는데 올해도 역시 추모식을 방해하는 목소리들은 여전했다.

 

산문이기도 하지만 저자의 필력도 있어 술술 읽힌다. 가볍게 읽어나가노라면 인생의 가을에 도달한 작가의 아주 사소한 개인 이야기 속에 사랑도 있고, 문학도 있고, 인생은 물론이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공동체의 바람직한 모습도 보인다.

 

저자는 오래 함께걷다보면 동행자들로부터 내 존재가 얼마만큼 떨어져 있으며 동시에 어떻게 함께 있는지 그 거리를 측정하는 게 가능하다고 말한다. 지금 함께걷고 있는 이들을 살짝 돌아보며 어떻게 보조를 맞추어야할 지 가늠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기를 권해본다.



 

*본 도서는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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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되어 살아낼게 - 세월호 생존학생, 청년이 되어 쓰는 다짐
유가영 지음 / 다른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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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되어 살아낼게 / 유가영

(세월호 생존학생, 청년이 되어 쓰는 다짐)



 

 

#바람이되어살아낼게

#세월호생존학생

#유가영

#운디드힐러

#유가영

#416세월호참사

#그날이후

 

 

한 때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 주지 않는 세상을 원망한 적이 있어요. 그 시절의 우리는 참사의 당사자였지만 어른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는 세상이 더 이상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어요. 세상은 시련을 겪은 누군가가 그걸 훌륭하게 극복해내야, 그제야 그 사람을 바라봐 준다고 생각했습니다.(005)

 

세월호 참사를 겪은 세대가 이만큼 자랐는데도 아직 세상은 변하지 않은 것 같아요. 왜 사람들은 모르는 걸까요. 이런 일들을 계속 무시하고 지나친다면 그다음 차례는 자신과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걸. 그걸 막기 위해 왜 남겨진 사람들만 몸부림쳐야 하는 걸까요. 저는 세상이 변했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 다음 세대인 아이들도, 더 성장해 나갈 저의 세대 사람들도 우리 앞에 벌어진 참사에 두 눈 뜨고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해요.(009)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책을 좋아해 도서관 사서가 꿈이었던 소녀가, 고등학교 2학년 들뜬 마음으로 수학여행을 떠나며 모든 것이 달라진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2014416일 그날. 단원고등학교 학생 250명과 함께 세월호에 탑승한 이들의 꿈이 바다 속에 묻혀버렸다.

 

이 책바람이 되어 살아낼게의 저자인 가영 학생과 친구들은 416일 아침에 식사를 하면서 문득 식판이 기울어져 있음을 깨닫게 되지만, 단지 배가 커브를 돌고 있어서 그런 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배가 기울어 가고, 마침내 완전히 멈춘 것 같이 느껴져 친구의 도움으로 간신히 구명조끼를 착용한 채 상황이 나아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한참 뒤 안내 방송은 움직이면 위험하니까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그러고도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헬기를 타고 갈 사람은 나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가영은 망설이고 있다가 친한 친구의 권고로 헬기에 올라, 마침내 생존자가 되어 서거차도라는 작은 섬에 도착할 수 있었다.

 

11초의 시간이 무척 길고 더디게 갔습니다. 하지만 전원구조라는 뉴스 속보와 달리 한참을 기다려도 섬에 새로 도착하는 아이들은 없었어요. 멀리 하늘을 계속 쳐다보았지만 더 이상 헬기는 오지 않았어요. 조금씩 불안한 마음이 섬에 있는 아이들에게 번졌습니다.(033)

 

불안한 마음은 곧 현실이 되어,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은 75명 외에는 끝내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

 

우리는 친구와 선생님들의 장례식장에 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어요. 우리가 하나둘 장례식에 가는 게 알려지면 기자들이 몰릴 수 있고 그럼 유가족이 조용히 장례식을 치르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었어요. 상황은 이해하지만 친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없다는 현실은 가슴 아프고 견디기 힘들었습니다.(043)

 

생존자인 저자는 세상과 단절되어 병원에 갇힌 채 친구들은 물론이고, 선생님들과도 마지막 인사조차 나눌 수 없었다. 그렇게 지내다가 두 달 열흘 만에 돌아간 학교는, 모든 게 달라져 일상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그날의 기억과 친구들에 대한 죄책감과 아쉬움은 불안과 공포가 되어 자해와 정신 질환으로 이어졌고, 주위의 시선과 인터넷 기사에 달린 악플들은 생존자들의 삶을 갉아 먹어갔다. 물론 모두 공격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저자는 택시 기사의 작은 배려가 현재까지도 가슴에 남아 큰 위로가 되고 있음을 고백하기도 한다.

 

요즘도 때때로 찾아드는 악몽이 저를 그날의 바다로 데려갑니다. 해일이 밀려오는 꿈, 내게 닥칠 위기를 느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꿈, 주위 사람이 나를 떠나가는 꿈. (145)

 

세월호에 관련된 책은 시중에 무수히 많이 나와 있다. 안산에 살고 있다고 모두 관심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가능하면 떠도는 기사보다는 그들의 육성을 듣고 싶어 그동안 나름대로 책을 많이 찾아서 읽었다.

 

세월호 피해자 집중지역에 살면서 마을활동가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보니, 유가족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기도 했고, 책에 나오는 쉼표라는 공간과도 작은 인연이 있어, 단원고등학교 근처인 그 곳에서 성인이 되어 아이들에게 봉사하는 생존학생들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가영학생의 이름도 왠지 낯설지 않고 운디드 힐러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도 책을 받아보니 진솔하게 쓰여 있어서 받자마자 끝까지 읽고서야 덮을 수 있었다.낙인이 되어버린 세월호 생존자라는 타이틀로 인해 힘겹게 살면서, 어떻게든 날아올라 친구들 몫까지 살아내고 싶은 그 마음을, 모두 알 수는 없겠지만 가능하다면 응원해 주고 싶다.

 

절대 겪지 말아야 할 일들을 겪고, 쉽지 않은 여정에서 자신의 길을 한걸음 또 한걸음 개척하며 스스로를 치유하고 이웃도 치유하는 삶의 길을 찾아, ‘운디드 힐러’(상처받은 치유자라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함)가 되어 고백하는 진솔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 마음이 짐작되어 절로 애틋함이 생긴다.

 

4.16세월호 참사 희생자나 10.29이태원 참사 희생자들도 아마 자신들이 그 피해자가 되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피해학생이 청년이 되어 9년 만에 기록한 일들을 접하며, 그동안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던 일들이, 나와 가족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가슴 깊이 새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도 지난 3월에 친언니를 심장마비로 잃었다. 자다가 영영 못 일어나는 것은 정말 남의 일이고, 뉴스에나 나올 일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만큼 사고와 재난은 우리 멀리 있지 않다. 우리가 안전한 사회 만들기에 다 같이 동참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원고등학교에 4.16세월호 참사의 흔적이 이제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 YES24 리뷰어 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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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가의 독서법 - 분열과 고립의 시대의 책읽기
미치코 가쿠타니 지음, 김영선 옮김 / 돌베개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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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가의 독서법 / 미치코 가쿠타니

(분열과 고립의 시대의 책읽기)

 

 

#서평가의독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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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읽은 책을 소개한 지 꽤 여러 해가 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글을 평가한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다. 사람마다 느끼는 게 모두 다르니까 상관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고심 끝에 태어난 작품들을 훼손하는 게 아닐까? 하는 작은 염려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가끔은 슬럼프에 빠지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잡는다. 혹시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더라도,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나의 글을 읽고 자신이 읽을 책을 올바로 선택하는 데 작은 도움이라도 된다면 그걸로 만족하겠다고.


나는 비평가보다는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책을 소개하려 한다. 숨겨진 의미를 설명하거나 전체 문학 속에 위치 지으려 하지는 않으련다. 이 책들은 가능한 폭 넓은 독자들이 이 책들을 읽거나 다시 읽도록 권유하려 한다. 이 책들은 가능한 한 폭넓은 독자들이 읽을 만하기 때문이다. 이 책들은 감동을 주거나 시의적절하거나 아름답게 쓰였기 때문이다.(22)

 

비평분야의 퓰리처상을 수상한 문학 비평가이자 서평가인 미치코 가쿠타니의 서평집이 내겐 큰 의미로 다가왔다. 나로서는 서평가의 독서법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분열과 고립의 시대의 책읽기라는 부제를 단, 이 책서평가의 독서법001~099까지 총 99파트이긴 하나, 작가별로 혹은 주제별로 함께 묶어서 여러 권이 한 파트에 함께 소개되어 있기도 해, 책 권수로는 훨씬 더 방대한 양이 폭 넓게 소개되어 있다. 짧고 간략하게 핵심을 관통하는데, 비평이라기보다는 저자가 사랑한 책들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책은 우리를 과거로 데려가 역사의 교훈을 배우게 할 수 있으며 이상적이거나 반이상적인 미래로 데려갈 수도 있다. 지구상의 먼 곳,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먼 다른 행성과 우주로 데려갈 수도 있다. 우리가 직접 만날 일이 없을 남자와 여자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고, 위대한 인물들이 이룬 발견을 조명하며, 이전 세대의 지혜에 접근할 수 있게 해 준다. 천문학, 물리학, 식물학, 화학을 가르쳐주고, 우주 비행의 역학과 기후변화를 설명해주며, 우리 것과 다른 신념, 사상, 문학을 소개해줄 수 있다. 또 오즈, 중간계, 나니아, 원더랜드 같은 허구의 세계, 그리고 맥스가 괴물들의 왕이 되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갈 수 있다.(17)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는 데 익숙한 외동아이였던 미치코 가쿠타니는 어렸을 때 책은 자신의 도피이자 안식이었다고 고백한다. 나에게도 책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외로움을 달래주고, 위로해주고 공감해 주는 유일한 친구였다. 삶이 너무 버거워 살고 싶지 않을 때나,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처참함 속에서 견디기 힘들 때에도, 책을 읽으며 아픔을 달래고 위로 받으며 살아왔다. 그래서 지금도 유일한 안식처인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책은 역사를 보는 아주 놀라운 창을 열어줄 수 있다. 오랜 지식과 새로운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통행증을 제공해줄 수 있다. 전 미국 국방장관 제임스 매티스는 7천 권의 장서를 모았는데 자신의 군 시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책을 읽은 덕분에 어떤 상황에서도 무방비 상태에 놓인 적이 없었다. 어떤 문제를 예전에 어떻게 다뤘는지 몰라 갈팡질팡한 적이 없었다. 책이 모든 답을 주진 않지만 종종 우리 앞에 놓인 어두운 길을 밝혀준다.”(23)


책이 모든 해결책을 제시해 준다면 책을 읽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제임스 매티스의 말처럼 책이 모든 답을 주지는 않는다. 다만 책을 많이 읽다보면, 난관에 부딪혔을 때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현명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너무 잘 알고 있다.

 

전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백악관에서 마지막 주를 보내며 말한 대로, 책은 역사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 다른 사람들과의 연대감, 그리고 다른 사람의 입장이 돼보는 능력을 제공해 줄 수 있다.(24)

 

요즘 같이 어지러운 때에는 더더욱 책이 필요하다. 언론조차도 믿을 수 없는 현실은, 때로 우리들의 시야를 흐리게도 한다. 그러니 우리 스스로 현명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올바른 판단을 위해서는 다양한 책을 접해서 판단의 근육을 길러야 한다.

 

미치코 가쿠타니의 책 소개는 아디치에의 아메리카나에서 시작된다.

 

아디치에는 사회와 감정의 세부를 낱낱이 들여다보는 열 추적 장치와도 같은 눈을 갖고 있다. 이런 재능으로 이페멜루의 경험을 놀랍도록 적절성 있게 전한다.(27)

 

저자가 소개한 아메리카나의 주인공 이페멜루의 생활과 철학을 따라가다 보면, 굳이 읽으라고 권하지 않아도, 더 세밀하게 알고 싶은 궁금증이 저절로 생겨 첫 권부터 읽고 싶은 충동에 빠지게 된다.

 

수상 경력이 있는 시인이자 전직 예일대 교수이면서 맬런 재단의 이사장인 앨릭젠더가 남편을 잃고 15년 동안 겪은 날것의 사랑과 상실과 슬픔을 전하는 회고록 세상의 빛, 유명한 소설가인 아버지 밑에서 소설가가 되길 열망하며 쓴,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를 가슴 뭉클하게 그린 마틴 에이미스의 회고록 경험, 그리고 미국 중서부 지역에 있는 허구의 한 작은 마을에서 살아가는 고독한 주민들에 대한 이야기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형식인 성장소설 셔우드 앤더슨의 와인즈버그, 오하이오.

 

초기에 나타나는 한 가지 경고 신호는 국가의 망명권 철폐이다. 망명자의 권리를 박탈하려는 노력은 치명적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을 품고 있다고 아렌트는 썼다. “모든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원칙이 한 번 무너지고 나면 모든 시민들로부터 법적 지위를 박탈하고 싶은 유혹에 저항하기가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47)

 

저자는 20세기 나치 독일과 스탈린 체제의 소련이 저지른 끔찍한 범죄를 상기 시킬뿐더러 미래에 전체주의 정치를 부채질할 수도 있을 역학 관계에 대해 오싹한 경고를 해 주므로, 인류 역사상 가장 소름끼치는 두 정권이 20세기에 권력을 잡았다. 고 쓴, 우리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을 제시한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강력히 추천한다.

 

이렇게 100년 전에 발간된 책에서부터 우리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모리스 샌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시리즈까지. 아마도 책을 가까이하는 이들이라면 거의 알만한 책들에서부터, 제목은 알아도 직접 접하지는 못한 책들, 그리고 전혀 생소한 것까지 다양하다. 그러니 고전에서부터 날마다 무수히 출판되고 있는 21세기의 수많은 책들 중에 어떤 책을 읽어야 좋을지 혼란스러운 이들에서부터, 제대로 된 서평을 써 보고 싶은 이들, 모두에게 유익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이 책서평가의 독서법의 역자는, 실제 번역하면서 저자가 소개한 시녀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나는 저자가 강력히 추천한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부터 반드시 읽을 작정이다.



 

* YES24 리뷰어 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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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몸은 너의 것이야 - 경계존중으로 시작하는 우리 아이 성교육 부모 가이드
엘리자베스 슈뢰더 지음, 신소희 옮김 / 수오서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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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몸은 너의 것이야 / 엘리자베스 슈뢰더

(경계존중으로 시작하는 우리 아이 성교육 부모 가이드)

 



#너의몸은너의것이야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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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오서재

#엘리자베스슈뢰더

 


몇 년째 단기간 기간제 근로자로 살고 있어 일하고 쉬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러다가 3월부터 내가 좋아하는 도서관 출근이 예정 되어 있어 기쁜 마음과 두려운 마음(도서관 근무 경력이 없음)으로 당분간 새로운 생활의 적응을 위해 서평단 활동을 쉬기로 마음먹고 있을 때, 또다시 나를 유혹한 책이다. 만지면 분홍빛이 당장 손에 묻어날 것만 같은, 예쁜 표지의 200쪽도 채 안 되는 작은 책이 그렇게 내게로 왔다.

 

일단 책을 받아들었을 때의 느낌을 표현하면, 앞표지가 색종이를 오려 붙여 만든 것 같은데 앙증맞고 너무 예뻤다. 뒤표지로 넘기니 스스로를 소중하게 돌보는 아이, 다른 사람도 동등하게 존중하는 아이, 성에 관한 편견 없는 당당한 아이, 분별력 있는 올곧은 아이로 키우고자 한다면이라고 적혀 있다.

 

책장을 펼치니 들어가며에서, 안녕하세요! 엘리자베스라고 해요. 로 첫 문장이 시작되며, ‘경계동의는 아이와 이야기 나누어야 할 가장 중요한 주제임을 우선 일깨워 준다.

 

경계: “경계란 일종의 내 영역을 만드는 울타리. 네가 혼자 있고 싶어서 방문을 닫고 들어갔다면, 그게 바로 경계를 만든 거야. 누군가 경계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면 일단 문을 두드려야 해. 그러면 너는 들어와도 돼라든가 지금은 혼자 있고 싶어라고 대답할 권리가 있어.

경계란 누군가 너를 만져도 된다거나, 만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어. 누군가 널 안아주는 게 좋을 때도 있지만 싫을 때도 있지. 그러면 좋다거나 싫다고 말해도 돼. 전에는 좋았지만 지금은 싫다고 말해도 되고, 안는 것뿐만 아니라 뽀뽀나 만지는 것도 마찬가지야. 어제 누군가에게 안아도 된다고 허락했다고 오늘도 허락해야 하는 건 아니야. 매순간 결정은 네가 하는 거란다.(12~13)

 

동의: “동의란 뭔가를 해도 된다고 허락하는 거야. 네가 친구에게 안아도 되냐고 물어봤는데 친구가 난 안기 싫어라고 했다면, 친구가 동의하지 않았으니까 안으면 안 된다는 뜻이야. 네가 닫은 방문을 누군가 와서 두드린다면, 그 사람은 네가 들어와도 돼라고 말할 때까지 문 밖에서 기다려야 해. 네가 들어오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네 방에 들어올 수 있는 동의나 허락을 받지 못한 거야.(13)

 

존중: “누군가를 존중한다는 건 그 사람을 배려하고 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여 따르는 거야. 누군가 난 안기 싫어라고 말하면 그 말대로 하는 거지. 누군가 네 말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건 너라는 사람도 존중하지 않는 거야. 그럼 기분이 나쁘겠지. 마찬가지야. 다른 사람이 널 존중하길 바란다면 너도 다른 사람을 존중해야 한단다. 누군가 너의 경계를 존중하지 않았다면, 설사 그 사람이 어른이라고 해도 곧바로 내게 와서 알려 주렴.”(13)

 

이렇게 가이드 라인에서는 경계·동의·존중을 아이들에게 그대로 설명 가능하게 실어 놓았고, 아이에게는 다소 어려운 개념인 경계를 굳이 가르쳐야하는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 주고, 경계를 이해시키기 위해 기본적으로 숙지해야 할 것들도 미리 알려준다. 제대로 된 성교육을 위해서는 아이들과 반드시 신뢰가 형성되어야함을 강조하고, 음경·음부·유방·엉덩이 등, 성기의 명칭을 다른 신체부위 명칭(코나 입처럼)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제대로 사용해야한다고 하며, 아이들과 늘 대화 창구를 열어 놓기를 제안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아이를 믿어주고 부모가 일관성을 유지해야한다고 당부하며 가이드 활용법도 마련해 두었다.

 

본론으로 들어가면,

1: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몸을 탐구해요.

2: 내 몸은 나의 것!

3: 성폭력에 대하여; ‘좋은접촉과 나쁜접촉?

4: 몸에도 경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세요

5: 내 몸 안에는 나만의 경보 시스템이 있어요.

6: 존중과 동의를 가르쳐요.

7: “싫어요.”라고 말하는 연습

8: 동감은 존중을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9: 아이가 설정한 경계선을 존중하세요.

10: 아이는 부모의 거울입니다.

11: ‘믿을 수 있는 어른네트워크를 만드세요.

12: 아이를 포식자로부터 보호합니다.

로 구성되어 있는데, 책이 작고 얇은 만큼 군더더기가 전혀 없으면서, 위의 경계·동의·존중의 예시처럼 아주 구체적이다. 그러면서도 각 장 끝에는 핵심을 요약해 놓아서 지금 당장 그대로 적용이 가능하다.

 

Q. 제 아이들은 남의 몸을 건드리기 전에는 먼저 물어봐야 한다고 배웠어요. 그중 네 살짜리 아이가 최근에 제 파트너한테 성기를 만져도 되냐고 물어서 그 사람이 안 돼라고 대답했거든요. 그랬더니 아이가 당황해하며 먼저 물어 봤잖아요. 근데 왜 안 돼요?”라고 되묻더군요. 이럴 땐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요?

 

네 살이라, 정말 좋은 시절이네요! 아이들은 참 호기심도 많고 질문도 많은 존재죠. 하지만 네 살밖에 안 됐다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면 안 돼요. 오히려 어린아이니까 단순하고 딱 부러지게 대답해줘야 합니다. (단호하게 말하는 것과 무섭게 말하는 것은 다르다는 걸 명심하세요!)이런 경우 적당한 대답은 다음과 같겠죠. “먼저 물어본 건 잘한 일이야. 하지만 먼저 물어봤어도 상대에게는 좋다거나 싫다고 대답할 권리가 있어. 게다가 다른 사람의 성기는 물어 보는 걸 떠나서 건드리면 안 되는 부위란다. 다른 사람도 네 성기를 건드리면 안 되고.” 이렇게 말해 준다면 신체 경계의 중요한 부분을 짚어줄 수 있겠죠.(169)

 

그것으로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12장이 끝난 후에는, 저자가 30년 간 전 세계 부모를 대상으로 하면서 받은 질문 중에서 선별해 자주 듣는 질문과 답변을 실어 놓았으며, 맨 끝에는 참고할 국내·국외 도서까지 알뜰히 추천해 놓았다.

 

자칫 이 책너의 몸은 너의 것이야를 어린자녀를 둔 이들에게만 필요한 책이라고 오해하는 이들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잠시 생각을 달리해보면, 우리 모두 반드시 읽어야할 필독서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아이들을 이미 어느 정도 키운 이들은 너무 잘 알고 있겠지만, 자녀를 키우면서 가족들과 특히 부모님 세대와 자녀교육으로 인해 갈등을 빚은 경험들을 갖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아이들에게 특별히 성교육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성에 대한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하는 것을 목격하면서도, 불편한 감정을 내색하지 못하고 넘어간 기억이 많기 때문이다.

 

각 나라 문화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가족·우리 남편·우리아들 등, 늘 우리를 지칭하는 한국문화에서는 가족들과의 끈끈함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상태인 만큼, 모두가 제대로 알고 있어야, 내 아이를 비롯한 우리 미래세대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성교육이 정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몸의 주권자로 곧게 서는 것과 동시에 사람과 사람을 존중할 때, 아이는 비로소 자기 자신의 성을 온전히 누리면서도 사회의 일원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이념을 바탕으로 한, 이 책너의 몸은 너의 것이야의 저자 슈뢰더 박사의 경계존중 성교육은 현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성교육의 패러다임으로 전 세계 부모로부터 큰 호응을 받고 있다고 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해 가는 세상에서 부모가 된다는 것은 배움의 연속이다. 세상을 살아가며 터득해야 할 기본적인 윤리관을, 나와 내 가족 이웃들이 함께 공유했으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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