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셔가의 몰락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에드거 앨런 포 지음, 아구스틴 코모토 그림, 이봄이랑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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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소설이나 추리 소설로 읽어도 무방하지만, 이번에는 작가의 문장묘사에 더 매료되어 읽었다. 고전의 참맛을 추리 소설에서도 느끼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처음에는 재미있는 공포소설로 읽더라도, 두 번째는 절묘하게 묘사된 글의 아름다움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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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셔가의 몰락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에드거 앨런 포 지음, 아구스틴 코모토 그림, 이봄이랑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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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셔가의 몰락/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공포영화나 소설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공포소설의 대가라 불리는 에드거 앨런 포를 모르는 이는 없으리라 짐작된다. 어셔가의 몰락을 읽은 지가 워낙 오래되어 그저 생각나는 거라곤 음침한 저택뿐인데, 어쩐지 몸이 오싹해지는 기분이 들곤 했었다. 내용은 잊었어도 몸이 기억하고 반응하는 것이리라. 이번에 문학동네에서 삽화와 함께 시리즈로 다시 나와, 새롭게 만나게 되니 반갑기 그지없다.

 

그해의 흐리고 어둡고 적막한 가을날, 하늘에는 구름이 숨 막힐 듯 낮게 걸려 있는 가운데, 나는 하루종일 홀로 말을 타고 유난히 쓸쓸한 어느 시골 지역을 가로질러 나아갔고, 마침내 저녁의 어스름이 깔릴 때쯤 울적한 어셔가의 저택이 시야에 들어왔다.(9)

 

작품 속 는 어셔가를 떠올리면 자신조차 이유도 모른 채, 알 수 없는 불가사의한 공포에 휩싸인다. 그러면서도 그동안 연락도 하지 않고 지내던 소년 시절의 절친 중 한 명인 로더릭 어셔의 진심 어린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그를 위해 몇 주간이나 그곳에 머물기 위해 어셔가를 찾아간다.

 

예전부터 어셔가는 유난스럽게도 극히 사소하고 일시적인 예외를 제외하면 방계는 허용하지 않고, 가문 전체가 직계혈족으로만 이어져 왔다. 그래서인지 어셔가라는 말은 건물과 가문 모두를 일컫는 것이 되었다. 한마디로 저택과 가문이 동일시 되어버린 것이다.

 

내가 도착한 방은 아주 크고 천장이 높았다. 창문은 길고 폭이 좁고 위쪽 끝이 뾰족했으며, 검은 오크 바닥으로부터 굉장히 먼 곳에 높이 나 있어서 방안에서는 아예 접근할 수 없었다. 희미하고 어슴푸레한 붉은 빛이 격자 창유리를 통해 들어와 개중 두드러진 주변 사물의 윤곽은 충분히 분별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방의 더 깊고 구석진 곳이나 무늬가 새겨진 아치형 천장의 모퉁이까지는 시야가 미치지 않았다. (21)

 

저택에 대한 묘사가 길어 자칫 지루할 수도 있겠으나, 음침한 삽화가 몫을 더해 절로 책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어릴 때처럼 으스스하지는 않았지만 매끄럽게 읽히며, 다음 장이 궁금해 조급하게 책장을 넘기게 된다. 그러면서 황폐하고 우울한 공기 속에서 가 느끼는 슬픔의 공기를 같이 마시는 착각을 일으키기기도 한다.

 

는 짧은 시간에 끔찍하게 변해버린 로더릭의 세상사에 신물이 난 사람의 억지스러운 가식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희한하게도 동정심과 경외감을 느끼며 그의 진심을 확신하기도 한다.

 

나를 초대한 목적과 긴히 만나고자 했던 사정, 내게서 얻고자 하는 위안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자신이 앓는 병의 성격과 관련해 스스로 짐작한 바를 꽤나 상세하게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체질의 문제이자 사악한 가족력이며 치료법을 찾을 가망은 없는 듯했다. (27)

 

틀림없이 금방 지나갈 것이라고 하는 그의 병의 증상은 여러 가지 비정상적인 감각으로 발현되어, 꽤 흥미로우면서도 로 하여금 당혹감을 유발하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무미한 음식만 간신히 먹을 수 있고 특정한 질감의 옷만 걸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꽃향기에도 숨이 막히는 등 다양한 고통이 그를 갉아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공포에 종속되어, 스스로 파멸할 것이라 믿고 불안에 떨며 몸서리치고 있다.

 

저택의 회색 벽과 작은 탑들, 그리고 그것들 모두가 내려다보고 있는 어둑한 호수의 모양새가 마침내 그의 존재가 지닌 사기士氣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30)

 

레이디 매들린의 병은 오랫동안 여러 주치의의 노력을 좌절시켰다. 깊게 자리잡은 무감각, 점차 쇠약해져 가는 육체, 일시적이기는 해도 빈번히 발생하는 부분적 강직성 병증은 일반적이지 않은 증세였다.(32)

 

로더릭 어셔는 하나 남은 유일한 혈육인 누이동생 매들린이, 자신만 남겨두고 떠나는 그것에 대해 두려움이 가장 깊었다. 아마도 그는 매들린과 자신을 거의 한 몸으로 인식한 듯하다. 그러다가 결국 동생이 죽자, 지하실 중 하나에 두 주 동안 그녀의 시신을 안치하기로 한다.

 

마침내 혼자 남은 로더릭과 어셔가의 앞날은 과연 어떻게 될지……. 로더릭과 어셔의 몰락이 궁금증을 유발한다. 예전에 이 책을 읽었을 때는 공포와 흥미가 전부였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에드거 앨런 포는 묘사의 달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리해 나가는 것도 흥미롭지만 문장을 읽어나갈수록, 짧지 않은 문장을 이토록 흥미롭게 묘사해 내기도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아구스틴 코모토의 그림까지 곁들여져 책을 한층 공포로 뒤덮이게 한다.

 

친구를 위해 읽어주는 기사소설 책 속의 책안에도 깊은 묘미가 깃들어 있다. 괴기스러운 삽화가 공포보다는 동키호테를 연상시키켜 잠시 웃음이 일기도 한다.

 

심리소설이나 추리 소설로 읽어도 무방하지만, 이번에는 작가의 문장묘사에 더 매료되어 읽었다. 고전의 참맛을 추리 소설에서도 느끼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처음에는 재미있는 공포소설로 읽더라도, 두 번째는 절묘하게 묘사된 글의 아름다움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그때그때 마음 상태에 따라, 공포소설 대가의 씨앗에 찬란한 새싹을 틔우기를 바란다.

 

우리는 아직 나사를 조이지 않은 관뚜껑을 살짝 비스듬히 열고 그 안에 자리한 이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오라비와 누이의 깜짝 놀랄 만큼 유사한 생김새가 그제야 처음으로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47)

 

들이치는 돌풍의 기세에 우리의 발이 거의 바닥에서 들릴 뻔했다. 과연 폭풍이 몰아치기는 하지만 황량하게 아름다운 밤, 공포와 아름다움이 극도로 탁월한 밤이었다. (55)

 

주변을 부유하며 저택을 완전히 감싼 채 희미한 광을 내는, 분명하게 식별 가능한 기체의 부자연스러운 빛 속에서, 주변 지근거리에 있는 지상의 모든 사물뿐 아니라 요동치는 거대한 수증기 덩어리의 밑면까지도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56)

 

미치광이! 장담하건대 그녀는 지금 저 문밖에 있어”(68)



태그#왓츠인마이블로그#어셔가의몰락#공포소설#두려움#에드거앨런포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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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의 삶은 이지하지 않다
채도운 지음 / 삶의직조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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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속에는 지극히 평범하게 보이는 삶 속에 젖어 들어, 절대 바래지 않는 가부장제가 아직도 고스란히 숨 쉬며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한다. 여러 가지가 다 그렇겠지만 유독 이 책은 아마도 살아온 이력이나 연령대에 따라서, 아주 다른 느낌으로 다가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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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의 삶은 이지하지 않다
채도운 지음 / 삶의직조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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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진의 삶은 이지하지 않다/채도운

(청춘의 기대, 마흔의 도마, 노년의 반지/ 외면한 선택들이 만나 서로를 등 떠민다.)



 

출판사의 책 소개와 제목에 이끌려 선택한 책이, 가끔 실망을 시켜 난감할 때가 있다. 취향의 문제라고 치부하기에도 민망한…… 그럴 땐 오히려 넘쳐나는 정보나 인쇄물이 원망스럽기도하다. 그런 면에서 이번 선택은 성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책을 꽤 읽는 편이라, 어떨 땐 책 제목만으로는 읽은 책인지 읽지 않은 책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그래서 가능하면 읽은 책은 기록하려고 애쓰는 편인데, 그것도 쉽지는 않다. 채도운 작가 이름만 얼핏 들었을 뿐, 책을 읽은 기억은 없다. 그래서 더욱 신선했다.



 

짧은 세 편의 단편을 모은 이 책이진의 삶은 이지하지 않다드림래더, 도마 위의 생, 그리고 표제작 이진의 삶은 이지하지 않다로 구성되어 있다. 세 편 모두 큰 울림으로 다가왔는데, 회갑이 지난 나에게는 그 중 표제작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소설 안에 소설(액자소설)이 들어 있어서, 주인공 이진과 소설 속의 미아의 삶을 비교해가며 읽었다. 아니 어쩌면 나의 삶을 돌아보며, 그들의 삶과 함께 비교하며 읽었다고 하는 게 오히려 정확할 수도 있겠다.

 

출산으로 늘어진 뱃가죽, 건조해서 하얗게 드러난 다리, 거뭇거뭇한 무릎과 어느새 자라난 겨드랑이털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는 낯설지 않은 익숙하기 그지없는 몸이었다. 남편과 아이도 미아라고 여기는 자연스러운 몸이었다. 미아는 깨달았다.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상태가 실은 미아에게는 굉장히 낯선 상태라고 말이다. (83)

 

이때부터 미아는 일상의 규칙을 깨뜨리며 변화하기 시작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액자소설 속 주인공 미아의 갑작스러운 변화는 이해가 되면서도 너무 급작스럽기도 하다.

 

김이진 님께,

어쩌면 당신도 한때 미아였을수도.

어쩌면 당신이 미래에 미아가 될지도.

어쩌면 이미 수많은 미아를 만나고 지나쳐 왔을 수도.

드러내지 못하고, 알려지지 못하고, 기록되지 못한 미아를 위해. -하이안(88)

 

반면 이진은 어느 날 비슷한 연배의 자신과는 너무 다른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은, 작가 하이안의 삶을 목격하고 갑자기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그녀의 손에서 반짝이는 은반지에 집착한다. 그녀는 그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보 같은 짓이라고 속으로 뇌이면서도, 이진에게 공감이 간다. 비록 외견상 고상해 보이지는 않지만, 이진의 삶도 충분히 반짝이는데, 아무도 그걸 알려고 하지 않고 이진 자신조차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 시들어 간다.



 

여기에 수록된 단편소설은 잔잔하게 읽히며 내용 또한 요란스럽지 않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언뜻 행복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깊은 절망에 빠져들기도 한다. 짧지만 강렬하게 다가오는 책이다.

 

세상은 많이 달라졌고, 심지어 여성 상위시대인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그렇기만 할까?

 

이어 장면이 바뀌고 하이안이 마이크를 들고 서 있었다. 마이크를 쥔 그녀의 손에서는 가느다란 금반지가 반짝이고 있었다. (116)

 

하이안에게는 그저 장신구일 뿐인 반지 하나를 위해, 이진은 많은 것을 보상으로 내 놓아야 했는데…….

 

아들이 셋인 나는 아파도 입원하지 않으면 아무도 챙겨주지 않아, 스스로 끼니를 해결하거나 굶어야 한다. 결국, 아플 수도 없다는 얘기다. 지금은 전업주부니까 그러려니 하지만 소득이 있을 때도 나의 일은 절대 줄어들지 않았다. 외롭고 힘든 순간 책을 읽으며 애써 다독여왔다. 절망하고 또 절망하는 순간 미아와 이진이 될 것 같다. 아니 이미 우리 마음속에는 미아와 이진이 들어 있다. 다만 반항조차도 하지 못하고 숨을 막고 살고 있을 뿐이다.

 

부족한 걸 알면서도 책을 낼 수밖에 없었던 건,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서른 중반의 나이, 제 주변에는 아직도 취업을 못 하거나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이 많습니다. ‘취업과 결혼이 인생에서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고들 하지만, 그들 모두 취업과 결혼을 바라지만 포기할 뿐입니다. 임신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일 년 단위의 계약서에 사인합니다. 친구들을 볼 때마다 청년의 소진이 얼마나 안타까운지 생각합니다. 그들이 얼마나 착하고 또 근면 성실한지 알기 때문에 마음은 무겁습니다. (139_작가의 말 중에서)

 

꿈 사다리는 청년에게 꿈을 꾸지 못하게 하고, 도마 위에서는 자연스레 폭력이 재생된다. 피땀 흘려 살아온 생은 추하게 일그러지며 노년을 멍들게 한다. 그렇다면 반짝반짝 빛나는 삶은 과연 누구의 몫이라는 걸까?

 

이 책 속에는 지극히 평범하게 보이는 삶 속에 젖어 들어, 절대 바래지 않는 가부장제가 아직도 고스란히 숨 쉬며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한다. 여러 가지가 다 그렇겠지만 유독 이 책은 아마도 살아온 이력이나 연령대에 따라서, 아주 다른 느낌으로 다가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제 영화 “8번 출구를 봤다. 이 책과 겹쳐져서 머리가 조금 복잡해지기도 했다. 나는 지금 어디쯤에서 헤매고 있을까? 이제 출구를 찾기보다는 안주하고 싶은 욕망이 나를 헷갈리게 한다. 그래도 이 책의 작가는 미아가 되지 말고 출구를 찾아 살아내라고 하겠지……? 드러내지 못하고, 알려지지 못하고, 기록되지 못한 이 땅의 미아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 작고 가볍지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이 책을 슬며시 추천한다. 채도운 작가의 다른 책도 궁금하다.



태그#왓츠인마이블로그#이진의삶은이지하지않다#채도운#삶의직조#소설#드림래더#도마위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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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치매도 멈추게 한다
김동선 지음 / 샘터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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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사랑은 치매도 멈추게 한다/ 김동선

(노년의 병으로부터 나와 가족의 삶을 지키는 법)




얼마 전에도 공원에 우양산을 두고 왔다. 원래 잘 잃어버리는 편이라, 웬만하면 눈에 띄는 곳에 두거나 손에서 잘 놓지 않는데 이제는 그것마저 가끔 잊곤 한다. 오늘도 이 글을 쓰다가 손목이 아파서 보호대를 착용해야지하면서 방으로 들어갔는데,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아 컴퓨터로 돌아와서야 생각나 다시 방에 들어가서 가져와 착용했다. 물론 건망증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예전보다 점점 심해지는 것은 사실이니 염려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요양서비스 플랫폼 조인케어와 사람중심케어 실천네트워크의 대표를 맡고 있다는 김동선 작가는 치매에 걸리더라도 나다운 해피엔딩을 꿈꾸며이 책을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는 치매에 대해 생각할 때 그 사람의 치매가 언제 발병했는지, 현재 상태는 어떠한지, 어떤 문제 행동을 보이는지에만 관심을 갖는다. 그 사람의 인생과 청춘은 어땠는지, 첫사랑은 누구였는지, 자녀들은 그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지 등 모든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현재 치매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부정적이고 편견에 가득차 있다. 치매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나이를 먹고 노인이 되는 그것마저도 두려워한다. 누구나 늙어서 노년기에 접어드는데도 말이다. (56)

 

어제까지의 희망이 치매 진단을 받는 것으로 절망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치매 예방은 단지 치매에 걸리지 않기 위한 노력뿐이 아니라 치매로 진단받은 후 더 진행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활동을 포함해서 이해해야 한다. (65)

 

전문가들은 간혹 우편함의 구멍을 통해 세상을 보는 우행을 저지른다. 치매를 가진 사람을 대하는 이들의 머리 속에 쌓인 아밀로이드베타만 보고 있는지 모른다. 환자에게는 자신의 방식으로 건강을 지키고 삶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회복력이 있음을, 그의 곁을 지키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 버리는지도 모른다. (81~82)

 

의학기술이 발달하고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찾아오는 치매는 어쩌면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내 몸에 생긴 사건과 상처가 쌓이고 쌓인 결과이자 수고로운 삶에 대한 훈장일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니 치매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요양 시설을 견학하다 보면 직원들이 입주자에게 저 사람은 치매예요라고 말하는 것을 자주 본다. 치매라는 호칭에 의해 그 사람의 원래 모습은 가려지고 만다. 만약 내가 치매에 걸리면 치매 노인으로 불리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저분은 작가였지만 지금은 치매를 앓고 있어요라고 소개해 준다면 한결 만족스러울 것이다. (131)

 

치매에 걸렸다고 해서 그 사람의 정체성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당연한 듯 그렇게 생활하고 있다.

 

매일 똑같은 것을 먹고 똑같은 패턴으로 살았지만 노후에 이른 이들의 인지 건강과 삶의 모습은 매우 달랐다. 100세에도 여전히 건강한 수녀가 있는가 하면 비교적 젊은 나이에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수녀도 있었다. 또 알츠하이머 병변이 있음에도 인지 및 신체 기능이 잘 유지된 수녀도 있었다. (136)

 

치매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게 아님을 실감하게 되는 대목이다. 치매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20대의 삶에서도, 치매의 단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하니 우리는 평생 치매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 나이 60대 초반인데 고혈압약을 복용한 지 10년이 넘었다. 워낙 병원에 가기 싫어하는 편이라 처음에는 짜증이 났다. 감기몸살로 한 달을 앓아도 약으로 때우다가 도저히 안 나으면 그때야 병원을 찾는데,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야 하는 게 너무 싫고 매일 약을 먹어야 하는 자신이 답답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병원에 가기 싫어하는 자신이 고혈압약으로 인해 매달 병원을 찾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불편한 부분을 치료하고 미리 예방접종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치매도 우리가 조금만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꾼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많은 치매 환자들과 가족들의 삶이 풍요로워질지도 모른다.

 

내가 치매에 걸리면 아침에는 꼭 뜨거운 카페라떼와 사과 하나를 주세요. 그럼 제가 기운을 차리고 일과를 시작할 수 있을 거예요” “하루에 꼭 한 번은 산책을 하게 해 주세요. 내가 걸을 수 있는 한, 맑은 공기와 햇살을 쐴 수 있도록 산책을 도와 주세요.”“내가 눈이 어두워서 책을 읽지 못하면 책을 읽어주세요. 미스터리나 SF 소설을 듣고 싶어요.(168)

 

현재 나는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잊지 않기 위해, 우선 혈압약을 챙겨 먹는다. 그러고 나서 남편이 일어날 때까지 씻고 나서 대체로 책을 읽는다. 그런데 아침에는 아무래도 정신이 안 차려져서, 애들이 먹지 말라고 하는 커피믹스를 꼭 한 잔 마신다. 약이랑 겹쳐서 먹을 수 없어서 조금 시간을 두고서…….

 

“제가 치매에 걸리면 아침에 꼭 커피믹스를 한 잔 주세요. 그러면 저는 상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평생 책을 좋아해서, 다른 건 모두 양보해도 책은 집에 쌓아놓고 읽으며 살았어요. 그러니 하루에 아주 조금씩이라도 책을 읽어주세요. 그러다가 햇살 좋은 날은 가끔 산책도 하고 싶어요. 그러면 저는 조금 더 행복해질 것 같아요.”

 

날마다 조금씩 달라질지도 모르지만 내가 치매에 걸렸다고 가정하고 한 번 바램을 적어보았다.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데도 내가 원하는 바를 밀어붙인다면 이는 자율성과 주체성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충분히 존중받는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타인을 배려하기도 하는 법. 친절하게 설명하고 존중해 준다면 어느 정도의 타협은 가능할 것이다. 물론 치매니까 쉽게 이해하고 수용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180)

 

지금도 가끔 아이들에게 구박(?)을 받기도 한다. 특히 디지털 기기 사용에서는 100%. 뭘 좀 물으면, 아이들은 다다다다 설명해 준다. 절대 한 번에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러면 그것도 못 알아듣냐고 또 핀잔을 준다. 설움이 밀려오지 않을 수가 없다. 자기들이 못 알아들을 때는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알려주고 또 알려 주었는데 생각하면서…….

 

가족이 돌봄을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울 때가 있다. “치매에 걸리더니 사람이 변해 버렸어. 치매란 정말 고약한 병이야” “일부러 나를 괴롭히려고 하는 것 같아. 왜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몰라?” “정말 이기적이야. 주간보호센터라도 다니면 좋을 텐데, 이렇게 비협조적이라니라는 말들을 자주 한다.

미국의 철학자 밀턴 메이어 오프Milton Mayeroff진정한 돌봄이란 돌봄 제공자가 자신의 생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이 스스로 의미 있는 결정을 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 방식대로 돌봄을 하는 것이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200)

 

어쩌면 인간은 타인의 입장을 고려하기가 어렵게 태어난 것 같다. 그렇더라도 조금만 생각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책사랑은 치매도 멈추게 한다를 내 자식을 비롯하여 모든 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읽는 내내 계속 들었다.

 

치매 노인의 정체성을 지키는 돌봄은 그 사람을 존경하는 것에서 비롯한다. 상대의 경험과 연륜을 높이 여기며 그에 맞게 대해야 한다. 노년기는 상실의 시기이기도 하다. 가까운 친구와 배우자가 떠나고 그리고 과거 가능했던 많은 일이 점차 어려워지고 기억마저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때 주변 사람들이 어린아이 취급까지 한다면 이는 더 큰 상처를 주는 일이다. 특히 혼자서 화장실을 못 갈 때 기저귀를 착용하자고 하면 수치심을 넘어 대성통곡을 한다. 스스로 용변을 못 보니 인간으로서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232)

 

지난번에 시골 언니한테 갔을 때의 일이다. 회를 주문하고 기다리기가 지루해, 언니만 남기고 바닷가 주변을 산책했다가 돌아왔더니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있었다. 언니가 전화기를 차에 두고 내린 줄도 모르고, 회가 준비되면 당연히 전화하리라 생각한 내 착오였다. 그래도 평소보다 유난히 화를 내는 게 조금 의외이긴 했다. 그런데 언니네 집으로 가면서 비로소 이유를 알게 되었다.

 

언니가 그토록 화가 난 것은 동생인 나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가 싫었기 때문이었다. 전화기를 차에 놓고 내려서 가게 전화로 나와 통화하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전화번호가 생각나지 않더라는 것이다. 언니는 그런 자신이 너무 싫었다고 한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실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을 책하던 언니를 대하면서 그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니 화장실도 못 가는 처지가 되어버리면 우선 스스로가 얼마나 한심하고 싫겠는가? 거기에서 벗어날 사람은 실제 아무도 없을 것 같다. 그런데도 우리는 치매나 노인을 존중하지 않는다. 바로 미래의 내 모습일 수도 있는데…….

 

그래도 이 책을 읽다 보면 작은 희망이 생긴다. 나라가 다 해결해 주지 못하면 우리가, 또 이웃이 함께하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요즘은 옛날보다 장애인이 많이 눈에 띈다. 갑자기 장애인이 많아져서라기보다는 숨어 있던 사람들이 조금씩 밖으로 나오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매우 바람직하다. 치매도 우리 삶의 당연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서로 이해하고 함께한다면 결코 두려워할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늙고 아파도 나답게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동체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치매에 관한 종합백과사전같은 이 책사랑은 치매도 멈추게 한다에 찬사를 보낸다. 주변 사람들과 연결될 때 치매는 약해진다고 하니, 치매 100만 명 시대에 치매와 관련되어 고통받는 모든 이들이,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고 실천으로 이어가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사랑은치매도멈추게한다#김동선#샘터사#치매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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