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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되어 살아낼게 - 세월호 생존학생, 청년이 되어 쓰는 다짐
유가영 지음 / 다른 / 202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 / 유가영
(세월호 생존학생, 청년이 되어 쓰는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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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 주지 않는 세상을 원망한 적이 있어요. 그 시절의 우리는 참사의 당사자였지만 어른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는 세상이 더 이상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어요. 세상은 시련을 겪은 누군가가 그걸 훌륭하게 극복해내야, 그제야 그 사람을 바라봐 준다고 생각했습니다.(005쪽)
세월호 참사를 겪은 세대가 이만큼 자랐는데도 아직 세상은 변하지 않은 것 같아요. 왜 사람들은 모르는 걸까요. 이런 일들을 계속 무시하고 지나친다면 그다음 차례는 자신과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걸. 그걸 막기 위해 왜 남겨진 사람들만 몸부림쳐야 하는 걸까요. 저는 세상이 변했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 다음 세대인 아이들도, 더 성장해 나갈 저의 세대 사람들도 우리 앞에 벌어진 참사에 두 눈 뜨고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해요.(009쪽)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책을 좋아해 도서관 사서가 꿈이었던 소녀가, 고등학교 2학년 들뜬 마음으로 수학여행을 떠나며 모든 것이 달라진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2014년 4월 16일 그날…. 단원고등학교 학생 250명과 함께 세월호에 탑승한 이들의 꿈이 바다 속에 묻혀버렸다.
이 책≪바람이 되어 살아낼게≫의 저자인 가영 학생과 친구들은 4월 16일 아침에 식사를 하면서 문득 식판이 기울어져 있음을 깨닫게 되지만, 단지 배가 커브를 돌고 있어서 그런 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배가 기울어 가고, 마침내 완전히 멈춘 것 같이 느껴져 친구의 도움으로 간신히 구명조끼를 착용한 채 상황이 나아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한참 뒤 안내 방송은 움직이면 위험하니까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그러고도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헬기를 타고 갈 사람은 나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가영은 망설이고 있다가 친한 친구의 권고로 헬기에 올라, 마침내 생존자가 되어 서거차도라는 작은 섬에 도착할 수 있었다.
1분1초의 시간이 무척 길고 더디게 갔습니다. 하지만 전원구조라는 뉴스 속보와 달리 한참을 기다려도 섬에 새로 도착하는 아이들은 없었어요. 멀리 하늘을 계속 쳐다보았지만 더 이상 헬기는 오지 않았어요. 조금씩 불안한 마음이 섬에 있는 아이들에게 번졌습니다.(033쪽)
불안한 마음은 곧 현실이 되어,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은 75명 외에는 끝내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
우리는 친구와 선생님들의 장례식장에 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어요. 우리가 하나둘 장례식에 가는 게 알려지면 기자들이 몰릴 수 있고 그럼 유가족이 조용히 장례식을 치르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었어요. 상황은 이해하지만 친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없다는 현실은 가슴 아프고 견디기 힘들었습니다.(043쪽)
생존자인 저자는 세상과 단절되어 병원에 갇힌 채 친구들은 물론이고, 선생님들과도 마지막 인사조차 나눌 수 없었다. 그렇게 지내다가 두 달 열흘 만에 돌아간 학교는, 모든 게 달라져 일상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그날의 기억과 친구들에 대한 죄책감과 아쉬움은 불안과 공포가 되어 자해와 정신 질환으로 이어졌고, 주위의 시선과 인터넷 기사에 달린 악플들은 생존자들의 삶을 갉아 먹어갔다. 물론 모두 공격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저자는 택시 기사의 작은 배려가 현재까지도 가슴에 남아 큰 위로가 되고 있음을 고백하기도 한다.
요즘도 때때로 찾아드는 악몽이 저를 그날의 바다로 데려갑니다. 해일이 밀려오는 꿈, 내게 닥칠 위기를 느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꿈, 주위 사람이 나를 떠나가는 꿈…. (145쪽)
세월호에 관련된 책은 시중에 무수히 많이 나와 있다. 안산에 살고 있다고 모두 관심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가능하면 떠도는 기사보다는 그들의 육성을 듣고 싶어 그동안 나름대로 책을 많이 찾아서 읽었다.
세월호 피해자 집중지역에 살면서 마을활동가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보니, 유가족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기도 했고, 책에 나오는 ‘쉼표’라는 공간과도 작은 인연이 있어, 단원고등학교 근처인 그 곳에서 성인이 되어 아이들에게 봉사하는 생존학생들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가영학생의 이름도 왠지 낯설지 않고 ‘운디드 힐러’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도 책을 받아보니 진솔하게 쓰여 있어서 받자마자 끝까지 읽고서야 덮을 수 있었다.낙인이 되어버린 세월호 생존자라는 타이틀로 인해 힘겹게 살면서, 어떻게든 날아올라 친구들 몫까지 살아내고 싶은 그 마음을, 모두 알 수는 없겠지만 가능하다면 응원해 주고 싶다.
절대 겪지 말아야 할 일들을 겪고, 쉽지 않은 여정에서 자신의 길을 한걸음 또 한걸음 개척하며 스스로를 치유하고 이웃도 치유하는 삶의 길을 찾아, ‘운디드 힐러’(상처받은 치유자라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함)가 되어 고백하는 진솔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 마음이 짐작되어 절로 애틋함이 생긴다.
4.16세월호 참사 희생자나 10.29이태원 참사 희생자들도 아마 자신들이 그 피해자가 되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피해학생이 청년이 되어 9년 만에 기록한 일들을 접하며, 그동안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던 일들이, 나와 가족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가슴 깊이 새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도 지난 3월에 친언니를 심장마비로 잃었다. 자다가 영영 못 일어나는 것은 정말 남의 일이고, 뉴스에나 나올 일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만큼 사고와 재난은 우리 멀리 있지 않다. 우리가 안전한 사회 만들기에 다 같이 동참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원고등학교에 4.16세월호 참사의 흔적이 이제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 YES24 리뷰어 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