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셔가의 몰락 ㅣ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에드거 앨런 포 지음, 아구스틴 코모토 그림, 이봄이랑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0월
평점 :
*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셔가의 몰락/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공포영화나 소설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공포소설의 대가라 불리는 에드거 앨런 포를 모르는 이는 없으리라 짐작된다. 《어셔가의 몰락》을 읽은 지가 워낙 오래되어 그저 생각나는 거라곤 음침한 저택뿐인데, 어쩐지 몸이 오싹해지는 기분이 들곤 했었다. 내용은 잊었어도 몸이 기억하고 반응하는 것이리라. 이번에 문학동네에서 삽화와 함께 시리즈로 다시 나와, 새롭게 만나게 되니 반갑기 그지없다.
그해의 흐리고 어둡고 적막한 가을날, 하늘에는 구름이 숨 막힐 듯 낮게 걸려 있는 가운데, 나는 하루종일 홀로 말을 타고 유난히 쓸쓸한 어느 시골 지역을 가로질러 나아갔고, 마침내 저녁의 어스름이 깔릴 때쯤 울적한 어셔가의 저택이 시야에 들어왔다.(9쪽)
작품 속 ‘나’는 어셔가를 떠올리면 자신조차 이유도 모른 채, 알 수 없는 불가사의한 공포에 휩싸인다. 그러면서도 그동안 연락도 하지 않고 지내던 소년 시절의 절친 중 한 명인 로더릭 어셔의 진심 어린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그를 위해 몇 주간이나 그곳에 머물기 위해 어셔가를 찾아간다.
예전부터 어셔가는 유난스럽게도 극히 사소하고 일시적인 예외를 제외하면 방계는 허용하지 않고, 가문 전체가 직계혈족으로만 이어져 왔다. 그래서인지 ‘어셔가’라는 말은 건물과 가문 모두를 일컫는 것이 되었다. 한마디로 저택과 가문이 동일시 되어버린 것이다.
내가 도착한 방은 아주 크고 천장이 높았다. 창문은 길고 폭이 좁고 위쪽 끝이 뾰족했으며, 검은 오크 바닥으로부터 굉장히 먼 곳에 높이 나 있어서 방안에서는 아예 접근할 수 없었다. 희미하고 어슴푸레한 붉은 빛이 격자 창유리를 통해 들어와 개중 두드러진 주변 사물의 윤곽은 충분히 분별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방의 더 깊고 구석진 곳이나 무늬가 새겨진 아치형 천장의 모퉁이까지는 시야가 미치지 않았다. (21쪽)
저택에 대한 묘사가 길어 자칫 지루할 수도 있겠으나, 음침한 삽화가 몫을 더해 절로 책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어릴 때처럼 으스스하지는 않았지만 매끄럽게 읽히며, 다음 장이 궁금해 조급하게 책장을 넘기게 된다. 그러면서 황폐하고 우울한 공기 속에서 ‘나’가 느끼는 슬픔의 공기를 같이 마시는 착각을 일으키기기도 한다.
‘나’는 짧은 시간에 끔찍하게 변해버린 로더릭의 세상사에 신물이 난 사람의 억지스러운 가식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희한하게도 동정심과 경외감을 느끼며 그의 진심을 확신하기도 한다.
나를 초대한 목적과 긴히 만나고자 했던 사정, 내게서 얻고자 하는 위안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자신이 앓는 병의 성격과 관련해 스스로 짐작한 바를 꽤나 상세하게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체질의 문제이자 사악한 가족력이며 치료법을 찾을 가망은 없는 듯했다. (27쪽)
틀림없이 금방 지나갈 것이라고 하는 그의 병의 증상은 여러 가지 비정상적인 감각으로 발현되어, 꽤 흥미로우면서도 “나”로 하여금 당혹감을 유발하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무미한 음식만 간신히 먹을 수 있고 특정한 질감의 옷만 걸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꽃향기에도 숨이 막히는 등 다양한 고통이 그를 갉아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공포에 종속되어, 스스로 파멸할 것이라 믿고 불안에 떨며 몸서리치고 있다.
저택의 회색 벽과 작은 탑들, 그리고 그것들 모두가 내려다보고 있는 어둑한 호수의 모양새가 마침내 그의 존재가 지닌 사기士氣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30쪽)
레이디 매들린의 병은 오랫동안 여러 주치의의 노력을 좌절시켰다. 깊게 자리잡은 무감각, 점차 쇠약해져 가는 육체, 일시적이기는 해도 빈번히 발생하는 부분적 강직성 병증은 일반적이지 않은 증세였다.(32쪽)
로더릭 어셔는 하나 남은 유일한 혈육인 누이동생 매들린이, 자신만 남겨두고 떠나는 그것에 대해 두려움이 가장 깊었다. 아마도 그는 매들린과 자신을 거의 한 몸으로 인식한 듯하다. 그러다가 결국 동생이 죽자, 지하실 중 하나에 두 주 동안 그녀의 시신을 안치하기로 한다.
마침내 혼자 남은 로더릭과 어셔가의 앞날은 과연 어떻게 될지……. 로더릭과 어셔의 몰락이 궁금증을 유발한다. 예전에 이 책을 읽었을 때는 공포와 흥미가 전부였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에드거 앨런 포는 묘사의 달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리해 나가는 것도 흥미롭지만 문장을 읽어나갈수록, 짧지 않은 문장을 이토록 흥미롭게 묘사해 내기도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아구스틴 코모토의 그림까지 곁들여져 책을 한층 공포로 뒤덮이게 한다.
친구를 위해 읽어주는 기사소설 ‘책 속의 책’ 안에도 깊은 묘미가 깃들어 있다. 괴기스러운 삽화가 공포보다는 동키호테를 연상시키켜 잠시 웃음이 일기도 한다.
심리소설이나 추리 소설로 읽어도 무방하지만, 이번에는 작가의 문장묘사에 더 매료되어 읽었다. 고전의 참맛을 추리 소설에서도 느끼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처음에는 재미있는 공포소설로 읽더라도, 두 번째는 절묘하게 묘사된 글의 아름다움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그때그때 마음 상태에 따라, 공포소설 대가의 씨앗에 찬란한 새싹을 틔우기를 바란다.
우리는 아직 나사를 조이지 않은 관뚜껑을 살짝 비스듬히 열고 그 안에 자리한 이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오라비와 누이의 깜짝 놀랄 만큼 유사한 생김새가 그제야 처음으로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47쪽)
들이치는 돌풍의 기세에 우리의 발이 거의 바닥에서 들릴 뻔했다. 과연 폭풍이 몰아치기는 하지만 황량하게 아름다운 밤, 공포와 아름다움이 극도로 탁월한 밤이었다. (55쪽)
주변을 부유하며 저택을 완전히 감싼 채 희미한 광을 내는, 분명하게 식별 가능한 기체의 부자연스러운 빛 속에서, 주변 지근거리에 있는 지상의 모든 사물뿐 아니라 요동치는 거대한 수증기 덩어리의 밑면까지도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56쪽)
“미치광이! 장담하건대 그녀는 지금 저 문밖에 있어”(68쪽)








태그#왓츠인마이블로그#어셔가의몰락#공포소설#두려움#에드거앨런포
태#두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