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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치매도 멈추게 한다
김동선 지음 / 샘터사 / 2025년 10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사랑은 치매도 멈추게 한다/ 김동선
(노년의 병으로부터 나와 가족의 삶을 지키는 법)






얼마 전에도 공원에 우양산을 두고 왔다. 원래 잘 잃어버리는 편이라, 웬만하면 눈에 띄는 곳에 두거나 손에서 잘 놓지 않는데 이제는 그것마저 가끔 잊곤 한다. 오늘도 이 글을 쓰다가 손목이 아파서 ‘보호대를 착용해야지’ 하면서 방으로 들어갔는데,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아 컴퓨터로 돌아와서야 생각나 다시 방에 들어가서 가져와 착용했다. 물론 건망증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예전보다 점점 심해지는 것은 사실이니 염려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요양서비스 플랫폼 ㈜조인케어와 사람중심케어 실천네트워크의 대표를 맡고 있다는 김동선 작가는 ‘치매에 걸리더라도 나다운 해피엔딩을 꿈꾸며’ 이 책을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는 치매에 대해 생각할 때 그 사람의 치매가 언제 발병했는지, 현재 상태는 어떠한지, 어떤 문제 행동을 보이는지에만 관심을 갖는다. 그 사람의 인생과 청춘은 어땠는지, 첫사랑은 누구였는지, 자녀들은 그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지 등 모든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현재 치매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부정적이고 편견에 가득차 있다. 치매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나이를 먹고 노인이 되는 그것마저도 두려워한다. 누구나 늙어서 노년기에 접어드는데도 말이다. (56쪽)
어제까지의 희망이 치매 진단을 받는 것으로 절망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치매 예방은 단지 치매에 걸리지 않기 위한 노력뿐이 아니라 치매로 진단받은 후 더 진행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활동을 포함해서 이해해야 한다. (65쪽)
전문가들은 간혹 우편함의 구멍을 통해 세상을 보는 우행을 저지른다. 치매를 가진 사람을 대하는 이들의 머리 속에 쌓인 아밀로이드베타만 보고 있는지 모른다. 환자에게는 자신의 방식으로 건강을 지키고 삶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회복력이 있음을, 그의 곁을 지키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 버리는지도 모른다. (81~82쪽)
의학기술이 발달하고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찾아오는 치매는 어쩌면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내 몸에 생긴 사건과 상처가 쌓이고 쌓인 결과이자 수고로운 삶에 대한 훈장일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니 치매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요양 시설을 견학하다 보면 직원들이 입주자에게 “저 사람은 치매예요”라고 말하는 것을 자주 본다. 치매라는 호칭에 의해 그 사람의 원래 모습은 가려지고 만다. 만약 내가 치매에 걸리면 치매 노인으로 불리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저분은 작가였지만 지금은 치매를 앓고 있어요”라고 소개해 준다면 한결 만족스러울 것이다. (131쪽)
치매에 걸렸다고 해서 그 사람의 정체성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당연한 듯 그렇게 생활하고 있다.
매일 똑같은 것을 먹고 똑같은 패턴으로 살았지만 노후에 이른 이들의 인지 건강과 삶의 모습은 매우 달랐다. 100세에도 여전히 건강한 수녀가 있는가 하면 비교적 젊은 나이에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수녀도 있었다. 또 알츠하이머 병변이 있음에도 인지 및 신체 기능이 잘 유지된 수녀도 있었다. (136쪽)
치매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게 아님을 실감하게 되는 대목이다. 치매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20대의 삶에서도, 치매의 단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하니 우리는 평생 치매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 나이 60대 초반인데 고혈압약을 복용한 지 10년이 넘었다. 워낙 병원에 가기 싫어하는 편이라 처음에는 짜증이 났다. 감기몸살로 한 달을 앓아도 약으로 때우다가 도저히 안 나으면 그때야 병원을 찾는데,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야 하는 게 너무 싫고 매일 약을 먹어야 하는 자신이 답답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병원에 가기 싫어하는 자신이 고혈압약으로 인해 매달 병원을 찾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불편한 부분을 치료하고 미리 예방접종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치매도 우리가 조금만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꾼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많은 치매 환자들과 가족들의 삶이 풍요로워질지도 모른다.
“내가 치매에 걸리면 아침에는 꼭 뜨거운 카페라떼와 사과 하나를 주세요. 그럼 제가 기운을 차리고 일과를 시작할 수 있을 거예요” “하루에 꼭 한 번은 산책을 하게 해 주세요. 내가 걸을 수 있는 한, 맑은 공기와 햇살을 쐴 수 있도록 산책을 도와 주세요.”“내가 눈이 어두워서 책을 읽지 못하면 책을 읽어주세요. 미스터리나 SF 소설을 듣고 싶어요”….(168쪽)
현재 나는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잊지 않기 위해, 우선 혈압약을 챙겨 먹는다. 그러고 나서 남편이 일어날 때까지 씻고 나서 대체로 책을 읽는다. 그런데 아침에는 아무래도 정신이 안 차려져서, 애들이 먹지 말라고 하는 커피믹스를 꼭 한 잔 마신다. 약이랑 겹쳐서 먹을 수 없어서 조금 시간을 두고서…….
☞ “제가 치매에 걸리면 아침에 꼭 커피믹스를 한 잔 주세요. 그러면 저는 상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평생 책을 좋아해서, 다른 건 모두 양보해도 책은 집에 쌓아놓고 읽으며 살았어요. 그러니 하루에 아주 조금씩이라도 책을 읽어주세요. 그러다가 햇살 좋은 날은 가끔 산책도 하고 싶어요. 그러면 저는 조금 더 행복해질 것 같아요.”
날마다 조금씩 달라질지도 모르지만 내가 치매에 걸렸다고 가정하고 한 번 바램을 적어보았다.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데도 내가 원하는 바를 밀어붙인다면 이는 자율성과 주체성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충분히 존중받는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타인을 배려하기도 하는 법. 친절하게 설명하고 존중해 준다면 어느 정도의 타협은 가능할 것이다. 물론 치매니까 쉽게 이해하고 수용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180쪽)
지금도 가끔 아이들에게 구박(?)을 받기도 한다. 특히 디지털 기기 사용에서는 100%다. 뭘 좀 물으면, 아이들은 다다다다 설명해 준다. 절대 한 번에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러면 그것도 못 알아듣냐고 또 핀잔을 준다. 설움이 밀려오지 않을 수가 없다. 자기들이 못 알아들을 때는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알려주고 또 알려 주었는데 생각하면서…….
가족이 돌봄을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울 때가 있다. “치매에 걸리더니 사람이 변해 버렸어. 치매란 정말 고약한 병이야” “일부러 나를 괴롭히려고 하는 것 같아. 왜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몰라?” “정말 이기적이야. 주간보호센터라도 다니면 좋을 텐데, 이렇게 비협조적이라니…”라는 말들을 자주 한다.
미국의 철학자 밀턴 메이어 오프Milton Mayeroff는 “진정한 돌봄이란 돌봄 제공자가 자신의 생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이 스스로 의미 있는 결정을 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 방식대로 돌봄을 하는 것이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200쪽)
어쩌면 인간은 타인의 입장을 고려하기가 어렵게 태어난 것 같다. 그렇더라도 조금만 생각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책《사랑은 치매도 멈추게 한다》를 내 자식을 비롯하여 모든 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읽는 내내 계속 들었다.
치매 노인의 정체성을 지키는 돌봄은 그 사람을 존경하는 것에서 비롯한다. 상대의 경험과 연륜을 높이 여기며 그에 맞게 대해야 한다. 노년기는 상실의 시기이기도 하다. 가까운 친구와 배우자가 떠나고 그리고 과거 가능했던 많은 일이 점차 어려워지고 기억마저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때 주변 사람들이 어린아이 취급까지 한다면 이는 더 큰 상처를 주는 일이다. 특히 혼자서 화장실을 못 갈 때 기저귀를 착용하자고 하면 수치심을 넘어 대성통곡을 한다. 스스로 용변을 못 보니 인간으로서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232쪽)
지난번에 시골 언니한테 갔을 때의 일이다. 회를 주문하고 기다리기가 지루해, 언니만 남기고 바닷가 주변을 산책했다가 돌아왔더니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있었다. 언니가 전화기를 차에 두고 내린 줄도 모르고, 회가 준비되면 당연히 전화하리라 생각한 내 착오였다. 그래도 평소보다 유난히 화를 내는 게 조금 의외이긴 했다. 그런데 언니네 집으로 가면서 비로소 이유를 알게 되었다.
언니가 그토록 화가 난 것은 동생인 나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가 싫었기 때문이었다. 전화기를 차에 놓고 내려서 가게 전화로 나와 통화하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전화번호가 생각나지 않더라는 것이다. 언니는 그런 자신이 너무 싫었다고 한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실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을 책하던 언니를 대하면서 그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니 화장실도 못 가는 처지가 되어버리면 우선 스스로가 얼마나 한심하고 싫겠는가? 거기에서 벗어날 사람은 실제 아무도 없을 것 같다. 그런데도 우리는 치매나 노인을 존중하지 않는다. 바로 미래의 내 모습일 수도 있는데…….
그래도 이 책을 읽다 보면 작은 희망이 생긴다. 나라가 다 해결해 주지 못하면 우리가, 또 이웃이 함께하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요즘은 옛날보다 장애인이 많이 눈에 띈다. 갑자기 장애인이 많아져서라기보다는 숨어 있던 사람들이 조금씩 밖으로 나오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매우 바람직하다. 치매도 우리 삶의 당연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서로 이해하고 함께한다면 결코 두려워할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늙고 아파도 나답게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동체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치매에 관한 ‘종합백과사전’ 같은 이 책《사랑은 치매도 멈추게 한다》에 찬사를 보낸다. 주변 사람들과 연결될 때 치매는 약해진다고 하니, 치매 100만 명 시대에 치매와 관련되어 고통받는 모든 이들이,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고 실천으로 이어가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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