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티 바 매그레 시리즈 17
조르주 심농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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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쓸쓸함이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찾아오거나, 예기치 못하게 갑자기 닥칠 수도 있는 분기점 같은 것이라 해야 할까. 한창 불타오르다가 꺼져 버린 잿더미 같다고도 할 수 있겠다. 과거의 화려하던 시절이 덧없게 흔적으로 남아 있지만 여전히 숨겨진 열정을 가지고 불씨를 갈망하는 잿더미. 이러한 잔불은 언제 어디에서 다시 불을 지필지 알 수 없고, 어떤 식으로 번질지 예상 할 수가 없다. 또 어떤 오해를 불러 일으킬지도.

휴양지로 유명한 앙티브의 어느 별장 단지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조사를 맡게 된 매그레 반장. 상부에서 피해자가 전직 군 첩보원 출신이라 일이 커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미리 들은 상황이다. 사건은 이렇다. 피해자 브라운은 두 명의 여자와 살고 있었다. 그런데 두 여자가 갑자기 짐을 꾸려 도주를 시도하다가 교통사고를 내면서 브라운의 사망이 확인된 것이다. 두 여자의 주장으로는 브라운이 등 뒤에 칼침을 맞은 채로 집에 도착해 끝내 죽어버렸다고 한다. 그럼에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시체와 며칠을 함께 지내다가 끝내 마당에 암매장까지 한 부분에 대한 설명으로는 부족했는데...

고급 휴양지. 전직 스파이. 의문의 살인. 이런 점만 보면 뭔가 엄청난 사건이라는 인상이 확 생길 것이다. 그러나 매그레 반장에게는 그저 불필요한 사족에 지나지 않는다. 겉으로만 보이는 가십 거리에 가까운 이미지일 뿐, 진정한 일상과 거리가 먼 것들이기 때문이다. 대중의 이목을 끌 스캔들에 해당되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 단지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기대할 법한 그런 게 아닐 뿐이다. 아니, 애초에 누군가의 일상에 과도한 관심을 가지며 억측을 내놓는 건 좋지 않은 행동이다. 작중에서도 그러한 시선들이 많이 묘사되다 보니 매그레 반장 역시 불편해 하는 걸 볼 수 있다. 무엇을 보게 되든 한 사람의 삶이 구경거리가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니까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배경인 앙티브에 대한 부분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의 칸 영화제로 유명한 칸과 가까운 휴양지라 그런지 그 당시에도 휘황찬란한 했던 모양이다. 이러한 곳에서 일어난 이번 사건은 그 화려함 뒤에 숨겨진 이면에 해당된다. 사실 화려한 휴양지 같은 곳에 존재하는 이면은 생각보다 흔한 일이다. 눈부신 빛이 존재하는 만큼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다. 그림자 속에는 양지에서의 삶을 잊지 못하거나 그 밖에 다른 이유로 떠나지 못하고 떠도는 이들이 많다. 이들에게 갑자기 활력을 불러 일으키는 도화선이 발생한다면 그건 희극일까, 아니면 비극일까.

피해자인 윌리엄 브라운의 모든 것으로부터 시작된 사건이라는 점에서 참으로 장대하고 쓰디 쓴 드라마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 처음으로 보게 된 유흥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는 과정. 불빛만 보고 무작정 달려드는 나방과 같은 인생으로 결국 도달하게 된 곳. 쓸쓸함 속에서 방황하는 브라운으로 인해 생겨난 인연과 그로 인해 발생한 문제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단순히 철없는 남자의 방탕한 인생이라 하기에 너무나도 허무하다. 여기에서 돈이란 그저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진정한 본질은 공허함을 채워줄 심리적인 안정감이다. 잘못한 것이 있다면 이걸 찾아가는 방식이다. 가까이에 있을 잔잔하고 오래가는 은은한 불을 찾지 않고, 오래가지 못할 크고 화려하게 불만 바랬으니 말이다.

어떻게 보면 각자가 추구하는 행복의 결이 달라서 발생한 일이라 할 수 있다. 흔해 빠진 치정 싸움이라고 보기에 쓸쓸함의 무게가 너무나 커서 그렇다. 제목이자 작중에서 주요 배경이 되는 리버티 바에서 그게 확 느껴진다. 스스럼 없이 친숙한 분위기이면서 화려한 세계의 밑바닥이나 다름 없는 음울함이 감도는 곳. 활기라고 전혀 없는 이런 곳에 기회가 찾아온다면 그건 놓치고 싶지 않을 마지막 순간 같을 것이다. 희극에 가까운 드라마라고 해도 되겠다. 그랬기에 이번 사건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본다. 그 어떤 다른 의도나 재물에 대한 탐욕 없이 공허함에서 떠오른 진실된 사랑이었기에. 겉으로만 보이는 모습과 그 안에 숨겨진 진실된 모습의 차이를 보며 가십이 가진 문제점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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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의 항구 매그레 시리즈 16
조르주 심농 지음, 최애리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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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간의 관계는 보이는 것이 전부라 믿고 싶을 때가 많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누가 어떤지 잘 안다고 여겼는데 전혀 모르던 사실이 자연스럽게 존재하고. 그럴 리가 없다고 확신하던 정보가 사실은 전혀 달랐다는 현실이 밝혀지고. 이러면 그 동안 알고 있던 모습들은 대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마치 안개 속에서 마주친 누군가와 마찬가지 아닌가. 여기서 진짜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건 따로 있다. 숨겨진 일이 어떠한 성격인가. 보통 숨긴다 하면 나쁜 것만 떠오르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란 언제나 존재한다. 의도적으로 숨긴 건지, 아니면 숨길 수밖에 없던 건지 말이다.

파리 시내에서 발견된 어느 신원 미상자가 알고 보니 한 달 전에 위스트르앙에서 실종된 항만 관리소장이라는 걸 알게 된 매그레 반장. 그는 총에 맞아 두개골에 금이 갈 정도의 치명상을 입고 수술 받은 흔적을 가진 채 기억을 잃은 상태였다. 연락을 받은 하녀를 통해 위스트르앙의 자택으로 돌아가는 길에 동행한 반장은 하루 만에 항만장이 누군가에게 독살 당한 현장을 마주하게 된다. 항만장은 그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을 정도로 청렴한 이미지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럼에도 뭔가를 숨기는 듯한 분위기가 감돌아서 반장은 꺼림직한 느낌만 계속 받게 되는데...

수시로 안개에 휩싸이는 지역 특성처럼 모든 게 제대로 보이지 않는 사건이다. 그냥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지방의 항구 마을. 무엇 하나 숨길 것이 없어 보이는 동네 사람들. 이러한 곳에서 심상치 않은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정보가 전혀 주어지지 않는 기묘한 상황만 계속 이어진다. 그저 모른다며 애매하게 말을 흐리기만 하는 와중에도 무슨 일은 계속 벌어지고 있다.

분명 적당한 윤곽은 그려지는데 핵심만 쏙 빠져 있는 위화감만 가득해서 이런 상황에 짜증을 내는 반장 만큼이나 답답하게 보일 만도 하다. 그럼에도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많은 편이라 묘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누가, 어떻게, 어디까지 엮인 건지 당최 구분이 안 되니 사건 관계자 모두가 잠재적 용의자나 다름 없다. 정보에 대한 부분 역시 뭔가를 숨긴다는 것만 파악되지, 이걸 누구랑 공유하고 동일한 내용인지도 알 수 없다. 일상을 중심으로 사건의 내막을 파악하는 스타일인 매그레 반장에게는 유독 힘겨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충은 어떤 분위기인지 알아야 하는데 그걸 감추는 형태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유독 이 책 만큼은 분량이 조금은 더 많은 편이다.

항구 마을인 만큼 뱃사람들의 삶에 대해 다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번에는 바다와 연관된 일이나 한정된 특정 집단 단위가 아닌 하나의 사회라는 형태다. 뱃사람들의 유대감이라 하면 엄청나다고 하지만 이래저래 썩 좋지 못한 인상을 받기도 한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 인해 생기는 편견에 어쩌다 수상쩍은 이력까지 밝혀지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걸 잊으면 안 된다. 어딜 가나 사람 사는 곳은 비슷비슷하다. 밝은 곳에 어둠이 숨어 있듯이, 어두워 보이는 곳에도 빛은 있다. 더 쉽게 말하자면 겉만 보고서는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일이란 거다. 현실에서 굉장히 많이 벌어지는 일이라 자주 듣는 말이라도 늘 주목해야 한다.

필사적으로 숨기려 했던 안개 속 사건의 정체는 크게 심각한 범죄는 아니었다. 그저 드라마 같은 어느 싸움에 말려든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선의로 시작됐지만 뜻하지 않은 사고로 일이 커지며 큰 소동으로 번진 거나 다름 없다. 거기서부터 그들 만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제 3자나 다름 없는 경찰까지 끼어든 시점에 조용히 끝내기는 이미 늦었다. 원래 목표를 달성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전부일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 사건의 당사자들이 간과한 것이라면 이거다. 매그레 반장은 따뜻한 일상을 목격하면 모른 척하지 않는 다는 점. 다른 경찰이었다면 몰라도 매그레 반장 앞에서는 딱히 숨길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진짜 따로 숨겨할 일은 다른 곳에서 발견된다. 그건 겉으로만 그럴싸한 일상으로 보이고 실제로는 추악함 그 자체인 위선이다.

보통 사건의 진실을 보고서 큰 충격을 받거나 안타까운 현실을 보고는 하는데, 이 사건 만큼은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운 부분이 많다. 제 아무리 아는 사람을 위한다 해도 자기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를 일에 위험을 무릅쓰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의도가 좋더라도 보기에 따라 시선이 갈릴 수 있는 일이란 이런 걸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늘 나쁜 일만 벌어진다고 생각했는데, 선행도 존재할 수 있다는 걸 보며 많은 생각이 든다. 겉으로 보이는 세상은 가식과 위선으로 가득해서 눈에 보인 대로 믿기 어려운 편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진짜 아름다운 세상은 따로 존재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굳이 눈에 띄게 보여야만 선행은 아닐 것이다. 세상에 공개되기 원치 않는 다면 그럴 이유가 있다고 여기며 모른채 해야 될 때도 있는 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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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주라크의 광인 매그레 시리즈 15
조르주 심농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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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라 하면 무조건 일상과 동떨어진 이미지부터 떠오르게 한다. 보통 사람과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고, 딱 봐도 수상해 보이는 거수자 같은 모습 말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생각보다 멀쩡해 보이던 사람인 경우가 의외로 많다. 평범한 사람들은 전혀 상상해 보지 못할 비정상적인 일상을 숨기며 살고 있던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으로 좋은 시선을 받지 못할 은밀한 일상을 보면서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일상으로부터 광기가 찾아오는 것일까. 아니면 광기가 곧 일상을 만들어 내는 것일까.

은퇴한 수사국 동료의 편지를 받고 우연히 도르도뉴로 향하게 된 매그레 반장. 같은 기차 칸에 타고 있던 수상한 남자를 뒤쫓아 뛰어 내렸다가 총상을 입고 쓰러진다. 눈을 뜨니 베르주라크의 어느 병원에 실려온 상태였고 이 지역에서 얼마 전부터 심장에 침을 찔러 넣어 죽이는 살인마, 베르주라크의 광인이 출몰한다는 걸 알게 된다. 부상이 심한 탓에 밖을 돌아다니기 어려워져 급히 달려온 부인에게 도움을 얻어가며 수사를 진행하던 중, 매그레를 공격했던 남자가 숲에서 죽은 채로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

언제나 일상과 가깝던 매그레 반장 시리즈와 다른 분위기의 사건이 등장하고, 부상까지 당하는 최악의 상황을 조성해서 시작부터 무거운 긴장감을 조성한다. 게다가 사건 수사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면서 사실상 매그레 반장의 실패나 다름 없는 분위기로 몰려 위기나 다름없다. 혼란스러워 하며 내면의 고찰을 하는 매그레 반장의 개인적인 모습까지 묘사될 정도니 얼마나 궁지에 몰린 건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 광인 취급 받을 작정으로 들쑤시고 다니며 매그레 반장은 다시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든다.

부상으로 인해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진행되다 보니 거의 안락의자 탐정과도 같은 추리를 보여준다. 직접 현장에 가서 그곳의 분위기가 어떻고, 어떤 일상이 존재하는지 느끼는 것을 머리 속에서만 그려내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그저 사람의 인상만 보고 어떤 분위기의 집에서 사는지 추측하고, 사건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들을 게임 말처럼 다루며 상황극을 만들어 본다. 기가 막힌 건 이게 대충은 들어 맞아서 매그레 반장을 더욱 불리하게 만들려는 상황에서 오히려 역습을 가한다. 물론 이 방법에도 한계가 있기에 대체로 사건과 무관한 일상에서만 나오던 매그레 부인이 대신 나서는 장면이 많아서 이 또한 색다른 부분이다.

지방 소도시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이번 작품 속에 많이 나타나 있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안다고 여기며, 이상한 소문이 돌면 모르는 척 해야 하는 분위기. 무슨 문제가 발생하면 외부에서 들어왔을 것이라고 먼저 짐작하는 풍조. 아무래도 건너 건너 아는 사이다 보니 서로 간의 일상 매우 밀접하게 붙어 있는 양상이다. 특히 지역 고위 인사에 해당하는 수사 관계자들 역시 여기에 포함되기에 여러모로 쉽지 않은 인상을 받을 만하다. 일상을 중심으로 사건을 해석하는 매그레 반장이 처음에 실수를 하게 된 건 이런 탓일지도 모른다. 평소처럼 개개인의 단위로 분석했더니, 지역사회라는 거대한 일상과 부딪치게 됐으니 말이다.

도저히 갈피를 잡기 어렵던 광인의 정체는 어떤 일상으로 인해 만들어진 비극의 결과물이었다. 사연이라고 할 것도 없다. 그저 최선을 다해 부족함 없이 잘 살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의 일상에 방해가 될 것들을 숨기려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얼마나 사람이 비정상적이고, 추악한 짓까지 저지를 수 있는지 경악하게 될 부분이 많다. 다만 이 비정상적인 것이란 어디까지나 타인의 시선에 본 모습이다. 무엇 하나 잃고 싶지 않았을 소중한 일상이라는 점에서 다른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라면 첫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배경부터 정상적이지 못했고, 나름대로 야심차게 만들어간 일상 역시 비정상의 연속이었다.

어디서부터 문제였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배경이 어떻든 간에 잘 살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나 똑같다. 다소 과한 부분이 있어도 누구나 일상을 소중히 여긴다는 점을 생각하면 남일 같지 않다. 그러나 지켜야 할 선까지 넘어가며 추구해야 된다는 건 아니다. 잘 살고자 하는 것과 이성적인 판단과 행동을 하지 못하는 건 별개의 일이다. 언제 불이 붙을지 모를 도화선을 계속 만들어가면서 아무렇지 않은 삶을 살려고 한다는 것부터가 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열심히 살고자 하는 열망이 지나치면 곧 광기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미가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는 결국 방식을 정하는 사람에게 달렸다. 평범한 소시민인지, 아니면 가면을 쓴 광인인지.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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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드르인의 집 매그레 시리즈 14
조르주 심농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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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문제는 어느 집안이나 중대 사항이다.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고, 서로가 서로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함께 한다. 이렇게만 보면 참으로 푸근한 모습이지만 세상 일이 다 그렇듯, 겉만 보고서 알 수 없는 일은 언제나 존재한다. 가족에 대한 일 역시 마찬가지다. 그 어떤 균열이 보이지 않더라도 사실은 불안하게 균형을 맞추며 만들어낸 이미지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에서 과연 무엇이 일상을 유지하게 만드는 걸까. 그게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는 걸까.

낭시에 사는 처사촌 처남의 소개로 매그레 반장을 찾아온 안나 페이터르스라는 플랑드르 여인. 벨기에와 인접한 국경 마을인 지베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그녀의 가족이 어느 날 갑자기 범죄자로 몰렸다고 한다. 법학을 공부 중인 대학생 아들 조제프가 낭시에서 어떤 여자와 만나 아이까지 생겼는데, 문제의 아이 엄마가 갑자기 실종되면서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것이다. 현지에서 수사 중인 경찰까지 이미 확신을 굳히고 있던 탓에 매그레는 공식 수사가 아니면서 지베로 향하게 되는데...

국경 지대를 배경으로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에 걸친 플랑드르라는 고유의 문화까지 섞여 있어서 다소 이국적인 인상을 준다. 이러한 지역적 분위기 때문인지 알게 모르게 문화적 대립 양상이 나타나는 걸 볼 수 있다. 안 그래도 플랑드르인이 이방인 취급을 받는데, 매그레 반장이 이들 편을 들어주는 위치가 되다 보니 날 선 분위기가 종종 튀어나온다.

치정 싸움이 사건의 발단이다 보니, 일상적인 모습을 깊이 조명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가해자로 지목된 페이터르스네 가족은 대체로 어떤 분위기고. 피해자인 피에르뵈프네는 사정이 어떻고. 또, 이 사건에 대한 대중적인 시선이 어떠한 편인지. 이미 문화적 차이에 빈부격차까지 있는 집안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만 봐도 대충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잘사는 플랑드르인 집과 그렇지 않은 프랑스인 집 사이에서 벌어진 드라마. 이렇다 보니 객관적인 단서 보다 편견이 가득한 주변의 시선과 다소 미심쩍은 증언들이 많이 보인다. 이래저래 매그레 반장이 힘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나 그 누구보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려 노력하기에 이러한 상황에 대한 비판으로 볼 여지가 있다.

이 사건에서 점차 느껴지는 인상은 이거다. 지나친 완벽함 속을 기어 다니는 불안의 그림자. 안정적이지만 뭔가 어색한 것과 불안정하지만 자연스러움의 비교. 일상이라 하면 사람 냄새나는 무언가가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마치 인공적인 것처럼 보인다면. 평범한 일상을 나타내려 하지만 연극 무대처럼 보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건 진정한 일상일까? 누구를 위한 일상이고, 이 일상이 앞으로도 행복할 수 있을까? 여기서 많은 이들이 착각할 법한 사실을 알게 된다. 인생은 스스로가 만들어 가야 하지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조언을 해주는 것과 일일이 다해주는 것은 완전 다르다.

가족 간의 애정을 가지고 누가 뭐라 할 수 없는 일이다. 다른 일도 아니고 타인이 개입할 수가 없는 그들 만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이니까. 그러나 방법이 잘못됐다면 말이 다르다. 제 아무리 침착하게 대응하려 해도, 평소처럼 보이려 해도, 이미 이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갈 수는 없다. 자연스러움은 하나도 없이 외나무다리와도 같은 일상만 계속되고, 진실을 외면하며 쌓여간 마음의 무게로 점차 병들어갈 뿐이다. 다만 이걸 지적해도 어디까지나 선택은 그 가족에게 달렸다. 앞에서도 언급 했듯이 인생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 무엇이 더 최악일지. 무엇이 그나마 상황을 되돌릴 차선책일지. 선택은 당사자들에게 달린 문제다.

이게 다른 의도가 전혀 없이 그저 가족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서 비롯된 사건이라는 점이 참으로 씁쓸하게 한다. 누구나 행복하게 잘 살고 싶어한다. 도착 지점을 미리 정해 놓고 어떻게 도달할지 과정을 만들어 간다. 그런데 선택의 순간에 길을 잘못 들어가거나 사소한 실수를 범하고도 정해 놓은 목표 때문에 불확실해진 경로를 계속 나아간다. 이미 멀어진 목표만 계속 보며 길을 가니 그나마 괜찮을 다른 목표마저 지나치고 결국 도달하는 건 절벽이다. 이러한 결말을 맞지 않으려면 언제나 최고 만을 생각할 게 아니라 절벽에 도달하지 않을 다른 방향도 생각해 둬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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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피아크르 사건 매그레 시리즈 13
조르주 심농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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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인식을 못하다가 막상 제대로 마주하면 잔혹하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세월의 흐름이다. 과거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던 것이 지금은 이렇게 바뀌어 있다는 현실. 그것도 자신이 익숙하던 장소에 잘 알던 인물들이라면 더욱 그렇게 보이게 된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이게 내가 알던 그 사람들이 맞는지. 많이 바뀌어버린 모습 속에서 보이는 그림자들만 해도 이런데, 언제 어떻게 나타났지 알 수 없는 초면인 사람들까지 섞이니 더욱 복잡해진다. 무엇이 현재의 진짜 모습일지 알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매그레 반장은 자신의 고향인 생피아크르의 성당에서 살인이 벌어질 것이라 예고하는 편지를 받고 서둘러 도착한다. 아침 일찍 진행된 미사 도중에 아무 일이 없어서 안심한 것도 잠시, 끝난 뒤에 살펴보니 방금 전까지 멀쩡하던 생피아크르 백작 부인이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죽어 버린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고, 아무도 백작부인에게 접근하지 않았고, 그걸 매그레 반장이 두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던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게다가 혈흔 하나 없고, 눈에 띄는 상처 역시 없었다...

매그레 반장의 고향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보니 어릴 적을 회상하는 장면이 꽤 많이 나온다. 살해당한 피해자. 사건 관계자. 그 밖의 주변 인물 등등. 대부분이 어린 시절 기억 속에 아는 인물들이라 이래저래 심리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아무래도 어쩌다 만난 아는 사람 정도가 아니다 보니, 어릴 적에 보아온 모습과 현재의 모습에서 발생한 괴리감이 상당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다른 일도 아니고 살인 사건으로 인해 다시 마주하게 된 고향이니 더욱 그러고도 남을 것이다.

이 사건에서의 살인은 매우 특이한 방식이라 상당히 놀랍다고 생각한다. 분명 사람을 죽게 만들긴 했지만 법적으로 범죄라 하기 애매한 심리적인 흉기에 의한 살인이라 그렇다. 보기에 따라 이게 말이 되느냐, 너무 억지라는 주장이 나올 만도 하다. 이런 걸로 사람이 죽을 리가 없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피해자는 고령의 노부인이고, 이런 방식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배경을 제시한다면 마냥 불가능 하지 만은 않다고 본다. 실제로 피해자인 백작 부인이 상당한 심리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 배경을 보여주며 유래 없을 살인 방식에 대한 개연성을 계속 더해준다.

몰락해가는 지방 귀족 가문의 안타까운 실상을 다룬 내용에 가깝다. 한때 화려하던 시절은 흐릿한 형태로만 남아있고, 추한 모습만 보이는 채로 겨우 자리 보전하고 있는 게 현재 모습이다. 거의 빈 껍데기나 다름 없는 이런 귀족에게 눈독 들이는 경우라면 아마 선의보다는 불순한 의도가 더 많을 것이다. 그렇게 재산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 고독한 현실로 인해 저지르게 된 실수들, 뒤늦게 몰려오는 죄책감까지 해서 상당한 마음 고생 속에서 지내게 되는 모습을 비춘다.

이걸 다름 아닌 매그레 반장의 어린 시절 회상과 교차되며 보여주기에 쓸쓸함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다른 인물도 아니고 언제나 주어진 사건 속의 관계자들이 가진 배경과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던 매그레 반장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너무나 잘 알던 어린 시절 기억 속 사람들이 사건의 당사자가 되어 나타났다. 그 나름대로의 죄책감은 물론이고, 법적으로 살인이라 인정되기 어려운 사건이라 어떤 식으로 해결을 봐야 할지도 고심해야 된다. 얼마나 복잡한 심정일까.

특이한 살인 방식 만큼이나 전혀 예상할 수 없게 사건이 해결돼서 당황하게 되는 동시에 어딘가 인상적이기도 하다. 마지막에 사건을 검토하고 범인을 지목하는 건 언제나 주인공 탐정이나 경찰이다. 하지만 이 사건처럼 법적인 처벌 문제가 제대로 부각되면 후속 조치가 불가능하기에 그 역할이 무력화 되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런 부분 때문인지 검토 부분까지는 그대로 하되, 마지막은 다소 과격하게 보일 방식으로 사건을 뒤엎어 버린다. 하나의 드라마로서 보면 대단원을 장식하는 극적인 결말이라 나쁘지 않다고 본다. 단순히 마무리를 내기 애매해서 벌인 난장판이 아니라 책임감이 무엇인지 깨닫고 벌인 행동으로 묘사돼서 그렇다. 이 과정을 통해 매그레 반장 역시 하나의 희망을 보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무너져 가는 과거로 사라지지 않고 언젠가 다시 일어설 현재의 다짐을 확인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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