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주라크의 광인 매그레 시리즈 15
조르주 심농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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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라 하면 무조건 일상과 동떨어진 이미지부터 떠오르게 한다. 보통 사람과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고, 딱 봐도 수상해 보이는 거수자 같은 모습 말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생각보다 멀쩡해 보이던 사람인 경우가 의외로 많다. 평범한 사람들은 전혀 상상해 보지 못할 비정상적인 일상을 숨기며 살고 있던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으로 좋은 시선을 받지 못할 은밀한 일상을 보면서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일상으로부터 광기가 찾아오는 것일까. 아니면 광기가 곧 일상을 만들어 내는 것일까.

은퇴한 수사국 동료의 편지를 받고 우연히 도르도뉴로 향하게 된 매그레 반장. 같은 기차 칸에 타고 있던 수상한 남자를 뒤쫓아 뛰어 내렸다가 총상을 입고 쓰러진다. 눈을 뜨니 베르주라크의 어느 병원에 실려온 상태였고 이 지역에서 얼마 전부터 심장에 침을 찔러 넣어 죽이는 살인마, 베르주라크의 광인이 출몰한다는 걸 알게 된다. 부상이 심한 탓에 밖을 돌아다니기 어려워져 급히 달려온 부인에게 도움을 얻어가며 수사를 진행하던 중, 매그레를 공격했던 남자가 숲에서 죽은 채로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

언제나 일상과 가깝던 매그레 반장 시리즈와 다른 분위기의 사건이 등장하고, 부상까지 당하는 최악의 상황을 조성해서 시작부터 무거운 긴장감을 조성한다. 게다가 사건 수사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면서 사실상 매그레 반장의 실패나 다름 없는 분위기로 몰려 위기나 다름없다. 혼란스러워 하며 내면의 고찰을 하는 매그레 반장의 개인적인 모습까지 묘사될 정도니 얼마나 궁지에 몰린 건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 광인 취급 받을 작정으로 들쑤시고 다니며 매그레 반장은 다시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든다.

부상으로 인해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진행되다 보니 거의 안락의자 탐정과도 같은 추리를 보여준다. 직접 현장에 가서 그곳의 분위기가 어떻고, 어떤 일상이 존재하는지 느끼는 것을 머리 속에서만 그려내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그저 사람의 인상만 보고 어떤 분위기의 집에서 사는지 추측하고, 사건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들을 게임 말처럼 다루며 상황극을 만들어 본다. 기가 막힌 건 이게 대충은 들어 맞아서 매그레 반장을 더욱 불리하게 만들려는 상황에서 오히려 역습을 가한다. 물론 이 방법에도 한계가 있기에 대체로 사건과 무관한 일상에서만 나오던 매그레 부인이 대신 나서는 장면이 많아서 이 또한 색다른 부분이다.

지방 소도시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이번 작품 속에 많이 나타나 있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안다고 여기며, 이상한 소문이 돌면 모르는 척 해야 하는 분위기. 무슨 문제가 발생하면 외부에서 들어왔을 것이라고 먼저 짐작하는 풍조. 아무래도 건너 건너 아는 사이다 보니 서로 간의 일상 매우 밀접하게 붙어 있는 양상이다. 특히 지역 고위 인사에 해당하는 수사 관계자들 역시 여기에 포함되기에 여러모로 쉽지 않은 인상을 받을 만하다. 일상을 중심으로 사건을 해석하는 매그레 반장이 처음에 실수를 하게 된 건 이런 탓일지도 모른다. 평소처럼 개개인의 단위로 분석했더니, 지역사회라는 거대한 일상과 부딪치게 됐으니 말이다.

도저히 갈피를 잡기 어렵던 광인의 정체는 어떤 일상으로 인해 만들어진 비극의 결과물이었다. 사연이라고 할 것도 없다. 그저 최선을 다해 부족함 없이 잘 살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의 일상에 방해가 될 것들을 숨기려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얼마나 사람이 비정상적이고, 추악한 짓까지 저지를 수 있는지 경악하게 될 부분이 많다. 다만 이 비정상적인 것이란 어디까지나 타인의 시선에 본 모습이다. 무엇 하나 잃고 싶지 않았을 소중한 일상이라는 점에서 다른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라면 첫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배경부터 정상적이지 못했고, 나름대로 야심차게 만들어간 일상 역시 비정상의 연속이었다.

어디서부터 문제였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배경이 어떻든 간에 잘 살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나 똑같다. 다소 과한 부분이 있어도 누구나 일상을 소중히 여긴다는 점을 생각하면 남일 같지 않다. 그러나 지켜야 할 선까지 넘어가며 추구해야 된다는 건 아니다. 잘 살고자 하는 것과 이성적인 판단과 행동을 하지 못하는 건 별개의 일이다. 언제 불이 붙을지 모를 도화선을 계속 만들어가면서 아무렇지 않은 삶을 살려고 한다는 것부터가 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열심히 살고자 하는 열망이 지나치면 곧 광기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미가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는 결국 방식을 정하는 사람에게 달렸다. 평범한 소시민인지, 아니면 가면을 쓴 광인인지.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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