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의 항구 매그레 시리즈 16
조르주 심농 지음, 최애리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사람 간의 관계는 보이는 것이 전부라 믿고 싶을 때가 많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누가 어떤지 잘 안다고 여겼는데 전혀 모르던 사실이 자연스럽게 존재하고. 그럴 리가 없다고 확신하던 정보가 사실은 전혀 달랐다는 현실이 밝혀지고. 이러면 그 동안 알고 있던 모습들은 대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마치 안개 속에서 마주친 누군가와 마찬가지 아닌가. 여기서 진짜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건 따로 있다. 숨겨진 일이 어떠한 성격인가. 보통 숨긴다 하면 나쁜 것만 떠오르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란 언제나 존재한다. 의도적으로 숨긴 건지, 아니면 숨길 수밖에 없던 건지 말이다.

파리 시내에서 발견된 어느 신원 미상자가 알고 보니 한 달 전에 위스트르앙에서 실종된 항만 관리소장이라는 걸 알게 된 매그레 반장. 그는 총에 맞아 두개골에 금이 갈 정도의 치명상을 입고 수술 받은 흔적을 가진 채 기억을 잃은 상태였다. 연락을 받은 하녀를 통해 위스트르앙의 자택으로 돌아가는 길에 동행한 반장은 하루 만에 항만장이 누군가에게 독살 당한 현장을 마주하게 된다. 항만장은 그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을 정도로 청렴한 이미지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럼에도 뭔가를 숨기는 듯한 분위기가 감돌아서 반장은 꺼림직한 느낌만 계속 받게 되는데...

수시로 안개에 휩싸이는 지역 특성처럼 모든 게 제대로 보이지 않는 사건이다. 그냥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지방의 항구 마을. 무엇 하나 숨길 것이 없어 보이는 동네 사람들. 이러한 곳에서 심상치 않은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정보가 전혀 주어지지 않는 기묘한 상황만 계속 이어진다. 그저 모른다며 애매하게 말을 흐리기만 하는 와중에도 무슨 일은 계속 벌어지고 있다.

분명 적당한 윤곽은 그려지는데 핵심만 쏙 빠져 있는 위화감만 가득해서 이런 상황에 짜증을 내는 반장 만큼이나 답답하게 보일 만도 하다. 그럼에도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많은 편이라 묘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누가, 어떻게, 어디까지 엮인 건지 당최 구분이 안 되니 사건 관계자 모두가 잠재적 용의자나 다름 없다. 정보에 대한 부분 역시 뭔가를 숨긴다는 것만 파악되지, 이걸 누구랑 공유하고 동일한 내용인지도 알 수 없다. 일상을 중심으로 사건의 내막을 파악하는 스타일인 매그레 반장에게는 유독 힘겨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충은 어떤 분위기인지 알아야 하는데 그걸 감추는 형태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유독 이 책 만큼은 분량이 조금은 더 많은 편이다.

항구 마을인 만큼 뱃사람들의 삶에 대해 다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번에는 바다와 연관된 일이나 한정된 특정 집단 단위가 아닌 하나의 사회라는 형태다. 뱃사람들의 유대감이라 하면 엄청나다고 하지만 이래저래 썩 좋지 못한 인상을 받기도 한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 인해 생기는 편견에 어쩌다 수상쩍은 이력까지 밝혀지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걸 잊으면 안 된다. 어딜 가나 사람 사는 곳은 비슷비슷하다. 밝은 곳에 어둠이 숨어 있듯이, 어두워 보이는 곳에도 빛은 있다. 더 쉽게 말하자면 겉만 보고서는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일이란 거다. 현실에서 굉장히 많이 벌어지는 일이라 자주 듣는 말이라도 늘 주목해야 한다.

필사적으로 숨기려 했던 안개 속 사건의 정체는 크게 심각한 범죄는 아니었다. 그저 드라마 같은 어느 싸움에 말려든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선의로 시작됐지만 뜻하지 않은 사고로 일이 커지며 큰 소동으로 번진 거나 다름 없다. 거기서부터 그들 만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제 3자나 다름 없는 경찰까지 끼어든 시점에 조용히 끝내기는 이미 늦었다. 원래 목표를 달성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전부일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 사건의 당사자들이 간과한 것이라면 이거다. 매그레 반장은 따뜻한 일상을 목격하면 모른 척하지 않는 다는 점. 다른 경찰이었다면 몰라도 매그레 반장 앞에서는 딱히 숨길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진짜 따로 숨겨할 일은 다른 곳에서 발견된다. 그건 겉으로만 그럴싸한 일상으로 보이고 실제로는 추악함 그 자체인 위선이다.

보통 사건의 진실을 보고서 큰 충격을 받거나 안타까운 현실을 보고는 하는데, 이 사건 만큼은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운 부분이 많다. 제 아무리 아는 사람을 위한다 해도 자기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를 일에 위험을 무릅쓰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의도가 좋더라도 보기에 따라 시선이 갈릴 수 있는 일이란 이런 걸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늘 나쁜 일만 벌어진다고 생각했는데, 선행도 존재할 수 있다는 걸 보며 많은 생각이 든다. 겉으로 보이는 세상은 가식과 위선으로 가득해서 눈에 보인 대로 믿기 어려운 편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진짜 아름다운 세상은 따로 존재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굳이 눈에 띄게 보여야만 선행은 아닐 것이다. 세상에 공개되기 원치 않는 다면 그럴 이유가 있다고 여기며 모른채 해야 될 때도 있는 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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