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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티 바 ㅣ 매그레 시리즈 17
조르주 심농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2월
평점 :
인생의 쓸쓸함이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찾아오거나, 예기치 못하게 갑자기 닥칠 수도 있는 분기점 같은 것이라 해야 할까. 한창 불타오르다가 꺼져 버린 잿더미 같다고도 할 수 있겠다. 과거의 화려하던 시절이 덧없게 흔적으로 남아 있지만 여전히 숨겨진 열정을 가지고 불씨를 갈망하는 잿더미. 이러한 잔불은 언제 어디에서 다시 불을 지필지 알 수 없고, 어떤 식으로 번질지 예상 할 수가 없다. 또 어떤 오해를 불러 일으킬지도.
휴양지로 유명한 앙티브의 어느 별장 단지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조사를 맡게 된 매그레 반장. 상부에서 피해자가 전직 군 첩보원 출신이라 일이 커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미리 들은 상황이다. 사건은 이렇다. 피해자 브라운은 두 명의 여자와 살고 있었다. 그런데 두 여자가 갑자기 짐을 꾸려 도주를 시도하다가 교통사고를 내면서 브라운의 사망이 확인된 것이다. 두 여자의 주장으로는 브라운이 등 뒤에 칼침을 맞은 채로 집에 도착해 끝내 죽어버렸다고 한다. 그럼에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시체와 며칠을 함께 지내다가 끝내 마당에 암매장까지 한 부분에 대한 설명으로는 부족했는데...
고급 휴양지. 전직 스파이. 의문의 살인. 이런 점만 보면 뭔가 엄청난 사건이라는 인상이 확 생길 것이다. 그러나 매그레 반장에게는 그저 불필요한 사족에 지나지 않는다. 겉으로만 보이는 가십 거리에 가까운 이미지일 뿐, 진정한 일상과 거리가 먼 것들이기 때문이다. 대중의 이목을 끌 스캔들에 해당되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 단지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기대할 법한 그런 게 아닐 뿐이다. 아니, 애초에 누군가의 일상에 과도한 관심을 가지며 억측을 내놓는 건 좋지 않은 행동이다. 작중에서도 그러한 시선들이 많이 묘사되다 보니 매그레 반장 역시 불편해 하는 걸 볼 수 있다. 무엇을 보게 되든 한 사람의 삶이 구경거리가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니까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배경인 앙티브에 대한 부분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의 칸 영화제로 유명한 칸과 가까운 휴양지라 그런지 그 당시에도 휘황찬란한 했던 모양이다. 이러한 곳에서 일어난 이번 사건은 그 화려함 뒤에 숨겨진 이면에 해당된다. 사실 화려한 휴양지 같은 곳에 존재하는 이면은 생각보다 흔한 일이다. 눈부신 빛이 존재하는 만큼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다. 그림자 속에는 양지에서의 삶을 잊지 못하거나 그 밖에 다른 이유로 떠나지 못하고 떠도는 이들이 많다. 이들에게 갑자기 활력을 불러 일으키는 도화선이 발생한다면 그건 희극일까, 아니면 비극일까.
피해자인 윌리엄 브라운의 모든 것으로부터 시작된 사건이라는 점에서 참으로 장대하고 쓰디 쓴 드라마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 처음으로 보게 된 유흥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는 과정. 불빛만 보고 무작정 달려드는 나방과 같은 인생으로 결국 도달하게 된 곳. 쓸쓸함 속에서 방황하는 브라운으로 인해 생겨난 인연과 그로 인해 발생한 문제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단순히 철없는 남자의 방탕한 인생이라 하기에 너무나도 허무하다. 여기에서 돈이란 그저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진정한 본질은 공허함을 채워줄 심리적인 안정감이다. 잘못한 것이 있다면 이걸 찾아가는 방식이다. 가까이에 있을 잔잔하고 오래가는 은은한 불을 찾지 않고, 오래가지 못할 크고 화려하게 불만 바랬으니 말이다.
어떻게 보면 각자가 추구하는 행복의 결이 달라서 발생한 일이라 할 수 있다. 흔해 빠진 치정 싸움이라고 보기에 쓸쓸함의 무게가 너무나 커서 그렇다. 제목이자 작중에서 주요 배경이 되는 리버티 바에서 그게 확 느껴진다. 스스럼 없이 친숙한 분위기이면서 화려한 세계의 밑바닥이나 다름 없는 음울함이 감도는 곳. 활기라고 전혀 없는 이런 곳에 기회가 찾아온다면 그건 놓치고 싶지 않을 마지막 순간 같을 것이다. 희극에 가까운 드라마라고 해도 되겠다. 그랬기에 이번 사건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본다. 그 어떤 다른 의도나 재물에 대한 탐욕 없이 공허함에서 떠오른 진실된 사랑이었기에. 겉으로만 보이는 모습과 그 안에 숨겨진 진실된 모습의 차이를 보며 가십이 가진 문제점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