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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피아크르 사건 ㅣ 매그레 시리즈 13
조르주 심농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평소에는 인식을 못하다가 막상 제대로 마주하면 잔혹하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세월의 흐름이다. 과거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던 것이 지금은 이렇게 바뀌어 있다는 현실. 그것도 자신이 익숙하던 장소에 잘 알던 인물들이라면 더욱 그렇게 보이게 된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이게 내가 알던 그 사람들이 맞는지. 많이 바뀌어버린 모습 속에서 보이는 그림자들만 해도 이런데, 언제 어떻게 나타났지 알 수 없는 초면인 사람들까지 섞이니 더욱 복잡해진다. 무엇이 현재의 진짜 모습일지 알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매그레 반장은 자신의 고향인 생피아크르의 성당에서 살인이 벌어질 것이라 예고하는 편지를 받고 서둘러 도착한다. 아침 일찍 진행된 미사 도중에 아무 일이 없어서 안심한 것도 잠시, 끝난 뒤에 살펴보니 방금 전까지 멀쩡하던 생피아크르 백작 부인이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죽어 버린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고, 아무도 백작부인에게 접근하지 않았고, 그걸 매그레 반장이 두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던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게다가 혈흔 하나 없고, 눈에 띄는 상처 역시 없었다...
매그레 반장의 고향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보니 어릴 적을 회상하는 장면이 꽤 많이 나온다. 살해당한 피해자. 사건 관계자. 그 밖의 주변 인물 등등. 대부분이 어린 시절 기억 속에 아는 인물들이라 이래저래 심리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아무래도 어쩌다 만난 아는 사람 정도가 아니다 보니, 어릴 적에 보아온 모습과 현재의 모습에서 발생한 괴리감이 상당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다른 일도 아니고 살인 사건으로 인해 다시 마주하게 된 고향이니 더욱 그러고도 남을 것이다.
이 사건에서의 살인은 매우 특이한 방식이라 상당히 놀랍다고 생각한다. 분명 사람을 죽게 만들긴 했지만 법적으로 범죄라 하기 애매한 심리적인 흉기에 의한 살인이라 그렇다. 보기에 따라 이게 말이 되느냐, 너무 억지라는 주장이 나올 만도 하다. 이런 걸로 사람이 죽을 리가 없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피해자는 고령의 노부인이고, 이런 방식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배경을 제시한다면 마냥 불가능 하지 만은 않다고 본다. 실제로 피해자인 백작 부인이 상당한 심리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 배경을 보여주며 유래 없을 살인 방식에 대한 개연성을 계속 더해준다.
몰락해가는 지방 귀족 가문의 안타까운 실상을 다룬 내용에 가깝다. 한때 화려하던 시절은 흐릿한 형태로만 남아있고, 추한 모습만 보이는 채로 겨우 자리 보전하고 있는 게 현재 모습이다. 거의 빈 껍데기나 다름 없는 이런 귀족에게 눈독 들이는 경우라면 아마 선의보다는 불순한 의도가 더 많을 것이다. 그렇게 재산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 고독한 현실로 인해 저지르게 된 실수들, 뒤늦게 몰려오는 죄책감까지 해서 상당한 마음 고생 속에서 지내게 되는 모습을 비춘다.
이걸 다름 아닌 매그레 반장의 어린 시절 회상과 교차되며 보여주기에 쓸쓸함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다른 인물도 아니고 언제나 주어진 사건 속의 관계자들이 가진 배경과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던 매그레 반장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너무나 잘 알던 어린 시절 기억 속 사람들이 사건의 당사자가 되어 나타났다. 그 나름대로의 죄책감은 물론이고, 법적으로 살인이라 인정되기 어려운 사건이라 어떤 식으로 해결을 봐야 할지도 고심해야 된다. 얼마나 복잡한 심정일까.
특이한 살인 방식 만큼이나 전혀 예상할 수 없게 사건이 해결돼서 당황하게 되는 동시에 어딘가 인상적이기도 하다. 마지막에 사건을 검토하고 범인을 지목하는 건 언제나 주인공 탐정이나 경찰이다. 하지만 이 사건처럼 법적인 처벌 문제가 제대로 부각되면 후속 조치가 불가능하기에 그 역할이 무력화 되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런 부분 때문인지 검토 부분까지는 그대로 하되, 마지막은 다소 과격하게 보일 방식으로 사건을 뒤엎어 버린다. 하나의 드라마로서 보면 대단원을 장식하는 극적인 결말이라 나쁘지 않다고 본다. 단순히 마무리를 내기 애매해서 벌인 난장판이 아니라 책임감이 무엇인지 깨닫고 벌인 행동으로 묘사돼서 그렇다. 이 과정을 통해 매그레 반장 역시 하나의 희망을 보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무너져 가는 과거로 사라지지 않고 언젠가 다시 일어설 현재의 다짐을 확인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