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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드르인의 집 ㅣ 매그레 시리즈 14
조르주 심농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0월
평점 :
가족 문제는 어느 집안이나 중대 사항이다.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고, 서로가 서로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함께 한다. 이렇게만 보면 참으로 푸근한 모습이지만 세상 일이 다 그렇듯, 겉만 보고서 알 수 없는 일은 언제나 존재한다. 가족에 대한 일 역시 마찬가지다. 그 어떤 균열이 보이지 않더라도 사실은 불안하게 균형을 맞추며 만들어낸 이미지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에서 과연 무엇이 일상을 유지하게 만드는 걸까. 그게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는 걸까.
낭시에 사는 처사촌 처남의 소개로 매그레 반장을 찾아온 안나 페이터르스라는 플랑드르 여인. 벨기에와 인접한 국경 마을인 지베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그녀의 가족이 어느 날 갑자기 범죄자로 몰렸다고 한다. 법학을 공부 중인 대학생 아들 조제프가 낭시에서 어떤 여자와 만나 아이까지 생겼는데, 문제의 아이 엄마가 갑자기 실종되면서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것이다. 현지에서 수사 중인 경찰까지 이미 확신을 굳히고 있던 탓에 매그레는 공식 수사가 아니면서 지베로 향하게 되는데...
국경 지대를 배경으로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에 걸친 플랑드르라는 고유의 문화까지 섞여 있어서 다소 이국적인 인상을 준다. 이러한 지역적 분위기 때문인지 알게 모르게 문화적 대립 양상이 나타나는 걸 볼 수 있다. 안 그래도 플랑드르인이 이방인 취급을 받는데, 매그레 반장이 이들 편을 들어주는 위치가 되다 보니 날 선 분위기가 종종 튀어나온다.
치정 싸움이 사건의 발단이다 보니, 일상적인 모습을 깊이 조명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가해자로 지목된 페이터르스네 가족은 대체로 어떤 분위기고. 피해자인 피에르뵈프네는 사정이 어떻고. 또, 이 사건에 대한 대중적인 시선이 어떠한 편인지. 이미 문화적 차이에 빈부격차까지 있는 집안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만 봐도 대충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잘사는 플랑드르인 집과 그렇지 않은 프랑스인 집 사이에서 벌어진 드라마. 이렇다 보니 객관적인 단서 보다 편견이 가득한 주변의 시선과 다소 미심쩍은 증언들이 많이 보인다. 이래저래 매그레 반장이 힘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나 그 누구보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려 노력하기에 이러한 상황에 대한 비판으로 볼 여지가 있다.
이 사건에서 점차 느껴지는 인상은 이거다. 지나친 완벽함 속을 기어 다니는 불안의 그림자. 안정적이지만 뭔가 어색한 것과 불안정하지만 자연스러움의 비교. 일상이라 하면 사람 냄새나는 무언가가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마치 인공적인 것처럼 보인다면. 평범한 일상을 나타내려 하지만 연극 무대처럼 보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건 진정한 일상일까? 누구를 위한 일상이고, 이 일상이 앞으로도 행복할 수 있을까? 여기서 많은 이들이 착각할 법한 사실을 알게 된다. 인생은 스스로가 만들어 가야 하지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조언을 해주는 것과 일일이 다해주는 것은 완전 다르다.
가족 간의 애정을 가지고 누가 뭐라 할 수 없는 일이다. 다른 일도 아니고 타인이 개입할 수가 없는 그들 만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이니까. 그러나 방법이 잘못됐다면 말이 다르다. 제 아무리 침착하게 대응하려 해도, 평소처럼 보이려 해도, 이미 이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갈 수는 없다. 자연스러움은 하나도 없이 외나무다리와도 같은 일상만 계속되고, 진실을 외면하며 쌓여간 마음의 무게로 점차 병들어갈 뿐이다. 다만 이걸 지적해도 어디까지나 선택은 그 가족에게 달렸다. 앞에서도 언급 했듯이 인생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 무엇이 더 최악일지. 무엇이 그나마 상황을 되돌릴 차선책일지. 선택은 당사자들에게 달린 문제다.
이게 다른 의도가 전혀 없이 그저 가족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서 비롯된 사건이라는 점이 참으로 씁쓸하게 한다. 누구나 행복하게 잘 살고 싶어한다. 도착 지점을 미리 정해 놓고 어떻게 도달할지 과정을 만들어 간다. 그런데 선택의 순간에 길을 잘못 들어가거나 사소한 실수를 범하고도 정해 놓은 목표 때문에 불확실해진 경로를 계속 나아간다. 이미 멀어진 목표만 계속 보며 길을 가니 그나마 괜찮을 다른 목표마저 지나치고 결국 도달하는 건 절벽이다. 이러한 결말을 맞지 않으려면 언제나 최고 만을 생각할 게 아니라 절벽에 도달하지 않을 다른 방향도 생각해 둬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