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에 대한 앙케트
세스지 지음, 오삭 옮김 / 반타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입방정이란 말이 있다. 함부로 말을 늘어놓는 것을 의미하는데, 생각이상으로 많은 이들이 저지르는 실수다. 아무리 조심한다해도 무의식적으로 뱉고 보는 게 말이고, 특히 감정에 치우치면 무슨 생각으로 나온 것인지 후회할 정도로 막나오는 것이라 그렇다. 예로부터 말이 가진 힘이라는 것이 있다고 했다. 의도치 않았지만 결국 벌어지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건을 일으킨다고 말이다. 문득 여기까지 오다보면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어진다. 결국은 입이 잘못이고 모든 것의 시작점이다.

대학생 5명이 장난삼아 심령 스폿으로 유명한 공동묘지로 담력 시험을 하러 가게 된다. 이들은 공동묘지 정문으로 들어가 저주받았다고 알려진 나무 밑을 지나 뒷문으로 나가기로 정했다. 문제의 나무는 한밤중에 밑을 지나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담력시럼을 다녀온지 한 달 후에 일행 중 한명인 안(杏)이 그 나무에서 목을 매 자살하는 일이 발생한다. 남은 대학생들은 담력시험을 했던 당시의 상황을 진술하게 되고 문제의 나무 밑을 지났던 부분에서만 제각각으로 달랐는데...

초반만 봐서는 흔한 괴담 같은 인상이긴 했다. 산속 공동묘지란 익숙한 배경. 담력 테스트를 하러간 일행 중 하나에게 변사가 일어난 고전적인 래퍼토리. 정석 중의 정석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다 스토리 진행방식과 시점 문제에 대한 의문이 생기면서 뭔가 달라보이기 시작한다.

이미 무슨 일이 벌어지고 나서 당시 현장에 있었던 인물들이 진술하는 듯한 대화형으로 진행되는 구조다. 장소는 동일하지만 심리적 상황과 목격한 것이 다르게 나타나는 부분에서 뭔가 무서운 요소가 있지 않을까 했다. 확실히 착각을 유도하고, 진술 간에 어긋난 부분이 발견되면서 묘한 느낌이 생기게 한다. 대체 무슨 의도인가, 어째서 뭔가를 숨기고 있는가. 먼저 생긴 의문을 따라가다 보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의문이 바로 생겨난다. 왜 이 소설은 각 인물들이 진술하는 형태로 진행되게 했을까.

마지막 진술부터 맨 끝장에 있는 앙케트까지 이어진 대단원은 꽤 신선한 공포긴 했다. 문제의 나무와 관련된 진실은 이해하기 쉽게 정리하면서 꽤 강렬한 의미를 남기고. 제목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입을 강조하는 부분에다가. 이런 식으로도 공포를 느끼게 할 수 있다는 참신함이 돋보인 앙케트까지. 생각보다 단순한 부분에서 헛점을 노리고 그걸 어떤 방식으로 공개해야 더 충격적으로 느껴질지 고심한 결과물이지 않나 싶다.

특히 이 앙케트란 부분이 여러모로 효과적이었던 것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독자에게 후기 형식으로 작품 속에서 다룬 주제에 대한 질문을 묻는 것처럼 유도하며, 입이란 것이 얼마나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지 직접 체험하게 만든다. 그럼으로서 소설 속의 공포가 마치 현실에 침투한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하며 입으로 인해 간과하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만드는 장치다. 앙케트란 것은 정해진 답이 존재하지 않는 질문이다 보니 어느 정도 유도당했다는 인상을 받게 되면 놀랄 수밖에 없게 되고. 유도당한 방향의 끝에 존재하는 진실이, 사실상 정해진 답을 말하고 있는 질문이 무섭게 느껴지게 된다고 본다. 저 질문을 하고 있는 입의 정체가 대체 무엇인가 하고 말이다.

한편으로는 분량이 짧은 단편에 작은 아이디어 하나가 전부인 내용으로 보일만 해서 별다른 인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꽤 있을 것이다. 앙케트로 이어지는 부분만 제외하면 전체적인 스토리가 평범한 편이라 더 그럴만 하다고 본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글을 읽는다는 부분에서 발생할 감각적인 포인트를 제법 잘 짚어서 공포 소재로 활용한 부분 만큼은 좋게 볼만하다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흉가 - 개정판 스토리콜렉터 40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집이란 일종의 첫 인상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거주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가까이 하고 싶어지거나, 때로는 보기 싫은 꺼림직한 것이 되기도 해서 그렇다. 첫인상이란 한 번 정해지면 쉽게 바뀌지 않듯이 거주하는 사람이 떠나도 집의 이미지가 바뀌지 않기에 흉흉한 이름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경우와 반대 되는 일이 생길 수 있을까? 거주하는 집이 어떤 곳이냐에 따라 그곳에 사는 사람의 인상이 정해진다고 말이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 도쿄에 살던 히비노 쇼타는 나라 현에 위치한 안라 시로 이사가게 된다. 쇼타는 가족과 함께 있을 때면 종종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 같은 것을 느꼈는데, 이사갈 집으로 가는 내내 그게 찾아온 것이다. 집은 주택단지를 조성하려다가 방치된 산 속에서 유일하게 완공된 곳이었고, 구조 역시 용도를 알 수 없는 곳이 상당수 있다보니 쇼타의 불안은 계속 이어진다. 그러던 중, 산 아래 맨션에 사는 코헤이라는 친구를 만나게 되면서 도도산과 뱀신에 얽힌 저주를 알게 되는데...

개인적인 고민을 가진 소년을 중심으로 하는 일가족 이야기처럼 보이면서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계속 맴돌며 긴장감을 준다. 이 긴장감 있는 흐름은 완급 조절에 상당히 신경쓴다는 느낌이다. 과한 무게감을 주지 않으려 중간마다 분위기를 풀어주면서도, 완전히 안심하지 못하게 불길한 뒤끝을 남겨두는 스타일이라 그렇다. 전반적인 공포 테마가 뱀과 관련 있다고 알게 되니 이러한 완급 조절 방식이 이렇게 보이기도 하다. 어디에 숨어있는지 모를 뱀에게 공격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공포의 실체를 밝혀내는 미스터리 형태를 가진 내용인데도, 주인공이 어린아이라 그런지 상당한 제한이 걸린 채로 진행된다. 그래서 조사할 수 있는 범위나 생각의 발상이 좁은 편이고, 전문적인 분야에 접근하기 어렵게 나타난다. 호러미스터리에서 공포 비중을 더 높게 나타낸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미스터리 쪽을 선호하는 편이라면 다소 호불호가 있을만 하다. 단서가 있어도 조사가 시원치 않거나 더디게 진행되서 답답하게 보이고, 뭔가가 진행되도 즉흥적으로 일이 풀린 것 같다는 인상을 줘서 그렇다. 그래도 공포영화에서 간혹 나오는 추리를 표방하다가 흐지부지 끝난 경우처럼 실망할 일이 없다는 건 확실하다.

도도 산과 뱀신에 얽힌 저주에 대한 부분은 상당히 섬뜩하게 잘 나타냈다. 민속학적인 분석은 앞에서 간략하게 다루고. 대체로 저주에 영향을 받은 이들로 인해 벌어지는 무서운 상황을 보여준다. 특히 낯선 집에 이끌려 들어간 상황이 두 번 나오는데, 비슷해 보여도 서늘한 공포와 뜨거운 공포의 차이를 준 묘사는 여러모로 주목할 부분이다. 뱀은 파충류에 해당되고, 파충류는 변온동물이라 온도에 민감하다는 부분을 공포 요소로서 반영한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서늘함은 낮은 온도에서 움직임이 둔해지는 것처럼 감각을 차단하는 암흑 속의 공포라면. 뜨거움은 마치 적정 온도로 체내가 따뜻해져 활발해진 것처럼 불쾌함이 가득하게 직접적으로 덮쳐오는 경우라고 말이다. 공포 소재로서의 뱀은 다소 뻔하게 사용되기 쉬운 면이 있다고 여긴 편인데, 작가는 그런 단점이 부각되지 않게 최대한 활용하려 했던 걸로 보인다.

마지막에 밝혀진 집에 숨겨진 공포의 실체는 상당한 충격을 준다. 어떻게보면 흔히 생각하는 흉가 공포의 틀을 깬 것에 해당된다. 집에서 무언가 나온다. 집 그 자체가 흉흉하게 변모해 덮칠 것이다. 많이 봤던 형태가 오히려 편견으로 작용해 생각지도 못한 헛점을 노린거나 마찬가지다. 스타일이 다른 작품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부분이지만 작가는 공포 장르에 대한 이해가 깊고, 그 만큼 다양한 변주를 만들어내 활용하는 면이 뛰어나다는 걸 느낀다.

미스터리 소설을 읽다보면 간혹 이런 걸 느끼고는 한다. 눈 앞에 뻔히 보이는 걸 너무 어렵게 받아들였다. 이 소설도 그런 경우에 해당되는데 미스터리 소설과 공포소설의 차이점 때문에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보통 미스터리 소설에서 이걸 깨닫는 순간은 해결에 해당되서 마무리 짓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반면 공포소설은 거기서부터 본격적인 시작이라는 인상을 주며 결말이 났는데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꺼림직함을 길게 남긴다. 이 소설은 그런 마지막의 꺼림직함을 폭발하듯이 극대화 시키는 걸 노렸다고 할 수 있다. 미스터리 소설에서 탐정의 추리와 반전이 핵심이라면, 공포소설은 이렇게 짙게 배어나며 오래남는 꺼림직함인 것이다. 그렇기에 공포 장르란 마지막 핵심을 보여줄 때까지 분위기가 끊기지 않게 끌고 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걸 제대로 못하면 사이드에 해당되는 곳에서 전부 보여주고, 결말이 흐지부지 되는 일이 발생한다고 본다.

여기서 언급된 타츠미 가와 햐쿠미 가의 자세한 부분은 작가의 다른 소설에서 메인으로 다루어졌다고 하니 기회가 된다면 읽어볼 생각이다. 이 소설에서 자세히 다루어지지 않은 뱀신의 정체란 무엇이고, 어떤 연결성을 가지는지 상당히 궁금하다. 어쩌면 이 소설은 뱀의 꼬리에 해당되고, 그 다른 소설은 머리에 해당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랑스 파우더 미스터리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이제중 옮김 / 검은숲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선입견이란 본질을 알아볼 수 없게 흐리는 대표적인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부분은 사회적 편견으로서 해석되며 확실한 맥락 없이 만들어진 결론으로 이어지고. 상세한 정보들은 뭔가 연결이 안 된다는 인상을 주며 혼란만 남겨서 그렇다. 그렇기에 무엇이 본질에 해당되고, 확실한 답으로 이어지는지 구분할줄 아는 것이 바로 탐정에 해당되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선입견을 들먹이며 단정지을 때, 침착하게 곁가지가 무엇인지 골라낼 준비를 하니까.

뉴욕 프렌치 백화점의 신상품을 소개하던 쇼윈도룸에 전시된 접이식 침대 안에서 백화점 사장의 부인이 시체로 발견된다. 퀸 경감은 백화점 관계자들의 행적을 조사하는 한편으로, 엘러리는 프렌치 부인의 소지품에서 주인을 알 수 없는 립스틱을 발견한다. 여러 의문점이 있지만 엘러리는 사건의 동기에 대한 부분을 주목하던 중, 문제의 립스틱 안에서 마약을 발견하게 되며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는데...

프랑스라는 국명을 테마로 잡은 것과 어울리게 지금으로 치면 재벌가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루는 내용이다. 보통 재벌가에서 벌어진 사건이라고 하면 벌써 많은 것들이 나오고는 한다. 집안 싸움. 재산 문제. 경영권 다툼. 부도덕한 사생활 문제. 초반에 주어진 단서들 역시 겉으로만 봐서는 너무 뻔하게 범인이라 유도하는 듯한 흔적이나 다름없기에 선입견 문제를 대놓고 제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흉기부터 현장에서 발견된 단서까지 단순 살인사건이 아니라는 인상을 강하게 주다보니 제법 긴장감을 조성한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이런 단서가 나오는 걸까. 이렇게까지 현장에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할 정도면 범인은 어떤 사람인가. 사건 현장인 백화점과 관련된 인물들에 대한 선입견에, 범인의 대략적인 인상까지 더해지니 사건이 굉장히 복잡하게 보일 정도다. 그렇다보니 탐정인 엘러리 퀸은 여기서도 매순간마다 차근차근 정리해 나가며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경향을 보인다. 보기에따라 지루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그 만큼 정리를 확실히 해두지 않으면 선입견에 갇히기 쉽다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작품이 인상적인 소거법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라 언급되는데 확실히 그렇다. 사건의 본질에 다가가는 엘러리 퀸의 시도를 보면 다소 과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모든 가능성을 염두해두는 것을 볼 수 있다. 애초에 가능성이 없다 싶으면 과감하게 제외하고.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억지에 가까운 가정을 만들기까지 한다. 이걸 보며 진정한 편견 없는 잣대란 이런 것이라고 느꼈다. 요즘에 쓰이는 표현으로 치면 모두 고려에 가까운 것이긴 하지만, 무작정 전부 의심하는 방식은 아니다. 주어진 단서 안에서 범인에 해당되는 조건을 만들어 놓고, 모든 가능성을 여기에 맞춰보는 형식이라 소거법이란 어떻게 쓰는 것인지 보여주는 것에 가깝다.

예상치 못한 범인이 밝혀지는 놀라움과 사건의 규모에 비해 보기에 따라 마지막 엔딩이 허무하게 보일 수도 있다. 강렬한 인상과 별개로 확실한 처벌과 다소 거리가 멀게 보이는 마무리라 그렇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살인사건 부분으로만 끝내고 싶은데, 사건 규모 자체가 너무 커져버린 인상이라 적절하게 끊기 위해서는 이러한 엔딩을 낼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한다. 잘못하면 메인으로 제시된 살인사건이 맥거핀으로 전략하고 전혀 다른 방향의 사건으로 전개될 위험도 없잖아 있고. 그렇게 되면 독자와의 대결을 추구하는 탐정소설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게 되는 실책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이건 작가의 사정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최선의 마무리라고 생각된다.

제목에 나온 파우더란 부분이 사실상 두 가지를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해서 조금 놀랍기도 하다. 하나는 진짜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단서인 파우더. 다른 하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된 원인이나 다름없는 파우더. 이러한 이중적인 상징을 부여한 것이 작가의 의도였다고 한다면 정말 대단하다고 여긴다. 두 파우더 모두 사건의 핵심에 도달하는 단서인 동시에 선입견을 가지게 하는 키워드에 해당되서 그렇다. 이전 작품인 <로마 모자 미스터리>가 단순한 증거물에 대한 부분을 나타내는 제목이었던 것에 비해 발전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저자의 의도와 상관없을지도 모를 독자적인 해석에 해당되는 부분이라 진실은 알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쿠드랴프카의 차례 고전부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에는 수 많은 기대가 존재한다. 무언가를 기다리며 가지는 마음이거나, 열광하고 응원하게 되는 일종의 믿음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기대란 것이 언제나 좋은 인상만을 남기는 건 아니다. 기대에 배신당하는 일은 생각이상으로 수두룩하고, 누군가에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일 수도 있다. 받아들이는 상황에 따라 같은 단어라도 받아들이는 의미가 제각각인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 어쩌면 기대란 청춘과 마찬가지로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동시에 가진 복합적인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마침내 개최된 카미야마 고등학교 축제날. 그런데 예정보다 초과된 수량으로 제작된 문집으로 인해 고전부원들은 어떻게 해야 완판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다. 각자가 맡은 역할을 하며 문집 판매를 위해 힘쓰던 중, 누군가 축제를 돌아다니며 동아리마다 물건을 하나씩 훔쳐가는 도난 사건인 일명 십문자 사건이 발생한다. 사토시는 이 사건을 이용해 문집 판매를 유도하자는 의견을 내고 직접 범인인 괴도 십문자를 찾기 위해 나서고, 호타로 역시 문집 문제와 십문자 사건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데...

떠들썩한 학교 축제 진행과정을 메인으로 다루면서 그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군상극을 다루는 구성인데, 생각이상으로 난잡하지 않게 구성을 잘한 편이다. 시리즈의 주역인 고전부원(호타로, 치탄다, 사토시, 마야카)을 개별 화자로 정해 놓음으로서 학교 곳곳을 자연스레 비추기 적절했고. 정해진 역할에 따라 다양한 상황을 보여줌으로서 복잡하지 않게 군상극을 만들기 딱이다. 축제는 축제대로 활기찬 청춘의 분위기를, 작중에서 벌어진 사건은 사건대로 축제와 관련성 있는 무게감을 주기에 어색하지도 않다.

그냥 읽으면 떠들썩한 학교 축제에 대한 이야기지만 개인적으로는 기대란 주제를 다각도로 다룬 내용이란 생각이 든다. 고전부원들의 시점에 따라 나타나는 제각기 다른 분위기를 가진 기대의 밝은 부분과 어두운 면이 나타나서 그렇다. 각 인물별로 정리하자면 이렇다.

치탄다는 스스로가 가진 기대란 감정을 해석하는 부분으로 보였다. 정확히는 기대가 가진 무게에 대한 고찰이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다. 기대란 남에게 의지하는 것인가. 아니면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인가. 작중에서 문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다니는 역할이라 이런 부분에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특히나 치탄다는 부탁에 서툰 성격이라 더 힘들테니 말이다. 사실 치탄다는 시리즈를 쭉 봐왔다면 알겠지만 사건만 발생하면 언제나 기대로 가득차는 인물이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사방이 기대할 것으로 가득한 축제란 공간이라, 평소에 하던 기대를 다른 기대들과 비교해 볼 기회나 다름없게 된다. 그렇기에 자연스레 기대에 대한 고찰을 하게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됐다고 할 수 있다.

사토시는 기대란 체념이라고 설명한다. 스스로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 되버리면 자연스레 나오게 되는 것이라고. 평소 사토시는 박학다식 하지만 딱 거기까지만 하는 역할이라 메인 보다 서포트에 해당된 역할이긴 했다. 그런 사토시가 의욕을 보이며 메인으로서 도전하고 좌절하는 부분이 나오기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흔히 말하는 탐정의 조수 역할에 해당되는 이들도 비슷했을까. 아는 것이 많고 노력한다 해도 넘을 수 없는 한계란 것이 존재한다고 말이다. 어쩌면 기대란 것은 밝은 햇볕 같은 것이 아닌 해질녘에 드리우는 그림자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쓸쓸하면서도 굳이 내색하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은 무언가.

마야카는 기대가 줄 수 있을 부정적인 면에 대해 다룬다. 이걸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요소가 바로 만화다. 고전부 외에 소속된 동아리인 만화연구부 쪽에서 축제 분위기와 상반되는 어두운 분쟁이 묘사되는데, 여기서 쟁점이된 부분은 명작은 어떤 기준으로 정해지는가의 문제다. 모두가 인정하는 것만이 명작이고, 이외의 것들은 명작이 될 수 없는 것인가. 이건 사토시의 경우와 비슷하게 기대가 가진 어두운 면에 해당된다. 누군가를 기대하게 되는 것이란, 반대로 기대받지 못한 이들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런 이들에게 기대란 스스로 자신을 깎아내리게 되는 절망이나 다름없을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기에 큰 슬픔으로 느껴지게 된다.

호타로는 기대를 받는 입장에 해당되면서 여기에 어떻게 반응해줘야 하는지 고민하는 위치다. 사실상 확실히 정해지지 않은 엔딩 바로 앞에서 기다리며 어떤 전개가 펼쳐질지 지켜보는 관전자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호타로의 시점은 여러모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단순한 운빨이라 할 수도 있고, 유동적으로 흘러가는 축제 분위기 속에서 발생한 변수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십문자 사건의 결말을 보면 애초에 정해진 운명이나 다름없긴하다. 모든 것이 해야 될 일인 문집 판매와 연관되어 흘러갔고, 이 흐름을 분석하고 이용해 먹는 가는 오직 호타로의 선택에 달린 것이라 그렇다. 언제나 그렇듯 호타로는 모두의 기대에 걸맞게 반응을 해주긴 하지만, 이번에는 기대받는 위치에서 자각하지 못할 사실들을 깨닫게 된 의미있는 순간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십문자 사건 자체에 대한 인상은 고전 추리 작품을 일상 미스터리 구성으로 패러디한 구조면서, 축제란 분위기와 상반되는 기대가 가진 그림자의 핵심을 찔러서 꽤 인상적이다. 고전부원들의 사례를 통해 보이듯이 기대란 상당히 복합적인 것이다. 여기서 더 자세히 정리하자면 재능이 있는 이들에게 재능 없는 이들이 보내는 선망, 또는 질투라는 말이 된다. 그런데 이러한 경우와 반대로 타고난 재능이 있으면서 그걸 대단하게 여기지 않고 썩히는 경우도 존재한다. 누군가에게는 상당한 노력의 산물인 것이, 다른 이에게는 그저 가벼운 취미 정도인 셈이다. 기대를 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그건 얼마나 아깝고 억장이 무너지는 일일까.

배신당한 기대 속에서 나온 외침이란 직접적으로 전달하기도 애매할 것이다. 어디까지나 상대가 하고자 하는 의욕에 달린 문제고, 잘못하면 별거 아닌 일로 싸움이 일어나거나 일방적인 강요가 되버려서 그렇다. 호타로의 경우로 놓고만 봐도 스스로가 해야되겠다고 마음 먹고서야 모두가 원하는 결말이 나왔다고 할 수 있다.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게 했다면 오히려 제 실력이 안 나오거나 아예 재능을 쓰지 않으려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기대하는 입장에서 가진 마음을 어떻개 전달하느냐가 중요하다.

제발 이 기대를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나의 기대가 이 정도니 그에 따른 답을 들려주었으면 한다. 이걸 알아주지 못하더라도 내 기대에 대한 흔적을 이렇게라도 남긴다.

쿠드랴프카의 차례에 담긴 기대는 이 정도로 보였다. 범인에 해당되는 이가 평범한 학생에 속한 경우가 아니다보니 이러한 부분이 꽤 크게 다가왔다. 쿠드랴프카란 1954년 소련에서 스푸트니크 2호에 태워 우주로 쏘아올린 개의 이름으로 우주 개발 경쟁이란 시대적 흐름 속에서 희생당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아무도 모르게 사라진 우주 개발이란 기대를 나타내는 흔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청춘 속에서 알게 모르게 사라져간 기대들처럼. 기대받는 입장이란 걸 자각하는 것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도 점점 알 수 없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모르면 모르는대로 실망하는 이들을 방치하게 되는 셈이고. 알면 아는대로 부담으로 작용해 실망을 줄지도 모르니 말이다. 어쩌면 호타로의 방식이 답일지 모르겠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은 굳하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은 간략하게. 이러면 기대 받는 입장과 기대하는 입장, 호타로와 치탄다처럼 편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 같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걷는 망자, ‘괴민연’에서의 기록과 추리
미쓰다 신조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공포와 착각은 한 끝 차이긴 하다. 갑자기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는 상황에 닥치다 보니 판단력을 잃고 헛것을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번 눈에 들어온 인상은 쉽게 바뀌지 않기에 그 실체를 영원히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착각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이고, 공포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착각이란 주장은 애써 공포를 외면하고자 만들어내는 논리적인 분석일까.

도쇼 아이는 어릴 적에 겪은 무서운 일에 대한 의문점 때문에 무묘대학교 도서관 지하의 괴이 민속학 연구실을 찾는다. 도조 겐야의 연구실로 알려진 곳이지만 정작 본인은 찾아볼 수 없고 제자인 덴큐 마히토가 지키고 있다. 겁이 많아 보이는 모습과 다르게 괴이 현상을 논리적으로 바라보는 그에게 아이는 자신이 체험한 괴담을 들려주게 되는데...

어떻게 보면 도조 겐야 시리즈의 스핀오프에 해당되는 작품으로 보였다. 도조 겐야가 존재하는 세계관이지만, 제 3자에 해당되는 관련 인물들이 등장해 기묘한 사건을 다루는 내용이라 그렇다. 도쇼 아이가 사건을 가져오는 의뢰인이고, 도조 겐야의 조수인 덴큐 마이토가 탐정에 해당된다. 그런데 아무래도 보통 사람에 해당되는 이들이라 그런지 다소 일상 미스터리에 가깝게 보이긴 한다. 정확히는 직접 현장에 가지 않고 듣기만해서 해결하는 안락의자 탐정 같으면서, 구체적인 검증은 불가능하지만 그럴싸한 논리로 납득이 된다는 부분에서 일상 미스터리 느낌이 강하다는 것이다. 물론 직접 휘말리는 사건이 아닐 뿐이지, 특유의 공포 분위기는 그대로라 일상 호러 미스터리라고 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그밖에도 동안 도조 겐야 시리즈에서 사건이 벌어진 장소들이 생각지도 못하게 엮여 있다 보니 여러모로 흥미진진했다. 다만 아무래도 일상 미스터리 분위기가 다소 있다보니 제법 무거운 분위기의 호러 미스터리를 선호하는 입장이라면 다소 불호의 의견이 나올 만하다고 본다.

「걷는 망자」

여름마다 세토우치 도리노우라의 나미토리초에 있는 외할머니댁을 방문하는 도쇼 아이. 동갑내기 친구인 무츠코와 오랜만에 만난 것도 잠시, 선주 집안인 구지라다니 가문 당주의 조카인 쇼지 때문에 마을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여자 문제로 인해 도망쳐 온 상황이면서 마을 여자들에게 관심을 보이며 돌아다니는 중이라 그렇다. 얼마지나지 않아 쇼지가 저택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게 되서 조용해지나 싶었다. 하지만 밤중에 몰래 나와 밀회를 한다는 소문과 함께 오랫동안 잊혀져 있던 망자 길에 대한 괴담이 다시 돌기 시작하는데...

세토우치라는 지명에 도리츠키지마섬이 언급되는 부분에서 도조 겐야 시리즈 2권인 <흉조처럼 피하는 것_국내 미번역>과 연관성을 가진 내용이다. 해당 작품을 몰라도 읽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긴 하지만, 미번역 작품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 있다보니 개인적으로 다소 아쉽기도 하다.

해안 지방답게 바다와 관련된 괴이가 등장하는데,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온다는 점이 다소 특이하게 보였다. 보통 바다 관련 괴이는 대부분 물 속이나 바다 한가운데서 목격되는 편이고. 육지에서 뭔가를 목격하더라도 바다로 끌어들이거나, 무언가 바다로 들어갔다는 패턴이 많다. 그런데 이 작품 속의 망자길 괴이는 바다에서 죽은 이가 육지를 떠돌아다니는 경우라 이렇게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바다라는 죽은 자의 세상과 육지라는 산 자의 세상 사이의 경계를 떠도는 존재. 여기에 밤이 되면 빛이 전혀 없는 일본 시골 분위기 속에서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간다는 상황까지 더해지면 이보다 무서운 건 없을 것이다. 어느 순간에 산 자와 죽은 자가 뒤바뀔지 모르는 일이니까.

프롤로그에 해당되서 그런지 무묘 대학교 괴이 연구실 분위기와 망자길 관련 외에는 다소 흔한 이야기 같다는 느낌이긴 하다. 외지인으로 인해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벌어진 괴이한 사건이라는 점과 치정 싸움과 연관성을 가진다는 부분에서 그렇다. 다만 사건에 대한 해석은 꽤 나쁘지 않다. 다소 고전적인 추리 방식으로 접근해 시골 마을 특유의 문화와 공간적 배경이란 민속적인 요소를 토대로 나온 가설이라 그렇다. 호러 미스터리 다운 섬뜩한 마무리는 덤이라 보기보다 망자길은 꽤 무서운 곳이라는 인상을 남긴다.

「다가오는 머리 없는 여자」

중학교 3학년 무렵, 존 딕슨 카에 푹 빠지게 된 안리 가즈히라. 우연히 교내 여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많던 가미나시 타케루와 자신이 관심사가 똑같다는 사실을 공유하게 되면서 가까워진다. 그렇게 타케루의 집까지 놀러가게 된 가즈히라는 뭔가 흉흉한 집안 분위기를 점차 느끼게 된다. 이런 와중에 어느 순간 타케루네 할머니의 말동무를 하게 되던 중, 가미나시 가문이 얽힌 어느 지방에 전해내려온 전설과 저주를 알게 되는데...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과 연관성을 가진 내용이다 보니 유독 섬뜩한 묘사와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졌다. 작중의 메인 괴이인 머리 없는 여자는 현대적인 괴담에 가까운 분위기면서 묘한 긴박감과 압박감을 주기에 히메카미 촌의 쿠비나시와는 또 다른 공포를 준다.

굉장히 뒤틀린 집안의 모습을 외부인 시점에서 다루다보니 긴장감이 그대로 느껴진다. 자연스레 눈치를 보게 되고, 원치 않게 집안의 비밀에 접근하게 되니 알게 모르게 공포가 엄습하는 과정을 그대로 따라가게 되는 과정이나 다름없다. 어떻게 보면 현대에 가까운 배경 속에 고딕호러의 예스러움을 잘 녹여냈다고 할 수 있다.

목 없는 귀신이나 괴이는 강렬한 인상을 주기 쉽다보니 너무 자주 다루어져서 식상하다고 느껴질 법도한데, 이 작품에서는 외형적인 부분보다는 분위기와 연출로 강조한 부분을 많이 느꼈다. 해질녘의 붉은 노을과 어둑해지는 주변이 소름끼치게 보일지 상상도 못했고. 점차 좁혀오며 압박해오는 긴장감을 짧고 강렬하게 나타내서 오랜만에 제대로 무서운 것을 봤다는 감상이 남을 정도다.

사연 속 주연 인물들이 추리 소설에 관심이 많다는 점 때문인지 유독 현실적으로 접근하는 면이 많이 나온다. 이건 목 없는 여자의 괴이함을 더욱 강조하기 위한 의도적인 연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냥 무섭다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해석하려 해도 도저히 말이 안 된다는 위화감을 조성하려는 의도인 것이다. 이런 부분을 보면 작가가 어떻게 해야 더욱 효과적으로 공포를 보여줄지 많이 신경썼다고 할 수 있고, 단순하지 않아서 언제나 고평가하게 된다.

강렬한 공포를 보여준 만큼 해석도 꽤 인상적이다. 오죽하면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뒤틀린 집안인 만큼 극단적인 방법이 전부였을까. 공포와 안타까운 사연은 잘 맞는 조합이라 생각하는 편이면서, 단순한 감성팔이가 아닌 씁쓸함이 너무 크게 남을 정도로 깊이가 있어 여운이 남는다.

「배를 가르는 호귀와 작아지는 두꺼비 집」

메자시라고 불리던 지방에서 근무했었다는 어느 순경이 겪은 이야기다. 곰을 잡기 위해 놓은 철창 덫 안에서 마을 아이가 연속으로 배를 갈려 죽은 일이 발생했는데 호귀라는 괴이의 소행으로 결론난 일이다. 한편 도도메라 불린 지방의 비간타케 산에서는 난쟁이가 살 법한 기이한 저택과 마주한 두 명의 체험담이 있고, 목격될 때마다 점차 작아지는 것 같다는데...

서로 다른 이야기와 괴이를 보여주면서 하나의 연결성을 보여주는 전개라 꽤 특이했다. 괴이함에서는 서로 비슷할 정도로 강렬했지만 구체적인 컨셉으로 가면 성격이 달라서 더 그랬다.

호귀의 경우는 희생자가 발생하고, 미스터리한 조사 결과로 의문만 남기는 패턴만 반복되는 형태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가능한 밀실 살인처럼 보이는 현장에 도저히 인간으로 보이지 않을 잔혹함으로 괴물영화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짧은 분량에 단순한 구조 안에서 미스터리와 스릴러가 공존하며 만들어내는 긴장감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두꺼비 집은 처음에는 깊은 산속의 외딴 집이라는 다소 흔한 방식으로 접근했다가 점차 괴기 판타지 같은 분위기로 가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옛날 이야기에도 비슷한 것이 있지 않은가. 산속을 헤매다가 다른 존재가 사는 세계로 들어오고 말았다 같은 내용 말이다. 잘못하면 허무맹랑한 내용이 될 위험이 있을만 했는데도 오히려 그런 현실적이지 않은 분위기를 기괴함으로 살려서 색다른 공포를 만들어낸다. 동일한 사건을 경험한 체험자가 두 명이 제시된다는 것도 현실감이 부족해 보이는 면을 채우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두 사건을 연결짓는 해석은 여러모로 신기하다. 민속학적인 부분에서 관련성을 찾아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분으로 연결된 답이 나와서 그렇다. 물론 앞서 나온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증거가 전혀 제시되지 않은 정황 추리에 지나지 않아서 역시나 현실감이 떨어져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걸 오히려 끔찍하고 처절한 상황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으로 이어지게 함으로서 더욱 공포스럽게 만드는 장치로 활용하기에 꽤 놀랍다. 때로는 현실이 상상보다 잔혹하다는 말을 많이 쓰게 되는데, 이걸 소설에서 잘 나타낸 것 같다는 느낌이라 그렇다. 타인에게는 그저 이해 못할 괴이한 사건이, 다른 이에게는 뒤틀린 삶이 만들어낸 생존 욕구였다니 이보다 더 잔혹한 현실은 없을 것이다.

「봉인지가 붙여진 방의 자시키 할멈」

어릴 적부터 요괴에 관심이 많아서 요괴 연구가인 교수가 근무하는 대학에 지원하게 된 구라베 마사요. 거기서 요괴 연구회라는 동아리를 발견하고 가입하게 되는데, 부장인 4학년 다카코와 남학생 3명이 사각관계로 이루어져 있던 곳이었다. 이들은 여름방학에 요괴 체험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자시키 할멈이 나온다는 바쿠치 지방의 오스미장을 방문하게 된다. 거기서 자시키 할멈이 나온다는 방에 봉인지를 붙이고 혼자 들어가 밤을 보내기로 했던 다카코가 누군가에게 목이 졸리는 일이 발생하는데...

분위기만 보면 밀실 사건에 해당되는데, 출입구에 해당되는 곳에 지켜보는 사람이 추가되어 더욱 철저해진 형태다. 여기에 사각관계라는 복잡한 인간관계까지 있다보니 이 책에 수록된 작품 중에서 가장 현실적인 추리에 더 가까워 보인다. 이렇다보니 공포 면에서는 다소 약해서 조금 아쉽다는 인상이 드는 편이다. 전반적인 스토리도 공포 분위기의 맥을 끊는 인물들이 다수라 더 그랬다.

그나마 공포 관련으로 흥미 있었던 부분은 구석놀이라는 괴담 또는 강령술의 원본에 해당되는 이야기가 나온 부분이다. 상당히 여기저기 언급되고 다루어진 것인데, 기원에 대해서는 전혀 들어본 적이 없던 중에 이 작품에서 꽤 상세한 설명이 나올 줄은 몰랐다.

추리 부분도 평소 다루던 스타일과 다르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기괴함으로 분위기를 압도하는 일본 호러 스타일이라기 보다는 현실과 기묘함이 뒤섞인 분위기인 서양 호러 스타일에 가까워 보였다. 좋게 보면 무거운 분위기만 다루다가 조금은 가볍게 분위기를 환기 시키려는 부분이라 할 수 있고. 나쁘게 보면 호러 미스터리 치고는 일상적인 가벼움이 강한 분위기라 호불호가 갈릴 만하다고 정리할 수 있다.

「서 있는 쿠치바온나」

민속학자 도키 가사이는 어느 지방의 산길을 지나던 중에 화장을 하는 순간을 목격한다. 인근에 위치한 마을 주민이자 화장꾼인 지로가 자신을 보자마자 경계하는 모습을 보여서 분위기 전환을 위해 어제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게 된다. 민속 탐방을 위해 마을을 돌아다니던 가사이는 흥미로운 민간전승을 접하게 된다. 밤중에 고개길을 넘으면 무서운 괴이와 마주친다. 이 괴이가 무엇인지 마을주민들은 절대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가사이는 직접 밤중에 고개길을 넘어보기로 했다가 진짜 그것의 모습을 보고야 말았는데...

겉으로 보기에 금기시 되는 것에 외지인이 굳이 접근하다가 화를 당하는 전형적인 이야기처럼 보일 법하다. 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다고 느껴질 정도로 다른 전개를 보여준다. 보통 금기를 어긴 당사자가 무슨 일을 당하는데, 여기서는 뿌리 깊게 금기가 퍼져 있는 지역에 무슨 일이 생기니 반대의 경우나 다름없다. 괴이 역시 앞서 나온 이야기들에 비해 차원이 다른 섬뜩함과 기괴함을 보여줘서 이것의 현실적인 해석이 가능한지 의문이 생길 정도다.

쿠치바온나 전설 자체만 보면 원귀로 인한 지벌에 해당되는 내용이다. 그것도 과거의 옛 풍습으로 인한 폐단이 가져온 불합리함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이런 탓에 금기라는 것도 사실상 해당 지역의 치부나 다름 없어서 숨기는 것으로 보일 만도 하다. 다른 무서운 이야기처럼 남일 같거나, 현실 문제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경우가 아니니 말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 만큼 원귀의 원한이 깊다고 볼 수 있기에 무서움의 강도가 남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마지막에 해당되는 내용이라 그런지 다양한 부분에서 상세하게 다루는 부분이 많다. 예를 들면 덴큐 마히토의 구체적인 추리 방식이라던가, 각 인물들의 이름에 숨겨진 일본식 말장난이라던가, 별로 주의 깊게 안 봤던 등장 인물의 설정에 대한 부분이라던가. 여기에 해석이 전혀 불가능해 보일 것 같은 괴이 사건에 대한 해석도 놀랍다. 쿠치바온나 전설과 관련된 민속학적인 배경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단서가 꽤 많았고, 사건 역시 전설과 매우 관련성이 깊어서 그렇다. 과거의 업보가 변함없이 현대까지 이어진다면 지벌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게 하고. 지벌 그 자체를 두려워해야 되는 게 아니라 뿌리 깊은 인습으로 인한 비극을 경계해야 된다는 의미를 제대로 준다고 본다.

결말에서 작가의 또 다른 시리즈 작품과 연결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매우 놀라게 된다. 사실상 이번 작품은 서로 다른 시리즈 간의 연결고리를 하고 있던 셈이다. 다만 해당 시리즈 역시 국내 정발이 도중에 끊겼고, 다시 번역될 기회가 전혀 없어 보이기에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