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싶은 사람을 위한 미스터리 입문
아라이 히사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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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작가 만큼이나 미스터리 작품을 많이 읽은 경우라면 아마도 편집자일 것이다. 매번 들어오는 작가 지망생들의 투고를 가장 많이 받고, 신작 원고를 가장 먼저 접하는 위치라 그렇게 보인다. 그렇다 보니, 어느 정도 보는 눈이 있다고 해도 될 것이다. 편집자 역시 책을 좋아하고, 더 좋은 작품을 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을 테니까.

보통 작가들 입장에서 다룬 글쓰기 책과 다르게 이 책은 편집자의 입장에서 쓰였다. 저자가 편집자 경력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미스터리 관련 동아리 활동을 했었다는 점에서도 단순히 출판사 입장에서만 다룬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래서인지 입문이라는 제목답게 최대한 간결하고 유명 작품을 예시로 들어서 설명하려는 부분이 많다. 혹시나 유명 작품을 예시로 들었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저자인 만큼 스포일러에 관해 매우 민감하게 여기니까.

구성에서 보면 1장부터 7장까지는 미스터리를 쓰는 기초를 다루고, 8장부터 13장까지는 기초 이외의 부분을 다루며 편집자 입장에서 쓴 의견이 많이 나오는 편이다. 기초적인 부분(1장~7장)은 사실상 내용에 대한 부분이라고 보면 된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말처럼 보여도, 처음 볼 때만 그렇지 자세히 보니 알고 있던 것과 다른 경우가 많다. 어렵게 생각하던 부분이 사실은 쉬운 거였고, 쉬워 보였던 것이 사실은 어려운 것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기초라고 할지라도 대충 넘길 수가 없다.

기초 이외의 부분(7장~13장)은 내용 외적인 부분으로 대체로 설정이나 분량, 제목, 공모전 준비 방법 같은 것이다. 이런 부분은 진짜 편집자나 공모전 심사위원이 아니면 느끼지 못할 점이라 굉장히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퇴짜 맞은 원고에서 아쉬운 점이 구체적으로 어떠한지 나름 구체적으로 적혀 있기에 가독성이 떨어진다, 흡인력이 떨어진다, 같은 의견이 어째서 나오는지 이해할 수 있다. 물론 공모전에 관한 부분은 일본 출판시장 기준이라 국내에서는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대체로 이런 식으로 심사를 본다는 예시가 될 수 있기에 참고 자료로서 나쁘지 않다. 또한 작가로서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한 부분을 보면 단순히 글만 잘 쓰면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이걸 어렵게 써놓았다면 모를까, 대부분 짧은 분량에 쉽게 쓰여 있다. 다른 책 같으면 어디서 봤던 내용을 반복해서 길게 설명하는 탓에 엄청 지루했을 부분을 가볍게 읽고 넘기기 좋다. 그 만큼 글쓰기 책 치고는 굉장히 쉽게 쉽게 설명하려는 편이다. 물론 쉽게 쓰인 탓에 보기에따라 깊이가 얕아 보일 수도 있지만, 너무 대충 되어 있는 건 아니라서 미스터리 관련 글쓰기 책 중에서 쉬운 걸 찾는 다면 딱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유명 작품들을 예시로 들어서 설명하는 부분은 이 책만의 특징이나 다름 없다. 다양한 추리소설 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의 소설, 게임, 영화, 드라마 같이 각 파트의 예시로 적절하고 미스터리와 연관성 있는 창작물이면 다 언급되는 편이다. 다만 언급된 창작물들 중에 번역이 안 되거나 정발된 적이 없는 것이 있어서 국내에서는 전부 접해볼 수는 없다는 건 좀 아쉽다. 이렇게까지 재미있는 작품이라고 설명이 되어 있는데 볼 수가 없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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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프로비당스호의 마부 매그레 시리즈 4
조르주 심농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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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흘러가는 강물과 같다고 하던가. 어디로 어떻게 흐를지 알 수 없고, 언제 어떻게 누구와 마주칠지 예상하기 어렵고, 어떤 식으로 끝날지 모른다. 이렇다 보니 어떤 식으로든 얽히게 되면 인연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 인연이란 오랫동안 이어질 수도 있고, 어느 한 순간 끊겨버릴 수도 있다. 그런데 이전에 끝난 걸로 알았던 인연과 다시 마주친다면 그건 뭐라고 해야 할까. 뜻밖의 재회? 아니면 악연? 타인들에게는 아무런 접점이 없어 보이기에 겉으로 알 수 없다. 당사자들만 아는 지독한 연결고리인 것이다.

에페르네 근교 시골인 디지에 있는 운하 근처에 위치한 카페 드 라 마린의 마구간 짚더미 안에서 여자 시체가 발견된다. 매그레 반장은 피해자가 방금 도착한 서든 크로스 호 선장의 아내라는 걸 알아내지만, 정작 선장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한편 시체가 발견된 마구간에서 잠을 잔 라 프로비당스 호의 마부 역시 의심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두 번째 살인이 발생하고 역시나 목격자도, 단서도 없는 상태였는데...

한정된 관계자 안에서 유력 용의자까지 좁혀져 있는 사건이다 보니 단조롭게 보일 만도 하다. 하지만 이 작품의 배경인 운하의 모습을 보면 간단해 보이지 않다. 다양한 선박들이 오가는 운하에서 만들어진 인간 군상. 선박들 간의 차이점 때문에 발생하는 운항 속도 문제. 이에 따라 선박들이 어디까지 도달하고, 때로는 멈춰서 붐비기도 하는 수문의 상황. 여기에 각 수문 간의 거리가 심하게 멀지 않다는 점까지.

정리하자면 이거다. 이 사건은 선박이 계속 움직이는 운하에서 발생하다 보니 사건 관계자 모두가 계속 가만히 있을 수 없고, 이렇다 보니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운하를 따라 돌아다닐 수밖에 없게 된다. 시체 발견 장소는 디지지만, 사실상 운하 전체가 사건 발생 장소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운하 사이를 급하게 왔다갔다 하는 매그레 반장의 행적을 보면 묘하게 스릴러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다.

사람의 인연에 대해 다루다 보니 운하라는 배경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선박들이 자주 오고 가는 운하 안에서 웬만한 사람들은 일면식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선박 안에서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끼리 함께한 오랜 세월 역시 만만치 않고. 말 그대로 다양한 인생이 뒤섞여 흘러가는 곳이다. 이러한 곳에서 옛날에 끝났다고 생각했던, 그것도 매우 좋지 않았던 인연을 다시 마주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어떻게 보면 매우 잔인한 운명이다. 겨우 과거의 나쁜 기억을 정리하고 새로운 인생을 사는데, 다시 과거의 수렁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당사자는 이걸 금방 깨닫기 쉽지 않다. 사람에게는 언제나 미련과 후회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비극에서 비극으로 흘러가는 전개를 보며 과연 인생의 어느 부분을 가장 의미가 있다고 해야 할지 생각이 많아졌다. 그저 흘러가는 방향만 잘 보면 그만 일까. 아니면 마지막에 도달하는 곳이 중요할까. 무엇이 정답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하나는 확실히 알 거 같기도 하다. 인생의 말년은 외롭지 않아야 한다고. 누구든 같이 있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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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야
소네 케이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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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열대야

8월의 어느 밤, 산장에서 돈 문제로 들이닥친 야쿠자와 빚을 진 친구 부부 사이에 낀 채로 있게 된 나. 친구인 토도는 2시간 안에 돈을 구해오겠다며 내 차를 빌려 타고 나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토도는 돌아오지 않고, 더 이상 기다릴 생각을 하지 않은 야쿠자가 친구의 아내 미스즈를 노리는 바람에 지켜야 했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이기 때문에 더더욱...

사실상 욕망을 테마로 다룬 내용이나 다름 없다. 욕망으로 인해 인연이 꼬이고, 욕망으로 인해 극한의 상황에 몰리고, 그 극한의 상황 속에 뒤틀린 끔찍한 욕망이 존재하고, 또 다른 곳에서도 판단을 뒤흔드는 욕망이 나오고. 모든 곳에 욕망이 존재하고 욕망과 욕망이 싸우며 서로가 먼저라고 주장한다.

무척이나 기분 나쁘고 절망적인 전개가 이어지는 가운데,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 이어지면서 지금까지 일어난 사건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이게 이 부분 아니었던가? 그럼 그건 대체 뭐였을까? 그게 사실은 이것이었다니! 참 기가막히고 어이없는 연계를 보며 제목이 참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숨막히는 무더운 여름의 밤 그 자체다. 이 작품 속에 존재한 따뜻함이란 그저 불쾌한 여름 밤의 열기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결국에......

겨울의 어느 날, 건강 검진을 받으러 병원을 찾은 노인 테츠지. 노인 봉사활동 단체로 위장한 어느 급진파 조직에 들어 갔지만 현상금 때문에 정부 측에 밀고하는 코이치. 시체 정리 서비스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학생 토라노스케. 고령화 문제가 극심해진 세상에서 이들은 어떻게든 살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들이 도달한 곳은 결국...

인물 3명의 시점을 보여주지만, 코이치 말고는 딱히 심각한 문제에 휘말리지 않다 보니 이게 대체 무슨 내용인지 상당히 의아했다. 노인 복지에 대한 문제? 실업 문제가 극심해진 암울한 미래 사회? 그런데 점차 생각했던 것과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진실이 계속 나오면서 충격을 받게 된다. 남일 같지 않은 현대 사회의 문제가 심화된 가까운 미래처럼 보이며, 최소한의 희망과 온정마저 짓밟히고 식어버리는 현실을 보게 되서 그렇다.

정보가 통제되고, 국가의 뜻대로 따르지 않으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할 수 없고, 사회적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분쟁을 조장하고. 아무 것도 모른 채 국가라는 이름 하에 희생되는 현실이라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본이 현대에 재현된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것도 고령화 사회에 맞춘 형태로 말이다. 다만 이건 일본에서만 일어날 법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아 둬야 한다. 인구 고령화와 세대 갈등이 만연한 현대사회 어떤 곳에서도 가능할 법한 최악의 시나리오나 다름 없다.

작중에서 토라노스케는 자신이 좁은 세계에 살고 있었다, 즉 우물 안의 개구리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우물이 스스로가 생각하는 우물이 과연 맞을까? 누군가가 우물의 존재를 말하는 것과 스스로가 느낀 우물의 존재가 동일할까? 우물 바깥에 더 큰 우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만큼 절망적인 건 없다.

마지막 변명

시청에서 근무하는 나는 쓰레기로 가득한 어느 집에 대한 민원을 받게 된다. 문제의 집은 신흥주택지에 있었고 거기로 가는 도중에 옛날에 살던 동네를 지나게 된다. 죽었다 되살아난 소생자들이 일으킨 폭동으로 아버지를 잃었던 기억과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이 남아 있던...

처음에는 좀비 아포칼립스를 다룬 작품으로 보였는데, 점차 흔히 생각하는 좀비와 뭔가 다른 걸 넘어 이걸 과연 좀비라고 해도 되는 건지 의문스러워졌다. 별로라는 의미가 아니다. 평소 잘 알던 것인데 뭔가 다른 점이 많다 보니 느껴지는 신선한 충격, 또는 위화감이라고 해야겠다.

좀비로 인한 멸망이나 생존이 아닌 사회문제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사실 이런 부분은 예전부터 종종 나오던 소재긴 하다. 좀비로 인해 멸망까지 갔다가 해결책을 발견해서 다시 복구 되기 시작한 사회의 혼란상. 피해자와 가해자가 분명히 나누어져 있지만 따지기 어려운 책임. 좀비에 대한 인권 문제. 그 밖에도 다양한 법률적 문제나 사회적 갈등을 나타난다. 하지만 소재가 비슷하다 해도 이 작가 특유의 매우 복잡한 감정과 점차 흘러나오는 불쾌한 묘사는 그 어디에서도 따라오지 못할 것이다.

이 작품에서의 좀비는 그저 살아 움직이는 시체가 아니다. 소생이라는 말 그대로 되살아난 사람이다. 여기에 흔하게 알려진 좀비의 특성이 적용되면서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발생한다. 대체로 이런 점을 이용해 사회 비판을 나타내는 작품들이 많다. 여기서도 사회 비판 같은 요소로 보이는 부분이 꽤 있지만, 과연 이게 메인인지 혼란스럽게 하는 진실이 점차 밝혀진다. 사실상 좀비가 가지고 있는 본능적인 욕망, 식욕에 대해 강조하는 내용이나 다름 없다. 이성 없는 식욕은 그저 괴물이라 여기고 처치하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이성 있는 식욕이라면 어떻게 될까? 무슨 방식으로든 식욕을 정당화 하기 위해 수를 쓸 것이다. 특히 이게 가장 무서운 점이다. 특정 집단이 다수가 되면 그들의 주장이 곧 상식이 된다는 것. 비정상적인 행동이 상식이 되고, 어쩔 수 없다는 변명으로서 작용 되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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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폴리앵에 지다 매그레 시리즈 3
조르주 심농 지음, 최애리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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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언제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지 모르는 일이다. 지난 날의 추억, 철 없던 시절의 무모함, 무엇 하나 두렵지 않던 시절의 모험담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다. 지울 수 없는 흔적으로 남은 얼룩이 되면 잊고 지내다가도 다시 나타나는 순간이 생긴다. 현재의 자신이 노력해온 모든 업적과 일상을 뒤흔들지 모를 나비효과로 말이다. 애초에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으냐 따지려 해도 이미 멀리와도 너무 멀리와버린지 오래다.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는 결국 당사자들의 몫이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출장 일정을 끝낸 매그레는 거기서 수상한 사내를 목격하고 재미 삼아 뒤쫓게 된다. 국제 사기꾼이라 추측한 나머지 중간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사내의 가방을 바꿔치기까지 한다. 그런데 독일 브레멘의 허름한 숙소에 도착한 사내는 가방을 도둑맞은 사실을 알게 되자 그 자리에서 권총 자살을 해버린다. 당혹감에 빠진 매그레는 사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기 위해 가방을 조사해본다. 하지만 프랑스인이라는 사실과 허름한 옷이 전부였다. 그것도 사내의 옷 사이즈와 맞지 않는 남의 옷이었다...

시작부터 모든 것이 수수께끼인 상태로 진행되는 사건이라 그 어떤 예측도 하기 어렵다. 보통은 사건이 발생하는 원인으로 보이는 점이나, 관련 인물이 제시되는 등의 배경을 어느 정도 제시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 작품의 경우는 시작부터 갑자기 사건을 툭 던져 놓는 형태다. 애초에 무슨 범죄가 있었는지 알 수 없는 것도 그렇고, 사건과 연관되어 보이는 장소가 여러 국가에 걸쳐 광범위한 것도 그렇고, 관련 인물도 경우에 따라 늘어나기도 줄어들기도 한다. 사실상 배경을 알아내는 과정부터 시작해야 되다 보니 그야말로 엄청난 미스터리 자체다.

이렇게 사건의 판이 크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장면들이 나온다. 이상하게 연관되어 가는 인물들, 점차 들어 나는 공통된 장소, 과거로 얽힌 인연들, 알게 모르게 다가오는 위협. 대체 무엇이 이렇게 긴박한 스릴러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는가. 뭔가 엄청난 음모와 거대한 범죄가 얽힌 걸로 보이지만, 그런 건 매그레 반장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일상이 존재할 뿐이다. 그냥 소중하다 못해 지켜야 할 무게와 책임이 뒤따르는 삶 그 자체다.

젊은 시절의 객기와 야망. 어떤 의미로는 철 없는 시절이라 해도 되는 이 시기는 어느 시대나 비슷할 것이다. 방탕함을 그저 즐기고, 말도 안 되는 사고를 치고, 그걸 어떻게든 들키지 않게 숨기려 하고. 누구는 이걸 극복해서 자신의 인생이라고 할 수 있는 걸 개척하게 된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어떤 이는 여전히 그 시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침몰해 버린다. 그것도 혼자 죽지 않으려 하면서.

이렇게 되면 가진 자들이 더욱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금전적으로 많이 가졌든. 그게 아니더라도 사는 이유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최소한의 행복을 가졌든 말이다. 물론 작중에서 문제가 되는 핵심 사건은 단순히 웃고 넘어갈 일이 절대 아니다. 이유나 과정이 어떻게 됐든 벌어진 죄에 대한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아무도 모르고 흔적과 증거가 남아 있지 않은 이 범죄를 전부 파해쳐야 하는가. 이걸 굳이 들춰서 당사자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과 함께하는 모든 이들을 불행하게 만들 필요가 있는가.

어떻게 보면 가해자에 대한 선처로 보일 만도 하나, 이게 현대에 자주 일어나는 감형 문제나 관대한 사법에 대한 문제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인생의 희비가 갈린 젊은이들,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히 애나 다름 없는 이들이 서로 얽힌 안타까운 드라마다. 단 하나의 진실이냐. 여러 사람의 일상을 그대로 두느냐. 그렇기에 매그레 반장 역시 기분이 썩 좋을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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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레 씨, 홀로 죽다 매그레 시리즈 2
조르주 심농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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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재수 없으면 얼마나 없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단순히 좋은 기회가 있었는데 놓쳤거나, 코앞에서 큰 돈을 보내버린 상황 같은 걸 금방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이런 걸 놓쳤더라도 남아 있는 행복이 있다면 그저 아까운 순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최소한의 행복도 없는 상황에서 지금 이 순간을 바꿀 기회가 있었는데 놓치고 말았다. 이 정도는 돼야 재수 없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무더운 여름 날, 상세르의 어느 호텔에서 방문 판매 사원 에밀 갈레가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한다. 그 어떤 범행 동기도 생각해 볼 수 없는 가운데, 매그레는 범인보다 피해자인 에밀 갈레에게 더욱 관심이 간다. 갈레는 이 호텔에 가명을 쓴 채로 있었고, 심지어 방문 판매 회사로부터는 이미 직원이 아니라는 확인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보통 추리소설하면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과정을 다룬다. 그런데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피해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는 것이 사실상 핵심이나 다름 없다. 범인을 아예 신경 쓰지 않는 다는 건 아니다. 단지 수사하면 할 수록 피해자 때문에 범인이 특정 되지 않는 기묘한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대체 뭐하는 사람이라서 살해 당할 동기가 생겼는가. 그렇지만 그럴싸한 동기가 발견되지 않았으니 대체 왜 죽은 건가. 이런 탓에 우선 순위가 범인보다는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세기 초중반에 여전히 남아 있던 귀족 집안, 이른바 왕당파에 해당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다룬 내용이나 다름 없다. 여전히 집안의 품위 같은 것에 신경 쓰는 가식적인 면이 많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보이는 인간적인 모습이 공존한다. 그걸 잘 보여주는 곳이 바로 에밀 갈레의 집안이다. 평범한 남자와 귀족 집안의 여자가 결혼해서 받게 되는 취급. 그런 취급 때문에 발생하는 집안 내의 미묘한 감정 싸움.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재벌 가문의 낭만적인 러브 스토리 같은 거랑 전혀 비슷하지 않다. 그저 돈에 치이고 치여서 행복이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침울한 현실 그 자체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신분제가 유명무실해진 근현대라서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돈이면 뭐든 되는 세상에서 높은 신분이라고 반드시 좋은 대접을 받는 건 아니다. 그저 기회를 발견해서 그걸 노리고 파고든 사람이 모든 걸 가지는 세상이다. 이런 풍토에서 세상물정 모르거나, 끼리끼리 뭉쳐 있는 귀족들이란 아주 그럴 싸한 먹잇감이나 다름 없다. 뭐, 귀족이니까 푼돈 살짝 뜯겨봐야 별일 아니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귀족 역시 사람은 사람이다. 모두가 부자라는 법은 없고, 언제나 넉넉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여기에 재수 없는 일이 연속으로 겹친다면, 그야말로 불행으로 가득한 드라마 그 자체가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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