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레 씨, 홀로 죽다 매그레 시리즈 2
조르주 심농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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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재수 없으면 얼마나 없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단순히 좋은 기회가 있었는데 놓쳤거나, 코앞에서 큰 돈을 보내버린 상황 같은 걸 금방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이런 걸 놓쳤더라도 남아 있는 행복이 있다면 그저 아까운 순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최소한의 행복도 없는 상황에서 지금 이 순간을 바꿀 기회가 있었는데 놓치고 말았다. 이 정도는 돼야 재수 없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무더운 여름 날, 상세르의 어느 호텔에서 방문 판매 사원 에밀 갈레가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한다. 그 어떤 범행 동기도 생각해 볼 수 없는 가운데, 매그레는 범인보다 피해자인 에밀 갈레에게 더욱 관심이 간다. 갈레는 이 호텔에 가명을 쓴 채로 있었고, 심지어 방문 판매 회사로부터는 이미 직원이 아니라는 확인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보통 추리소설하면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과정을 다룬다. 그런데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피해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는 것이 사실상 핵심이나 다름 없다. 범인을 아예 신경 쓰지 않는 다는 건 아니다. 단지 수사하면 할 수록 피해자 때문에 범인이 특정 되지 않는 기묘한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대체 뭐하는 사람이라서 살해 당할 동기가 생겼는가. 그렇지만 그럴싸한 동기가 발견되지 않았으니 대체 왜 죽은 건가. 이런 탓에 우선 순위가 범인보다는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세기 초중반에 여전히 남아 있던 귀족 집안, 이른바 왕당파에 해당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다룬 내용이나 다름 없다. 여전히 집안의 품위 같은 것에 신경 쓰는 가식적인 면이 많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보이는 인간적인 모습이 공존한다. 그걸 잘 보여주는 곳이 바로 에밀 갈레의 집안이다. 평범한 남자와 귀족 집안의 여자가 결혼해서 받게 되는 취급. 그런 취급 때문에 발생하는 집안 내의 미묘한 감정 싸움.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재벌 가문의 낭만적인 러브 스토리 같은 거랑 전혀 비슷하지 않다. 그저 돈에 치이고 치여서 행복이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침울한 현실 그 자체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신분제가 유명무실해진 근현대라서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돈이면 뭐든 되는 세상에서 높은 신분이라고 반드시 좋은 대접을 받는 건 아니다. 그저 기회를 발견해서 그걸 노리고 파고든 사람이 모든 걸 가지는 세상이다. 이런 풍토에서 세상물정 모르거나, 끼리끼리 뭉쳐 있는 귀족들이란 아주 그럴 싸한 먹잇감이나 다름 없다. 뭐, 귀족이니까 푼돈 살짝 뜯겨봐야 별일 아니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귀족 역시 사람은 사람이다. 모두가 부자라는 법은 없고, 언제나 넉넉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여기에 재수 없는 일이 연속으로 겹친다면, 그야말로 불행으로 가득한 드라마 그 자체가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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