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폴리앵에 지다 매그레 시리즈 3
조르주 심농 지음, 최애리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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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언제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지 모르는 일이다. 지난 날의 추억, 철 없던 시절의 무모함, 무엇 하나 두렵지 않던 시절의 모험담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다. 지울 수 없는 흔적으로 남은 얼룩이 되면 잊고 지내다가도 다시 나타나는 순간이 생긴다. 현재의 자신이 노력해온 모든 업적과 일상을 뒤흔들지 모를 나비효과로 말이다. 애초에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으냐 따지려 해도 이미 멀리와도 너무 멀리와버린지 오래다.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는 결국 당사자들의 몫이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출장 일정을 끝낸 매그레는 거기서 수상한 사내를 목격하고 재미 삼아 뒤쫓게 된다. 국제 사기꾼이라 추측한 나머지 중간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사내의 가방을 바꿔치기까지 한다. 그런데 독일 브레멘의 허름한 숙소에 도착한 사내는 가방을 도둑맞은 사실을 알게 되자 그 자리에서 권총 자살을 해버린다. 당혹감에 빠진 매그레는 사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기 위해 가방을 조사해본다. 하지만 프랑스인이라는 사실과 허름한 옷이 전부였다. 그것도 사내의 옷 사이즈와 맞지 않는 남의 옷이었다...

시작부터 모든 것이 수수께끼인 상태로 진행되는 사건이라 그 어떤 예측도 하기 어렵다. 보통은 사건이 발생하는 원인으로 보이는 점이나, 관련 인물이 제시되는 등의 배경을 어느 정도 제시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 작품의 경우는 시작부터 갑자기 사건을 툭 던져 놓는 형태다. 애초에 무슨 범죄가 있었는지 알 수 없는 것도 그렇고, 사건과 연관되어 보이는 장소가 여러 국가에 걸쳐 광범위한 것도 그렇고, 관련 인물도 경우에 따라 늘어나기도 줄어들기도 한다. 사실상 배경을 알아내는 과정부터 시작해야 되다 보니 그야말로 엄청난 미스터리 자체다.

이렇게 사건의 판이 크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장면들이 나온다. 이상하게 연관되어 가는 인물들, 점차 들어 나는 공통된 장소, 과거로 얽힌 인연들, 알게 모르게 다가오는 위협. 대체 무엇이 이렇게 긴박한 스릴러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는가. 뭔가 엄청난 음모와 거대한 범죄가 얽힌 걸로 보이지만, 그런 건 매그레 반장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일상이 존재할 뿐이다. 그냥 소중하다 못해 지켜야 할 무게와 책임이 뒤따르는 삶 그 자체다.

젊은 시절의 객기와 야망. 어떤 의미로는 철 없는 시절이라 해도 되는 이 시기는 어느 시대나 비슷할 것이다. 방탕함을 그저 즐기고, 말도 안 되는 사고를 치고, 그걸 어떻게든 들키지 않게 숨기려 하고. 누구는 이걸 극복해서 자신의 인생이라고 할 수 있는 걸 개척하게 된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어떤 이는 여전히 그 시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침몰해 버린다. 그것도 혼자 죽지 않으려 하면서.

이렇게 되면 가진 자들이 더욱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금전적으로 많이 가졌든. 그게 아니더라도 사는 이유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최소한의 행복을 가졌든 말이다. 물론 작중에서 문제가 되는 핵심 사건은 단순히 웃고 넘어갈 일이 절대 아니다. 이유나 과정이 어떻게 됐든 벌어진 죄에 대한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아무도 모르고 흔적과 증거가 남아 있지 않은 이 범죄를 전부 파해쳐야 하는가. 이걸 굳이 들춰서 당사자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과 함께하는 모든 이들을 불행하게 만들 필요가 있는가.

어떻게 보면 가해자에 대한 선처로 보일 만도 하나, 이게 현대에 자주 일어나는 감형 문제나 관대한 사법에 대한 문제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인생의 희비가 갈린 젊은이들,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히 애나 다름 없는 이들이 서로 얽힌 안타까운 드라마다. 단 하나의 진실이냐. 여러 사람의 일상을 그대로 두느냐. 그렇기에 매그레 반장 역시 기분이 썩 좋을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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