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프로비당스호의 마부 매그레 시리즈 4
조르주 심농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인생은 흘러가는 강물과 같다고 하던가. 어디로 어떻게 흐를지 알 수 없고, 언제 어떻게 누구와 마주칠지 예상하기 어렵고, 어떤 식으로 끝날지 모른다. 이렇다 보니 어떤 식으로든 얽히게 되면 인연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 인연이란 오랫동안 이어질 수도 있고, 어느 한 순간 끊겨버릴 수도 있다. 그런데 이전에 끝난 걸로 알았던 인연과 다시 마주친다면 그건 뭐라고 해야 할까. 뜻밖의 재회? 아니면 악연? 타인들에게는 아무런 접점이 없어 보이기에 겉으로 알 수 없다. 당사자들만 아는 지독한 연결고리인 것이다.

에페르네 근교 시골인 디지에 있는 운하 근처에 위치한 카페 드 라 마린의 마구간 짚더미 안에서 여자 시체가 발견된다. 매그레 반장은 피해자가 방금 도착한 서든 크로스 호 선장의 아내라는 걸 알아내지만, 정작 선장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한편 시체가 발견된 마구간에서 잠을 잔 라 프로비당스 호의 마부 역시 의심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두 번째 살인이 발생하고 역시나 목격자도, 단서도 없는 상태였는데...

한정된 관계자 안에서 유력 용의자까지 좁혀져 있는 사건이다 보니 단조롭게 보일 만도 하다. 하지만 이 작품의 배경인 운하의 모습을 보면 간단해 보이지 않다. 다양한 선박들이 오가는 운하에서 만들어진 인간 군상. 선박들 간의 차이점 때문에 발생하는 운항 속도 문제. 이에 따라 선박들이 어디까지 도달하고, 때로는 멈춰서 붐비기도 하는 수문의 상황. 여기에 각 수문 간의 거리가 심하게 멀지 않다는 점까지.

정리하자면 이거다. 이 사건은 선박이 계속 움직이는 운하에서 발생하다 보니 사건 관계자 모두가 계속 가만히 있을 수 없고, 이렇다 보니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운하를 따라 돌아다닐 수밖에 없게 된다. 시체 발견 장소는 디지지만, 사실상 운하 전체가 사건 발생 장소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운하 사이를 급하게 왔다갔다 하는 매그레 반장의 행적을 보면 묘하게 스릴러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다.

사람의 인연에 대해 다루다 보니 운하라는 배경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선박들이 자주 오고 가는 운하 안에서 웬만한 사람들은 일면식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선박 안에서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끼리 함께한 오랜 세월 역시 만만치 않고. 말 그대로 다양한 인생이 뒤섞여 흘러가는 곳이다. 이러한 곳에서 옛날에 끝났다고 생각했던, 그것도 매우 좋지 않았던 인연을 다시 마주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어떻게 보면 매우 잔인한 운명이다. 겨우 과거의 나쁜 기억을 정리하고 새로운 인생을 사는데, 다시 과거의 수렁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당사자는 이걸 금방 깨닫기 쉽지 않다. 사람에게는 언제나 미련과 후회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비극에서 비극으로 흘러가는 전개를 보며 과연 인생의 어느 부분을 가장 의미가 있다고 해야 할지 생각이 많아졌다. 그저 흘러가는 방향만 잘 보면 그만 일까. 아니면 마지막에 도달하는 곳이 중요할까. 무엇이 정답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하나는 확실히 알 거 같기도 하다. 인생의 말년은 외롭지 않아야 한다고. 누구든 같이 있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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