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살인 사건 매그레 시리즈 7
조르주 심농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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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다고 하면 정말 조금의 흠도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너무 깔끔해서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인상이 들기도 한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모습과 다른 어두운 구석.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해도 체면을 생각해서 쉬쉬하는 풍조. 소란이 싫다는 이유로 진실에 다가가는 것을 경계하는 시선. 이런 게 있으면서 과연 깔끔하다고 할 수 있을까? 제 아무리 소란이 싫어서 감추고 싶은 일이 있다 해도 완전히 숨길 수는 없다. 결국은 균열이 발생하고 마련이니까. 깨끗함 밑에 가둬 두고 억압하던 오래 묵은 불만과 분노가 폭발해서.

네덜란드 델프제일에서 해군 사관 학교 교수 포핑아가 집에서 총에 맞아 살해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유력 용의자로 초청을 받아 방문한 낭시 대학 교수 장 뒤클로가 지목된다. 이런 통보를 받고 매그레 반장은 사실상 비공식으로 델프제일에 파견을 나가게 된다. 반장은 사건 관계자들로부터 당시 상황에 대해 더 자세히 들어보니 이상한 점이 더 발견된다. 뒤클로 교수가 범인으로 지목된 이유가 총을 들고 있었기 때문인데, 문제의 총은 2층 욕실에서 발견해서 무심코 들고 나왔다는 것. 그리고 욕실의 욕조 안에서 낡은 선원 모자가 발견됐고 주인은 포핑아와 친분 있던 오스팅이라는 노인이라고 한다...

프랑스를 벗어나 타국에서 벌어진 사건에 개입하는 내용이다 보니 매그레 반장의 입장에서 주변 환경이 낯설게 묘사되는 편이다. 사실 〈생 폴리앵에 지다〉에서도 타국인 독일에서 사건이 벌어지긴 했지만, 돌고 돌아 결국은 프랑스 안에서 시작된 사건으로 해결됐다. 그렇기에 타국에서 벌어진 사건에 제대로 개입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 할 수 있다.

대체로 네덜란드 하면 떠오르는 엄청난 운하와 아름다운 풍경이 돋보이면서 지금과는 다른 딱딱한 인상이 많은 편이다. 다소 과하게 행동 하나 하나를 조심스러워하고.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그 어떤 소란이나 추문이 발생하기를 꺼리는 모습에서 깔끔을 넘어 결벽증으로 보일 정도다. 실제로 지금의 자유분방한 네덜란드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이 2차 세계대전 이후라고 하니, 그 이전에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였을지도 모른다.

살인사건이라는 중범죄가 벌어졌음에도 대체로 평온한 분위기를 유지하려는 느낌이라 점차 이상함을 느끼게 한다. 보통 한 번 정도는 나올 법한 의심이나 수상쩍은 면에 대한 논의가 일절 나오지 않고 사건 관계자들은 하나 같이 이런 식이다. 피해자는 누구에게도 미움 받을 사람이 아니었다. 사건 관계자 그 누구와도 아무 일 없었다. 자신은 아무 짓도 안 했으니 결백하다. 분명 범죄는 내부에서 발생했는데, 사실상 죄는 저 멀리 외부의 다른 곳에 있다는 듯한 투다. 이렇다 보니 매그레 반장 입장에서는 그다지 좋게 보일 리가 없다. 시답지 않은 이유로 쓸 때 없이 사건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으니까.

추리 작품에서 흔한 사건 관계자들을 모아 놓고 진실을 밝히는 과정이 이 작품에서 쓰이게 된 건 이러한 배경 때문일 것으로 본다. 그저 말로 설명하는 것을 넘어 사건 발생 당일의 상황을 시간 순서 그대로 재현할 정도다. 이렇게 까지 해야 범인은 물론이고 사건 관계자 전원까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으로 봐야겠다. 보통 이런 클라이맥스 부분은 범인을 몰아 붙이는 의도가 강한 편이나 이 작품에서는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그 만큼 범인도 범인이지만 사건 관계자 때문에 더욱 힘든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답답한 분위기의 문화 속에서 발생한 비극이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자유분방함을 죄악으로 여긴 탓에 재미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불행. 그렇다고 자유를 위해 체면을 버릴 각오까지는 없었기에 발생하는 갈등. 여기에 체면 밖에 없었기에 생겨버린 뒤틀린 감정으로 인한 증오. 제일 경악스러운 건 이 모든 걸 덮어버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지내고자 하는 분위기다. 사건이 해결됐다고 관계자 대다수가 불쾌해 하는 경우라니. 진실 보다는 대외적 이미지에 흠집이 생긴 걸 더 중요하게 여기게 하는 그 놈의 체면이 뭐라고.

이러니 매그레 반장이 당혹감에 속이 터지다 못해 우울해질 수 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무엇이 잘못됐는지 전혀 모른 채 그저 깨끗함만 중요시 해서 남는 게 뭐란 말인가. 오직 깨끗하기만 해서 그게 행복일까? 깨끗해지려 하는 행동이 지나치면 되려 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 걸까? 이걸 보면 엄격하게 체면 따져가며 살 필요가 없어 보인다. 너무 방탕한 것도 문제는 문제지만, 그 반대 역시 문제가 없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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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로의 밤 매그레 시리즈 6
조르주 심농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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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이 살면서 서로를 파악하는 건 중요한 문제다.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파악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전혀 다른 일이 많아서 그렇다. 이게 단순히 사람의 성격이나 어떤 과거를 살았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의 삶에서 무엇을 원하고, 무엇이 중요하고, 그리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가 묻는 것이다. 이걸 신경 쓰지 못한다면 한 쪽만 일방적인 관계가 되고 상대방은 전혀 다르게 생각하는 이상한 모습이 된다. 이렇게 되면 누가 거짓인지 알아보기 어렵고, 누군가의 진심은 의심을 받으며 왜곡될 수밖에 없다.

아르파종 교외의 <세 과부의 교차로>에서 다이아몬드 상인 이자크 골드베르그가 총에 맞아 죽은 채로 발견된다. 발견 장소는 동생과 같이 살고 있던 카를 안데르센 집의 차고에 있던 차량 안이다. 그런데 시체가 타고 있던 차는 안데르센의 차가 아닌 근처에 사는 보험업자의 차였고, 안데르센의 차는 보험업자 집의 차고에 있던 것이다. 이런 탓에 유력 용의자 추정하고 체포된 안데르센에 대한 혐의가 확실하지 않아 매그레는 골머리를 썩는데...

뭔가 간단해 보이면서도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묘하게 보인다. 있는 그대로만 본다면 시체는 원래 그대로 있는데, 차량의 위치만 바뀐 것이다. 다른 가정을 한다면 시체가 원래 있던 위치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수도 있는데, 굳이 차량을 바꿔치기 해야 할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문제가 생긴다. 사건 장소가 민가가 극도로 적은 한적한 시골의 교차로 지점이라 사건 관계자로 추정된 인물이 한정적인데도 이렇다는 것이다. 게다가 작은 사건으로 보이던 것이 갑자기 큰 사건으로 번져서 점점 더 이게 무슨 사건인지 감을 못 잡게 한다.

한편의 스릴러를 연상케 하는 느낌이 강하다. 엄청난 추격전이나 액션 같은 건 아니지만,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를 긴장감과 돌발적인 총격 장면이 자주 나와서 그렇다. 평소에 알던 매그레 반장이 나오는 작품 스타일과 조금 다르게 보여 낯설기도 하면서, 색다른 묘사들이 강렬하게 눈길을 확 끌어 흥미롭게 한다. 제목처럼 많이 나오는 밤 중의 교차로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말이다. 이 어둠 속을 가르거나 점차 밝히는 다양한 빛에 대한 묘사가 다양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차량 불빛, 손전등 불빛, 담뱃불, 야간 조명 같은 인공적인 불빛에서는 초조함과 긴박감이 나타나고. 지평선 너머로 올라오는 새벽의 햇빛 같은 자연의 불빛은 긴장을 완화 시켜 안정감을 나타냄과 동시에 모든 게 끝난 뒤에 팍 나타나는 클라이맥스 효과 같기도 하다. 여기에 시골 풍경에서 들려오는 다양한 소음들까지 더해지며 외진 교외의 시골 교차로가 가진 두 가지 모습을 인상적이게 보여준다.

이렇게 마치 영화 같은 느낌이면서 평소의 드라마 부분은 여전히 안타까운 사연을 보여준다. 겉으로 보면 섞일 수 없는 두 사람이 만나 발생한 비극이지만, 한편으로는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나 올곧은 순정이라 발생한 희극 같기도 하다. 온갖 음모와 암투가 판치는 가운데서 그 순정은 참으로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 이용해 먹을 검은 손길이 계속 덮치는데도 그 어떤 흠집 없이 한결 같으니. 되려 이 순정 때문에 엄청난 범죄가 마구 꼬여서 촌극 같이 보였을 정도라 말 다했다. 매사에 진심이고, 숨김 없이 사실을 털어 놓고도 의도를 의심 받고. 온갖 위협에 시달리고도 일편단심이기에 이 드라마 역시 양면이 돼버린다. 당사자에게는 누가 뭐라 해도 본인만 좋다면 상관 없을 희극. 타인이 보기에는 왜 저렇게 까지 하는지 이해가 안 돼서 그저 딱하게 보이는 비극.

이 희극과 비극이 동시에 공존하는 드라마를 보며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 다는 걸 다시 보게 된다. 제 아무리 지극정성을 다하는 순정이라 해도 손에 익은 버릇을 고칠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아예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분명 나쁜 사람은 아닌데, 싫어지게 되는 애증으로 이어졌으니 말이다. 이게 나쁜 것인지 좋은 것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누가 뭐라 해도 어쨌든 이걸 받아들이는 당사자의 마음에 달린 문제라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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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치 체포록 - 에도의 명탐정 한시치의 기이한 사건기록부
오카모토 기도 지음, 추지나 옮김 / 책세상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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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미의 혼령

귀신 이야기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나는 작은 아버지의 지인인 K삼촌이 겪었다는 오후미의 유령 이야기를 듣게 된다. 무가 집안의 마쓰무라는 시집 간 여동생 오미치가 갑자기 이혼을 하겠다며 찾아와 크게 놀란다. 이유는 어느 날부터 밤마다 오후미라는 여자의 유령이 나와서 자신과 아이가 불안에 떠는데도 남편이 상대해 주지 않아 못 살겠다는 것이었다. 마쓰무라는 유령 이야기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며 오미치의 남편인 오바타를 찾아가게 되는데...

스토리 구조만 보면 다소 흔한 유령 이야기의 실체를 파악하는 가벼운 추리극이다. 크게 복잡하지 않고 간단한 구성이다 보니 너무 무난하다는 생각이 들 만하다. 하지만 이게 한시치라는 인물이 첫 등장한 데뷔작이라는 점에서 조금 다르게 볼 여지도 있다. 겉으로 볼 때 기묘한 사건을 현실적인 사건으로 해결 가능하다는 컨셉을 어필하고. 한시치가 대체로 어떤 스타일의 인물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점에서는 나쁘지 않다. 적당히 프롤로그로서 보면 되겠다.

석등롱

한시치가 아직 오카핏키 밑의 데사키로 일하던 시절인 19살 무렵에 있던 일이다. 기쿠무라라는 분가게의 딸 오키쿠가 아사쿠사에 있는 관음보살님에게 참배하러 갔다가 실종된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실종 다음 날, 오키쿠가 기쿠무라에 나타났다가 그대로 다시 사라졌다. 참배하러 갔을 때 신었던 나막신을 현관에 남긴 채. 그 다음 날에는 기쿠무라의 안주인인 오토라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범인은 행방이 묘현한 오키쿠라고 하는데...

한 끝 차이로 괴담과 현실 범죄가 공존하는 분위기라 한시치의 첫 사건이자 발표된 순서 상 두 번째 작품인데도 여러모로 놀랍다. 추리 부분이 한시치만 알아보는 작은 단서와 정보로 해결된 점(사실 이건 <오후미의 유령>에서도 마찬가지다.)이 요즘 시점에서 보면 다소 김이 새지만, 결과를 먼저 보여주고 과정을 알려주는 것이 옛날 추리소설에서 많이 나타난 스타일이다 보니 어느 정도 감안은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못난 사람은 끝까지 못나게 보이는 법일까. 상당한 악질 범죄를 저지른 범인 치고는 마지막이 참으로 비참하고 구슬퍼서 뭐라 말하기가 어렵다. 동정을 받을 만한 안타까운 사연 같은 건 전혀 없다. 그저 감당 못할 일을 저질러 놓고 마음 약하게 구는 범인의 모습이 추하게 보일 뿐이다.

수상한 궁녀

한시치는 아는 찻집 주인 오카메로 부터 사건을 의뢰 받는다. 어느 날, 찻집에 번듯한 무사가 방문해 차 값보다 더 많은 돈을 내고 돌아간 일이 있었고, 그 이후 딸이 이따금 사라졌다가 돌아오는 일이 생겼다고 한다. 딸의 주장에 따르면 어느 저택에 불려가 시중 드는 여인들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지냈다고 한다. 하지만 봐서는 안 되는 무언가가 가끔 식 돌아다니다 보니 마음 편히 있을 수가 없었다는데...

납치인지 아닌지 애매하게 보이는 사건 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반전과 사연이 나와서 나름 흥미로웠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호의와 정체 불명의 무언가가 섞인 기묘함은 공포 같으면서 현실과 또 다른 환상 같은 느낌을 줘서 꽤 좋았고. 예상치 못한 전개로 사건이 해결되는 방식이 참 독특했다. 사실 너무나 갑작스러운 변주라서 급전개로 보일 수도 있으나 지금 시대에도 이것과 비슷한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돈 냄새가 나는 것처럼 보이는 곳에 언제나 불한당이 끼어드는 법이니까.

옛날이나 지금이나 높은 지위의 사람들은 체면을 신경 쓰기 바쁜 건 비슷한 모양인가 보다. 무슨 사정인지 잘 설명했으면 편할 일을 괜히 복잡하게 만들어서 괴담 같이 만들어 버렸으니 말이다. 물론 작중의 사연은 신분과 상관 없이 어디에 쉽게 말하기 어려운 집안 사정이라는 점은 감안해야겠다. 이유 모를 선의가 거짓이나 기만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다행이기도 하고.

쓰노쿠니야

토키와즈(일본 샤미센 음악의 한 종류로 한국의 판소리와 비슷함.) 여사범 모지하루는 아카사카로 돌아가는 길에 어떤 으스스한 여자와 마주친 일을 겪는다. 아는 도편수의 말에 따르면 쓰노쿠니야라는 술집에 양녀로 있었다가 쫓겨난 오야스라는 여자의 유령이라고 하는데...

복수를 위해 죽은 이후에 유령으로 찾아와 저주를 내린다는 괴담. 인과응보를 다루는 이야기의 대표적인 유형이라 세계적으로 보면 꽤 많은 편이긴 하다. 이런 저주는 조금씩 쌓여가며 커진 형태라 당사자는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마저 섬뜩한 재앙 그 자체다. 그렇다 보니 분량 만큼이나 사건의 규모가 상당한 편이다. 직접적인 피해자야 말할 필요도 없고, 그저 관계자라는 이유로 발생한 간접적인 피해도 상당하다.

그야말로 괴담 그 자체로 보일 만한 내용이나 후반부에서 밝혀진 실체는 엄청나게 추악한 대규모 범죄였다. 요즘 시대에는 씨알도 안 먹히고, 엄청나게 번거로워서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지 이해가 안 될 만도 하다. 하지만 이게 바로 현재와 과거의 시대적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제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남의 것을 빼앗을 수만 있다면 뭐든 하고야 마는 사람의 악독함이란 바로 이런 것일 수도 있겠다.

미카와 만자이

12월의 추운 아침, 가마쿠라 나루터 인근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남자의 품에서 여자아기가 발견된다. 그것도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송곳니가 나 있다는 점에서 항간에서 말하는 도깨비 아이다. 한시치는 죽은 남자가 신년 축하 길거리 공연을 하는 사이조라 추측하고 길거리 공연가들을 조사하는 한편, 아이의 출처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이런 와중에 고양이를 잃어버렸다고 한탄하는 어느 노점상이 있다는 말을 듣고 한시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무슨 일인지 들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한시치가 다시 노점상에게 물어보자 모르는 일이라고 주장하는데...

딱히 큰 사건처럼 보이지 않았던 것이 심각한 전개로 이어져 여러모로 충격을 준다. 처음 봤을 때의 인상은 중범죄처럼 보이는 부분이 없고, 아기 관련된 기묘한 부분이 핵심인 것 같았다. 상대적으로 일상적인 분위기가 강해서 무게감이 덜하게 보이기도 했다. 여기에 하필이면 사건이 벌어진 시간대도 새해가 곧 다가오는 연말연시라 더욱 비극적인 느낌이 강하다.

사소하게 발생한 다툼이 대참사나 다름 없게 번진 걸 보며 세상 일이란 어떻게 돌아갈지 알 수 없는 것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낀다. 최선이라 생각한 방법은 언제나 성급하게 나오는 법이고, 그건 곧 최악의 수가 되고 만다. 또한 사람 사는 세상이란 정말 말도 안 되는 우연으로 변수가 발생하기에, 모든 일이 반드시 잘 풀린다고 보장하기 어렵다. 애초에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따지기 힘든 것도 같은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사건의 시작이 되는 다툼부터 그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우연으로 일어났으니 말이다. 그렇다 보니 이로 인해 발생한 업보와 죄책감은 상상을 초월할지도 모른다. 단 한 번의 실수로 의도치 않게 여러 사람을 죽게 만든 것이니까.

창 찌르기

어두운 시각에 갑자기 튀어나와 상대를 가리지 않고 창으로 찌르고 달아나는 사건, 일명 창 찌르기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에 오카핏키 시치베는 부하로부터 이상한 보고를 받는다. 늦은 밤, 가마꾼 둘이 빈 가마를 들고 돌아가는 길에 어떤 처녀를 태우게 된다. 그런데 누군가가 달려와 가마 안으로 창 찌르기를 하는 바람에 가마를 버리고 도망쳤다가 다시 돌아오게 된다. 가마꾼이 가마를 안을 확인해 보니 처녀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커다란 검은 고양이가 죽어 있었다고 하는데...

작중의 표면적인 사건은 츠지기리라고 에도 시대에 종종 발생한 길 가던 사람을 이유 없이 칼로 베는 범죄의 일종인데, 요즘에도 가끔 일어나는 묻지마 범죄와 똑같다고 보면 되겠다. 여기에 기묘한 사건이 동시에 얽히니 그 기괴함은 뭐라 설명할 수가 없다. 어떻게 보면 현실 범죄와 비현실적인 사건이 동시에 겹친 것이니 말이다.

기괴한 사건에 대한 부분이 단순 헤프닝 수준으로 밝혀진 탓에 결국은 창 찌르기가 모든 일의 원인이나 다름 없다. 이런 묻지마 범죄가 발생하게 되는 이유에 대한 추측을 보면 굉장히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는 인상이다. 뚜렷한 이유를 찾기 어려운 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그런데 범인의 원래 살던 환경과 현재 보고 있는 세상의 모습이 충돌하는 부분은 비슷하지 않나 싶다. 요즘 말하는 상대적 박탈감 같은 것이라고 말이다. 다만 이게 원래부터 인간성이 돼먹지 못한 건지 아니면 다른 문제가 있는지 여전히 알 수 없겠지만.

여우와 승려

야나카의 지코지라는 절에서 주지 에이젠이 어느 순간 여우로 변해버렸다는 소문이 난다. 더 정확히는 주지가 동자승과 함께 어느 골동품상을 방문했다가 동자승만 혼자 돌려 보냈는데, 다음 날이 되어도 안 돌아오던 중에 근처의 다른 절에 있는 도랑에서 주지의 옷을 걸친 여우 시체가 발견된 것이다. 사건 조사가 끝난 이후, 이웃집 장례식 때문에 야나카에 온 한시치는 여우의 시체가 발견된 도랑에서 무언가를 꺼내려 하고 있는 동자승을 발견하게 되는데...

짧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분량에 대한 점만 빼면 다른 작품들에 비해 크게 특별한 면이 없어서 아쉬움이 있다. 이런 종류의 괴담은 아무래도 예측하기 너무 뻔하기도 하고. 나름 주목할 부분이라면 에도 시대에도 종교 내부적 갈등이 있었고, 그게 생각 이상으로 과격했다는 점. 그리고 사소한 부분에서 발생한 오해가 생각 이상으로 별거 아닌 것을 이상하게 만든 다는 것이다.

한겨울의 금붕어

하이카이(일본 정형시인 하이쿠의 특정 스타일.) 사범인 기게쓰는 아는 골동품상으로부터 겨울에도 키울 수 있는 금붕어를 팔아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기게쓰와 여급이 누군가에게 살해 당한다. 그 어떤 단서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 주변 사람을 조사하던 중, 한시치는 현장을 처음 목격한 골동품상으로부터 금붕어 얘기를 듣게 된다. 예정대로 겨울에도 키울 수 있는 금붕어를 기게쓰를 통해 다른 이에게 팔았지만, 그 다음 날 바로 죽어버려서 난처했다고 하는데...

굉장히 이상한 인간 관계로 인한 파국으로 밝혀져 의외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겉만 보고서 알 수 없는 일은 꽤 있다. 점잖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파렴치한이었다던지, 수상쩍은 사람인 줄 알았더니 사실은 그 어떤 결점 없이 깔끔하게 사는 사람이었다던지. 이런 편견 아닌 편견 때문에 무슨 사건이라도 발생하면 충격 받을 부분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결국 금붕어는 무엇이었는가, 하는 의문이 남지만 나름대로 이 사건을 상징하는 하나의 비유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게 대체 뭐라고 그렇게 소란을 피워가며 사람을 죽일 만한 일이었을까. 가만 보면 별거 아닐 수도 있는 일이 사소한 부분에서 너무 심각해진 것이다. 이렇듯 금붕어에 대한 문제도 그냥 건강하게 잘 크는 것이었는지 그것만 따졌으면 별 상관 없는 일이다. 겨울에도 키울 수 있는 금붕어냐 아니냐. 이걸 굳이 물고 늘어져 봤자 불필요한 분쟁과 이상한 사람 취급만 돌아올 뿐이다.

에도가와의 보라잉어

늦은 밤, 우시고메 무료지 문전 마을의 짚신 가게에 누군가 찾아온다. 혼자 있던 안주인 오토쿠가 누구인지 확인해 보니 어떤 여자였는데, 꿈에서 보라색 기모노를 입은 기품 있는 남자가 나타나 자신이 이곳에 있으니 와 달라 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오토쿠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남편이자 가게주인인 도키치는 요즘 장사가 안 돼서 낚시가 금지된 에도가와 강에서 몰래 보라잉어를 잡아다 팔고 있었고, 지금 부엌에 어제 잡은 잉어 한 마리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마치 옛날 이야기의 한 부분 같은 느낌이다. 물고기를 낚았는데 갑자기 말을 해서 살려주면 큰 보상을 해주겠다. 아니면 어떤 동물을 잡았는데 그 동물의 배우자가 사람으로 나타나 돌려 보내 달라고 부탁하거나. 그저 옛 설화나 전설이었다면 기묘한 이야기 중 하나겠지만, 이 소설 속 사건으로 나온 이상 그렇게 훈훈한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하지 말라는 것을 굳이 하고 마는 사람들이 꼭 있다. 여기서는 보라잉어 하나로 엮인 복잡한 관계가 엎치락 뒤치락 하는 형국인데, 겨우 이거였다는 진상이 많아서 어이없게 보일 만하다. 조금만 생각을 다르게 했다면 타이밍 맞게 적당히 손을 뗄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사서 파국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결국 막을 수 없나 보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하지 않은가. 마음이 급해지면 침착하지 못해서 최악의 상황으로 굴러 떨어지게 되는 모양이다.

외눈박이 요괴

새를 파는 가게인 노지마야에 어느 무사가 방문해 귀한 매추라기를 구매하고서 내일 아침에 모처에 가지고 가야 하니 오늘 밤 중으로 배달해 달라고 한다. 그렇게 밤 중에 가게 주인 기에몬은 안내인과 함께 무사의 집에 도착한다. 무사의 모습과 어울리지 않은 낡은 집이라 여기며 한참을 기다리던 중, 어느 소년이 들어와 방에 걸린 족자를 가지고 장난을 친다. 기에몬은 보다 못해 소년에게 말을 걸었다가 기절하고 만다. 소년의 얼굴이 외눈박이였기 때문이다...

제법 무서운 이야기와 강도 사건이 얽힌 것 치고는 해결 과정이 너무나 싱겁다. 단서 하나로 유추해서 줄줄이 엮여 나왔다 해도 너무 과정이 생략되고 결과만 보여줬다는 인상이 강하다. 유독 분량이 짧다 보니 더 그렇게 보이는 것 같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 이게 딱 적당한 말이라고 본다. 괜히 불필요한 사족을 덧붙였다가 나름 완벽 범죄의 덜미를 잡혔으니 말이다. 그냥 범죄라면 몰라도 괴담까지 같이 있어서 더욱 번거로워 질 수밖에 없다는 것도 있겠다. 하나를 계획하는데도 준비가 많이 필요한데, 두 개면 어떻겠는가.

단발뱀의 저주

에도에 콜레라가 유행한 탓에 단발뱀 전설로 인해 한산했던 고비나타의 스이도초에 위치한 히카와 신사에도 참배객이 몰린 때였다. 인근에 있는 담배가게의 모녀와 여급이 히카와 신사를 방문하고 돌아가는 길에 단발뱀과 마주치고 만다. 다행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지만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이후 팔손이나무 잎을 달아두면 좋다는 소문이 돌아 담배가게에서도 똑같이 했는데, 바로 다음 날에 팔손이나무 잎에 글자가 적힌 듯이 벌레가 먹어 있었다. 딸이 죽는다고...

전염병이 도는 배경 속에서 벌어진 저주 관련 사건이다 보니 제법 흉흉한 괴담처럼 보였다. 어두운 밤의 길거리에서 무언가와 마주쳤다는 이야기조차 이 당시에 충분히 공포였을텐데, 매일매일이 죽음의 연속이던 전염병 유행 시기라면 말할 것도 없다. 변사, 살인, 병사, 범죄. 그 어느 때보다도 공포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시대적 상황이 얽혀 다소 부풀려진 범죄였지만 어째 가해자들이 더 비참한 결과를 맞이해서 묘하다. 그냥 인과응보를 당했다고 보면 되겠지만, 전염병이 창궐한 시기라는 점도 그렇고 소문으로 돌던 저주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사실은 저주가 실제로 발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단발뱀이 자신을 사칭한 이들에게 진짜 벌을 내린 거라고 말이다.

사라진 두 여자

고가네이의 벚꽃을 보러 길을 나선 한시치와 부하들은 이왕 멀리 온 김에 근처의 가까운 역참이 있는 후추까지 가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한다. 거기에서 못된 아버지 때문에 자살하게 된 딸과 연인인 에도 포목점 아들의 유령이 나온다는 집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된다. 이후 계절이 바뀌고 여름이 되어 한시치는 에도의 술도매상 마님이 후추에서 열리는 축제를 보러 갔다가 실종된 사건을 접하게 되는데...

특정 장소에서 연달아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유력 용의자가 금방 좁혀질 것으로 보였지만, 생각 이상으로 얽힌 인물이 많아서 놀랍다. 아무래도 사건 장소가 유명 관광지라는 점에서 의도치 않게 겹친 거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인파가 많은 곳에서는 아는 사람끼리도 못 알아보고, 나중에 알게 되는 일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 보니 이런 점을 이용해 은근슬쩍 일을 저지를 만하다.

비슷한 사람끼리 만난다는 말이 있다고 하지만 이렇게 지독한 사람끼리 연결될 수도 있는 걸까. 사건 관계자 대부분이 나쁜 짓을 저질렀기에 누가 피해자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물론 소수의 몇 명은 진짜 피해자라고 할 만한 부당한 피해를 당했기에 아예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저 나쁜 사람들끼리 모의 했다가 더 지독한 사람이 뒤통수를 쳐서 버려진 것을 과연 피해자라고 봐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결국은 정도가 다를 뿐이지 똑같은 사람끼리 만났기에 벌을 받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작중에서 벌어진 기묘한 일 역시 죽어도 혼자 죽지 않겠다는 원망이 담겨 있어 보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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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집 우케쓰 이상한 시리즈
우케쓰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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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란 표현력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내는 아이디어 경쟁이라고 생각한다. 간단한 예시로 들 수 있는 것이 바로 나폴리탄 괴담이다. 핵심에 해당되는 부분이 빠진 채로 이야기가 끝나다 보니 그 찜찜한 맥거핀에서 오는 꺼림 직함이 매력인 괴담이다. 그 만큼 창작 난이도가 높은 편이라 할 수 있지만, 여기서 파생된 매뉴얼, 규칙 괴담을 보면 또 그렇게 보이지 않기도 하다. 여기서부터 중요하다. 그저 쉽다. 이게 바로 방심이자 발전 없이 매너리즘으로 빠지는 지름길이다. 일정 규격이 잡히고 그 안에서 계속 똑같은 형태로 돌기만 하니 새로운 작품이 나와도 그게 그거라 흥미가 떨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스타일이 나왔다고 거기에만 주목하기 보다는 거기서 어떻게 더 발전할 수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이걸 성공시킨다면 그 아이디어는 잠깐의 유행이나 심심풀이가 아니라 확고한 스타일로 자리 잡는 다고 할 수 있다.

특이한 형태의 괴담이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에 올라와 있던 내용이라 초반 내용은 많이 익숙하다. 이미 접해본 경우가 꽤 많다 보니 이 책이 출간됐다고 들었을 때 기대가 많았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도면으로 주목 받은 스타일이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인터넷에 공개된 내용을 그대로 재탕한 초반 말고는 또 다른 도면과 사건을 다루는 옴니버스 스타일로 이어진 도면 괴담 단편집. 그런데 막상 읽어본 내용은 전혀 다른 구성이었다. 맨 처음 시작된 도면으로부터 쭉 이어지는 하나의 이야기다.

출판사의 아는 지인이 구매 예정인 집의 이상한 점을 알아보기 위해 평면도를 받아온 나. 건축회사에 다니는 지인인 구리하라와 함께 수상쩍은 점을 알게 되고, 다소 섬뜩한 추측까지 나오며 이 집에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의심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지인의 집 구매가 취소 되면서 집에 대한 의구심은 흐지부지 끝나게 된다. 얼마 뒤, 문제의 이상한 집에 대해 쓴 기사를 보고 어떤 여자가 찾아온다. 자신의 남편이 그 집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살해 당한 것 같다면서...

내용 전개상 평면도의 중요도가 높은 편이라 책으로 이걸 어떻게 나타낼지 궁금했는데, 중요 포인트마다 평면도 그림을 잘 배치해서 몰입하기 좋다. 하나의 이야기 안에서 처음 보여준 것 외의 다양한 평면도를 제시해 더욱 흥미롭게 하고. 상세한 포인트를 짚을 때도 그에 맞는 그림이 잘 제시되어 있어 금방 이해하기 쉽다. 단순히 그림으로 분량을 때우는 것이 아니고, 평면도라는 소재의 일관성을 지키며 스토리를 확장시킨 부분에서 꽤 높게 평가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단순 괴담에서 점차 미스터리처럼 진행되긴 하지만, 공포라는 본질은 그대로 유지하며 결말을 내기에 아주 좋게 봤다. 현실적인 면과 오컬트를 넘나들며 어느 한 쪽 만으로 설명되지 않은 복합성 있는 공포가 참 특이했다. 이게 잘못하면 이도저도 아닌 짬뽕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스토리 안에서 충분한 개연성을 가진 자연스러운 연결을 보여줘서 감탄했다. 작중에서 벌어진 사건이 어느 정도 현실성을 가진 다는 것도 나름 주목할 점이다. 가족, 여기서 조금 더 확장하면 특정 집안이라는 틀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사회적으로 보면 이상해 보일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뉴스를 보면 가끔 나오는 일명 작은 사회에서 발생한 사건사고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을 지도 모르겠다. 가족과 집안도 사회는 사회니까.

이 작품이 평면도에 대한 해석을 통해 나온 섬뜩함으로 주목 받다 보니 리얼리티 있는 현실성을 바라는 경우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책의 내용을 보고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여겨질 만도 하다. 엄청난 현실 범죄 스토리라 생각했던 것이 알고 보니 오컬트가 얽힌 흔한 무서운 이야기였다고. 하지만 이건 알아둬야 한다. 괴담이나 공포에 완전한 현실성을 따지는 건 애초에 무리다. 공포란 상상의 영역을 통해 더욱 넓혀가는 것인데, 지나치게 현실성을 따지면 확장성이 떨어져 오히려 재미 없어진다. 또한 묘한 뒷맛을 남기는 것이 괴담의 정석이라 완벽한 결말을 바라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현실성에 대해서는 호불호의 영역일 뿐, 완성도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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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런개 매그레 시리즈 5
조르주 심농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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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모를 위협은 공포 그 자체다. 뚜렷한 인과관계나 동기를 알 수 없으니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자연스러운 두려움을 조성하기 때문이다. 이게 언제 끝날지 몰라서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어떻게든 이유를 찾게 된다. 아니, 정확히는 사실과 관계를 파악하지 않고 그럴싸한 이유를 만들기 급하다. 불길한 상징이나 존재라 불리며 멸시 받는 것들은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점이 있다. 진짜 아무런 이유 없이 발생하는 일이 있을까? 어떤 일이든 원인과 결과가 있다. 단순하게 공포만 부각되며 객관성이 결여되다 보니 그 만큼 밝혀지지 않은 사연의 깊이가 상당할 수밖에 없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늦은 밤 항구도시 콩카르노에서 카페를 나선 포도주 도매상 모스타구엔이 총에 맞는 사건이 발생한다. 단서는 사건 현장 근처에 있던 빈집에 누군가 있었던 흔적이 전부. 범행 동기 역시 알 수 없는 가운데, 갑자기 나타나 주변을 배회하는 누런 개만 눈에 띌 뿐이다. 이후로 모스타구엔과 친분이 있던 지역 유명인사 한 명, 한 명이 피습을 당하고, 그 현장에 언제나 누런 개가 나타나는 바람에 사람들은 불길한 존재로 취급하게 되는데...

지역 사회라는 환경 속에서 굉장히 소란스럽게 진행되는 사건이라 혼자 관점을 다르게 보는 매그레 반장이 유독 눈에 띄게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분위기만 보면 극악무도한 대사건이 벌어진 걸로 보일 만하다. 누런 개라는 부분에서도 어딘지 모르게 비현실적이고 수상쩍은 요소가 있어 보이고.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이런 거창한 것들은 매그레 반장과 전혀 어울리지 않다. 제 아무리 침착하지 못하고 성급한 상황이더라도 본질은 하나다. 사람 사는 이야기.

매그레 반장 시리즈 역시 엄연히 추리소설임에도 작중에서 추리를 경계하라는 듯이 말하는 부분이 나와서 여러모로 묘하게 보였다. 그냥 보면 생각을 포기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질적으로는 지나친 억측을 조심하라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작중의 대부분은 억측으로 가득하다. 다양한 소문이 진짜인 것처럼 떠돌고, 몰려든 신문 기자들의 취재 경쟁까지 합쳐져 더욱 과열되어간다. 이건 지금의 현실도 마찬가지다. 객관성은 전부 무시하고 성급한 결론을 내며 자극성만 부추기는 추리가 남발하고 있으니 말이다.

타지역에 파견 나와 있는 상황이다 보니 오래 같이 일한 베테랑이 아닌 신참 형사와 같이 다녀서 나타나는 방식의 차이도 꽤 재미있는 부분이다. 매그레 반장은 하던 특유의 방식 그대로. 반면 신참 형사 르루아는 당연하면서도 정석적인 수사방식을 고수하면서 반장의 눈에 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다. 딱히 옛날 사람과 요즘 사람의 대립 같이 불편한 구도는 아니다. 서로의 방식에 대해 존중하는 자세라 보통 경찰과 매그레 반장의 방식이 어떤 식으로 차이가 있는지 보여주는 연출이라 보면 되겠다.

뚜렷한 실체 없이 퍼져나가던 공포 속에서 밝혀진 진실은 추잡한 범죄에 휘말려 삶을 잃어버린 안타까운 드라마다. 열심히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불행이 닥치고, 열심히 살지 않아도 그만인 불한당들은 아무렇지 않게 큰소리 치며 살아가는 현실. 이런 와중에 한때의 유흥으로 끝난 걸로 알고 있던 과거의 사건 당사자가 다시 돌아온다면 가장 두려워할 사람은 누구인가. 사실상 비겁한 겁쟁이들로 인해 벌어진 하나의 촌극이었던 거나 마찬가지다.

참으로 비열한 사건이라 그런지 권선징악 하나 만큼은 제대로다. 다소 공정하지 않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어쩌겠는가. 매그레 반장은 해피 엔딩을 보고 싶어 했고, 이건 독자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무엇보다 작중의 드라마는 결말을 향해 꺼져 가고 있는 게 아니라, 충분히 다시 타오를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다. 그러니 매그레 반장은 보고 싶었을 것이다. 불행하게 중단 됐다가 다시 시작되는 드라마의 첫 장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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