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살인 사건 매그레 시리즈 7
조르주 심농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깔끔하다고 하면 정말 조금의 흠도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너무 깔끔해서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인상이 들기도 한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모습과 다른 어두운 구석.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해도 체면을 생각해서 쉬쉬하는 풍조. 소란이 싫다는 이유로 진실에 다가가는 것을 경계하는 시선. 이런 게 있으면서 과연 깔끔하다고 할 수 있을까? 제 아무리 소란이 싫어서 감추고 싶은 일이 있다 해도 완전히 숨길 수는 없다. 결국은 균열이 발생하고 마련이니까. 깨끗함 밑에 가둬 두고 억압하던 오래 묵은 불만과 분노가 폭발해서.

네덜란드 델프제일에서 해군 사관 학교 교수 포핑아가 집에서 총에 맞아 살해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유력 용의자로 초청을 받아 방문한 낭시 대학 교수 장 뒤클로가 지목된다. 이런 통보를 받고 매그레 반장은 사실상 비공식으로 델프제일에 파견을 나가게 된다. 반장은 사건 관계자들로부터 당시 상황에 대해 더 자세히 들어보니 이상한 점이 더 발견된다. 뒤클로 교수가 범인으로 지목된 이유가 총을 들고 있었기 때문인데, 문제의 총은 2층 욕실에서 발견해서 무심코 들고 나왔다는 것. 그리고 욕실의 욕조 안에서 낡은 선원 모자가 발견됐고 주인은 포핑아와 친분 있던 오스팅이라는 노인이라고 한다...

프랑스를 벗어나 타국에서 벌어진 사건에 개입하는 내용이다 보니 매그레 반장의 입장에서 주변 환경이 낯설게 묘사되는 편이다. 사실 〈생 폴리앵에 지다〉에서도 타국인 독일에서 사건이 벌어지긴 했지만, 돌고 돌아 결국은 프랑스 안에서 시작된 사건으로 해결됐다. 그렇기에 타국에서 벌어진 사건에 제대로 개입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 할 수 있다.

대체로 네덜란드 하면 떠오르는 엄청난 운하와 아름다운 풍경이 돋보이면서 지금과는 다른 딱딱한 인상이 많은 편이다. 다소 과하게 행동 하나 하나를 조심스러워하고.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그 어떤 소란이나 추문이 발생하기를 꺼리는 모습에서 깔끔을 넘어 결벽증으로 보일 정도다. 실제로 지금의 자유분방한 네덜란드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이 2차 세계대전 이후라고 하니, 그 이전에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였을지도 모른다.

살인사건이라는 중범죄가 벌어졌음에도 대체로 평온한 분위기를 유지하려는 느낌이라 점차 이상함을 느끼게 한다. 보통 한 번 정도는 나올 법한 의심이나 수상쩍은 면에 대한 논의가 일절 나오지 않고 사건 관계자들은 하나 같이 이런 식이다. 피해자는 누구에게도 미움 받을 사람이 아니었다. 사건 관계자 그 누구와도 아무 일 없었다. 자신은 아무 짓도 안 했으니 결백하다. 분명 범죄는 내부에서 발생했는데, 사실상 죄는 저 멀리 외부의 다른 곳에 있다는 듯한 투다. 이렇다 보니 매그레 반장 입장에서는 그다지 좋게 보일 리가 없다. 시답지 않은 이유로 쓸 때 없이 사건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으니까.

추리 작품에서 흔한 사건 관계자들을 모아 놓고 진실을 밝히는 과정이 이 작품에서 쓰이게 된 건 이러한 배경 때문일 것으로 본다. 그저 말로 설명하는 것을 넘어 사건 발생 당일의 상황을 시간 순서 그대로 재현할 정도다. 이렇게 까지 해야 범인은 물론이고 사건 관계자 전원까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으로 봐야겠다. 보통 이런 클라이맥스 부분은 범인을 몰아 붙이는 의도가 강한 편이나 이 작품에서는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그 만큼 범인도 범인이지만 사건 관계자 때문에 더욱 힘든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답답한 분위기의 문화 속에서 발생한 비극이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자유분방함을 죄악으로 여긴 탓에 재미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불행. 그렇다고 자유를 위해 체면을 버릴 각오까지는 없었기에 발생하는 갈등. 여기에 체면 밖에 없었기에 생겨버린 뒤틀린 감정으로 인한 증오. 제일 경악스러운 건 이 모든 걸 덮어버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지내고자 하는 분위기다. 사건이 해결됐다고 관계자 대다수가 불쾌해 하는 경우라니. 진실 보다는 대외적 이미지에 흠집이 생긴 걸 더 중요하게 여기게 하는 그 놈의 체면이 뭐라고.

이러니 매그레 반장이 당혹감에 속이 터지다 못해 우울해질 수 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무엇이 잘못됐는지 전혀 모른 채 그저 깨끗함만 중요시 해서 남는 게 뭐란 말인가. 오직 깨끗하기만 해서 그게 행복일까? 깨끗해지려 하는 행동이 지나치면 되려 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 걸까? 이걸 보면 엄격하게 체면 따져가며 살 필요가 없어 보인다. 너무 방탕한 것도 문제는 문제지만, 그 반대 역시 문제가 없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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